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1 <시간의 네 방향> 깊이 읽기
- 커다란 금빛 시계를 따라 떠나는 시간 여행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 이지원 옮김

 

퍼즐을 맞추듯 곰곰 생각하며 들여다보는 그림책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세계'라 부릅니다. '세'는 시간을 뜻하고 '계'는 공간을 뜻하니,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간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동서남북이 있고 전후좌우가 있고 아래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뒤로 이리저리 나아갈 수 있고,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어떤가요? …… 흔히 '앞으로만 가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은 그저 내일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끝없이 흘러갈 뿐, 멈춰 설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퍽 이상합니다. '시간의 네 방향'이라니……?


궁금증을 안고 책장을 넘기면, 종이연극 무대 위에서 두 배우가 문을 열고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유럽의 동쪽 어느 강가에 세워진 중세 도시. 한가운데 시계판 네 개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시계탑이 서 있고, 시계탑을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네 집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백 년마다 한 번씩 같은 시각에 그 집들에서 각각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도대체 그 이야기들이 시간의 방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이 그림책은 끝내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종이로 만든 표정 없는 얼굴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극의 장면들을 하나씩 보여 줄 뿐. 그런데 그 장면들은 한결같이, 어디선가 한번쯤 본 것도 같은 그림들과, 거기 있는 의미를 알 듯도 모를 듯도 싶은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커다란 퍼즐의 조각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그림책은 퍼즐을 맞추듯 곰곰 생각하며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몇 백 년의 세월을 앞으로 뒤로 건너뛰어 다니면서, 동서남북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퍼즐을 맞추듯 조금씩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책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퍼즐의 조각들이 모여 이루는 커다란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같은 시간의 다른 얼굴들
때는 1500년 2월 어느 날 아침 6시. 강을 꽁꽁 얼린 추위 속에, 동서남북 네 집의 창문에 촛불의 희미한 빛이 깜박거리고 그 너머 집 안에서 하루가 시작됩니다.


동쪽 집은 부엌. 요리사 아주머니가 저녁에 있을 사육제 잔치 준비를 시작합니다. 어부 아저씨가 얼음을 깨고 잡은 커다란 물고기를 가져왔는데, 주석으로 만든 그릇 더미를 옮기다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표정은 밝지가 않습니다. 저녁이 오기 전에 이런저런 잔치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지하실의 맥주도 날라 와야 하고, 신선한 빵도 구워 놓아야 하는, 바쁘디 바쁜 하루의 아침이 달갑지만은 않을 터. 지금 아주머니의 시간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고 있을까요? 이즈음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종말을 막을 큰 종을 만들 주석을 모으는 일이라는데,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그릇 더미는 마침 종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남쪽 집은 공방. 제본 기술자 빌헬름이 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교회에서 부탁한 책 표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재료로 쓸 가죽이 어제 떨어져 버렸습니다. 새 가죽을 가져올 사람은 세 시간 뒤에나 도착할 예정이니, 재료가 없어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 빌헬름에게 이 시간은 얼마나 더디게 흐르고 있을까요? 지루한 빌헬름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어제 집 앞에서 주운 고양이를 아는 집에 가져다줄까? 그 집 아이들이 착한데, 어제 얼음을 지치고 돌아오다가 고양이를 보고 좋아했는데…….' 한편, 세 시간 뒤에 도착해야 할 가죽장수는 무대의 커튼 뒤에 숨어 등장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쪽 집은 아이들 방. 어제 늦도록 얼음을 지친 아이 둘이 아직 잠들어 있고, 엄마는 날마다 그 시간에 깨어 우는 갓난아기 살로메아에게 방금 젖을 먹였습니다. 돌아오는 부활절에 살로메아에게 세례를 받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난밤 감기라도 걸렸는지 악몽을 꾼 아들 크리스티안을 달래던 일을 떠올립니다. 좀 전엔 크리스티안의 이마를 짚어 보았지요. 어서 날이 밝고 아이들이 아무 탈 없이 일어나 뛰놀기를 바라는 엄마에게 이 시간의 표정은 어떤 것일까요? 아이들의 침대맡에 걸려 있는 그림 속의 수호천사도 엄마의 마음인 양, 손 모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북쪽 집은 거실. 젊은 아내가 곧 동생과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남편 안제이를 배웅하고 있습니다. 날이 춥고 길은 멀고 험하니 불안함도 크려니와, 배가 불룩하니 아이를 가진 듯한데, 한 해가 될지 두 해가 될지 헤어져 있을 시간을 헤아리는 안타까움이 더 커 보입니다. 지금 이 두 사람의 시간은 어떤 색깔일까요? 창문 아래 모래시계는 떠날 시각을 재촉하는 것만 같고, 선반 위 화분에는 안타까운 이별 뒤에 다가올 미래의 희망을 말하는 듯 새싹이 움터 오르고 있습니다.


