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6  <꿈꾸는 징검돌> 깊이 읽기
- 화가 박수근 이야기

 

김용철 쓰고 그림

 

영혼을 그린 화가, 박수근

소녀가 아기를 업고 있습니다. 여인이 맷돌을 돌립니다. 할아버지들이 한낮의 햇볕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습니다……. 순한 사람들이 서정적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그 순한 사람들을 순한 화가가 한 겹 한 겹 물감을 덧바르며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었습니다. 그림책 『꿈꾸는 징검돌』이 이야기하는 화가, 박수근입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가장 즐겨 그립니다.'

 

자신이 남긴 글처럼, 화가 박수근은 평범하고 선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수백 점의 작품 가운데, 사람이 그려져 있지 않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지요. 그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을 이해하려 했던 화가입니다. 하루는 외출하며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나누어먹을 사과를 사려 했다지요. 광주리에 사과를 담아 파는 아주머니가 셋이 있었는데, 화가는 세 아주머니한테서 똑같은 개수만큼씩 사과를 샀다고 합니다. 한 사람 것만 팔아 주면 남은 둘이 서운해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배려한 것이지요. 이처럼 넉넉한 마음을 지녔지만, 그의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첩첩 산들 사이로 크고 작은 바위가 널려 있는 고장이었습니다. 단단한 화강암 바위들에 깃든 옛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소년 박수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림책의 본문에도 언급된 '광대바위'에는 윤씨 집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하루는 조상의 묏자리를 찾고 있던 윤씨가 풍수를 잘 보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광대바위 맞은편에 조상의 묘를 모시게 되었다지요. 하지만 윤씨는 이 사람을 홀대하고 푸대접하였다고 해요. 그러니 앙심을 품은 이 사람이 마을사람들에게 산중턱 광대바위를 굴려 떨어뜨리면 마을이 잘 된다고 헛소문을 낸 것이지요. 그 크고 넓은 광대바위는 산 아래로 처박혔고, 그때부터 윤씨 집안은 가세가 기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고인돌이 발견된 '파로호' 호수 속에 바위 대부분이 잠겨 있습니다.


바위마다 이름이 붙고 이야기가 전해 오는 고장 양구에서, 박수근은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산과 들로 쏘다니며 돌에 그림을 그리고, 해맑은 마음으로 미술시간을 기다리던 소년. 크레용을 처음 보고 무척이나 신기해하던 소년이었지요. 하지만 어릴 적만 해도 넉넉했던 집안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형편이 나빠졌습니다. 박수근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도 없이 혼자서 그림을 익혀야 했습니다. 자기 그림의 수준을 알 길이 없어 해마다 전람회에 그림을 냈지만, 돌아오는 건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화단은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의 그림을 제대로 인정해 주려 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을까요?


하지만 화가의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심성이 고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잠시 쉴 틈이라도 생기면 쪽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 이웃들, 장터에 나와서 묵묵히 생활을 이어가는 시장사람들, 일하는 아이들, 노인들…….

 

사람을 위로하고 사람에게 힘을 주는 건, 다름 아닌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순한 양구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자란 화가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울고 웃고, 가난에 꿇지 않고 묵묵하게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우직함을 순한 그림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만큼이나 우직하게 물감을 바르고 바르고 덧발라서 우물처럼 깊고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알고, 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그가 죽은 뒤, 유작전이 열리고 박수근미술관이 지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서 그의 그림을 봅니다. 자연과 사람과 세상을 믿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던 화가의 밝은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박수근 연보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1921년 양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함.
1926년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 그림을 보고 감동함.
1927년 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함.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봄이 오다>를 응모하여 입선에 오름.
1933년~1935년   조선미술전람회에 낙선함.
1936년~1939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에 오름.
1940년 2월 10일, 이웃집 아가씨 김복순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림.
 <맷돌질하는 여인>으로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에 오름.
1950년 6․25 전쟁으로 피난을 떠났다가 가족과 헤어져 혼자 월남함.
1952년 천신만고 끝에 월남한 가족과 다시 만남.
1953년 창신동에 집을 마련하고, 미군부대에서 일자리를 얻음.
 이때부터 그림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많아짐.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집>이 특선, <노상에서>가 입선에 오름.
1956년 반도호텔 내의 반도화랑을 통하여 해외 애호가들에게 그림을 선보임.
1957년 짐머맨 부부가 간행한 『한국현대화가』에 소개됨.
1962년 창신동 집이 도시 계획에 따라 철거됨.
1963년 왼쪽 눈의 백내장이 심해져 실명함. 전농동으로 이사함.
1965년 4월 간경화 응혈증으로 입원하여 5월 6일 새벽 1시에 운명함.
 10월에 부인 김복순 여사의 노력으로 유작 79점을 모은 유작전이 열림.

