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19  <낙원섬에서 생긴 일> 깊이 읽기

 

찰스 키핑 글․그림 / 서애경 옮김

 

낙원섬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흙탕물이 이는 샛강 한가운데에 '낙원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애덤은 낙원섬을 좋아했습니다. 그다지 낙원이라 할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요. 그러던 어느날 시의회에서는 이곳에 고속도로를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낙원섬이 무질서한 난장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오래된 가게들이 헐리고 섬은 콘크리트로 메워지기 시작합니다. 낙원섬은 과연 애덤의 낙원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찰스 키핑의 유작으로, 도시 재개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발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새만금이 그러하고, 도시 재개발이 그러하고, 한반도 대운하 건설 문제가 그러하지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서로의 입장을 고수한 채 긴긴 싸움을 하기도 하고, 어느 한 편의 승리나 포기, 혹은 양편의 타협으로 끝나기도 하지요. 우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숱한 개발들 가운데에 있습니다. 찰스 키핑은 그런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풍자의 다큐멘터리 속으로
이 그림책은 풍자로 가득차 있으며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표지부터 '이 다리로 연결된 지역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줍니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에는 '낙원섬 횡단 도로 건설 계획'에 대한 찬성과 반대 서명이 보이고 그와 함께 이 허구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지역이 실제의 장소인 양 지도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면은 애덤이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 걸터 앉아 있는 그림으로 애덤의 시선, 행인의 시선, 차의 방향과 지평선의 소실점 등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를 넘기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찰스 키핑의 다큐멘터리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어 작가는 서점 창밖으로 보이는 점방 거리를 묘사하고, 채소 가게, 정육점, 생선 가게와 빵 가게를 보여 줍니다. 그러고 나서 혼자 사는, 아니 동물들만이 가족인 노인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모두 애덤의 이웃이자 친구라고 합니다.

 

시의원들의 개발, 애덤과 친구들의 개발
반대편 육지에서는 시의원들이 지역 일을 논의하고 있대요. 이들은 애덤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고 이웃도 아니지만 애덤이 사는 섬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들의 이름을 보면 말장난하기 좋아하는 찰스 키핑 식의 풍자를 엿볼 수 있지요. 메이저 블랑코 Major Blanco의 메이저 major는 '대다수' 혹은 '일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혼 클라우드 버크 Hon Claude Berk에서 버크 berk는 '멍청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니 블런트 Ernie Blunt의 블런트blunt는 '무뚝뚝하다'는 뜻이에요. 시빌 실리 Sybil Sillie는 '맹한 시빌' 쯤이 되겠고, 프림로즈 부인 Lady Primrose은 '화려한 여사' 정도가 될 거에요. 그리고 시장 세실 블란드 경 Mayor Sir Cecil Bland이 김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블란드 bland는 '김빠진', '재미없는'의 뜻이에요. 그 외에도 언제나 기권하기 좋아하는 버니 블랙Bernie Black와 위니 화이트 Winnie White가 있어요. '검다'는 뜻의 블랙 black과 '희다'는 뜻의 화이트 white를 사용해 타협점을 찾기 힘든 흑백논리의 사람들, 극단적인 좌와 우의 사람들을 작가는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의원들은 무질서하고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어른들로 스매쉬트 smashit('smash it!'은 '때려 부숴!'라는 뜻) 철거 회사를 통해 낙원섬의 낡은 것들을 부수고, 도로를 새로 닦습니다. 그렇게 낙원섬은 금새 콘크리트로 메워집니다.

