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다락방 명탐정>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재미있는 판타지 추리동화다. 탐정 흉내내길 좋아하는 초등학생 건이가 다락방에 차린 허름한 탐정 사무소, 첫 번째 의뢰인은 다름 아닌 도깨비! '아이들이 도깨비와 친해지게 만들자'라는 애초의 취지에 맞게,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 도깨비의 습성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본격 탐정물을 표방하는 만큼, 사건의 실마리를 추리해나가는 묘미 또한 일품이다.

 

전직 신문기자이면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두 아들을 둔 엄마이자, 이제 막 데뷔한 새내기 동화작가. 성완 작가가 문단에 첫 발을 내딛는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이 판타지와 추리물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들려주었다. 때로는 심술궂기도 하지만 사람을 잘 믿어서 속기도 잘하고, 어리버리하면서도 참 착해서 좋다는 도깨비 이야기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기획 : 비룡소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 2013-02-26)

 

 

 

축하드립니다. 비룡소 문학상 공모전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된 소감이 어떠세요? 

 

어린이 문학을 접한 세월이 길지 않아서 크게 기대는 못하고 응모를 했었어요. 그랬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쁩니다. 기쁘고, 감사하죠. 운이 좋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요. 문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세월은 또 길었는데 그 고집스러움하고 운이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 문학을 접한 세월이 길지 않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동화를 쓰기 시작하셨는지요?

 

글을 계속 쓰고 싶었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글을 썼어요. 그러다 기자가 됐고 일이 재미는 있는데 내 세계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좋았지만 약간 허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어요. 그만둘거면 해보고 싶은 글을 다시 해보자라는 마음이 있었구요. 그러던 중에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동화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많이 컸어요. 이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고 그래요.

 

<다락방 명탐정>을 읽을 나이는 지났네요.

 

5학년 아들이 책하고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데(웃음) 읽기에 괜찮았던 것 같아요. 고학년이라도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아이들한테는 좀 쉬운 책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도깨비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나요? 아니면 추리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주인공을 찾다가 도깨비를 선택하셨던 건지요?

 

재작년에 처음 동화 글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겨레 아동문학작가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고, 거기서 같은 기수끼리 스터디그룹을 짰는데요. 제 글에 대해서 '취지는 좋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 그런 평이 있었죠. 합평을 하고 돌아오던 어느 날 재미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어요. 오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동안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걸 좀 내려놓고 나도 재미있는 걸 써보자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읽는 책을 좀 봤어요. 우리 아들들은 딱 평균치거든요. 한 아이는 게임을 아주 좋아하고, 다른 아이는 운동을 아주 좋아하고. 걔네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나 봤더니 읽는 책 중에 외국 판타지와 외국 추리가 많더라고요. 그러면 그 두개를 섞지 뭐, 이런 생각을 했고요. 판타지 추리를 하는데, 우리 아들들 같은 경우 너무 외국 동화에 치우쳐 있으니까 우리 정서를 담은 작품을 해보자는 식으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다락방 명탐정>을 쓰시기 전에 도깨비 공부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많이 찾아서 보는 편인데요. 이분은 어쩌면 그렇게 박학다식할까 했던 대문호님께서 예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도 모든 걸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게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 분야에 대해서 그때그때 공부를 하고 또 다 까먹는다' 그말에 위로를 받으면서 저도 그렇게 연명하는...(웃음)

 

우리 관념 속에 있는 통상적으로 알려진 도깨비는 뿔이 달리고 도깨비 팬티 같은 것도 한장 입고 있는 그런 모습인데요. 알아보다 보니까 그런 도깨비의 모습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더라구요. '오니'라고 하는 일본 도깨비의 영향을요. 우리나라 도깨비 중에는 뿔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다고 해요. 사실 이 작품을 하면서 겁도 났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도깨비하고 많이 달라서 '그게 어떻게 도깨비냐, 이름만 도깨비다'라는 욕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아이들이 그냥 도깨비를 박물관에 있는 도깨비로 느끼지 않고 우리 옆에 있는 도깨비로 느끼게 하되, 우리나라 도깨비들이 갖고 있는 품성이나 정서는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들이 갖고 있는 품성, 사람을 잘 믿어서 속기도 하고 어리버리하기도 한데 참 착한 그런 도깨비들의 정서를 훼손하지 않으면 스토리가 약간 변형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도깨비가 아이들하고 친해지는 게 이 이야기를 만드는 취지와 더 부합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죠.

 

<다락방 명탐정>에서처럼 구미호가 정말 도깨비를 무서워한다는 게 정말인가요? 도깨비가 구미호의 천적이라는 게 유명한 사실인지 작가님의 설정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예요. 메밀묵을 비롯해서 음식을 좋아하는 건 전해져온 이야기고요. 제가 도깨비의 습성을 약간 변형을 하는 건 오히려 도깨비들 이야기를 계승하는 것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도깨비랑 구미호는 원래 전혀 다른 두 이야기에 각각 나오지만, 우리나라 판타지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걔네들이 서로 교류할 수도 있는 것이고...(웃음)

 

그러고보니 흥부네 박을 주먹코 도깨비가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도 말씀하신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

 

옛날에는 도깨비 이야기를 할머니가 들려주시면 호랑이가 정말 산에서 내려올까봐 불안하고 그랬잖아요. 그시절에는 판타지 얘기에 묘미가 있고 재미가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게 어느 정도 유지되기도 했겠지만 어느 순간 단절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지금 우리집으로 올까봐 겁나고 혹은 우리집으로 올까봐 기다려지고... 그런 것은 외국 캐릭터들에 많이 밀린 것 아닌가 싶어요. 제 아들들도 요정하고, 몬스터 이런 것들하고 더 친하거든요. 우리 도깨비도 우리 아이들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도깨비들이 가진 여러 특징 중에서 작가님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점을 하나만 꼽아주세요.

 

도깨비도 그렇고 구미호도 그렇고 우리나라 캐릭터들은 참 착해요. 본성이 사악하지 않은 게 가장 좋은 점 같아요. 성격이 좀 심술궂다거나 심통도 부리고 화도 부리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참 착한 것 같아요. 서양 캐릭터가 더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선악구도가 분명하고 악의 캐릭터가 너무 선명한 그런 것보다 우리나라 캐릭터들의 선함이 저는 좋더라구요.

 

<다락방 명탐정>에 나오는 주먹코, 꺽다리, 외눈이, 번개버리.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네 도깨비들 중에서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요?

 

네 도깨비 캐릭터가 가진 모습의 한 부분씩은 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거든요. 소심한 것도 내 안에 있고, 아들 둘을 키우다보면 버럭버럭 화를 내기도 하는 것, 머리가 나쁜 것은 주먹코를 닮은 것 같고요(웃음).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쪼개서 만든 느낌이기 때문에 이 도깨비들이 다 아이들하고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건이가 탐정 사무소를 차리자마자 첫 의뢰인인 도깨비가 사는 마을로 가게 되는데요. 주인공이 도깨비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게 예상 밖이었어요.

 

도깨비를 만났을 때 무서워할까 반가워할까 고민했을 때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반가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경계심이 적으니까. 구미호를 두려워했던 건 구미호가 자기를 헤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요.

 

'번쩍따리~ 반짝따리~ 따리따리 쨍쨍~!' '보글퐁~ 쿨럭퐁~ 들락날락 걀걀~!'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흔들면서 외우는 주문이 재밌습니다.