동남서북, 집집마다 창문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시계탑은 똑같은 시각을 알려 주고 있건만, 그 창문 안의 사람들은 이처럼 저마다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는 그릇을 나르고 누구는 가죽을 기다리고, 누구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을 하고……. 그들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시간의 색깔이, 시간의 표정이 다 같을 수 있을까요? 시계탑이 가리키는 시간의 네 방향은, 사람들이 저마다 마주치는 같은 시간의 서로 다른 얼굴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의 다른 얼굴들'…… 퍼즐을 맞추는 첫 번째 열쇳말입니다.

 

어제의 시간, 오늘의 시간, 내일의 시간
이야기는 그렇게 100년씩 시간을 건너뛰어 1700년, 1800년, 1900년, 그리고 2000년 우리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그 시간들 사이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시대와 시대를 오가며 꼼꼼히 들여다보면, 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실마리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1700년의 공방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는 1500년의 거실에 놓여 있던 바로 그 모래시계였고, 같은 해 거실 벽에 걸린 사슴머리 박제는 1600년 아버지가 사냥해 온 바로 그 사슴의 머리였습니다. 1900년의 거실에서 아버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1600년의 거실 한쪽에 놓여 있던 바이올린이었으며, 2000년 이 도시를 방문한 외국인 한 쌍이 길에서 주운 열쇠는 1800년에 잃어버린 설탕 함의 열쇠였습니다. 이 사실들은 무엇을 뜻할까요?


한편으로 우리는 1700년에 아이들이 만들어 날리던 연과 똑같은 연이 1800년의 아이들 방 창문 너머 하늘에 날고 있음을 발견하고, 1500년에 어부가 가져온 물고기와 똑같은 물고기를 2000년의 식구들이 요리해 먹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00년 시계 기술자의 공방에 천둥소리에 놀란 개가 있었던 것처럼, 2000년 화가의 작업실에 폭죽소리와 불빛을 무서워하는 개가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00년의 아빠와 1500년의 엄마가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자세로 아기를 안고 있으며, 거실의 두 남녀들도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자세로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것들은 또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100년, 200년, 300년, 400년……, 시계탑이 지켜보아 온 몇백 년 세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 그리고 내일의 시간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제의 일은 오늘의 원인이 되고 오늘의 일은 내일 결과로 나타납니다. 끝없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시간의 사슬은 시곗바늘이 돌고 태양이 돌고 계절이 돌기를 되풀이하듯, 끝없이 돌고 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제의 시간, 오늘의 시간, 내일의 시간'…… 퍼즐을 맞추는 세 번째 열쇳말입니다.
 

나의 시간, 너의 시간, 그들의 시간
이제까지 우리는 500년 동안 펼쳐진 24장면의 이야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고 떠나보내고 만나고, 일하고 놀고 꿈꾸며 저마다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들이 보낸 그 시간들이 정말 '저마다'만의 시간들이었을까요?


이야기는 우리에게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들이 서로 겹치고 엮이고 영향을 미치며 인연을 맺는 풍경들을 보여 줍니다.

 

거기에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가져온 시간이 요리사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주고, 가난한 조각가와의 사랑을 관철하려는 딸의 시간이 만류하는 부모를 속상하게 하는 것처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맺어지는 인연들이 있습니다. 흰 블라우스에 수를 놓는 아가씨의 시간이 딸의 세례식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선물이 되고, 그 도시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화가의 시간이 멀리 다른 나라의 어린 독자에게 즐거움이 되는 것처럼 같은 시간 다른 공간 속에서 맺어지는 인연들도 있습니다.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병정을 100년 뒤 그의 증손자가 가지고 놀게 되고, 요리사 아주머니가 쓰던 반죽 그릇을 100년 뒤 그 부엌의 새 주인이 쓰게 되는 것처럼 다른 시간 같은 공간에서 맺어지는 인연들도 있으며, 시계 장인의 공방에서 만든 시계가 100년 뒤 다른 집의 거실 벽에 걸려 있거나, 아빠의 사진 공방에서 놀던 아이가 몇십 년 뒤 다른 나라의 유명한 과학자와 화가의 사진을 찍게 되는 것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맺어지는 인연도 있습니다.