 

 

글․그림 / 김용철

1960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그림을 그렸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세상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지금은 이 귀한 체험을 밑천 삼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그림책으로 『훨훨 간다』, 『낮에 나온 반달』, 『길아저씨 손아저씨』, 『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 등이 있으며,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우렁각시』가 있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5  <박수근의 바보 온달> 깊이 읽기

 

박수근 그리고 박인숙 다시 씀

 

고구려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

6·25 전쟁이 끝난 뒤 박수근은 창신동에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며 입을 것, 모든 것이 부족한 때였습니다. 박수근은 어려운 생활에 굴하지 않고 창신동 집 쪽마루에서 많은 작업을 해냈고 이 집에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박수근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책한 권을 사 주기도 어려웠습니다. 박수근은 신문에 난 기사나 연재소설 등을 스크랩해서 아이들에게 읽을거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아예 수채 물감으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버지 박수근이 자녀들을 위해 손수 그림을 그리고 부인이 정갈하게 글씨를 써서 한 권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박수근이 남긴 책에는 이야기 일곱 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아버지를 찾는 유리 소년’,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외에도 ‘천합소문 장군’, ‘활 잘 쏘는 주몽’,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장군’ 이야기가 원래 책에는 실려 있습니다.


『박수근의 바보 온달』은 총 일곱 편의 이야기 가운데 이야기성이 풍부하고, 장면이 넉넉한 이야기 세 편을 골라 새롭게 구성한 것입니다. 『박수근의 바보 온달』에서 소개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로, 이야기마다 그림이 한 점씩 그려져 있습니다.


박수근이 남긴 그림책을 보고, 우리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로서의 박수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박수근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이름에 매여 이 책을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소박한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하면 그 바탕에 있는 아버지로서의 박수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읽을거리를 직접 만들어 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을 만나는 순간,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돋보일 겁니다.


박수근이 남긴 그림책은 현재 강원도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박수근미술관에 가면, 박수근의 여러 그림과 함께 그림책의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화가 박수근과 그의 가족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박수근이 결혼 전에 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박수근은 결혼 전에 아내에게 약속한 대로, 좋은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6·25 피난 이후, 박수근은 창신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창신동 집은 아이들이 뒹굴고 노는 곳이었고, 아내에게는 집안일을 하는 일터였고, 박수근에게는 하나뿐인 작업실이었습니다. 그 집은 이웃이 일손을 내려놓고 쉬어 가는 곳이며, 박수근의 그림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박수근은 아내를 친정 엄마가 딸을 아끼듯이 아꼈고, 자녀들에게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남겨진 가족을 걱정하고 위로했다고 합니다.


박수근은 평생 동안 개인전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죽은 뒤에야 뒤늦게 지인들의 도움으로 유작전이 열렸습니다. 살아생전에는 큰 성공을 얻지 못했던 화가 박수근. 하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서 그처럼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그림 / 박수근

1914년 양구에서 태어나 1965년에 생을 다했습니다.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여 고유한 예술 세계를 완성했으며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선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의 삶을 그렸으며, 마치 돌에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울퉁불퉁한 질감이 드러나는 화풍으로 유명합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기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이 있습니다.