 

주문을 외웠을 때 그 주문의 효과와 관계 있는, 연상될 수 있는 단어를 쓰되 아이들이 입으로 소리내서 읽었을 때 입에 붙는 말이었으면 좋겠다하고 주문을 만들었습니다.

 

도깨비 일행이 거적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던 중에, 도깨비방망이에서 뚝딱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장면이 있잖아요. 도깨비가 초코 아이크림을 만들어준다는 게 부럽기도 하면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작가님은 작품 속 어떤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드셨나요?

 

아이들을 신나게 해주고 마음을 열어주고 해방감을 준다는 점에서 방금 꼽으신 그 장면을 들 수 있겠고요. 가장 고민했던 건 범인에 대한 해결 방안이었어요. 범인을 곧바로 용서를 할 것이냐 벌을 줄 것이냐 고민하는 대목에서 아이들이 한번 되새김질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해방감을 주고 저도 날 수 있었던 건 그 거적을 타고 날아가던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말에 가서는 모든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된 덕분에 산뜻한 기분으로 독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까지, 장편동화 한 편을 쓰기까지 가장 큰 동력이 되어준 것이 있다면요?

 

제가 재미있었던 것 같았어요. 아이들한테 어떤 단서를 남겨줄까? 예전에 습작을 할 때는 뭔가 유익한 걸 해보자 하는 무게감에 눌려 있었다면 <다락방 명탐정>은 제가 추리하는 재미를 느끼고 만들면서 썼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추리와 판타지가 유난히 인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추리는 그림이 딱딱 맞춰지는 퍼즐 같은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특성 중의 하나가 참여인 것 같거든요. 생각에 참여하든가 공감대로 참여를 하던가 자기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을 때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추리물에서 자기도 같이 범인을 생각해보고 그런 재미가 아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이거야 하고 알려주는 것하고는 다르죠.

 

판타지는 그냥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자아이 여자아이 장르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현실과 판타지를 정말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어른들은 재는 게 많아지잖아요, 현실감도 생기는데 아이들은 판타지 세계로 들어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요. 현실에서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는데 그것을 외부로, 무한대로 확장시켜줄 수 있는 장르가 바로 판타지인 거죠.

 

"'글을 제법 쓰네.'라는 칭찬 한 마디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작가 소개글에 씌어 있습니다. 칭찬을 해주셨던 분이 누구셨는지, 어떤 글로 칭찬 받았었는지 기억나세요?

 

제가 되게 평범한 아이였어요. 잘하는 건 없고. 어느날 학교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글짓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너 이거 갖고 가서 어머니한테 읽어드려라 그러셔서 집에 가지고 갔죠. 장면도 생생해요. 어머니 앞에서 제가 또박또박 읽었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어? 제법 쓰네?' 그러셨어요. 어머니가 글을 좀 쓰셨거든요. 소싯적에 시를 쓰셨어요. 어머니한테 착하다는 것 말고 재능을 칭찬 받은 건 그게 처음이었어요. 제 작가 소개글에 이 얘기가 들어갔으면 했던 게요, 아이들은 그런 작은 자기 재능에 대한 칭찬 그 아무것도 아닌 걸 평생 가슴에 간직하기고 하고 그것 때문에 자기 투자를 해보기도 하고 노력도 해보고 그러는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는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내가 어머니한테 재능으로 칭찬을 받았네하는 그런 게 있었죠.

 

앞으로도 동화를 계속 써나가고 싶으세요, 아니면 다른 분야의 글을 써보실 계획도 있으세요?

 

젊었을 때는 성인 문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 자기에게 맞는 그릇이 있고 색깔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범했던 우가 있는데 제가 좋아했던 작가를 따라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나도 저렇게 썼으면 좋겠다라는. 내 색깔을 찾기보다는 당시에 주목받거나 아니면 제가 읽고 감동 받았던 책의 작가를 그냥 동경하고요. 어떻게 보면 <다락방 명탐정>의 주제는 제가 저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내 재주를 보기보다는 남의 재주만 너무 동경하는 것이라는 주제요. 아동부터 청소년, 또 그림책. 이 안에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커 가야 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요. 저도 배우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고민하면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쓰고 싶습니다.

 

예비 동화작가분들께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이제 막 동화작가로 데뷔를 하셨는데 작가님이 앞서 겪었던 시행착오에 대해 들려주신다면, 습작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벗이 있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어떤 그룹이건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건 배울 수 있는 학교나 기관이건 글을 쓸 때는 자극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안 쓴다고 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추궁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면 끝없이 안 쓰게 될 수도 있는데요. 서로 자극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랑 좋은 말만 해주는 게 아니라 나쁜 말도 듣는다면 서로 도움이 되겠죠. 저 같은 경우도 니 글 재미없다는 그 말 한마디에 오기가 생겨서 해봤던 것처럼, 같이 가는 글벗이 있는 것이 그런 면에서 참 좋은 것 같고요. 당대에 히트치는 작품도 중요하겠지만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물론 저도 존경하지만 나만의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색깔을 찾아가는 게 저한테도 숙제이고요. 자기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기 색깔을 자기가 정확히 모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해보고 싶은 걸 이렇게 저렇게 여러가지로 해보다 보면 다른 누군가가 내 색깔을 발견해줄 수도 있고, 내가 내 색깔을 찾을 수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작가님 자신은 어떤 사람,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다락방 명탐정>이 비룡소 문학상에 당선 되고 나서 저도 저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어요. 저한테 굉장히 아이같은 면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성장하면서 여러가지 굴곡이 있었을텐데, 그 굴곡에서 나는 심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는 그런 어떤 강박이요. 그런 색깔을 가지고 살아온 세월이 길었어요. 굉장히 무겁게 세상을 바라보고 무겁게 세상을 진단하고. 물론 그런 것들의 가치를 모르겠다는 건 아니고요. 두 가지를 새롭게 깨달은 것 같아요. 나보다 훨씬 더 무겁게 풀어낼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그것 하나랑 저의 성향 안에도 굉장히 밝고 유쾌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거. 어떤 면에서는 동화를 쓰게 된 데 감사한 게 제 본성에 있었던 걸 다시 깨우쳐준 게 동화였던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단정지을 수 없는 것 같아요.

 

2013년에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여쭤볼게요.

 

아까 착하다는 칭찬 외에 다른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게 착한 게 아니라 착한 척하면서 살아온 세월이었어요. 신문사를 그만둘 때 제가 울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참 재미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는데 그걸 육아 때문에 그만두게 됐으니까요. 다시 꿈을 가질 때 제 마음은 이제 남은 건 착한 컴플렉스에서 좀 벗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자라는 것이었어요. 동화를 쓰는 건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길게 보면 내가 행복한 글쓰기를 하고 내가 행복한 글쓰기를 할 때 애들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우리 책 중에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에피소드 같이 끝나는 이야기들 말고, 해프닝이나 이런 게 아니라 '그래서?'라고 물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 뒤가 자꾸 궁금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요. 단기적으로는 시리즈를 작업해보고 싶고요. 외국 판타지랑 다르게 악역이 없는 판타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다락방 명탐정>에서는 어떻게 하다 보니 구미호가 악역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요. 시리즈를 통해 구미호를 해명할 기회를 마련해보고 싶기도 해요.

 

끝으로 <다락방 명탐정>의 어린이 독자를 비롯해 새학기를 맞는 아이들에게 인사 부탁 드립니다.

