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올해로 꼭 등단 30년을 맞은 송언 선생님의 신작 동화 '김 배불뚝이의 모험' 속 주인공은 실제 모델이 있다. 작가이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송언 선생님이, 1학년 담임을 맡았었을 때 만난 친구다. 음료수와 사탕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먹보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매력이 넘친다. 범상치 않은 초등학교 1학년 김 배불뚝이와 함께 한 해 동안의 이야기가 다섯 권의 동화책에 담겼다. 아이들을 제도권 교육의 답답한 틀 속에 꽁꽁 묶어두지 말고, 그들이 서로 어울려 놀면서 무한한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김 배불뚝이를 통하여, 또 작품 안팎에서 송언 작가가 일관 되게 주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어른의 역할이다.


(기획 : 웅진주니어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수염이 너무 멋집니다. 이 수염 때문에 생긴 별명이 있으신가요?

 

아, 애들이 지어준 게 있어요. 빗자루 선생님이라고, 이 수염이 바닥을 쓰는 빗자루 같다고요. 아이들 비유법이 참 신기하죠? 빗자루라는 비유가 재미있어서 이번 작품에서부터 아예 빗자루 선생님으로 못을 박았어.

 

등단하신 지 30년이나 되셨지만 매번 펴내시는 작품이 젊고 활기찹니다. 신작 <김 배불뚝이의 모험>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계기를 먼저 여쭤볼게요.

 

올해로 꼭 30년이 되죠. 개인적으로는 아, 내가 등단한지 30년이나 됐으니까 생각은 했지만 거기에 걸맞는 대단한 작품을 써야 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 이 책의 실제 모델인 김 배불뚝이가 지금 4학년이거든요. 김 배불뚝이가 1학년이었을 때 그 1년 동안을 메모를 해뒀다가 작품으로 바꾸는 작업이 또 한 1년 걸리고, 그림 그리는 데 또 1년이 걸리고, 그리고 이러다 보니까 시간이 가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또는 동화작가로 활동하면서 김 배불뚝이만한 캐릭터를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았어요. 김 배불뚝이가 보여준 그 모험, 그 모험의 세계는 이 시대 아이들이 잃어버린 세계라는 거죠.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시대 아이들이 잃어버린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어른들이 차단시켜 놓은 거죠. 아이들이 그 세계로 갈 수 없도록. 더 자연스럽고 멋진 모험의 세계로 가는 길을 차단시키고 교과서 속으로 집어넣는 어떤 어른들의 행태. 배불뚝이를 통해 너희들이 진짜 원하는 세계가 이런 세계고, 어른들이나 학교가 너희들한테 해주어야 하는 게 이런 게 아닌가 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의도가 바탕이 됐죠.


김 배불뚝이도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번 책을 읽어봤을텐데, 읽고 나서 많이 좋아했겠지요?

 

걔는 뭐 항상 저만 보면 "제 책 언제 나와요?"(웃음) 그랬는데요. 책 자체보다 지난 번에 소년조선일보에서 취재를 해서 신문에 사진이 실렸거든요. 책보다 그 사진 실리는 게 그게 좋아서 아주 그냥(웃음). 얘가 신문에 났다는 게 아이들한테는 더 큰 이슈로 다가왔던 것 같애. 책 속의 주인공은 자신인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제가 니 얘기를 쓸 거야라고 일러줬었거든요. 오늘도 화장실에서 김 배불뚝이를 만나서 재미있게 읽었냐 물어봤더니, 무뚝뚝하게 "당연하죠"(웃음) 하더라고요. 근데 아이들은 그런면에서는 의외로 섬세하지가 않고, 무뚝뚝해. 자기 이야기에 대해서 좀 근사하게 답변을 해줬더라면 나도 전달하기 좋을텐데 말이에요. 당장은 뭐 어떻게 읽었든간에 오래오래 그 아이의 인생과 같이 갈 책이겠지요.

