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 이제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 청자는 오치카의 사촌 동생 도미지로다. 세 가지 이야기가 실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자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올랐다. 화재를 막는 북과 수호신 이야기에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보였다. 당고 노점상의 비참한 어머니와 네 남매 이야기는 어떤가. 더해서 아랑의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간절한 염원은 현실을 바꿀 수 있지만 진실을 덮거나 뒤집는 건 말 몇 마디이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이야기, 마음 속에 무겁게 담아두었던 여러 이야기를 심리 상담사 처럼 들어주면 그 청자에게 '업'이 쌓인다는 악몽 혹은 경고로 이번 책은 마무리된다. 듣고 '버린다'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함부로 타인의 경험과 고뇌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이 책도 마찬가지니 쉽게 훌렁 읽고 박한 별점을 주지 말아라, 일까?


표지의 긴 목의 귀신은 분하고 원통한 혼령이다. 귀신은 눈에 흰자가 많고 검은자는 작게 금처럼 나있다고 한다. 더불어 냉기를 뿜으며 천장에 매달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당신을 내려다 볼 것이다. (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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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숙 교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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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4-08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의 중 도리스 레싱 작가를 계속 ˝이 여자˝라고 칭하는 게 우리 말에선 어색하고 거슬린다.
 

1950년에 발표된 도리스 레싱의 첫 소설.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너무나 다른, 레싱 소설의 불편함이 가득한 소설이다. 노래하는 풀잎 같은 건 없다. 그저 무더운 남 아프리카 농장의 뜨거운 햇빛, 가뭄, 파리떼, 그리고 다른 사람, 다른 인종, 다른 삶, 다른 선택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만 가득하다. 


메리는 어린 시절 농장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화, 질병으로 사망한 언니 오빠에게서 차례로 벗어난 메리는 나름의 독립을 이룬다. 도시에서 비서로 일하며 독신자 기숙사에서 소박하게 생활한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나이(서른)에 맞지않게 철없이 소녀처럼 산다는 평을 엿듣는데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충격을 받은 메리는 쫓기듯 농장을 (힘겹게, 무능하게) 운영하는 리처드와 결혼해 도시를 떠난다. 잊었던 과거의 가난과 척박한 삶, 흑인 노동자들과의 공생에 치가 떨리는 메리. 이 삶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메리는 백인 이웃의 도움과 친절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고 남편과의 사이에도 벽을 쌓는다. 그 벽 안에서 메리는 천천히 부서지고 망가져 버린다. 잠깐씩 농장일이나 집안일을 제대로 해내려 하지만 금세 손을 놓아버린다. 도시의 삶으로 돌아가려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이미 변한 자신의 상황에 좌절할 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 흘리는 기혼 여성들이 많으리라)


소설 초반에 이미 메리는 살해 당했고 그 범인은 바로 몇년간 하인으로 일한 흑인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사건은 흔한 마님-돌쇠 공식과는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농장에서 메리가 필요 이상으로, 악에 받쳐 내뱉는 흑인에 대한 혐오와 몰이해는 점점 수위와 긴장을 높이다가 결국 그 혐오의 칼은 자신을 베어버린다.  


왜 메리는 이렇게 망가졌을까. 소설 말미에는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며 냉정하게 평한다. (작가가 따로 이렇게 '교훈' 요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걸) 메리는 목마르게 인생의 구원을 기다렸지만 구원 따위는 오지 않았다. 메리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도 수행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메리는 처음부터 가난한 여성이었다. 꼴난 백인 타이틀로 흑인을 몰아세워봤자 이 세상에선 별 수가 없었다. 


아주 불편하고 무섭고 갑갑한 독서 경험이었다. 하지만 책을 덮지 못했다. 여러 인물에 증오와 연민을 느끼면서 이야기의 힘에, 점점 나빠지는 인물들의 상황에 (졸라의 소설만큼이나 잔인하다) 덩달아 내몰리듯 읽었다. 찬물을 많이 마시면서 읽었다. 폭풍우 밤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도 계속 목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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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08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도리스 레싱 작가의 책들
이 제법 있는데 역시나 읽지
않고 새 책 나온 게 없다 두리
번거리고 있습니다.

요즘 슬럼프인가 봅니다.
책도 다 귀찮고 설라무네.

불편한 독서라... 궁금하긴 하네요.

유부만두 2023-04-08 10:55   좋아요 2 | URL
19호실로 가다, 와 겹치는 부분도 있고요, 불편하고 무섭지만 덮을 수가 없었어요.

레삭매냐님의 독서 슬럼프 중에 만나기엔 좀 위험한 책 아닐까 싶어요. 여러 의미로요.
그래도 전 이번 책으로 레싱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Falstaff 2023-04-08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싱을 집어든 순간, 독자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고, 영문학자 동무님이 얘기했었는데, 아, 씨. 정말 그렇더라고요.

유부만두 2023-04-08 17:10   좋아요 2 | URL
동감입니다. 읽는 내내 어둡고 불쾌한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또 조금은, 아니 꽤 좋았... 아, 나에게 이런 이상 심리가 있다니? 하는 순간들도 있었고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해요. 전 레싱을 더 읽으려고 합니다.

psyche 2023-04-08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한데 선뜻 손을 못 대겠어.

유부만두 2023-04-08 17:12   좋아요 1 | URL
엄청 우울하고 비참한 소설인데 또 ‘재미‘가 있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그런가요?;;;) 첫 소설이라 투박함이 있는데 힘있는 이야기에요.

책읽는나무 2023-04-08 2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레싱 작가의 소설은 좀 그런 것 같아요.
뭔가 내 치부가 까발려진 듯한 느낌이랄까?
<19호실로 가다> 읽고, 한참 멍~ 했더랬죠.
그래도 읽고 싶다! 그래놓구선 멈춤??!!!!ㅋㅋㅋ

유부만두 2023-04-10 09:33   좋아요 1 | URL
읽고 싶다! 하는 책이 워낙 많아서요. 나무님 맘 너무 잘 알아요.
 

말로의 4월1일 토요일은 지옥 같았지.

"내일이 초하루군요. 사월 일일입니다. 만우절이죠. 부인이 등기우편을 받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리슨 부인?"
노파의 눈이 나를 향해 빛을 발했다. 노파는 웃기 시작했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만우절이라." 노파는 다시 킥킥댔다.
"아마도 못 받을 테지."
나는 노파의 웃음을 뒤로하고 떠났다. 웃음소리가 암탉이 딸꾹질하는 것처럼 들렸다.

"우편물 안 왔다는데요."
"그렇지, 안 왔어. 토요일이 초하루였지. 만우절이었어. 히히!"
노파는 말을 멈추고 앞치마로 눈을 닦으려다가 그게 고무 앞치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입이 자두같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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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그 묘사 만큼이나 작가 뱅자맹 콩스탕의 인생이 흥미롭다. 어휘 선택을 보면 역자의 심정도 비슷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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