 

저도 아들이 둘이고, 아들이 방학을 할 때의 표정과 개학을 앞뒀을 때의 표정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고 있는데요. 새학기에 아이들이 즐겁게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빈 말인지 알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말만 던지는게 참 미안하고 조심스러워요. 지금 아이들은 여건이 많이 달라져서 우리 어렸을 때처럼 놀 수 있는 상황이 별로 없고 어깨가 많이 무겁다는 것을 알지만 틈새틈새 찾아보면 여전히 참 잘 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책에서 놀았으면 좋겠어요. 놀이를 통해서 성장도 하겠지만 놀이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고 배울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 안에서 잘 놀기도 하면서 공부만이 아니라 자기의 길, 자기의 색깔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다락방 명탐정>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새학기를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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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수상작 <시간 가게>의 주인공 윤아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초등학생들의 현실적인 자화상이다. 입시 지옥에 갇힌 초등학생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스케치하던 이야기는 '시간을 파는 가게'라는 신비한 공간을 거치며 시간과 기억, 양심, 자유, 행복에 대한 깊고 넓은 성찰로 나아간다. 초등학생 독서 지도 교사를 시작으로 대학원, 어린이책 작가교실까지. 짧지 않은 기간에 동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해온 신인 작가의 탄탄한 데뷔작. 사회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거창한 의도나 목표를 숨겨 놓지는 않았다. 세상에 발표한 첫 번째 장편동화 <시간 가게>가 '아이들의 작은 소리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길 희망하며, 어른들에게는 아이들 가장 가까이에서 건널목이 되어달라고 당부하는 이나영 작가와의 만남을 소개한다.

 

(기획 : 문학동네어린이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 2013-01-18 카페 꼼마 1호점) 

 

 

먼저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처음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제가 문학동네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는데요. 먼저 출간된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수상작들이 좋았거든요. 사실 첫 책이고 습작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는데 얼떨떨했죠. 막상 시작을 하니까 더 부담이 되더라고요.

 

습작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하셨는데, 동화를 처음 쓰기 시작하신 건 언제였나요?


첫 전공은 생물학이었어요. 성인이 돼서 다시 동화를 본격적으로 접한 건 졸업도 결혼도 하고 난 뒤였고, 그게 벌써 15년 전? 우리 아이가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니까요. 그때부터 책에 관심 갖고 아이들 독서 지도도 시작하게 됐고요. 그러면서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 들어간 게 2008년, 동화라는 걸 쓰게 된 거죠. 그러다가 한 3년 반 전쯤에는 어린이책 작가 교실이라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배웠고, <시간 가게>는 제가 처음 쓴 장편이에요.


만나 뵙기 전에는 <시간 가게>의 소재는 어디에서 얻으셨을까 궁금했었는데요. 중학생이 된 아이가 있다고 하시니까 실제 경험이 아무래도...


네, 저희 아이가 제 작품을 제일 처음 읽어주는 독자 겸 선생님이에요. 습작 기간부터 쓴 글들을 쭉 읽어줬는데, 엄마가 잘 쓰는 말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시간 가게>의 디테일한 부분들, 예를 들면 피구 시합 장면 같은 것들은 상상해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아이한테 물어보고 쓴 것들이에요.


처음 쓴 장편, 집필 기간은 얼마나 걸리셨는지요?


어린이책 작가교실을 다닐 때 쓴 30매짜리 단편이 시작이었어요. 그때는 아이가 시간을 사고 기억을 주는 이야기를 30매 안에 쓰려니까 그냥 몇 번 팔다가 끝나버리는 거예요. 30매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버리기로 한 다음, 마냥 신나서 써내려간 것 같아요. 원고를 끝내고 보니 378매가 나오더라구요. 아, 나도 되는구나 했었고 이후로 계속 수정 작업을 했고요. 씨앗부터 생각하면 4년 정도인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탄생한 <시간 가게>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자기 혼자 볼 때는요, 정말 잘 쓴 것 같아요. 물론 기존에 나와 있는 훌륭한 책들도 많지만 내 작품도 좋은 작품이야 이런 게 있었는데요. 편집자분께서 제 책이 나온다고 말씀해주시니까요... 휴. '좋지?' '오래 기다렸는데 어때?' 주변에서 물어보실 때마다 정말 숨고 싶었어요.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욕 먹으면 어떡하나했죠. 지금도 창피하고...(웃음)


그렇게 걱정하셨다지만 칭찬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시간 가게>를 읽었던 분들의 감상 중에서 맘에 드셨던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이들이 재밌어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제가 위안 삼는 건 주변의 몇몇 아이들이 아무 말 안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저한테 와서 재밌다고 해주니까 그게 진짜려니 믿고는 있어요(웃음). 어른들한테는 입시 광풍을 다루는 지점이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지금 많은 분들이 윤아 엄마처럼 살거나 사는 것을 동경하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해주시더라구요. 공감을 하시는 것 같아요.


집필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으셨다면요? 판타지와 현실을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지점이나 시시각각 미세하게 바뀌는 윤아의 심리 묘사에도 많은 공을 들이신 것 같습니다.

 

쓰면서 윤아한테 몰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시간 가게'의 어떤 장치라든가 시간과 기억을 바꾸는 부분도 당연히 이야기의 구축이라는 면에서 공을 들였는데요. 제가 가장 많이 가슴에 안고 있었던 건 이 주인공 아이의 심리묘사였던 것 같아요. 더구나 1인칭을 썼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다가 윤아와 자기를 동일시 할 수도 있는건데, 혹시라도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거나 어?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라는 질문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작가 약력에서 독서 지도 선생님으로 활동하셨다는 소개를 읽었습니다.

 

이제 정규 수업으로는 안 하고 있는데요. 그게 벌써 10년 전이고 그때는 제가 동화작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돌이켜보면, 독서 지도를 하며 아이들을 만났던 게 동화 작가 데뷔라는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오게 한 자양분이었어요. 그래서 고맙고요. 수업은 도서관에서 했어요. 방과 후에 선택을 해서 오는 곳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사교육인 거죠. 학원은 아니지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하게 만났는데 수업 시작 시간이 4시였어요. 1학년 아이들은 1시나 2시에 수업이 끝나는데 끝나면 또 방과후 수업이 있어요. 제 수업까지 이어서 들으면 5시가 되죠. 그리고 5시에 또 다른 학원에 가야 하고요. 어느날은 1학년짜리 아이가 수업에 들어와서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너무 피곤하니까 자는 거예요. 학원을 특히 많이 다니는 아이였는데 집에서 푸는 학습지 말고도 여섯 개, 일곱 개나 되는 학원에 다니더라고요. 다른 아이들한테서도 종종 그런 모습을 봤거든요. 너무 고단하죠, 벌써부터 삶이.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구나, 엄마 아빠한테 끌려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시간 가게>가 바로 그 아이들 얘기죠.

 

시간을 사기 위해서는 행복했던 기억을 팔아야 하고, 그 기억은 진실된 것이어야 하잖아요. 윤아가 떠올린 기억이 진실이라는 판정을 받아서 성공적으로 기억이 사라지고, 또 그 댓가로 시간을 얻게 되는 그 순간은 누가 봐도 범상치가 않아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주고요. 책 속에서 윤아는 이 순간을 '가슴에서 훅 하고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 묘사를 했네요.

 

기억이 보통 머리에 있다, 뇌에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물론 뇌는 기억을 관장하는 곳이 맞는데 저는 어쨌든 간에 기억이든 무엇이든 그게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생물학적으로는 뇌일지 몰라도, 정말 그 어떤 따스한 기억 이런 것들은 우리가 '가슴에 간직할게'라는 말을 쓰기도 하듯이요.