100년, 200년, 300년, 400년,…… 그리고 동서남북. 시계탑이 간직한 500년 세월과 네 방향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은 전혀 별개의 시간이 아니며, 또한 수많은 그들의 시간들이 서로의 시간들 속에 엮이고 엮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 중 누군가는 500년 전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유심히 하늘을 관찰하는 소년이었던 미코와이 코페르니크(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를 떠올리며 훌륭한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것이고,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그림책을 통해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눈 파란 작가와 만나, 시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겠지요.


나의 시간, 너의 시간, 그들의 시간'…… 네 번째 열쇳말을 끝으로 커다란 퍼즐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림책 속에는 끼워지지 않은 퍼즐 조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두고두고 넘겨 보면서 그 조각들을 찾아 퍼즐을 완성하는 놀이를 즐겨 보세요.

 

글․그림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

1960년에 태어나 폴란드의 중세 도시 토룬의 코페르니쿠스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습니다.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는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직접 글을 쓰고 그리는 그림책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파블리코프스카─야스노젬스카 시화집』으로 바르샤바 국제 책 예술제 '책예술상'을, 『생각하는 ABC』로 'BIB 황금사과상'을 받았습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파란 막대․파란 상자』, 『두 사람』, 『생각』, 『발가락』, 『생각하는 123』, 『안녕, 유럽』, 그린 책으로 『비움』, 『마음의 집』 등이 있습니다.

 

번역 / 이지원

1974년에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폴란드에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린이책 연구와 기획,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파란 막대․파란 상자』, 『두 사람』, 『생각』, 『발가락』,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안녕, 유럽』, 『장미와 반지』, 『착한 괴물은 무섭지 않아』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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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0 <강아지똥 할아버지> 깊이 읽기

 

장주식 글 / 최석운 그림

 

강아지똥 할아버지는 어떤 분일까요?
경상북도 안동시 조탑마을, 이름도 가난한 빌뱅이 언덕에 조그만 오두막집 한 채가 주인을 잃은 채 덩그마니 놓여 있습니다. 두 해 전까지만 해도 그 집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사셨지요. '강아지똥'이나 '몽실 언니'의 작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 할아버지의 이름은 권정생입니다.

 
슬프고 따뜻하고 때론 익살맞은, 아름다운 동화로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의 가슴을 울려 주던 할아버지는 지난 2007년 5월 17일에 일흔하나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껴 보려 오두막집에 찾아들고, 할아버지가 남긴 작품들을 읽고 또 읽습니다. 이름난 작가가 되었건만, 부도 명예도 마다하고 평생 자연의 품에서 작고 약하고 낮은 생명들과 함께 했던 삶, 불의에 물러서지 않고 바른 말을 할 줄 알았던 깊고 맑은 정신이 불러오는 깊은 감동 때문일 테지요. 사람들은 문학도 문학이지만 '삶이 문학을 뛰어넘은' 분이라며 할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림책 『강아지똥 할아버지』는 바로 그 할아버지, 권정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은 오두막에서 20년이 넘도록 산 할아버지는 빼곡히 들어찬 책들 때문에 고작 한 평 남짓 남은 좁은 방에서 드문드문 오고가는 손님들을 맞고, 동네 노인들의 한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주고, 책을 빌리러 오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가난한 집 여섯째로 태어나 전쟁을 겪고 제대로 먹지도 배우지도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는, 나이 스물에 얻은 결핵으로 젊은 시절 또한 고통과 가난 속에 걸식을 하며 떠돌았지요. 서른 즈음 이 마을 작은 교회에 종지기로 들어와 동화를 쓰며 지내던 할아버지에게 동네 청년들이 힘을 모아 지어 준 이 오두막은, 평생을 통해 할아버지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집이었습니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이 집에서 따뜻하고 조용하고 마음대로 외로울 수 있어 참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쁜 색시한테 장가는 못 갔어도 이 집에서 강아지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하고도 연애는 수없이 했다'고 자랑하셨습니다. 이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처럼 작고 약한 것들과 연애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아주 적은 부분이지요.