 

글 / 박인숙

화가 박수근의 큰딸입니다. 세종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미술 선생님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다가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현재 양구 박수근미술관의 명예 관장이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화가입니다. 아버지 박수근이 남긴 그림책의 글을 오늘날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다듬고 새로 썼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 몹시 행복했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4 <그 집 이야기> 깊이 읽기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 존 패트릭 루이스 글 / 백계문 옮김

 

매혹적인 그림책 속에 재현된 백 년의 역사
여기, 20세기의 새벽에 새로운 삶을 얻은 낡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그 집은 1900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무렵, 모험을 나온 아이들의 눈에 띄게 되면서, 새 삶과 새 가족을 얻게 됩니다.


『마지막 휴양지』에서 팀을 일구었던 로베르토 인노첸티와 존 패트릭 루이스가 다시 한 번 뭉치어 꾸려낸 매혹적인 그림책, 『그 집 이야기』는 오래도록 버려졌다 다시 생명을 얻게 된 낡은 집이 20세기, 백 년을 지나오면서 자기 안에 품었던 자연과 사람, 삶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여름이 연둣빛 드레스 입고 들러리 설 때,
언덕 집 아가씨는 앞날을 꿈꾸며
아랫마을 벽돌장이 청년의 손을 꼬옥 잡는다.
혼례를 치르는 동안, 삶은 잠시 숨을 멈춘다.
-1915년의 시

 

이 그림책에서는 짤막한 4행시와 작은 그림과 큰 그림이 짝을 이룬 형식이 열다섯 번 반복되어 보여집니다. 작은 그림이 그 해가 어떠했는지,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보여주고 난 다음이면, 시가 그 다음 역할을 건네받습니다. 시는 이 그림책에서 '그 집'이 하는 말입니다. 이 리드미컬한 목소리는 때로는 장중하고 때로는 상큼하게, 그 해의 분위기를 전달해 줍니다. 우리는 시를 통해서, 그 해의 날씨가 어땠는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강의 이야기를 알고 책장을 넘깁니다. 책장을 넘기면 나오는 큰 그림은 화면을 꽉 채울 만큼 시원하고 커다랗습니다. 커다란 그림 속엔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해 보입니다. 꼭 '내가 더 자세히 말해 줄게.'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열다섯 점의 그림이 이끄는 이야기 속으로

'나는 그림을 그리는 내 일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내가 그리는 각각의 그림에서 드로잉과 페인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한 편의 이야기를 꾸려 내는 겁니다.' - 로베르토 인노첸티

 

마치 정해진 스텝을 밟듯, 작은 그림과 시, 큰 그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집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전체 그림이 그려질 듯합니다. 대체 이 낡은 집에서 백 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요?

 

1905년, 삶의 시작
1900년,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발견한 집은 1901년 사람이 살기에 알맞게 고쳐지고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낡은 집은 그림의 오른쪽에 붙박여 계속 등장하게 되지요. 1905년, 작은 그림이 담고 있는 건, 대가족의 식사 풍경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큰 그림을 보니, 이들이 낡은 집에 이사를 온 모양입니다. 침대 머리맡에 놓는 철제 헤드며 돌돌말린 이불, 아기와 성모를 그린 그림 액자며 의자 같은 살림살이들이 여기저기에 부려져 있습니다. 1901년에 흰 소 두 마리가 갈던 밭에는 이제 연한 초록색을 띤 밀이 자라고 있습니다. 흰 소는 여기서도 등장합니다. 이번엔 이삿짐을 옮기는 짐수레를 끌고 왔던 모양입니다.