 

주인공 김 배불뚝이의 실제 모델이 있는 캐릭터다보니까 그 아이의 모습도 반영이 되었겠지만, 이 캐릭터에서 작가님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겠지요?

 

당연하죠. 왜냐하면 문학이라는 게 경험만 가지고 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니까. 제 작품 같은 경우에는 주로 제자들한테서 소재를 가져오니까 경험이 한 50이라면 작가적 상상력으로 문학적 장치를 하는 것이 또 50, 50대 50정도로 봐야지요. 예를 들자면은 <김 배불뚝이의 모험> 2권 '선생님 팔기 대작전' 같은 경우에는 그 1학년 아이들이 설마 선생님을 팔겠다고 휠체어에 싣고 튀어나갔겠느냐 이말이지요. 그렇지만 읽을 때는 진짜 같거든. 이런 부분이 작가가 상상력으로 채우는 부분이죠. 그리고 배불뚝이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험의 세계는 작가가 채워놓은 거죠. 물론 단초는 제공을 해, 배불뚝이 얘가 창의성이라든가 상상력이 굉장이 뛰어나고 순발력이 있어요. 배불뚝이인데도(웃음). 그래가지고 걔가 자꾸 나한테 자극을 줘. 모험이 가능할 법한 자극을 주는 거죠.

 

빗자루 선생님은 아이들을 무조건 타이르고 감싸주기만 하는 선생님은 아닌데요. 학교에 안 나오겠다고 떼쓰는 학생에게는 그럼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아이들은 굉장히 당황할텐데요.

 

그러니까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뭐냐하면 교사의 눈으로 아이들을 봤을 때는 교사와 피교육자인 아이와의 관계만 있어요.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제도권 교사가 못하게끔 탁 억눌러 놓죠. 그런데 나는 작가의 눈을 또 하나 갖고 있어야 하니까, 작가로서요. 그러니까 또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벼려두는 게 아니라 3, 4월 쯤에는 탐색을 먼저 하는 거예요. 잘만 하면 내 동화 속 주인공이 될 만한 기질이 있는 녀석들이 누구인가. 예비 후보를 찍어 놓고 그런 아이들이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내가 더 부추기지. 막는 것 같으면서도 부추기는 거죠. 어디까지 가나, 얘네들이 나한테 어디까지 원하는가. 동심이 요구하는 극대치는 어디까지일까. 그걸 알아야 하니까요.

 

한편에서는 학교 생활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학교라는 이 좁고 답답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상상의 세계, 모험의 세계로 갈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자극을 주는 거지요, 아이한테. 아이가 그런 기미를 보이면, 예를 들어서 물어본 것처럼 '저 전학 갈 거예요' 그러면 아는 거지, '그래, 가!' 그랬을 때 얘가 어떻게 나오나. 그래서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계속 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녀석이 재치있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잘 가면 그날은 내 기록에 메모를 해두고 시원치 않으면 기록에도 없는 거야. 에이, 오늘은 별로다(웃음). 뭔가 문학은 끊임없이 새롭고 역동적인 흐름을 가져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니까.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똑같으면 그걸 가지고 어떻게 문학을 할 수 있느냔 말이죠.

 

탐색 기간에 선발된 아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행운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배불뚝이가 대단한 먹보라 동화 속에도 아이들 좋아하는 군것질거리가 많이 나오는데요. 요즘 초등학교에서 특별히 유행하는 간식거리가 있다면요?

 

초코렛, 마이쮸, 사탕, 슬러시도 먹고, 문방구에서 뽑기도 해 먹고, 떡볶이랑 아이스크림은 기본에, 아이들 군것질거리가 다양해요. 그런데 이제 배불뚝이가 재미있는 건 이런 거죠. 단순한 먹보가 아니라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먹보라는 거죠. 이를테면 나한테 와가지고 "선생님 수수께끼 놀이 해요." 그래서 나도 처음엔 수수께끼를 하자는 줄 알았지. '비로 시작해서 '백'으로 끝나요." "장난하냐?" "네 글자인데 두 번째 글자는 '타'예요." "아, 비타오백."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배불뚝이가 내 책상에 놓여 있는 비타오백을 아주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 봐. 쳐다보면서 "선생님, 저 비타오백 좀 주세요." 그렇게 한다는 거지. 다른 먹보 같았으면 떼쓰듯이 선생님 사탕 주세요, 초코렛 주세요 이럴 거 아냐. 그럼 누가 줘(웃음). 그런데 배불뚝이는 이런 수수께끼에서만 보더라도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으니까, 그래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죠.