 
그림책에 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하고 멸시하는 쥐나 벌레들에게도 곁을 내어 주던 그 따뜻한 마음의 이야기들은 할아버지가 쓴 동화의 갈피마다 들어 있습니다. 그 동화의 주인공들은 길가에 버려진 개똥이나, 부모를 잃고 이집 저집 떠도는 천덕꾸러기 여자아이, 한없이 마음 약한 작은 토끼처럼  낮은 존재들이지만, 한결같이 약하고 힘없는 것들을 애써 보살피려 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도우려 하지요. 그것은 아마도 꼭 그렇게 살아온 할아버지의 삶이, 마음이 거기 담겨 있는 까닭일 겁니다.

 

다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오르려 하는 세상인데  나만 혼자 덜 먹고 덜 쓰며 맑은 마음으로 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구나 그에 더해서 바른 말, 곧은 소리만 하며 살기는 더 힘들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 가신 어른들을 더욱 그리워하고, 사시던 자취나마 찾아가 기억을 더듬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지금도 작은 오두막에는 할아버지의 자취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좁고 가난한 집에서 살며 일구어 놓은 넓고도 풍성한 마음밭에서, 하찮은 개똥조차 귀히 여기는 마음, 작고 힘없는 생명을 받드는 마음, 옳지 않은 것을 꼿꼿이 꾸짖는 마음들을 캐어 가져가려는 발길들일 테지요. 강아지똥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에게 귀한 정신의 양식을 나눠 주고 계신 겁니다.

 


권정생 연보

1937년 8월 18일, 일본 도쿄 혼마치에서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남.
1946년 유년기를 보낸 일본 땅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옴.
1950년 6․25 전쟁으로 식구들과 뿔뿔이 헤어짐.
1956년 평생 치유하지 못한 결핵을 얻게 됨.
1968년 안동 일직교회 문간방에 세들어 살며 종지기 일을 봄.
1974년~1979년  첫 단편동화집 『강아지똥』, 장편동화집 『꽃님과 아기양들』, 단편동화집 『사과나무밭 달님』, 단편동화집 『까치 울던 날』을 펴냄.
1983년 빌뱅이 언덕에 동네 청년들이 지어 준 작은 흙집으로 이사함.
1984년~1990년  단편동화집 『하느님의 눈물』, 장편소년소설 『몽실 언니』, 단편동화집 『벙어리 동찬이』, 단편동화집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장편소년소설 『초가집이 있던 마을』,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단편동화집 『바닷가 아이들』, 장편소년소설 『점득이네』를 펴냄.
1990년 『몽실 언니』가 MBC에서 36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짐.
1993년~2002년  그림책 『훨훨 날아간다』, 그림책 『눈이 되고 발이 되고』, 단편동화집 『무명저고리와 엄마』,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그림책 『강아지똥』, 그림책 『오소리네 집 꽃밭』, 소설 『한티재 하늘 1,2』, 단편동화집 『깜둥바가지 아줌마』, 단편동화집 『먹구렁이 기차』, 장편동화 『밥데기 죽데기』, 단편동화집 『아기 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 단편동화집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동화집 『비나리 달이네 집』, 그림책 『황소 아저씨』, 그림책 『아기 너구리네 봄맞이』, 장편동화 『슬픈 나막신』을 펴냄.
2005년 5월 10일에 유언장을 미리 씀.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함.
2006년 그림책 『길 아저씨 손 아저씨』를 펴냄.
2007년 5월 17일 오후 2시 17분, 대구 가톨릭대학병원에서 돌아가심.

 


글 / 장주식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지금은 경기도 여주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 『뛰엄질과 풀쩍이』, 『토끼 청설모 까치』, 『괴물과 나』 등의 동화책과, 학교 아이들과 함께 한 생활을 담은 글 모음책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를 썼습니다.

 

그림 / 최석운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개인전을 26번 열었고 국내외 다수의 기획전에 참가하며 주목받는 현대 작가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린 책으로 『비가 오면』, 『시집간 깜장돼지 순둥이』, 『그림 속 그림찾기 ㄱㄴㄷ』(공저) 등이 있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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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19  <낙원섬에서 생긴 일> 깊이 읽기

 

찰스 키핑 글․그림 / 서애경 옮김

 