 

작가님이 본 요즘 아이들, 초등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심사평에서도 그 부분을 짚어주셨는데요, 관계 맺기와 몸을 쓰는 놀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아요. 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과거에는 물질적으로 더 어려웠거든요. 그런 문제 때문에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 그때를 추억 안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분명한 건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하고 뛰어놀았던 거, 다방구 했던 거, 얼음땡 했던 거, 오징어하면서 몸 부딪히고 옷 잡아당겼던 게 좋았거든요. 요즘 아이들은 먹고 사는 덴 문제 없을지 모르지만 공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데요. 이 아이들이 저만큼 컸을 때, 제가 놀이를 떠올리고 친구를 떠올리는 것처럼 뭔가 남아 있어야 할텐데...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우려스러워요. 친구끼리도 밖에서는 서로 잘 안 만나고, 집에서는 주로 스마트폰.컴퓨터만 들여다보고.

 

그리고 또 입시 준비에 시달리는 아이들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는데, 아이 키우시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세요?

 

만약에 아이가 난 저걸 정말 배우고 싶어요, 한다면 학원에 보내야겠죠. 그런데 이 책 주인공처럼 보험 설계하듯이 계획해가지고 1학년 때는 뭘 배워야 하고 2학년 때는 뭘 배워야 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엄마 아빠의 요구만 받아들인다면 언젠가 터져버리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때가 중학교 가서일 수도 고등학교 가서일 수도 있고요. 잘못된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시간 가게>는 이런 현실의 입시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요. 이런 현실을 바로잡는데 미약하게나마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못합니다(웃음). 내가 이 책으로 세상을 바꿔야지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그렇게 될 수 있으면 감사한건데...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쓴 이야기고, 앞으로도 제가 아이들을 대변한다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을 거예요. 대변하고 위로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내가 어른이야 너희들보다 오래 살았어라는 훈계 같죠. 저는 다만 아이들의 작은 소리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맞겠네요.

 

시간 사는 법을 터득한 윤아가 시험지를 베껴 올백을 맞는 첫 에피소드를 지나면,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긴장감이 더욱 상승하는데요. 같은 반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는 윤아가 라이벌이면서 교우 관계도 원만한 수영이를 곤경에 빠뜨리게 할 절도 사건을 꾸미잖아요. 그런데 결국 수영이는 다른 친구들의 어떤 오해도 사지 않는 허무한 결말. 이때 윤아의 외로움이 더욱 부각이 됐고요.

 

여느 작가분들은 작품에 자신이 전혀 투영되지 않았다고도 하시는데, 그건 굉장한 스킬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반대였어요. 윤아는 국제중을 위해서 공부하는 아이고, 공부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아이인데 저도 어렸을 때 이 아이처럼 아둥바둥했거든요. 늘 2등만 하다보니 이기고 싶은 욕망이 강했고요. <시간 가게>를 쓰면서 공부도 공부지만 윤아한테 친구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아이들 사이의 관계 문제도 이번 작품에 나타내고 싶었어요.

 

결국 결말에 가서는 엄마가 아니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자문하는 윤아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나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되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아이들이 깨닫고 필요성을 느껴도 마음대로만 할 수 없는 게, 사실 아이들 시간의 주인은 부모님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하시는 건 아이들을 위해서이긴 하지만요. 아이들을 위해 짜준 시간표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렇게 책 속 결말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분명히 존재하는데요.

 

크게 바뀌거나 당장 바뀌는 건 어려울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다거나 눈을 감고 안 보려고 한다면... 상황이 좋지 않아도 우리가 변화에 대한 기대는 할 수 있잖아요. 책이 무언가를 당장 바꿀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럼 너는 왜 쓰니, 달라질 게 없다면서?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죠? 전 아이들이 윤아처럼 '엄마, 난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만 해도 고마울 것 같긴 해요. 읽고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엄청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고마울 것 같긴 해요. 정신 차리라고 하시는 엄마도 계시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책을 읽자마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된 아이일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알고는 가자는 거죠. 아이들도 다 알잖아요. 엄마들은 아이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거든요. 엄마 아빠가 로또를 사고, 엄마 아빠가 어떤 소주를 마시는지까지요.

 

지금을 산다는 게 뭘까라고 했을 때 '지금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라는 건 참 추상적이에요. 누가 저에게 '행복이 뭐예요'라고 물어본다면 지금 이 순간 '알자'라는 게 제 대답이에요. 내 마음이 내는 소리를 알려고 하고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알려고 노력하는 거요. 우리 사회는 지금 들어주지 않잖아요. 약자들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는데 그게 가정에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으니까요. 부모님은 아이 말을 듣지 않으려고 차단해버리고.

 

<시간 가게> 발표 이후에 갖고 계신 고민이나 앞으로 쓰고 싶은 동화의 방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예전에 선배 작가님들이 두 번째 작품이 고민 된다, 세 번째 작품이 고민 된다 그런 말씀들을 하시면 저는 '아, 나도 저런 고민 한번 해봤으면'(웃음) 했었는데 저도 이제 두 번째 작품을 쓰고 있어요. 과감하게 쓰고 싶어요.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을.

 

<시간 가게>에서 1등이 되길 강요받는 윤아나 윤아를 뒷바라지 하는 엄마나 그리고 현실의 우리도 다들 힘들잖아요. 모두가 화이팅할 수 있는 응원의 한마디 부탁 드릴게요.

 

김려령 선생님의 <그 사람을 본 적 있나요?>를 정말 인상 깊게 읽었거든요. 참 좋아하는 책인데 왜 이렇게 좋은지 생각해봤더니, 그 책에 나오는 '건널목 아저씨'요. 그 캐릭터 같은 존재가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 같아요. 나의 건널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힘들 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 그 책을 너무 홍보하는 것 같지만(웃음), 아이들에게 건널목 같은 존재가 돼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어른들은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웃음).

 

<시간 가게>을 읽으셨거나 관심을 갖고 계신 알라딘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인사해주세요!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확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확보된 시간에 <시간 가게>를 읽어주신다면 더 좋겠어요(웃음). 모든 아이들이 윤아처럼 사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 책을 보시고 불편해하는 부모님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공부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자전거도 내리막길에서 가속도가 막 붙어버리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고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과감하게 자전거에서 내려주는 것도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책에도 쓴 것처럼 <시간 가게>를 읽고 지금 나에 대해 10분만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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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do2 2013-02-13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whdirquf 2013-02-14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너굴 2013-02-17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ㅎㅎ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만화(웹툰)로 콜라보레이션을 해보고 싶기도합니다.
 

2012년은 폴란드 정부에서 지정한 코르착의 해. 야누시 코르착은 자신의 온 생애를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고 지키는데 바친 인물이다. 교육자 코르착 생애를 담은 그림책 <블룸카의 일기>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붓과 펜 끝에서 태어났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임을 거듭 강조한 신작을 소개하는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열정과 애착이 배어나온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회적인 주제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도 확고한 입장을 드러내는데, 이 또한 <블룸카의 일기>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한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어릴 때 수학을 유난히 좋아했고 그것이 작품에도 드러난다는 이야기, <블룸카의 일기>에 이어 출간을 앞둔 신작들의 제목과 드디어 자국인 폴란드에서 첫 출간을 제의 받았다는 소식은 그간의 분주한 작품 활동은 물론, 앞으로 변화될 새로운 모습까지 그려보게 한다.