 

배불뚝이처럼 맘대로 하고 싶어도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미움을 받을까 봐 겁나서 하고 싶은 걸 꾹꾹 참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그런데 이 부분을 알아야 해요. 얘네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란 말이야. 1학년 아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동심이 있어요. 즉 제도권에 물들지 않은 동심이에요. 그런데 얘네들이 1년만 지나면요, 열이면 아홉 아니 백이면 아흔아홉이 제도권화된 동심을 보여요.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1년 동안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을 했다고 해야 할까, 순응을 해가지고 자기 본래의 동심을 잃어버린다니까. 1년만에. 그래서 1학년 아이가 보여줄 수 있는,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배불뚝이처럼 유치원에서 갓 학교라는 제도권에 들어와가지고 미처 학교에 적응하거나 순응하지 않은 순수한 동심, 그야말로 자연산 그대로의 동심을 보여줄 수 있는 학년이 1학년이에요. 그리고 타고난 동심을 즉각 발휘할 수 있어야 해요. 선생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이 요구하는 판단 기준에 적응하거나 물들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순수한 동심에서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순수한 동심을 가진 아이들이 문제아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난 그게 오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배불뚝이를 끊임없이 1년 동안 실험했지만 그 실험의 결과 난 배불뚝이처럼 잘 자기만의 색깔과 상상과 동심을 발휘하면서 헤쳐나가는 아이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문제아다, 부적응이다라는 관점에서 보는 거는 난 제도권화된 관점이라고 봐요. 주의해야 할 점인데, 선생님들의 몸에 배어 있어. 동심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왔으니까 이제 질서를 지키라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그야말로 훈육하고 교육시키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는 문학이 탄생할 수 없어요, 그런 토양에서는. 그 관점 밖에서 아이들 본래의 모습을 자꾸 자극해서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동심의 본질이 뭔가를 발견해내야겠죠. 그런데 이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배불뚝이만큼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아이는 많지 않아요.

 

배불뚝이 다음으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이 싸움대장 동주인데요. 나중에는 결국 동주가 전학을 가게 되잖아요.

 

그쯤에서는 전학을 보내야죠. 배불뚝이가 주인공이니까(웃음). 전학을 안 보내면 이게 갑자기 이야기 중심이 동주한테 너무 가버리면 혼란이 오잖아요. 그러니까 동주의 역할은 거기까지였어요. 거기까지만 딱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가줘야 돼(웃음). 만약에 동주가 주인공이거나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동주가 전학을 가지 않을 수도 있겠죠. 결국 동주가 끝까지 같이 있으면서 동주의 동심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도 정말 좋은 이야기 소재도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동주의 역할은 거기까지여야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더 갔을 때는 배불뚝이한테 타격을 주니까.


배불뚝이가 마치 보조 교사라도 된 것처럼 '새끼 선생님' 노릇을 하고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 되니까, 배불뚝이를 따라하려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장면이 또 기억에 남아요. 책 속의 같은 반 아이들도 그랬지만, 실제로 교실에서 주목 받길 바라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표현이 서툴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선생님께서 어떻게 채워주시나요?