 

그 사이, 습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애덤과 그의 친구들는 시의회에서 통과시킨 낙원섬의 개발 건에 관해 어떠한 결정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습지는 도로로 쓰기에는 쓸모없는 땅이라 그곳에다 그들만의 계획을 감행할 수 있었지요. 애덤의 친구인 바르다 할아버지와 벌리 할머니는 애덤에게 노인들끼리 생각해 낸 꾀를 알려 주고, 애덤은 친구들과 함께 철거지에서 버려진 목재와 벽돌을 모아 습지로 옮깁니다. 그리고는 그곳에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낡은 것을 부수고 버려서 '새 것'을 만들었다고 기뻐하는 시의원들과, 그 곁에서 버려진 것을 줍고 고쳐서 진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애덤과 그의 친구들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찰스 키핑은 이러한 대조를 통해 진정한 개발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엉망진창이 된 개막식, 소박한 습지의 파티
시의원들이 추진했던 도로 개통은 게리 밴디노즈의 초대로 무언가 그럴 듯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밴디노즈가 테이프를 막 자른 순간, 시의원들은 거기 모인 군중이 도로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리 밴디노즈를 보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망한 시의원들은 잘라 놓은 테이프 앞에서 풀이 꺽인 채 서 있고, 그 옆으로는 게리 밴디노즈의 광팬들과 경쟁 연예인의 광팬들, 싸우고 있는 북쪽 사람들과 남쪽 사람들, 자신만의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든 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관심사만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지요.


반면, 애덤과 친구들의 개발은 어떠한가요. 벌리 할머니와 바르다 할아버지가 구워 주는 소시지와 감자를 먹으며 소박한 파티를 하고 있군요. 자기들이 엮었을 타이어 그네를 타고, 손으로 뚝딱뚝딱 지은 계단을 오릅니다. 동물들과 함께 뛰고, 버려진 자동차를 아지트처럼 점령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공간에서,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함께 어울리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너무 독특해서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낙원섬에서 함께 웃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신비한 분위기는 애덤이 안고 있는 비둘기로 인해 고조되는데, 이 그림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이 그림책은 한 번 읽어서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기 힘듭니다. 심지어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연 그럴까요? 위에서 언급한 장면의 그림들을 곰곰이 보면 찰스 키핑이 그림 속에 숨겨둔 이야기가 보일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나'라면, 내가 '애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말이에요.


어려운 이야기? 열린 이야기!
찰스 키핑은 은근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설교하지 않고 그저 질문을 던지고 결론을 열어 놓지요. 여러분이 이어서 만들어 낼 다음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낙원섬은 어떤 곳인가요? 어떤 해프닝이 벌어지고 어떻게 해결되나요?

 

'나는 강 위에 있는 한 섬에 관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섬이 작은 지역 공동체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고속도로의 일부가 되어 버릴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지역 사람들은 집을 새로 짓고, 대형 슈퍼마켓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교할 생각은 없다. 당신은 작은 구멍 가게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위생적인 슈퍼마켓을 좋아하는가? 나는 그림으로, 뒤죽박죽으로 쌓인 과일과 야채를 파는 상인을 보여 줄 수 있고, 그런 다음에 그 상인이 깔끔하고 말쑥한 모습으로 냉장고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점 주인이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해서 그저 냉장고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아이들은 이것이 진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나는 이것을 그림으로 보여 줌으로써 이를 통해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결론을 이끌어 낼 여지를 주는 것이다.' - 찰스 키핑(『찰스 키핑,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더글라스 마틴, 114~115쪽)

 

글.그림 / 찰스 키핑

192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신문배급업자인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가판 포스터 뒷면에 그림을 즐겨 그리곤 했습니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그러나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이어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공으로 일하던 키핑은 2차대전 중이던 열여덟 살 때 군에 입대하였는데, 군 생활 중에 머리 부상을 입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이 경험은 완치된 뒤에도 그의 내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946년 전역을 한 뒤 런던에 있는 리젠트 스트릿 폴리테크닉이라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가스 검침원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석판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키핑은, 졸업 후 신문 만화 일을 시작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에 들어섰으며 이후 20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1966년 그림책 『검은 돌리』의 출간을 시작으로 평생 22권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급속한 현대화 과정 속 대도시의 변화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린 작품들입니다.


빼어난 조형성과 색감, 깊은 주제의식으로 '어린 독자에겐 너무 어렵고 깊은 심리적 접근을 하는 것이 유일한 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키핑은 『찰리와 샬롯데와 황금 카나리아』(1967)과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1988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작품 『낙원섬에서 생긴 일』은 그의 유작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9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