 

(기획 : 사계절출판사 / 번역 : 이지원 / 인터뷰어 : 알라딘 이승혜)

 

 

2011년 한국 방문 이후 벌써 한 해가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올해는 <블룸카의 일기>로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독일과 폴란드에서 동시에 출간되고 이스라엘, 일본, 프랑스, 그리고 한국에서 출간된 덕분에 각종 페스티벌과 도서전, 작가와의 만남을 유럽 전역에서 가질 수 있었습니다. 되새겨보면 올해 내내 계속 어딘가 다닌 기억만 나요. 특히 독일에서 열리는 행사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세 권의 책-<눈>(창비, 근간), <네 개의 그릇>(논장, 근간),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독일어 알파벳>(Gimpel, 근간)-작업을 진행하여 마쳤어요.


신작 <블룸카의 일기>의 화자인 블룸카의 선생님, '야누시 코르착'이란 인물을 작가님이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였나요? 그리고 작가님을 포함한 오늘의 폴란드인들에게 '야누시 코르착'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코르착은 저희 세대 폴란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폴란드인들은 항상 역사 인식이 각별한 편이고, 그의 생애 마지막쯤에 일어난 일(코르착이 돌보던 유대인 고아 200명과 함께 수용소로 떠나는 기차역까지 마지막 행진을 한 일 : 옮긴이 주)에 대해 깊이 감동받고 있습니다. 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5년 뒤에 태어나서, 전쟁의 여운을 느끼며 자랐어요. 제 책인 <블룸카의 일기>가 홀로코스트나 전쟁을 다룬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살던 고아의 집과 코르착의 교육철학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패러독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슬픈 역사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래서 코르착에 대해서도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나 바르샤바 게토에서 아이들과 함께 겪은 힘든 삶에 대해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코르착이 쓴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코르착이 30년 넘게 고아들을 돌봐온 사실이나 지금 봐도 혁신적인 그의 교육철학에 대해서는 무심히 넘어간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극적 죽음에 관한 일화는 알려져 있지만, 그 죽음이 어린이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삶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라는 건 깊이들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그의 인생의 업적을 명료하고 짧은, 이해하기 쉬운 그림책의 형식으로 꼭 알리고 싶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는 소재뿐만 아니라, 작업 방식에서도 이전 작품들과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 그리고 작업 과정 전반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코르착이 직접 쓴 일기도 책의 바탕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오랜 기간 준비했고,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저 자신도 성숙해야만 했습니다. 이 책은 폴란드인, 독일인, 유대인과 그들의 역사 안에 절묘하게 자리하는 책입니다. 이러한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책임이 뒤따르는지 알고 있습니다. 코르착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폴란드 사람들도 많고, 어쩌면 가끔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코르착이 너무나 폴란드인이었다고 공격하는데, 폴란드 사람들은 그가 너무 유대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학자들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맞춰줘야 하고, 아이들을 평가할 수 없고, 아이들에게 벌보다는 상을 줘야 한다는, 코르착의 교육철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코르착이 과학적인 방법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한 것, 아이가 많은 가난한 집안들을 접한 코르착의 우생학적인 관점 등을 비판합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저는 코르착이 마치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고아처럼 느껴졌습니다. 올해가 폴란드 정부에서 지정한 코르착의 해였는데 어린이 인권에 대해 코르착과 관련한 큰 사회적 반향은 없었습니다. 그런 점들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주제로 책을 만드는 일에는 창작자가 자신을 낮추는 태도와 집중, 주제에 대한 세세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인물을 다루는 데에서 가장 어려운 건, 그 인물에 대한 각종 기록에서 그 인생의 정수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특히 그림책에서는 짧고 간단한 글이 필요하고, 그 글이 지루해서도 안 됩니다. 픽션을 가미할 때에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한 직후에 바로 이 작품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세속적 성공에 너무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스스로를 정화하고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써 나가면서, 가끔씩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말하는 그림을 한 장 한 장 생각해나갔습니다. 단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그림책을 창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가로서 제 자신을 보여주면서 예술적으로도 흥미로운 작업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블룸카와 함께 '고아의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외모도 성격도 각양각색입니다. 항상 배가 고픈 지그문트, 양파 껍질 벗기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쉬멕,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론, 그리고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블룸카까지. <블룸카의 일기> 속 아이들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나가셨는지요?


'고아의 집'아이들에 대한 많은 자료를 읽었습니다. 코르착도 기록을 남겼지만, 함께 일하던 선생님들의 회고록에도 아이들 얘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코칙, 스타시엑 같은 아이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있었던 이야기지만, 다른 인물들은 실제로 고아의 집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행사나 관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물들입니다. '착한 일을 하는 날'이나 '부엌 축일''첫눈 오는 날', 아이들이 공방에서 여러 종류의 손기술을 익힌 일, 자신만의 비밀 서랍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 어린이 법정과 신문 등의 실제 사실들을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를 '이미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안내해 줄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이 바로 블룸카입니다. 블룸카는 이디쉬어(동유럽 유대인들이 쓰던 언어 : 옮긴이 주)로 '작은 꽃'이라는 뜻입니다. 그림책에서, 블룸카가 물을 주고 있는 꽃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지닌 물망초지요. 그림책에 담겨 있는 아이들의 생활은 행복하고 따뜻합니다. 코르착의 품 안에서 아이들은 슬프고 어려운 처지를 잊을 수 있었지요. 저는 그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과 함께, 그 이면의 슬픔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뒷날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어린 독자들에게, 이 책은 폴란드의 한 작은 고아원의 아기자기한 일상과 여러 축제, 관습을 담은 따뜻한 책일 겁니다. 하지만 코르착과 이 아이들의 비극적 죽음을 알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다소 다르게 다가오겠지요. 어른 독자들은 이 그림책의 숨겨진 상징들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가령, 나쁜 짓을 하는 쉬멕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 과거에 쉬멕이 벌인 나쁜 짓을 깨끗이 씻어 주는 그 물줄기는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죽음의 샤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는 아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와 지켜야 할 의무,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하는 지도자, 어른의 존재에 대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르착의 교육 철학 가운데서도 특히 작가님의 마음을 울린 메시지가 있다면 인터뷰 지면을 빌어 소개해주세요.

 

이 책의 뒷부분에는 실제로 코르착이 지녔고 또 실행했던 교육의 원칙들이 블룸카의 목소리를 빌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울린 건, 아이들이 어른들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 아이들을 존중하고 때리지 않으며 상처를 주었을 때 어른들도 사과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가 작가님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는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이 인물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시겠다고 결심하셨을 때에 작품을 읽게 될 독자 분들께 어떤 바람을 갖고 계셨는지요?

 

이 책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코르착과 아이들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지요. 작가의 시각으로 작업을 풀어내야 하니까요. 이 책은 어찌 보면, 수학적 짜임새를 갖춘 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다 보면, 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세부 상황을 새롭게 깨닫게 되기도 하고, 새로 해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작품의 세세한 부분들 모두가 제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작업을 하면서, 누군가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저와 제 작업을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밀스럽고 신기한 경험들도 많았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와서 다시 살펴보아도 저라는 사람의 어떤 무의식이 이 책을 만들었구나, 누군가 나를 인도해 주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님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해서, 그리고 그림에 대한 재능을 어떻게 처음 발견하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특별한 꿈은 없었어요. 하지만 책은 아주 많이 읽었습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외동딸이었는데, 그래서 또래친구들보다는 어른들과 함께 지냈거든요. 누군가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 질문이 싫었습니다. 재능은... 여전히 찾으려고 노력 중인데, 아직은 발견하기가 힘드네요. 책 한 권 만들 때마다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어릴 때 수학을 좋아했는데, 그런 점이 책에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제게 작품을 만드는 일은 빈 칸이 많은 수학 문제를 풀어내고 공식을 대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걸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 수학적인 재능 덕분에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적 재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 자신이 의식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블룸카의 일기>를 포함한 여러 그림책에서 독특한 콜라주 작업을 선보이셨는데요, 어떤 효과를 목표로 이러한 표현 기법을 사용하시는지요?


