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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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00. 조지프 앤턴 (살만 루슈디)
아, 이 잘난척 대마왕 아저씨를 어쩔까나! 작가는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해 안달이어서 독자는 당황스럽지만, 진짜, 그의 소설은 대단하다. <한밤의 아이들>은 묘한 돌림노래 같은 매력으로 끝까지 이야기 속에 독자를 가둬놓았고, 주문에 걸린 독자는 (네, 저요)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만나게 된 그의 다른 소설들도 검색해서 주문을 하게된다;;;; 그래, 난 고집불통 루슈디를 좋아하는게 아니야, 그의 재능을 그의 말솜씨, 구라-어빌리티를 아낄뿐이야.

루슈디는 여성편력도 대단한데, 팔등신 미녀의 허리를 껴안은 오등신 바디가 그가 가진 전부가 아니다. 더 화려한 재산은 그의 친구, 동시대의 작가들이다! 그는 심지어 주제 사라마구와 산책을 했고, 에코(움베르토!!)와 친구 사이인데다, 폴 오스터랑은 가족끼리 식사를 (어흑) 하는 사이다. 이언 메큐언은 그가 부르면 바로 달려온다. 부러움을 안고 읽다보면 루슈디가 싫어하는 작가들 뒷얘기를 재미있게 만날 수 있다.

루슈디의 악명높은 소설,< 악마의 시>는 작가에게 파트와, 사형선고를 내렸고, 이를 둘러싼 이십여년의 도피/경호/은둔 생활이 빌 브라이슨 보다 더 까탈스런 화자를 통해 장장 몇 백 페이지에 걸쳐 조목조목 (따지듯) 그려진다. 인도출신의 영국 작가가 이슬람 국가의 편협한 사고방식과 폭력에 대항해 싸우는 건,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위해서다. 그의 소설이 이슬람을 얼마나 모독시켰을지 몰라도, 그 이유로 루슈디의 작품을 번역한 역자가 피격 당하고, 심지어 살해당했다. 그런데, 그 끔직한 폭력에 가담한 이들은 루슈디의 작품에대해 알기는 커녕 읽지도 않았다니.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이 보여준 ˝평화적˝ 폭력도 너무나 끔찍해서 루슈디의 몇백쪽 회고록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더한 증오의 시대에서 끝맺는 것처럼 읽힌다.

 

루슈디는 자신의 인생사를 풀어놓을 때 히치콕의 영화 <새>의 음산한 오프닝을 언급하면서 그 검은새의 날개짓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가 (네, 저요) 곱씹게 만들었다. 얼마전 일어난 샤를리 엡도의 테러 사건을 보자니, 아직도 상황은 그닥 다르지 않다. 이 책이 그저, 서구 영어권 만세, 로 읽히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그누가 뭐래든 루슈디 양반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겠지만.

욕하면서 사랑하게되는, 추하지만 매력 쩌는 그.
첨엔 반복되는 ˝그˝ 3인칭이 누구야, 하면서 읽었는데. 하, 이 작가님, 글 진짜 잘 쓰심. 남을 비난할 때도 얄짤없지만 자기자신의 잘못을 적는 데도 살벌하심. 회고록이라면 이정도 끕, 이 되어야한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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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배우 파드마 라크시미와 함께.

(당연히, 이 둘의 시작은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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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1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래요??? 막 솔깃!!! 찾아서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페이퍼군요~~~~ㅋ

유부만두 2015-02-12 16:48   좋아요 0 | URL
루슈디의 자신감과 재능은 정말이지 탐나요. 회고록도 흥미진진하고요. 물론 본인은 힘들게 살아냈지만요. 그가 진정 원한건 ˝평범한 생활˝이었다나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다. 첫 십여 쪽은 어렵게 읽었는데, 그만 참지 못하고 띠지에서 이 소설의 '사건'이 어떤건지 읽고 말았다.

책의 광고 띠지 만큼 밉살스러운 물건이 없다. 가장 큰 스포일러이자 손가락 베기 십상인 안티 독서재재.

 

읽고 만 그 사건이 이제 막 벌어질텐데, 조마조마해서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모든 등장인물들은 얼음. 읽다가 차를 흘려서 우글쭈글해진 종이... 그런데 다시 잡아서 그 사건을 헤쳐나가야 할까, 어쩔까,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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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2-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7쪽까지 읽음. 조만간 일이 터지겠네. 자동차 접촉 사고 무섭습니다.