낙원섬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흙탕물이 이는 샛강 한가운데에 '낙원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애덤은 낙원섬을 좋아했습니다. 그다지 낙원이라 할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요. 그러던 어느날 시의회에서는 이곳에 고속도로를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낙원섬이 무질서한 난장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오래된 가게들이 헐리고 섬은 콘크리트로 메워지기 시작합니다. 낙원섬은 과연 애덤의 낙원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찰스 키핑의 유작으로, 도시 재개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발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새만금이 그러하고, 도시 재개발이 그러하고, 한반도 대운하 건설 문제가 그러하지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서로의 입장을 고수한 채 긴긴 싸움을 하기도 하고, 어느 한 편의 승리나 포기, 혹은 양편의 타협으로 끝나기도 하지요. 우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숱한 개발들 가운데에 있습니다. 찰스 키핑은 그런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풍자의 다큐멘터리 속으로
이 그림책은 풍자로 가득차 있으며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표지부터 '이 다리로 연결된 지역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줍니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에는 '낙원섬 횡단 도로 건설 계획'에 대한 찬성과 반대 서명이 보이고 그와 함께 이 허구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지역이 실제의 장소인 양 지도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면은 애덤이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 걸터 앉아 있는 그림으로 애덤의 시선, 행인의 시선, 차의 방향과 지평선의 소실점 등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를 넘기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찰스 키핑의 다큐멘터리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어 작가는 서점 창밖으로 보이는 점방 거리를 묘사하고, 채소 가게, 정육점, 생선 가게와 빵 가게를 보여 줍니다. 그러고 나서 혼자 사는, 아니 동물들만이 가족인 노인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모두 애덤의 이웃이자 친구라고 합니다.

 

시의원들의 개발, 애덤과 친구들의 개발
반대편 육지에서는 시의원들이 지역 일을 논의하고 있대요. 이들은 애덤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고 이웃도 아니지만 애덤이 사는 섬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들의 이름을 보면 말장난하기 좋아하는 찰스 키핑 식의 풍자를 엿볼 수 있지요. 메이저 블랑코 Major Blanco의 메이저 major는 '대다수' 혹은 '일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혼 클라우드 버크 Hon Claude Berk에서 버크 berk는 '멍청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니 블런트 Ernie Blunt의 블런트blunt는 '무뚝뚝하다'는 뜻이에요. 시빌 실리 Sybil Sillie는 '맹한 시빌' 쯤이 되겠고, 프림로즈 부인 Lady Primrose은 '화려한 여사' 정도가 될 거에요. 그리고 시장 세실 블란드 경 Mayor Sir Cecil Bland이 김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블란드 bland는 '김빠진', '재미없는'의 뜻이에요. 그 외에도 언제나 기권하기 좋아하는 버니 블랙Bernie Black와 위니 화이트 Winnie White가 있어요. '검다'는 뜻의 블랙 black과 '희다'는 뜻의 화이트 white를 사용해 타협점을 찾기 힘든 흑백논리의 사람들, 극단적인 좌와 우의 사람들을 작가는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의원들은 무질서하고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어른들로 스매쉬트 smashit('smash it!'은 '때려 부숴!'라는 뜻) 철거 회사를 통해 낙원섬의 낡은 것들을 부수고, 도로를 새로 닦습니다. 그렇게 낙원섬은 금새 콘크리트로 메워집니다.

 

그 사이, 습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애덤과 그의 친구들는 시의회에서 통과시킨 낙원섬의 개발 건에 관해 어떠한 결정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습지는 도로로 쓰기에는 쓸모없는 땅이라 그곳에다 그들만의 계획을 감행할 수 있었지요. 애덤의 친구인 바르다 할아버지와 벌리 할머니는 애덤에게 노인들끼리 생각해 낸 꾀를 알려 주고, 애덤은 친구들과 함께 철거지에서 버려진 목재와 벽돌을 모아 습지로 옮깁니다. 그리고는 그곳에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낡은 것을 부수고 버려서 '새 것'을 만들었다고 기뻐하는 시의원들과, 그 곁에서 버려진 것을 줍고 고쳐서 진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애덤과 그의 친구들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찰스 키핑은 이러한 대조를 통해 진정한 개발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엉망진창이 된 개막식, 소박한 습지의 파티
시의원들이 추진했던 도로 개통은 게리 밴디노즈의 초대로 무언가 그럴 듯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밴디노즈가 테이프를 막 자른 순간, 시의원들은 거기 모인 군중이 도로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리 밴디노즈를 보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망한 시의원들은 잘라 놓은 테이프 앞에서 풀이 꺽인 채 서 있고, 그 옆으로는 게리 밴디노즈의 광팬들과 경쟁 연예인의 광팬들, 싸우고 있는 북쪽 사람들과 남쪽 사람들, 자신만의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든 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관심사만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지요.