1915년, 한여름의 결혼식
결혼식 피로연이 한창입니다. 만돌린을 튕기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연주자들 앞에서 사람들이 민속춤을 추고 있습니다. 1905년에 이삿짐 수레를 끌고 왔던 흰 소들은 사진사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수레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뿔 쪽에는 빨간 꽃 장식을 달고 있는데요.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걸까요? 이 소들이 끄는 수레가 현대의 웨딩카 같은 역할을 하게 될까요? 아무튼 모두들 즐거운 분위기인데, 이 해의 작은 그림은 사뭇 이상해 보입니다. 신랑 신부가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한 모양인데, 신랑은 군복을 입었습니다. 어디로 떠나려는 걸까요? 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시작된 걸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제 이 농가에도 전운이 감돌 모양입니다.


1916년, 아기의 탄생
밀밭이 연둣빛을 띠고 있는 걸 보면 다시 봄이 돌아온 모양입니다. 작은 그림에서,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습니다. 사제와 복사 아이들은 이 아기를 축복하러 집을 방문했을 겁니다. 수레를 끄는 흰 소가 있던 자리에는 사제 일행을 태우고 온 모양인 듯, 당나귀 수레에 앉아서 축복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부가 있습니다. 1905년, 일가족의 삶이 시작된 이래, 그 집에서 결혼식이 올려지고 이제 아기가 태어난 겁니다.


1918년, 남편의 죽음
1915년의 작은 그림에서 군복을 입은 신랑의 모습이 보였었지요. 1918년의 작은 그림에서 부인은 왜 울고 있는 걸까요? 부인의 옆에는 전사통지서처럼 보이는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1918년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입니다. 남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지의 여부는 미루어 짐작할 따름입니다만, 그가 죽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아내에서 과부로…… 슬픔에 잠긴 부인은 온통 흰 눈이 내려와 덮인 집 밖에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합니다. 굴뚝으로는 시커먼 연기가 올라옵니다. 아이들을 배웅하고 난 다음에 부인은 무얼 할까요?


1936년, 수확
남편의 죽음은 서서히 잊혀지고 농가의 평화로운 삶이 이어집니다. 이제 밀을 수확하는 날이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밀단을 꾸리고 밀알을 골라내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작은 그림을 보면, 표정이 굳어 보이는 아이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요. 무슨 유니폼일까요? 아이들 뒤편으로 보이는 글자, EREMO는 무슨 뜻일까요? 당시의 이탈리아는 파시스트가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파시즘, 독재가 팽배하던 나라였지요. 국민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모든 일이 국가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림의 아이들이 입은 유니폼은 바로 파시스트 소년단(balilla)이 입었던 유니폼입니다. 여덟 살에서 열네 살까지의 어린 아이들이었지요. 몇 년 전, 짚가리 위에서 평화로이 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겁니다. EREMO는 이탈리아 어로 '은신처'를 뜻합니다. 이 글자는 무얼 가리키고 있는 걸까요?


1942년, 전쟁의 불길
이 그림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이탈리아에 대해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참혹한 전쟁이었지요. 이탈리아는 일본, 독일과 함께 2차 대전의 침략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 모두가 그러고 싶었을까요? 이탈리아의 많은 국민들은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독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요. 그들이 원하는 건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국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파르티잔(유격대)으로 활동하거나 파르티잔의 활동을 도왔습니다. 이들은 낫과 삽 대신 총을 들고 스스로 일어났습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를 처단하고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합군의 승리를 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르티잔으로 몰리거나 도와준 혐의를 받는 바람에, 독일군에게 마을 전체가 몰살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1942년의 두 작은 그림은 독일군에게 핍박받는 주민과 농민 출신 파르티잔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해에 집은 전쟁의 핍박에 쫓겨 온 수많은 난민들의 은신처가 됩니다. 앞선 1936년의 그림 속 글자 EREMO는 바로 이러한 일을 암시했던 건 아닐까요?

