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중에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의 주동자로 현진건은 검거 투옥된다. (146)

"과거를 더듬으며 한숨 쉴 일이 아니요 미래를 바라보며 팔만 벌리고 있을 것이 아니다. 손아귀에 단단히 힘을 주어 현재를 움켜쥘 것이다" 라는 그의 말대로 현진건은 리얼리즘을 자신의 작품세계로 규정했다. (146-147)

식민지 사회의 민중은 모두가 노예애 지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오늘 운수 좋은 누군가는 동포에게 자기의 불운을 전가시키거나 결국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유예시키고 있을 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147)

채민식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이광수나 김동인에게서 보이는 전근대적인 `치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78)

[`치숙`에서] 모든 가치는 거꾸로 반전되어 있고 선악도 뒤바뀌어 있으며, 조카의 부정적 비난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간다. 아이러니는 희극과 비극의 미묘한 경계에 서기 마련인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희극적으로 그려져서 더욱 눈물겨운 비극적 아이러니라면, `치숙`은 가치가 전도된 비극적 현실이 조카의 입을 통해서 희극으로 변하는 아이러니다.

이 작품의 조카와 고모부는 서로를 투영한 타자의 `거울`을 통해서 원주민의 소외를 드러내고 있는데, 프란츠 파농은 이러한 소외와 부재를 식민지 사회의 `심인성 장애`라고 썼다. (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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