반면, 애덤과 친구들의 개발은 어떠한가요. 벌리 할머니와 바르다 할아버지가 구워 주는 소시지와 감자를 먹으며 소박한 파티를 하고 있군요. 자기들이 엮었을 타이어 그네를 타고, 손으로 뚝딱뚝딱 지은 계단을 오릅니다. 동물들과 함께 뛰고, 버려진 자동차를 아지트처럼 점령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공간에서,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함께 어울리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너무 독특해서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낙원섬에서 함께 웃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신비한 분위기는 애덤이 안고 있는 비둘기로 인해 고조되는데, 이 그림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이 그림책은 한 번 읽어서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기 힘듭니다. 심지어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연 그럴까요? 위에서 언급한 장면의 그림들을 곰곰이 보면 찰스 키핑이 그림 속에 숨겨둔 이야기가 보일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나'라면, 내가 '애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말이에요.


어려운 이야기? 열린 이야기!
찰스 키핑은 은근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설교하지 않고 그저 질문을 던지고 결론을 열어 놓지요. 여러분이 이어서 만들어 낼 다음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낙원섬은 어떤 곳인가요? 어떤 해프닝이 벌어지고 어떻게 해결되나요?

 

'나는 강 위에 있는 한 섬에 관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섬이 작은 지역 공동체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고속도로의 일부가 되어 버릴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지역 사람들은 집을 새로 짓고, 대형 슈퍼마켓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교할 생각은 없다. 당신은 작은 구멍 가게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위생적인 슈퍼마켓을 좋아하는가? 나는 그림으로, 뒤죽박죽으로 쌓인 과일과 야채를 파는 상인을 보여 줄 수 있고, 그런 다음에 그 상인이 깔끔하고 말쑥한 모습으로 냉장고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점 주인이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해서 그저 냉장고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아이들은 이것이 진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나는 이것을 그림으로 보여 줌으로써 이를 통해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결론을 이끌어 낼 여지를 주는 것이다.' - 찰스 키핑(『찰스 키핑,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더글라스 마틴, 114~115쪽)

 

글.그림 / 찰스 키핑

192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신문배급업자인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가판 포스터 뒷면에 그림을 즐겨 그리곤 했습니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그러나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이어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공으로 일하던 키핑은 2차대전 중이던 열여덟 살 때 군에 입대하였는데, 군 생활 중에 머리 부상을 입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이 경험은 완치된 뒤에도 그의 내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946년 전역을 한 뒤 런던에 있는 리젠트 스트릿 폴리테크닉이라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가스 검침원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석판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키핑은, 졸업 후 신문 만화 일을 시작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에 들어섰으며 이후 20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1966년 그림책 『검은 돌리』의 출간을 시작으로 평생 22권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급속한 현대화 과정 속 대도시의 변화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린 작품들입니다.


빼어난 조형성과 색감, 깊은 주제의식으로 '어린 독자에겐 너무 어렵고 깊은 심리적 접근을 하는 것이 유일한 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키핑은 『찰리와 샬롯데와 황금 카나리아』(1967)과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1988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작품 『낙원섬에서 생긴 일』은 그의 유작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9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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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18  <두 사람> 깊이 읽기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 이지원 옮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일 수도 있고,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일 수도 있으며, 형제일 수도, 자매일 수도, 사랑하는 남녀일 수도, 아주 친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종종 서로가 어떤 사이인지 전혀 생각지 않고 지내곤 합니다. 마치 물이나 공기가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잊고 지내듯 말입니다. 둘 사이에 어떤 사정이라도 생겨 서로 멀리 또는 오래 떨어져 있게 되면,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의 사이에 대해 생각하고 깨닫게 되지요.


『두 사람』은 이처럼 평소에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두 사람 사이에 깃들인 의미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시처럼 반짝이는 비유가 담긴 그림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글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가령, 첫 장면에서 작가는 각각 반쪽만 있는 여자의 옷과 남자의 옷이 두 개의 단추로 여며져 한 벌을 이루는 그림을 보여 주면서,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렵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각자 완전치 않으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함으로써 완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뜻을 전하는 동시에, 그것이 조화를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는 것이지요. 작가는 두 반쪽 옷에 그나마 어울리는 색깔을 입히고 단추 또한 두 색깔 모두에 어울리는 색깔의 것을 선택함으로써 조화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만, 서로 다른 반쪽 옷들이 모여 조화로운 한 벌 옷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다음 장면에서 작가는 모양과 색깔이 다른 열쇠들과 자물쇠들을 보여 주면서, '두 사람은 열쇠와 자물쇠 같아서 서로 꼭 들어맞는 한 쌍만이 서로의 마음에 열쇠와 자물쇠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림 오른쪽 자물쇠의 구멍으로 표현된 사람들의 모양은 얼핏 똑같아 보입니다만, 그 안에 있는 회전통-즉 마음의 모양은 손 모양으로 표현된 왼쪽 열쇠들의 톱니 모양처럼 다 다르겠지요. 거기에 딱 맞는 열쇠를 만날 때 자물쇠의 마음은 활짝 열립니다.