 

1958년, 떠나는 아이들
어머니는 의연히 우유를 붓고 음식을 만들지만, 오늘 아들네가 이사를 나가는 날인 모양입니다. 흰 소가 끄는 짐수레가 있던 자리,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있던 자리, 연합군의 탱크가 있던 자리에 아들네의 이삿짐을 올린 자동차가 보입니다. 아들네가 왜 떠나는지 그림책은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들고 날 때의 허한 마음이 전해져 올 뿐입니다. 이제 이 집에 남은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요?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노인이 남아 마을을 지키는 우리네 농촌을 떠올리는 풍경입니다.

 

1967년, 여주인의 죽음
손녀에게 밀짚모자를 만들어 주던 이 집의 여주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네의 이삿짐을 옮기던 자동차가 있던 자리에 조화를 단 검은색 자동차가 서 있습니다. 애도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은 이제 집의 문을 굳게 잠그고 떠날 채비를 합니다. 집은 이제 가정을, 사람을, 삶을 잃었습니다.

 

1999년, 새로운 집
집은 새 주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새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1999년의 작은 그림에는 도로를 닦는 불도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을이 개발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집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른 집이 되어 있습니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집에는 수영장이 있고, 경비견이 대문을 지키고,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와인저장고는 차고가 되어 있고, 1905년에 일가족의 이삿짐 수레가 있던 자리에, 현대식 이삿짐 트럭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친숙한 물건이 눈에 띄는데요. 마치 장식처럼, 철망 울타리에 붙어 있는 붉은 수레바퀴를 보세요. 혹시 1905년 이삿짐 수레에 달려 있던 수레바퀴는 아닐까요?

 

이 그림책에는 여전히 살펴볼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집의 외관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우물은 어떻게 변했는지, 이 집에서 키운 고양이는 몇 마리였는지, 사람들이 일하는 곳엔 왜 항상 와인병이 등장했는지(아마도 여기가 와인의 나라, 인노첸티의 조국인 이탈리아의 농가이기 때문일 테지만), 여러 가지 소소한 것들을 살펴보고 짐작해 보는 것도 이 그림책을 보는 재미일 겁니다. 한 세기의 엄숙한 진실을 담고 있는 그림들은 센 울림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그림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눈이 온 날 침묵이 내려온 소리를 듣고, 단단한 돌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고, 향긋한 포도 내음까지 맡아 볼 수 있을 겁니다.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앞뒤로 넘겨 보며, 어른과 아이가 함께 그림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

이탈리아 플로렌스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마자 열세 살에 학교를 떠나 가족을 돕기 위해 철강 공장에서 일을 하는 바람에 독학으로 그림을 익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정교한 선과 여리고 섬세한 색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확히 그려지곤 하는데, 이는 그가 독학한 화가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20세기의 신여성으로 재창조된 『신데렐라』,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2차 대전 이야기를 담은 『백장미』,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에리카 이야기』,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 휴양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노첸티의 정교한 상상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독자와 평론가, 양편 모두를 사로잡은 이 행복한 화가는 1985년과 1991년 브라티슬라바 비엔날레 황금사과상을 두 번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2008년 최고의 그림책 화가에게 주는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림에 심취해 있습니다.

 

존 패트릭 루이스는 경제학 교수로 여러 해를 보내다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발견하고 작가의 길에 들어선, 시인이자 글 작가입니다. 운율이 살아 있는 시에서 리드미컬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쓰는 글에는 항상 말의 리듬과 유머가 살아 있습니다. 다양한 시 형식을 넘나들며 실험하는 그에게 이 그림책 『그 집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그림책에서 '그 집'을 화자로 택하여 품격 있고 균형 잡힌 4행시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시로 인해서 인노첸티의 그림은 독자들에게 더욱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겁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3 <호랑이가 예끼놈!> 깊이 읽기
- 연암 박지원의 「호질」을 이은홍이 다시 쓰고 그리다

 

글․그림 이은홍 / 원작 박지원

 

그림책으로 새로이 태어난 18세기의 소설 「호질」

사람들은 평소 점잖고 근엄하고 두루 학식이 높은 사람들을 우러러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겉보기에 더럽고 천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멸시하고는 하지요. 하지만 겉보기에 더럽다고 하여 그 살아가는 모습 또한 더러울까요? 겉보기에 훌륭하다고 하여 그 살아가는 모습 또한 깨끗할까요?


