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1 <시간의 네 방향> 깊이 읽기
- 커다란 금빛 시계를 따라 떠나는 시간 여행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 이지원 옮김

 

퍼즐을 맞추듯 곰곰 생각하며 들여다보는 그림책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세계'라 부릅니다. '세'는 시간을 뜻하고 '계'는 공간을 뜻하니,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간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동서남북이 있고 전후좌우가 있고 아래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뒤로 이리저리 나아갈 수 있고,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어떤가요? …… 흔히 '앞으로만 가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은 그저 내일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끝없이 흘러갈 뿐, 멈춰 설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퍽 이상합니다. '시간의 네 방향'이라니……?


궁금증을 안고 책장을 넘기면, 종이연극 무대 위에서 두 배우가 문을 열고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유럽의 동쪽 어느 강가에 세워진 중세 도시. 한가운데 시계판 네 개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시계탑이 서 있고, 시계탑을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네 집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백 년마다 한 번씩 같은 시각에 그 집들에서 각각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도대체 그 이야기들이 시간의 방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이 그림책은 끝내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종이로 만든 표정 없는 얼굴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극의 장면들을 하나씩 보여 줄 뿐. 그런데 그 장면들은 한결같이, 어디선가 한번쯤 본 것도 같은 그림들과, 거기 있는 의미를 알 듯도 모를 듯도 싶은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커다란 퍼즐의 조각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그림책은 퍼즐을 맞추듯 곰곰 생각하며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몇 백 년의 세월을 앞으로 뒤로 건너뛰어 다니면서, 동서남북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퍼즐을 맞추듯 조금씩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책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퍼즐의 조각들이 모여 이루는 커다란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같은 시간의 다른 얼굴들
때는 1500년 2월 어느 날 아침 6시. 강을 꽁꽁 얼린 추위 속에, 동서남북 네 집의 창문에 촛불의 희미한 빛이 깜박거리고 그 너머 집 안에서 하루가 시작됩니다.


동쪽 집은 부엌. 요리사 아주머니가 저녁에 있을 사육제 잔치 준비를 시작합니다. 어부 아저씨가 얼음을 깨고 잡은 커다란 물고기를 가져왔는데, 주석으로 만든 그릇 더미를 옮기다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표정은 밝지가 않습니다. 저녁이 오기 전에 이런저런 잔치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지하실의 맥주도 날라 와야 하고, 신선한 빵도 구워 놓아야 하는, 바쁘디 바쁜 하루의 아침이 달갑지만은 않을 터. 지금 아주머니의 시간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고 있을까요? 이즈음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종말을 막을 큰 종을 만들 주석을 모으는 일이라는데,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그릇 더미는 마침 종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남쪽 집은 공방. 제본 기술자 빌헬름이 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교회에서 부탁한 책 표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재료로 쓸 가죽이 어제 떨어져 버렸습니다. 새 가죽을 가져올 사람은 세 시간 뒤에나 도착할 예정이니, 재료가 없어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 빌헬름에게 이 시간은 얼마나 더디게 흐르고 있을까요? 지루한 빌헬름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어제 집 앞에서 주운 고양이를 아는 집에 가져다줄까? 그 집 아이들이 착한데, 어제 얼음을 지치고 돌아오다가 고양이를 보고 좋아했는데…….' 한편, 세 시간 뒤에 도착해야 할 가죽장수는 무대의 커튼 뒤에 숨어 등장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쪽 집은 아이들 방. 어제 늦도록 얼음을 지친 아이 둘이 아직 잠들어 있고, 엄마는 날마다 그 시간에 깨어 우는 갓난아기 살로메아에게 방금 젖을 먹였습니다. 돌아오는 부활절에 살로메아에게 세례를 받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난밤 감기라도 걸렸는지 악몽을 꾼 아들 크리스티안을 달래던 일을 떠올립니다. 좀 전엔 크리스티안의 이마를 짚어 보았지요. 어서 날이 밝고 아이들이 아무 탈 없이 일어나 뛰놀기를 바라는 엄마에게 이 시간의 표정은 어떤 것일까요? 아이들의 침대맡에 걸려 있는 그림 속의 수호천사도 엄마의 마음인 양, 손 모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북쪽 집은 거실. 젊은 아내가 곧 동생과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남편 안제이를 배웅하고 있습니다. 날이 춥고 길은 멀고 험하니 불안함도 크려니와, 배가 불룩하니 아이를 가진 듯한데, 한 해가 될지 두 해가 될지 헤어져 있을 시간을 헤아리는 안타까움이 더 커 보입니다. 지금 이 두 사람의 시간은 어떤 색깔일까요? 창문 아래 모래시계는 떠날 시각을 재촉하는 것만 같고, 선반 위 화분에는 안타까운 이별 뒤에 다가올 미래의 희망을 말하는 듯 새싹이 움터 오르고 있습니다.


동남서북, 집집마다 창문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시계탑은 똑같은 시각을 알려 주고 있건만, 그 창문 안의 사람들은 이처럼 저마다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는 그릇을 나르고 누구는 가죽을 기다리고, 누구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을 하고……. 그들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시간의 색깔이, 시간의 표정이 다 같을 수 있을까요? 시계탑이 가리키는 시간의 네 방향은, 사람들이 저마다 마주치는 같은 시간의 서로 다른 얼굴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의 다른 얼굴들'…… 퍼즐을 맞추는 첫 번째 열쇳말입니다.