 

몇 장면 뒤를 보면 모래시계 넷이 그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모래시계의 두 그릇처럼 서로 붙어 있으면서 서로 번갈아가며 모래를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저쪽의 기운이 떨어지면 이쪽이 기운을 나눠 주고, 또 이쪽이 힘겨우면 저쪽이 힘을 주는 그런 두 사람들의 비유지요. 그런데 모래시계에 채워진 '모래'의 모양이 저마다, 또 아래위마다 다릅니다. 어떤 것은, 윗그릇은 새가 나는 하늘로 채워져 있는데 그것이 아랫그릇으로 내려오면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바다가 됩니다. 또 어떤 것은, 윗그릇 속 엉클어진 숫자들이 아랫그릇으로 내려와 정돈되지요. 사막의 모래가 밤하늘의 별들로 변하기도 하고, 씨앗이 내려와 싹트고 자라기도 합니다. 두 사람들은, 쌍마다 다 다를 뿐만 아니라 한 쌍 안에서도 각자가 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한 집 안에서 서로 마주잡으려는 듯 내민 두 개의 손은 손가락이 모두 각기 다른 기능과 모양의 도구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서로 다르며, 감각과 취향 또한 서로 다른 두 사람일 테지요. 그 아래 동그란 얼굴이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세 번째 사람일 수도, 이 책을 다 보고 난 독자일 수도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처럼 작가의 사려 깊은 비유가 담긴 장면들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독자들은 자기 자신과 어떤 다른 이로 이루어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자기 둘레의 어떤 '두 사람'들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겠지요. 그것이 바로 '두 사람'처럼 앞표지와 뒤표지로 단단히 엮인 이 이야기 『두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속생각일 것입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의 말

'혼자 산다면, 집 전체가 다 자기 것일 거예요. 자기 시간은 다 자신을 위해 쓰고, 기쁨도 슬픔도 모두 자기만의 것이겠지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산다면, 똑같은 기쁨이 두 배로 커지기도 하고, 똑같은 슬픔이 반으로 줄어들기도 해요. 마음은 반으로 나누어도 작아지지 않아요. 둘이 함께 일한다면, 시간은 반으로 줄고 효과는 두 배가 되어요. 함께 떠나는 여행은 두 배나 즐거울 수 있지만, 두 배나 힘들 수도 있어요. 아무리 해 봐도 두 사람의 셈은 이상하기만 해요. 규칙도 없고, 결과는 항상 바뀌지요. 어쩔 때는 더해야 하고, 어쩔 때는 빼야 하고, 가끔은 나눗셈의 결과가 곱하기처럼 나오기도 하고, 연습 문제의 정답을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요. 하지만 가는 길에, 잡지 않은 오른손과 왼손으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요. 둘은 함께 있지만, 따로따로이기도 해요. 두 개의 똑같은 선이 만드는 마치 수학의 가장 멋진 부호 '='처럼요. 두 개의 똑같은 선은 '+' 이렇게 겹쳐 볼 수도 있어요. 이 책은 그렇게, 함께하는 두 사람들에 대해 그림과 글로 풀어낸 이야기예요.'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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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17  <흰지팡이 여행> 깊이 읽기

 

에이다 바셋 리치필드 글 / 김용연 그림 / 이승숙 옮김

 

발레리, 시력을 잃어가는 아이
이 책의 주인공 발레리는 시력을 잃어가는 아이입니다. 두꺼운 안경을 쓰면 그나마 좀 보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눈앞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합니다. 학교 수업을 받기도 어렵고, 자꾸 넘어지고 부딪칩니다. 그래서 발레리는 절망합니다.

