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댈러웨이 부인보다 주변 사람들의 속으로 하는 독백들이 더 흥미로웠다. 햇살이 부서지고 바람이 흩날리고 런던 거리를 공원을 11시, 11시반, 오후 2시 등 시계종이 울리고 이층 버스가 지나가는 초여름 6월을 상상했다. 런던, 지금은 락다운 이라는데.
삼십 년 전, 전원 주택에서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생파를 준비하는 꽉채운 만 오십일 세의 (심장병 이력있는) 고위직 공무원의 사모님 클래리사 댈러웨이. 그녀의 파티에 옛친구들과 현재의 지인들, 남편 직장 동료에 심지어 수상까지 온다. 늦은 밤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고 지친 댈러웨이 부인은 만족하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그녀가 속물이라고 주위에서 비난하지만 그녀의 속내는 하루에도 순수의 들판을 달리기도 가족과 친구들을 염려하고 챙기기도 하느라 바쁘기만 했다. (난 아직 늙지 않았어, 라는 말에 읽으면서 나도 덩달아 울컥)
그리고 한 남자는 생을 마무리 했다. 그가 겪는, 그가 혼자 듣고 보고 겪고 괴로워하는 생은 사랑하는 부인도 어찌할 수가, 그럴 틈이 없었다. 셉티무스, 마음이 아픕니다. 그의 곁에는 속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속물들이 절대적 악인이냐, 는 또 다른 문제이고요.
더하기, 어디에나 있는 나이값 못하는 남자. 오십일세 육개월 먹고도 자기 나이의 절반되는 스물다섯의 유부녀와의 새인생을 꾸려볼까 궁리하면서 또 다른 백일몽을 꾸느라 어느 낯선 젊은 여자 뒤도 따라가고 주머니칼을 꼼지락 거리고 옛애인 앞에서 울기도 하는 피터. 무엇보다 식민지 인도에 가서 거들먹 거리면서 인생 허비했을 넘 피터. 어쩐지 이 사람이 낯익기도 한 느낌은 착각은 아니겠지요.
무엇보다 사랑. 여러 가지 모습과 빛깔과 의미의 사랑들이 매 장면마다 끼워져 있어서 반짝거린다. 향긋하고 뿌듯하고 투박하기도 한 다양한 사랑들. 그 사랑을 다시 생각하다가 .... 방금 떡볶기 먹으면서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권의 레트와 스칼렛의 격정 애로와 비교도 해봅니다. 이 ㅈㄹ 맞은 소설 얼렁 읽고 치워야지, 원.
눈이 펑펑. 창문 잠깐 열어서 달아오른 오십일 세 아줌마의 두 볼을 좀 식혀야겠습니다. 아, 사랑이 문제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