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둘로 나뉜다. 전반부는 심한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는 동안, 태상왕의 새 후궁 ‘원‘의 정체를 추리하는 것이고 후반부는 입궁한 권세가의 딸과 궁녀 이야기다. 다들 이름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구조다. 작가 후기에도 이름을 구하는 여자들이 강조되고 있다. 여자들의 이름은 기담 혹은 행운의 편지에 담겨 온다.
다들 이름, 정체성, 그리고 한 혹은 염원이 서린 이야기다. 생명의 물과 곡식이 부족해서 마음과 자식까지 살라버린 민초가 원망이 극에 달하면 지극히 높은 존재까지 흔들고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 내가 누구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차마 곧바로 묻지 못하는 사이, 가면과 위장, 억측과 이야기가 겹겹으로 쌓이고 둘러쳐져 책이 되고 영상이 되고 그러고도 계속 감질난다.
후반부 궁녀와 후궁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돌림노래같다. 그 모든 것을 현찬양 작가가 능란하게 풀어 놓았고 책을 덮고도 갈증이 나서 이 소설의 배경인 가뭄의 팔월, 밤에는 부엉이가 경복궁 위를 찾고, 천년 묵은, 아니 천년 동안 ‘감속 노화 중‘인 강수, 장신에 칼 잘 쓰는 ‘수사반장‘ 후궁 신녕궁주, 몸 안/밖으로 비비라는 괴수를 부리는 백희를 다시 떠올려본다. 재미있어. 역시 봄밤에는 달리기하는 목 없는 시체가 제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