 

수자 선생님과 기다란 지팡이
그때에 수자 선생님이 발레리를 도와줍니다. 선생님은 청각, 후각, 촉각, 안면 감각 등 시각 이외의 감각을 사용하여 다니는 방법들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선생님이 발레리에게 기다란 지팡이를 내밉니다. 발레리는 그 지팡이가 참 싫습니다. 수자 선생님은 발레리에게 왜 지팡이를 사용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앞에 있는 키 낮은 물건들이 보이지 않아서 자꾸 부딪치게 되니까 지팡이로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면 부딪치지 않을 거라고요. 긴 지팡이는 긴 팔과 같다고요.

 

발레리의 새로운 팔-기다란 지팡이
발레리는 지팡이를 쥐는 법과 지팡이를 사용해서 돌아다니는 방법을 배워 나갑니다. 지팡이가 부딪쳐 내는 소리를 듣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 그때마다 지팡이에 닿는 느낌이 어떤지 익힙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들을 피해 걸어가는 방법도 알게 되고요, 나중에는 교실 밖에서도 지팡이를 사용하게 됩니다.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좀 했지만 다들 잘 이해해 줍니다.

 

발레리, 여느 아이처럼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
누군가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낼 때 발레리는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때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듣지도 못하는 줄 아는지 '눈이 보이지 않는다니 참 안됐네.'라고 발레리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아마도 모를 겁니다. 발레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발레리가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눈 말고도 세상을 보는 방법이 정말 많다는 것을요. 눈으로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발레리가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세상에는 보는 방법이 정말 많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 게 될 거예요.

 

흰지팡이의 의미
지팡이는 발레리가 절망을 딛고 여느 아이처럼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된 도구입니다. 발레리처럼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 가장 먼저 겪는 어려움이 마음대로 다닐 수 없게 되는 것, 즉 보행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일상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사회활동 등 모든 일에서 아주 심한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앞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걸어 다니는 능력을 키우는 거랍니다. 그 도구가 바로 지팡이에요. 긴 지팡이는 시각 장애우의 긴 팔이 되어 독립 보행이 가능하게 해 주는 겁니다. 그렇게 혼자 걸을 수 있을 때에 시각 장애인은 세상과 어울릴 수 있어요.


시각 장애인이 쓰는 기다란 지팡이는 흰색입니다. 대개의 나라에서 흰지팡이는 시각 장애인들만이 사용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답니다. 아래 글은 '흰지팡이 헌장'의 일부입니다. 1980년 세계맹인연합회가 10월 15일을 '흰지팡이날'로 공식 제정하며 이 헌장을 선포했어요. 이 글을 읽어보면 발레리가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 것이 발레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흰지팡이 헌장
흰지팡이는 시각 장애인이 길을 찾고 활동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이며 시각 장애인의 자립과 성취를 나타내는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징입니다.


흰지팡이는 장애물의 위치와 지형의 변화를 알려주는 도구로 어떠한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도 시각 장애인이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주는 도구입니다. 누구든 흰지팡이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시각 장애인을 만날 때에 운전자는 주의해야 하며 보행자는 길을 비켜주거나 도움을 청해 오면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중략)

그리하여 모든 인류는 흰지팡이가 상징하는 의미를 정확히 인식해야 하며 시각 장애인의 신체를 보호하고 심리적 안정을 위하여 제반조치를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이 책에 그림을 그린 김용연이예요.

이 책의 작업을 하면서 운 좋게 한빛맹학교에 견학을 갔었어요. 복도에서 한 무리의 친구들이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이 모두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를 갖고 있대요. 여러분도 거침없이 발을 내딛으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면 저처럼 깜짝 놀랐을 거예요. 눈이 안 보이면 무조건 더듬더듬 조심조심 길을 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죠. 잠시 후 그 곳 선생님께 여쭤보니 시각 장애인들은 처음 가는 길에서야 조심조심 다니지만, 친숙한 복도나 교실의 모습은 이미 머리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듯이 다닐 수 있는 거라더군요.


또 시각 장애인들은 얼굴에 맞닿는 바람의 방향이나 귀에 들이치는 소리로도 그 곳이 탁 트인 사거리인지 골목길인지 알 수 있대요. 또 목소리만 들어도 상대방의 기분이나 건강상태도 알 수 있대요. 눈이 아닌 다른 곳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거죠. 이렇게 보면, 시각 장애인들은 모두가 초능력자에요.


이 책을 읽을 여러분이 발레리를 알고 이해하게 되고, 더불어 우리 곁의 시각 장애 친구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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