『호랑이가 예끼놈!』은 겉과 속의 다른 모습을 밀착해서 고발하는 18세기의 소설 「호질」을 작가 이은홍이 다시 쓰고 그린 것입니다. 「호질」은 조선시대의 문인이자 학자였던 박지원이 중국을 여행하고 와서 쓴 기행문인 『열하일기』의 '관내정사(관내에서 본 이야기)' 편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입니다. 박지원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탄탄대로의 벼슬길이 열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과거를 보지 않았습니다. 박지원이 주목한 것은 열심히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백성들과 그에 비해 말만 앞세워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한 양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여러 편의 소설에는 세도를 쥐고 있는 양반에 대한 질타와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호질」의 주인공, 북곽 선생은 나이 마흔에 제 손으로 교열한 책이 만 권이나 되고, 사서오경의 뜻을 풀어서 다시 지은 책만 해도 1만5천 권이나 되는 사람입니다. 모두들 북곽 선생이 이룬 업적이 높다 하여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고 왕들까지도 북곽 선생을 한번 찾아가 보려고 줄을 서는 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북곽 선생이 어느 날 밤을 틈타, 수절 잘하기로 소문난 과부 동리자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때마침, 훌륭한 저녁거리를 찾아 고을로 내려 온 영물 호랑이에게 들키고 맙니다.


이쯤이면 이야기가 어찌 전개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영물인 호랑이가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가짜 북곽 선생의 모습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이야기, 「호질」은 참 시원하고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한문으로 된 글이라 지금의 우리가 읽기 어렵고 또한 한글로 번역을 하여도 예전 18세기의 이야기라 지금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조금 있습니다. 해서 그 이야기를 다시 쉽게 풀어서 잘 다듬어 그림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그림책을 본 다음, 원래의 이야기를 꼭 다시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진짜인 척하는 가짜의 가면 벗기기

「호질」의 주인공 '북곽 선생'은 그림책 『호랑이가 예끼놈!』에서 '홀로홀로방방'으로 희화화됩니다. 홀로홀로방방에 대면 날고 기는 재주꾼도 꼬리를 감추고 제아무리 똑똑해도 입을 못 뗍니다. 높이 솟은 관모에 고급 의복을 갖추어 입고 수염까지 기른 풍모가 고관대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으리으리합니다. 겉모습이 그러한 터라, 사람들은 선생님이라 부르며 가까이 하고 우러러 보려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선생이 '정숙한 부인'이라 칭해지는 과부를 꼬이려 밤 행차를 나섰다가 과부의 아들들에게 들켜 줄행랑을 치게 되고 급기야 똥구덩이에 빠지고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커다란 호랑이와 대면하게 됩니다.

 

똥구덩이에 빠진 것만 해도 우스운데, 그 영험하고 무섭다는 호랑이와 마주쳤다니요. 젠체하던 모습은 그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살려만 주면 날마다 싱싱한 젊은이로만 골라 만 명이라도 바치겠다며 벌벌 떠는 모양새가 가여울 지경입니다. 이제 홀로홀로방방 앞에서 호랑이의 질책이 시작됩니다. 저 잘난 맛에 살지만 실상은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 귀하고 높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통치배들에 대한 호랑이의 따끔한 질책은 이 그림책의 백미가 되는 부분입니다. 홀로홀로방방으로 대표되는 겉보기에 훌륭하고 귀하고 잘난 사람들, 가짜인데 진짜인 척하는 사람들의 겉모습이 홀랑 벗겨지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나'되짚어 보기

요즘 세상이라고 다르지는 않겠지요. 요즘도 홀로홀로방방 같은 사람들은 많이 보입니다. 이룬 업적으로만 보면 모자랄 게 없는 사람입니다만, 그 업적 뒤에 가려진 위선적인 면모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요. 가슴 쓸어내릴 위기를 모면하고 난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게 마련이고요. 여기 이 그림책의 호랑이 말처럼, 사람이란 모름지기 조금은 모자란 속성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슬쩍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한 경우도 많지요. 주위를 한번 두루 살펴보세요. 이렇게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있는지요. 그리고 그 전에 나를 되돌아보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호랑이의 따끔한 일침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지요.