라로 2015-02-12 16:51   좋아요 0 | URL
그럼 거의 다 읽으신 거 아냐요????ㅋ

유부만두 2015-02-12 17:26   좋아요 0 | URL
딱 절반 읽었네요

라로 2015-02-1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체실비치에서를 읽고 이언 매큐언이 좋아졌어요. 이 책 어여 고민하지 헤쳐나가시고 글 올려주세요 ~~~ㅎㅎㅎ

유부만두 2015-02-12 17:27   좋아요 0 | URL
전 ˝이런 사랑˝으로 시작했어요
 

80/400. 치숙 (채만식)

전에도 그렇지만, 이번에 새로 읽을 때 역시 이 조카라는 인물은 전혀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소설이 나온 1930년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물 같다. 그리고 그의 치숙은 지금도 여전히 우울증과 체념에 찌들어 허름한 방에 누워 (어쩌면 인터넷에 현실 한탄의 글을 끄적이고) 있다. '내지'라는 어휘 대신 '미국'을 넣어보면 이런저런 뉴스에 보였던 사람들의 행동, 원정출산, 위장입학, 등이 연상된다. 이미 그런 치졸한 행태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쌓여왔다. 그럼, 치숙이라는 소설은 뼈아픈 시대 풍자소설이 아니라 영험한 예언 소설이 되는 건가. 대를 이어 지속되는 가치를 칭송하고 힘없는 지식(인이라 자칭하는)을 비난했으니까. 갑갑하다.

 

81/400. 헤밍웨이 위조사건 (조 홀드먼)

유명작가의 사라진 원고를 위조한다는 설정은 김연수 작가의 <꾿빠이 이상>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라 시공을 초월하고, 인물의 능력이 한없이 확대되기도 하고, 죽음이 더 비중있게 나온다. 헤밍웨이의 충실한(?) 독자였던 존 베어드가 헤밍웨이의 '존재'와 합일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소설의 첫 문장이 '머지않은 미래'를 향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존 베어드가 사기꾼 캐슬과 결탁하는 과정이 너무 쉽게(혹은 허술하게) 그려지고 존의 아내의 성격도 작위적으로 오락가락한다. 소설이 이 거대한 플롯을 담기에는 너무 짧아서일까. 그래도 우주가 교차되어 새로 만나는 인물들이 달라져 있는 것은 흥미로웠다. (여기서 1Q84를 떠올린 건 흐뭇한 경험) 그덕에 이 짧은 소설의 중반부가 가장 재미있다. 하지만 클라이막스인 '그가 나고, 내가 그'인 순간과 영혼의 되감기 장면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다. SF 설정을 다 믿고 따라갈 준비가 되있던 독자를 이렇게 못 끌어당기다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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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0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0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중에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의 주동자로 현진건은 검거 투옥된다. (146)

"과거를 더듬으며 한숨 쉴 일이 아니요 미래를 바라보며 팔만 벌리고 있을 것이 아니다. 손아귀에 단단히 힘을 주어 현재를 움켜쥘 것이다" 라는 그의 말대로 현진건은 리얼리즘을 자신의 작품세계로 규정했다. (146-147)

식민지 사회의 민중은 모두가 노예애 지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오늘 운수 좋은 누군가는 동포에게 자기의 불운을 전가시키거나 결국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유예시키고 있을 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147)

채민식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이광수나 김동인에게서 보이는 전근대적인 `치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78)

[`치숙`에서] 모든 가치는 거꾸로 반전되어 있고 선악도 뒤바뀌어 있으며, 조카의 부정적 비난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간다. 아이러니는 희극과 비극의 미묘한 경계에 서기 마련인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희극적으로 그려져서 더욱 눈물겨운 비극적 아이러니라면, `치숙`은 가치가 전도된 비극적 현실이 조카의 입을 통해서 희극으로 변하는 아이러니다.

이 작품의 조카와 고모부는 서로를 투영한 타자의 `거울`을 통해서 원주민의 소외를 드러내고 있는데, 프란츠 파농은 이러한 소외와 부재를 식민지 사회의 `심인성 장애`라고 썼다. (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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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이 주민등록증 신규 발급 신청을 했다. 오전에 사진관에 가서 사진도 찍고, 여드름 지우는 포샵도 하고, 열 손가락에 잉크 묻히고 지문도 찍었다. 아이는 심드렁하게 이 모든 과정을 하면서 엄마랑 같이 동사무소에 온 것을 귀찮아(혹은 창피해) 했지만, 그 등짝을 바라보면서 아.... 얘가 이만큼 컸구나. 싶어서 혼자 짠 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오늘 눈마저 펑펑 내리니 혼자 센치해 지면서, 큰아들을 위해서 돼지고기 목살을 샀습니다 그려. 이 블로그는 큰아들 모름. 절대 모름. 나는 아이 앞에서는 쿨하게 혼만 내는 엄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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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10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늘 부모 혼자 짠해요~~~^^;;;
그런데 유부만두님 저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을 ~~~~~ 우리 혹 나이가 비슷 할까요???^^;;;;

2015-02-10 0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