콜라주는 나름의 환영(illusion)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것이 원래 있었던 것이고, 어떤 것이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 잘 모르게 되지요. 콜라주에서 제가 좋아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저는 변화하는 여러 가지 세상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옛날 헝겊의 문양이나, 바랜 공책의 조각, 구겨진 종이, 오래된 책... 제가 좋아하는 이런 것들에 새로운 생명을 줄 수도 있는 작업이지요.

 

하지만 콜라주는 어려운 기술이기도 합니다. 콜라주로 그림을 만들다가는 뭘 하고 있었는지 다 잊어버리고 아주 수다스러운 작업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균형 잡힌 콜라주, 정말 필요한 요소들만 넣어서 만드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다른 어떤 기법으로도 만들 수 없는 효과를 얻어낼 수 있지요.


작가님의 그림책 작업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모든 것, 어쩌면 어떤 것도 아닐지도 모르지요. 제 책인 <생각연필>에서도 말한 것처럼, 영감은 정말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그리고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게 오는 것 같아요. 영감은 도로에 뚫린 구멍으로부터도, 중요한 사회적인 이상으로부터도 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해요.


최근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독일어 알파벳>(Gimpel Verlag, 근간)을 만들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독일어 알파벳 책이긴 했지만, 마르틴 루터, 바흐, 루카스 크라나흐, 니체, 칸트 등의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웠습니다. 적정의 거리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저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슬픔에서 기쁨을, 기쁨에서 슬픔을 발견할 수 있는 제 성격이나, 개인적인 패배, 굴욕 같은 감정도 영감을 줍니다. 논픽션을 시적으로 풀어내는 작업도 좋아해요.


볼로냐 라가치 상을 비롯해 수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계시죠. 한국의 김희경 작가와 함께 작업하신 <마음의 집> 의 라가치 상 수상이 한국 독자들에게 작가님을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신작 <블룸카의 일기>는 2012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그림책부문 아너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상을 받고 저도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요. 덕분에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 활동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2012년 현재까지,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기획자이자 친구인 이지원 선생을 만나고, 덕분에 책을 만들고 싶었던 제 소원이 한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일이에요.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책을 펴내게 되었고 제 나라인 폴란드에서도 활동이 활발해졌지만, 한국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첫발을 뗀 일이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제 제 생애 처음으로 폴란드 출판사에서 글과 그림을 맡아 그림책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거의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 축하주를 마셨습니다. 이제 폴란드어 작품도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블룸카의 일기>의 원저작사인, 독일 김펠 출판사와 후속작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 작고 예술적인 출판사는 저를 크게 도와주고 있고, 덕분에 처음으로 폴란드와 독일에서 공동으로 먼저 출간한 책을 한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한국은 아침저녁으로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님의 그림책을 통해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받고 있는 독자 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여러분들께 제 그림책으로 바르샤바의 고아원과 위대한 폴란드인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폴란드에서 코페르니쿠스와 쇼팽, 마리 퀴리-스크워도프스카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인물이랍니다. 폴란드 사람이긴 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아우르는 그의 철학은 한국에서도 귀히 여겨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유대인이든, 폴란드인이든,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간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니까요. 코르착 선생님도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려고 애썼던 것이고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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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 코믹스>의 출간과 나란히 진행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오성윤 감독님과 사계절출판사의 인터뷰 현장! 영화 제작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부터 애니 코믹스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까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둘러싼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가득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사계절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6년 동안의 결실이 애니메이션을 넘어 책으로 나왔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책을 본 소감은?

 

일단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흘러가듯 봐야 한다. 내가 관심있는 화면을 조정하면서 볼 수 없고,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만화라는 형식은 보는 이가 조정할 수 있다. 관심있는 부분은 멈추어 찬찬히 볼 수 있고, 장면의 호흡이 빠른 것은 나도 모르게 빠르게 넘기기도 하는 등 자기 스스로 편집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도 보는 이들이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책으로 나와 기쁘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한 컷 한 컷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6-7년 동안 배경 그림, 캐릭터 그림, 오브제, 꽃 하나하나까지 고증하고 답사해가면서, 모양새를 그대로 그려내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였다. 우리끼리는 여기 나오는 식물들만 모아서 우포늪 식물 도감도 낼 수도 있겠다고 할 정도로 애정이 깃든 그림들이었다. 바로 그 그림들이 찬찬히 볼 수 있는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읽어 보니 지난 노고, 노력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방금 말씀해 주신 부분들이 편집을 하면서도 무척 와닿았던 부분이다. 답사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이렇게까지 배경에 심혈을 기울인 의도 또한 궁금하다.

원작을 처음 읽고 영화화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화두처럼 떠오른 것이 있었다. 나름 이름을 지은 것이 '자연주의 애니메이션'이다. 바로 그런 걸 하고 싶었고 원작도 그런 생각에 입각해서 봤다. 단순히 환경이나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측면에서도 그런 철학을 담아서 자연주의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만들어 보려 애썼다.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도 처음에는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자연을 어떻게 잘 보여주느냐를 가장 먼저 고민했었고, 그 결과 3D의 딱딱한 질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3D는 가상현실을 만들어 선보이는 것에 천착되어 있다. 그런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3D로는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형식보다 그림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힘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3D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적중했다고 본다.

3D의 형식이 아니라면 자연을 얼마나 더 그림의 정서로 옮겨낼 수 있느냐에 대해 고민을 했었고, 그러면서 늘 보아왔던 미국,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차별화된 우리만의 독특한 그림으로 그것을 호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은 동양화에서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거기에 점차적으로 서양화 기법이 접목되면서 우리 나름대로의 새로운 미술 형식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새로운 시도를 관객들 또한 알게 모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것 같다.

만드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봐 주는 사람, 관객들을 생각하고 만들면 그게 어느 순간 관통되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을 넘어서서 그런 톤으로 만들면 관객들도 그것을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자운영을 비롯해 눈 속에서 발견하는 복수초 등 자연 묘사가 뛰어나다. 원래 그런 것들에 관심이 있었나.

원작에는 배경이 저수지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저수지는 조형미와 생태의 다양성 등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때 마침 우포늪 기사를 봤고, 계절마다 답사를 가서 영화를 위해 따로 연구를 했다. 식물, 동물, 그곳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조사했다. 조사를 하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봄에 갔을 때 보라색 자운영이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는 군락지를 보는데, 나도 하나 꺾어서 꽂고 싶을 만큼 너무나 예쁜거다. 꽃을 꽂는다는 상투적 의미의 '미친 컨셉'도 살짝 넣으면서(웃음) 캐릭터의 완성도가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원작의 분석도 그랬지만, 양계장 닭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하찮은 취급을 받는 동물이다. 서민 중에서도 아주 서민인, 평범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엔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자운영 군락지를 보면서 이 꽃들도 양계장의 닭들과 같은 처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예뻐하지 않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꽃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생명인 그 모습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용적으로도 마음에 들었다.

복수초는 새로운 생명을 알리는 첫 번째 꽃이다. 하지만 그때 피는 꽃이니까 가져다 둔 것이 아니라 내용과의 연관성이 좋다고 생각해서 심어둔거다. 엔딩 부분에 가서 잎싹이 새로운 발견들을 해나가고, 새로운 생명들을 찾아내니까.