 

글․그림 / 이은홍
이은홍은 충북 제천, 월악산 아래 마을에 삽니다. 책을 통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만나는 일을 가장 기쁘고 보람된 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역사신문', '세계사신문', '한국생활사박물관', '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다른 이들과 함께 만들어 펴냈으며, 『역사야, 나오너라!』, 『술꾼』(2001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구 똥퍼』(2008년 '부천 만화상' 수상) 등의 책을 지었습니다.

 

원작 / 박지원
원작인 「호질」을 쓴 박지원(1737~1805)은 조선 후기에 살았던 문인이자 학자로 호는 연암입니다. 실제생활에서 동떨어진 채 점잖고 고상한 말과 글만을 귀히 여기는 학문 풍토를 비판하고, 귀천을 떠나 사람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담은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청나라의 수도 북경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열하일기』는 우리나라 여행문학의 으뜸으로 꼽힙니다. 그밖에 「예덕선생전」, 「호질」, 「광문자전」, 「양반전」, 「허생전」 등, 젠체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꾸짖고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여러 편의 짧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2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 깊이 읽기

 

찰스 키핑 글․그림 / 서애경 옮김

 

도시 아이들의 애틋한 우정이 담긴 찰스 키핑의 자전적 이야기
'파라다이스'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대도시 런던 어딘가에 있는 거리였지요. 찰리와 샬럿은 이 거리에서 함께 놀았습니다. 거리에는 새를 파는 노점이 있었는데 꼭대기 새장에 있는 금빛 카나리아를 보며 노는 것을 특히 좋아했지요.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합니다. 철거 회사 사람들이 거리로 들이닥쳐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한 겁니다. 파라다이스 거리 1번지인 샬럿네 집이 첫 번째 차례였지요…….