 

어제의 시간, 오늘의 시간, 내일의 시간
이야기는 그렇게 100년씩 시간을 건너뛰어 1700년, 1800년, 1900년, 그리고 2000년 우리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그 시간들 사이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시대와 시대를 오가며 꼼꼼히 들여다보면, 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실마리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1700년의 공방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는 1500년의 거실에 놓여 있던 바로 그 모래시계였고, 같은 해 거실 벽에 걸린 사슴머리 박제는 1600년 아버지가 사냥해 온 바로 그 사슴의 머리였습니다. 1900년의 거실에서 아버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1600년의 거실 한쪽에 놓여 있던 바이올린이었으며, 2000년 이 도시를 방문한 외국인 한 쌍이 길에서 주운 열쇠는 1800년에 잃어버린 설탕 함의 열쇠였습니다. 이 사실들은 무엇을 뜻할까요?


한편으로 우리는 1700년에 아이들이 만들어 날리던 연과 똑같은 연이 1800년의 아이들 방 창문 너머 하늘에 날고 있음을 발견하고, 1500년에 어부가 가져온 물고기와 똑같은 물고기를 2000년의 식구들이 요리해 먹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00년 시계 기술자의 공방에 천둥소리에 놀란 개가 있었던 것처럼, 2000년 화가의 작업실에 폭죽소리와 불빛을 무서워하는 개가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00년의 아빠와 1500년의 엄마가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자세로 아기를 안고 있으며, 거실의 두 남녀들도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자세로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것들은 또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100년, 200년, 300년, 400년……, 시계탑이 지켜보아 온 몇백 년 세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 그리고 내일의 시간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제의 일은 오늘의 원인이 되고 오늘의 일은 내일 결과로 나타납니다. 끝없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시간의 사슬은 시곗바늘이 돌고 태양이 돌고 계절이 돌기를 되풀이하듯, 끝없이 돌고 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제의 시간, 오늘의 시간, 내일의 시간'…… 퍼즐을 맞추는 세 번째 열쇳말입니다.
 

나의 시간, 너의 시간, 그들의 시간
이제까지 우리는 500년 동안 펼쳐진 24장면의 이야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고 떠나보내고 만나고, 일하고 놀고 꿈꾸며 저마다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들이 보낸 그 시간들이 정말 '저마다'만의 시간들이었을까요?


이야기는 우리에게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들이 서로 겹치고 엮이고 영향을 미치며 인연을 맺는 풍경들을 보여 줍니다.

 

거기에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가져온 시간이 요리사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주고, 가난한 조각가와의 사랑을 관철하려는 딸의 시간이 만류하는 부모를 속상하게 하는 것처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맺어지는 인연들이 있습니다. 흰 블라우스에 수를 놓는 아가씨의 시간이 딸의 세례식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선물이 되고, 그 도시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화가의 시간이 멀리 다른 나라의 어린 독자에게 즐거움이 되는 것처럼 같은 시간 다른 공간 속에서 맺어지는 인연들도 있습니다.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병정을 100년 뒤 그의 증손자가 가지고 놀게 되고, 요리사 아주머니가 쓰던 반죽 그릇을 100년 뒤 그 부엌의 새 주인이 쓰게 되는 것처럼 다른 시간 같은 공간에서 맺어지는 인연들도 있으며, 시계 장인의 공방에서 만든 시계가 100년 뒤 다른 집의 거실 벽에 걸려 있거나, 아빠의 사진 공방에서 놀던 아이가 몇십 년 뒤 다른 나라의 유명한 과학자와 화가의 사진을 찍게 되는 것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맺어지는 인연도 있습니다.


100년, 200년, 300년, 400년,…… 그리고 동서남북. 시계탑이 간직한 500년 세월과 네 방향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은 전혀 별개의 시간이 아니며, 또한 수많은 그들의 시간들이 서로의 시간들 속에 엮이고 엮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 중 누군가는 500년 전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유심히 하늘을 관찰하는 소년이었던 미코와이 코페르니크(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를 떠올리며 훌륭한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것이고,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그림책을 통해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눈 파란 작가와 만나, 시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겠지요.


나의 시간, 너의 시간, 그들의 시간'…… 네 번째 열쇳말을 끝으로 커다란 퍼즐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림책 속에는 끼워지지 않은 퍼즐 조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두고두고 넘겨 보면서 그 조각들을 찾아 퍼즐을 완성하는 놀이를 즐겨 보세요.

 

글․그림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

1960년에 태어나 폴란드의 중세 도시 토룬의 코페르니쿠스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습니다.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는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직접 글을 쓰고 그리는 그림책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파블리코프스카─야스노젬스카 시화집』으로 바르샤바 국제 책 예술제 '책예술상'을, 『생각하는 ABC』로 'BIB 황금사과상'을 받았습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파란 막대․파란 상자』, 『두 사람』, 『생각』, 『발가락』, 『생각하는 123』, 『안녕, 유럽』, 그린 책으로 『비움』, 『마음의 집』 등이 있습니다.

 

번역 / 이지원

1974년에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폴란드에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린이책 연구와 기획,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파란 막대․파란 상자』, 『두 사람』, 『생각』, 『발가락』,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안녕, 유럽』, 『장미와 반지』, 『착한 괴물은 무섭지 않아』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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