다음에 준비하는 작품도 자연주의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에 있다. 일종의 연작 개념일 수도 있는데... 자연 속의 생명을 다루고 싶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달수는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창조해 낸 인물이지만 그래도 조연이라...(웃음) 달수가 재미있게 잘 나왔는데, 아쉬웠던 것은 캐릭터에 좀 더 입체감을 주지 못한 점이다. 암컷 애인이 있는 설정과 에피소드를 덧붙여서 이야기 중심으로 더 끌어들이고 싶었는데 그러진 못했다. 물론 감초 역할은 톡톡히 해낸 것 같다.

달수뿐 아니라 짹 등 나머지 조연들도 인상적이었다. 출판사 사람들은 도미솔도도 매우 좋아한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왜 어렸을 때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면 막 외우면서 가다가 헷갈려서 까먹기도 하지 않나. 달수는 거기서 착안한 이름이다. 수달, 수달, 달수.


짹의 경우는, 참새가 짹짹거리며 울기도 하지만 미국 이름 중 잭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 수출했을 경우에 대비해서 정했다. (웃음) 도미솔도는 디자인을 보고 결정한 경우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은 조화가 중요하다. 체격이 큰 애가 있으면 작은 애도 나오고, 키가 큰 아이가 있으면 키가 작은 아이도 함께 있어야 조화로운 그림이 나온다. 캐릭터 디자인을 봤더니 그 조화가 재미있게 나와서 붙인 이름이었다. 넷 중 쌍둥이가 있으니, 둘의 이름은 도로 하자. 높은 도, 낮은 도. 그러면서 음표도 넣게 된 거다.

감독님이 꼽는 명장면은?

원작에 없는 장면인데, 초록머리가 태어난 뒤 늪으로 가기 위해 숲을 통과하는 장면이다. 영화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많이 쓰이는 장치이긴 하지만, 하나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경계로 넘어가는 장면. 어떤 경계가 되는 숲을 지나갈 때 스스로가 발전하거나, 성숙 또는 변화되어가는 것을 그린 장면이다.

아시겠지만, 애니메이션은 음악도 체코에서 녹음했다. 체코의 연주자들이 코리아 판타지라고 말할 정도로 음악도 굉장히 좋았다. 나뿐 아니라 이지수 음악 감독도 음악에 많은 신경을 썼다.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음악이 장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바랐다.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 동작까지도 맞추어 달라고 요구했다. 많은 것들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장면이라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책을 보면서 독자들이 눈 여겨 봤으면 하는 부분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어떤 장면은 단 한 컷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며칠을 밤새우면서 그리기도 한다. 단 2초를 위해서. 하지만 훌러덩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편집하기가 너무 힘들다. 어떤 그림들을 편집을 하며 잘라 버려야 하는데, 가슴이 아파서 버리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한 컷 한 컷들이 정지된 화면으로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니 그것을 뜯어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복수초, 노랑어리연, 우포늪에만 있는 가시연 등 각주를 따로 달아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 꽃들도 많이 나온다. 그런 요소들도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와 함께 유심히 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오돌또기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을 하기 전과 후, 달라진 점. 경제적 변화라거나.(웃음)


경제적 변화는 없다. (웃음) 원래 오돌또기가 극장 장편 애니메이션을 위해서 만들어진 팀이다. 제주도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는데, 오랜 기간 동안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망하기 직전까지 가는데, 세월은 흐르고... 이러다간 우리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흩어지겠다 싶었다. 우리가 실패했던 원인을 가만 살펴봤더니 스토리에 있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힘이 약해서, 시나리오 단계에서 좌절되는 경험이 많았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

두 번째 실패 원인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어떤 쪽으로 유력한 매체인가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와 가족용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르로서 훌륭한 장르였는데, 그 전엔 그걸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러한 원인 분석 후 원작을 찾던 차에 읽게 된 것이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고, 어린이, 가족 영화로서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적합하다고 판단하게 된 거다.

그렇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일단은 성공하긴 했다. 성공은 했는데, 그리고 대박까지 났는데 의외로 생활면에서 바뀐 것은 없다. (웃음) 큰 바람은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20여 년 간 해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작품을 위한 자본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 종잣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세월은 다 가고, 정작 하고 싶은 작품을 못하는 악순환이 지겨워서, 이 정도 성공을 하면 다음 작품을 위한 종잣돈 정도는 생기겠지 라는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그것에 못 미쳐서 아쉽다. (웃음)

물론 중요한 것도 배웠다. 원래 화가가 꿈이었는데, 흔한 이야기로 붓을 꺾고 대중예술가로서의 꿈을 꾼 지 20여 년이 지났다. 20년이 지난 이제와서야 대중예술가가 된 거다. 내가 만든 예술로 대중과 소통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 이루어진 거다. 그게 제일 가슴 벅차고 기쁜 일이었고 그러면서 배운 점들이 무척 많다.

대중에 대한 감각은, 작품을 만들어서 관객들과 극장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관념에 불과하다. 만들어서 보여준 뒤 이 대목에서 웃는구나, 이건 진지하게 봐주는구나, 혹은 심심해하는구나 등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배울 길이 없다. 남의 영화를 통해 배우는 간접체험이 아닌 내가 직접 느낀 것들. 그것은 정말 아주 큰, 돈 이상의 성과와 소득이다. 그 배움 속에서 다음 작품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이 굉장히 선명해졌다.

더불어 영화란 무엇이구나, 라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됐다. 추상적으로 영화가 하고 싶다, 뭘 좀 안다, 가 아닌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구나 하는 것을 느낀 지금에야 비로소 영화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중예술가로서 정체성도 이제야 찾은 셈이다.

또 다른 잎싹이 된 셈이다. (웃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잎싹과 내 처지가 비슷해서 작품을 하면서도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하지만 나는 족제비한테 먹히지 않고 조금 더 날아보려고 한다. (웃음)

<26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와 앞으로 계획을 들려달라.

감독으로서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자각과 반성을 하고 있었다. 여러 영화들을 보면서, 대중 매체인 영화에는 문화적, 예술적 기능도 있지만 사회적 기능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고민을 하던 차였다. 그때 마침 광주 5.18을 소재로 한 영화 <26년>의 제작 의뢰가 들어온 거다. <26년>의 감독과 제작자가 우리밖에 할 곳이 없다며 찾아와줘서 너무 감사했다. 우리도 작품을 보며 이건 우리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 죽어도 이건 우리가 멋있게 해낼 거야, 라고 생각했고. 석 달 동안 합숙하다시피하며 만들었고, 지금은 마무리 단계다.

(※인터뷰 일시는 11월 9일이며, 영화 개봉 예정일은 11월 29일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형식의 애니메이션이었다. 대중들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형식은 제한적이다. 3D 아니면 일본 애니메이션. 하지만 흔히 보아온 그 형식들은 애니메이션이 상업화되면서 대표적 형식이 된 것일 뿐, 애니메이션에는 정말 다양한 기법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고, 그 새로운 형식이 이 영화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좋은 형식도 내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않나. 1980년 광주의 현실은, 이런 형식으로 다뤄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다 판단하고 열심히 찾아서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손발이 고생을 했다. (웃음) 하지만 관객들은 여태껏 보지 못한 독특한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될 거다.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다.

다음 작품은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생명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인권에 관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 또한 사람을 바라보는 문제이기 이전에 생명을 바라보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양계장 닭 뿐 아니라, 버려진 알, 작은 꽃도 그렇고 유기견, 유기묘에 대한 태도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때문에 기왕 가족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거라면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게 좋을 거라 판단했고, 그 이야기는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자연주의 애니메이션이라는 맥락에서 풀어가고 싶다.