'몇몇 옛날 거리들이 살아남긴 했지만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거대하고 새로운 '유리 세계'로 바뀌었어요. 어마어마하게 높은 고층 아파트들은 제가 느끼기엔 비인간적이고 차가웠죠. 밤에 불이 켜지면 정말 아름다웠지만, 거기서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 찰스 키핑(더글라스 마틴, 『찰스 키핑,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책을 지은 찰스 키핑은 런던의 램베스Lambeth 거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램베스 거리를 교차하는 또 하나의 거리로 올드 파라다이스 스트리트Old Paradise Street가 있었는데, 두 거리의 교차로에서 찰스 키핑의 할아버지인 잭 키핑Jack Keeping이 채소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키핑은 이 거리의 서정을 스케치에 담아내곤 했지요. 파라다이스 거리는 그야말로 키핑의 유년 시절에서 떼어낼 수 없는 공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파라다이스 거리'는 찰스 키핑의 작품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책에서도 파라다이스는 작가의 유년기의 은유로, 찰리와 샬럿, 그리고 금빛 카나리아가 함께 있던 공간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놀이터로, 재개발된 도시의 잃어버린 옛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변해 가는 대도시 속 아이들의 상실과 희망
샬럿은 아파트 꼭대기로 이사한 뒤 거리로 나가 놀지 못하게 됩니다. 새장에 갇혀 지내는 금빛 카나리아와 아파트에 갇힌 샬럿은 닮아 있습니다. 책 속에서 금빛은 샬럿과 카나리아를 감싸며 이런 비유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옛날 거리의 참새들은 정말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도 그렇고요. 그러다 아파트를 올려다보게 되었어요. 작은 발코니에서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들을 보았어요. 아마 부모님이 거리로 내려가 놀지 말라고 했을 거예요. 그 애들은 안전했지만, 새장 속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죠. 이삼십 층이나 되는 새장이요. 그 아이들과 새장의 카나리아는 상당히 비슷한 구석이 있었죠. 새장 속 카나리아를 생각해 보세요. 완벽하게 행복해 보이죠. 편안하고, 주인이 늘 먹을 것을 주고……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반면 길거리 참새는 차에 치일 수도 있고, 겨울에 얼어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훨씬 나은 삶이에요. 적어도 참새들은 자유로우니까요.'  - 찰스 키핑(더글라스 마틴, 『찰스 키핑,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작품 속에서 키핑은 도시화와 현대화가 아이들의 정서나 자유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통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발을 위해 기존의 것을 부수고 거기 깃든 서정과 기억을 파괴하는 것에 관해, 새것과 개발에 집착하는 문명의 진행 방향에 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폭력적인 방식의 재개발과 도시화에 대해 현대를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키핑은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폭력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모든 것들'을 '아이들 삶의 일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작가의 개인사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현대 사회의 아이들이야말로 끊임없는 개발 속에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공간이 지속되는 것을 보기가 어려울 겁니다. 무수한 개발 속에서 끊임없이 상실감을 겪게 될 겁니다. 도시화와 재개발은 결정권을 가진 어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정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에게도 다른 의미의 숙제로 남습니다.
그러나, 카나리아는 새장 속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고양이의 공격이 있었지만 그 틈에 날아올라 찰리의 친구, 샬럿을 찾아 줍니다. 아파트에 갇힌 아이들을 풀어 주고픈 키핑의 소망이 담긴 것 아닐까요? 흔히들 키핑의 책이 우울하고 무겁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키핑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근거 없는 낙관을 꺼려하면서도 삶의 굴곡 속에서 결국 회복과 평화,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파트 발코니에서지만 찰리와 샬럿과 금빛 카나리아의 우정을, 키핑은 지켜 주고 싶었나 봅니다.

 

새로운 기법과 표현 방식으로 만든 아름다운 그림책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시각적인 면에서도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40여 년 전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의 탁월한 색감과 현대적인 조형감각을 보여 주고 있지요.


키핑은 색을 분리하여 석판으로 찍어 낸 이미지 위에 따로 선을 그려 형태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왁스나 스펀지, 덧칠하기 등을 이용해 여러 가지 시각적 효과를 내기도 했지요. 이렇게 완성한 그림의 인쇄는 비엔나의 이름난 인쇄업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리하여 현대의 인쇄 수준에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이처럼 독특한 그만의 기법은 이른바 '키핑 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이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1967년,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몇 십 년 전 도시 아이들의 이야기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의미 있게 읽힐 것입니다. 그림책으로서 예술적인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거기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현대 우리 사회의 재개발 문제와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1967년의 키핑이 건네는 이야기에서 2010년을 사는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찰스 키핑(Charles Keeping)

찰스 키핑은 192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신문배급업자인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가판 포스터 뒷면에 그림을 즐겨 그리곤 했습니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그러나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이어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공으로 일하던 키핑은 2차대전 중이던 열여덟 살 때 군에 입대하였는데, 군 생활 중에 머리 부상을 입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이 경험은 완치된 뒤에도 그의 내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946년 전역을 한 뒤 런던에 있는 리젠트 스트릿 폴리테크닉이라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가스 검침원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석판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키핑은, 졸업 후 신문 만화 일을 시작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에 들어섰으며 이후 20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1966년 그림책 『검은 돌리』의 출간을 시작으로 평생 22권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급속한 현대화 과정 속 대도시의 변화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린 작품들입니다.

 

빼어난 조형성과 색감, 깊은 주제의식으로 '어린 독자에겐 너무 어렵고 깊은 심리적 접근을 하는 것이 유일한 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키핑은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1967)와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1988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