유기견을 소재로 삼은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제작이 끝나고 모처럼 주말에 푹 잠을 잤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TV에서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마침 한쪽 눈이 뭉그러진 시추가 클로즈업 되었는데, 그 시추와 눈이 딱 마주쳤다. 깜짝 놀라 다시 봤더니, 사람들의 잘못으로 얼굴이 함몰된 시추였다.

많은 이야기가 그 얼굴에 담겨 있구나, 생각하면서 주변 동물로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직 시나리오 단계에 있는데, 역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힘들다. 1년 째 붙잡고 있는데, 아직 가닥도 못 잡고 있다. 누가 좀 써줬으면 좋겠는데... 황선미 선생님이라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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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세 나라의 공동 기획/출판 프로젝트,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작가 하마다 게이코가 2012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다. 전쟁부터 일상까지, 평화의 크고 작은 개념들을 작품을 빌어 이야기하고,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일본 출판을 담당하는 고단샤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평화그림책 시리즈를 같이 작업한 동료 작가이자, 이번 한국 방문에 동행한 일본 아동문학계의 거장 다시마 세이조와의 인연도 인터뷰를 통해 소개된다. 


(기획 : 사계절 출판사 / 통역 : 박종진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는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벌써 몇 년이 됐나... 2005년에 일본의 그림책 작가 네 명이 한국과 중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평화 그림책을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하는 제안을 먼저 했다. 이 시리즈의 취지라고 하면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일,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파악한 지점에서부터 평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일본이 그런 그림책을 만들자고 요청을 했을 때 한국, 중국의 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같이 만들어봅시다하고 흔쾌히 받아들여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고, 반가웠다.

 

<평화란 어떤 걸까>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을 기존에도 많이 작업해왔는지?

 

독자분들에게는 두 가지 반응이 왔다. 먼저 기존 내 작품들과 다른 이례적인 그림이다, 하는 반응. 그리고 정반대의 반응 또한 있었다. 목숨의 소중함, 탄생의 기적 같은 놀라움이랄까 그런 주제들은, 최초에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던 때부터 내 작품 속에서 변함 없이 유지되어왔다고 생각한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는 지금까지 네 작품이 출간됐다. 인상 깊었던 다른 작가의 작품이 있었나.

 

어느 것 하나를 특별하게 짚어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다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건 왜냐면 처음 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같이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내고 말하자면 다 같이 만들어온 작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만든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져서 어떤 한 권을 딱 고르기는 조금 힘들다.

 

토론을 하며 같이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토론 과정에서 작품에 참여한 작가들이, 이 책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

 

아이들에게 전쟁의 슬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 가장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나라, 한중일 세 나라에서 어떻게 연계를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역시 제일 중요한 건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우리들의 염원이었다.

 

 본인의 작품인<평화란 어떤 걸까>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가장 부각시키고 싶었던 부분은?

 

책의 말미에 남자아이가 나와서, '평화란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평화란 네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는 것', '평화란 우리 둘이 너와 네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 마지막 장면이 작품을 통틀어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평화란 어떤 걸까>는 평화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그림책이다. 초반부의 '전쟁을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마지막 결말은 방금 말씀해주신 문장 '너와 네가 친구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정의의 배치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평화란 어떤 걸까>는 스토리가 없는 그림책이기 때문에 어떤 장면을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수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 비행기를 그리면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전쟁과 직접 관련된 것을 맨 앞에 둔 것은, 그 뒤에 나올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다 라든지 배고플 때는 밥을 먹을 수 있다라든가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것이든가 이런 평온하고 일상적인 모습들이 사실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이것이 힘들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볼 수 있는 평화를 전달하고 싶었다.

 

전쟁이 없어야 하고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평화에 대해 익히 알려진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일상적인 풍경에서 길어올린 평화의 정의들은 대부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이 책에 담은 평화의 정의는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이었는지 궁금하다. <평화란 어떤 걸까>에서 평화를 풀이하는 여러 가지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도 꼽아주었으면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그런 평화의 정의들이라고 하는 것은 평소부터 쭉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그림책으로 그릴 수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예를 들면 배고파서 죽은 아이라든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거나 한다면 이것은 평화로운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학교에 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평화로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상 속의 여러 장면을 보면서 평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쭉 계속 가져왔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라고 하면, 책에서 자기가 싫은 일은 싫다고 혼자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부분. 그것을 표현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것은 일상 생활 속에서 평화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데, 목숨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계속 생각해왔다. 좋아하는 장면은 전부 다다(웃음).

 

이번에 같이 한국을 방문한 다시마 세이조 작가와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지.

 

다시마 선생님과는 굉장히 오래된 인연이다. 그림책 작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가 20대였을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다. 존경하던 작가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60년대 말 쯤에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이 큰 판넬을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다시마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평화란 어떤 걸까>가 평화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마 세이조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는 평화가 사라진 풍경을 그린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상반된다. 서로가 작업한 평화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혹시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마 선생님하고는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다시마 선생님 작품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접근 방법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래서 그 싸워서 죽어버리는 그 허무함, 분노, 슬픔, 그런 게 죽은 사람의 눈을 통해서 표현되지 않는가.

 

다시마 선생님은 내 책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인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웃음). 언제나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기운을 북돋아주셨다. 나 자신도 이 책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무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다. 여태까지 사용했던 종이들을 조각조각 내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했던 건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기법을 쓴 것이다.

 

많은 한국의 어린이 독자들이 일본에서 온 동화와 그림책의 읽으며 자라고 있다.


나 역시 그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내 작품 가운데서도 80% 정도는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지금은 한국 그림책과 동화도 일본에 많이 번역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서로 상대방의 나라의 책을 읽으면서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현재 만들어졌다고 생각을 한다.

 

일본에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출판하는 일본의 도신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도신샤는 원래부터 '가미시바이(かみしばい[紙芝居] : 그림 연극)'를 주로 출간해온 출판사다. 가미시바이는 2차 대전 때 군국주의를 부추기는 작용을 하기도 했었는데, 도신샤는 그것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까 반동으로 가미시바이를 사용했다. 평화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도구로서 가미시바이를 널리 보급하게 된 케이스다. 평화에 대한 그림책도 굉장히 많이 내고 있고, 가해자 의식이라는 것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는 회사다. 그래서 평화 그림책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의 출판사에서 꼭 내고 싶다고 얘기했었고, 지금도 총력을 다해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내고 있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바로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란 작품을 통해서였다. 일본에서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런 역사적인 사건이라든지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 눈을 감고 모른척 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림책 뿐만 아니라 위안부를 다룬 사진전이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중지를 시키거나 그만두게 하는 여론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취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2006년도에 권윤덕 선생님이 <꽃할머니>를 내겠다고 처음 의견을 냈을 때부터 이 책이 나오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평화란 어떤 걸까>에 나오는 여러 평화에 관한 정의들, 이 모든 정의를 아울러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목숨. 한 단 사람의 목숨이라도 그것이 존중되지 않으면 평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 없이 연약한 사람들의 생명. 목숨. 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로서 갖고 있는 소명이 있다면.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할 생각인가.

 

크게 얘기를 하자면, 연약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으로 생각하는 건 여자아이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핸디캡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아이에 비해서 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차별을 당하지 않아도 이미 의식적으로 '난 여자라서 못해' 그런 생각부터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아이를 특별히 차별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여자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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