 

중요한 건 '새끼 선생님'이라는 상상력을 최초로 발견한 게 배불뚝이라고. 모든 모험의 출발점, 상상력의 출발점은 배불뚝이인데 다른 아이들이 거기에 다 들어와.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굉장한 리더십인 건데요. 파랑머리가 "선생님, 저도 배불뚝이처럼 새끼 선생님 시켜주세요" 하면, "그건 배불뚝이가 만든 거니까, 너는 니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라" 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도 간절하면 한번씩 시켜주죠. 그런데 그걸 다 일일이 문학 속에 담아낼 수는 없지.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다 골고루 시켜줘요. 얘도 한번 시켜주고, 쟤도 한번 시켜주고 하지만 문학의 흐름은 일관되게 배불뚝이를 중심으로 가야 하니까,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한번 또 새끼 선생님 하게 되면 좋아가지고 근데 새끼 선생님이란 제도는 없단 말이야. 그런데 배불뚝이가 그걸 개발하고, 그게 재미있다는 걸, 새끼 선생님이 있음으로 해서 훨씬 수업이 재미있다는 걸 아이들한테 증명했고, 아이들이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데까지 확산시켰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배불뚝이의 상상력이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혼자 막 그냥 장난치다 끝나는 게 아니죠.

 













1학년 담임 선생님을 맡는 고충을 작가의 말에서 토로하기도 하셨는데, 아직 나이가 어린 1학년 학생들의 담임 선생님은 집 바깥의 보호자로서 책임감이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뭐라고 썼더라, 1학년 담임을 한번 잘못하면 삼년은 늙는다고 썼었던가요? 실제로 제가 1학년 담임을 처음 했을 때 실감으로 정확하게 3년이 늙더라고요. 아, 그말이 참 와닿더라고. 경험이 많은 여선생님들은, 아이도 키워보고 아이 다루는 솜씨라고 할까 기술이 뛰어나세요. 그런데 나이 든 남자가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할 때는, 정말 얘네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니까. 배불뚝이는 제가 두 번째로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만난 제자였는데요. 그래도 한번 경험이 있다고 여유는 조금 생겼지만, 배불뚝이를 비롯해서 이동주, 나대현, 구봉준... 버글버글하잖아요. 내가 머리가 왜 허얘졌겠어(웃음). 정말 힘들죠. 그런데 힘들지만 이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동심이 원하는 게 무엇이라는 걸 사회적으로 발언을 하려면 교사로서 발언하는 것보다 작가로서 발언하는 게 더 확장된 의미를 띨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두 배로 더 힘든 거예요. 다른 선생님은 그냥 애들만 잘 보면 돼, 그런데 나는 잘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해라, 더 해라 할 때가 더 많으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두세배로 힘들죠. 작품 하나 건지려고, 그 고생을 한다니까(웃음).

 

그런데 두세배로 힘들지만 그런 배불뚝이가 만났을 때 뭔가 이야깃거리를 찾았을 때는 보상 받는 거예요. 힘든 것 이상으로. 그래서 견디는 거예요. 1년에 3년치를 늙든, 5년치를 늙든 이렇게 보상 받는 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1년 내내 그랬는데 건질 것도 없었다, 그러면 아주 팍 늙는 거예요(웃음).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제목에도 들어간 '모험'이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감동 있게 읽은 책이 <톰 소녀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의 작품인데 100여 년 전에 이미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은 그 거대한 미시시피 강에 뗏목을 띄워 놓고 모험을 떠난다고. 그게 가능했어요, 그 시절에는. 그게 어색하지가 않았다고. 그런데 지금 한강에다 뗏목을 띄워 가지고 얘네들을 서해 바다까지 모험을 시킨다고 하면은 누가 공감을 하겠어요. 너무나 많은 세상의 변화가 왔다고. 그야말로 이 시대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다니는 아이들, 모험이란 단어조차도 잊어버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 상상력, 창의성을 키워줄 수 있는 통로가 뭐냐, 그것을 저는 배불뚝이의 모험을 통해 보여준 거죠.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학교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잖아요. 순간순간 재치를 발휘하면서 답답한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상상의 모험, 상상력을 통해서 건너갈 수 있는 모험의 세계가 있다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거죠. 김 배불뚝이가. 이 시대의 현실의 아이들이 그나마 모험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통로가 이런 지점이 아닐까. 미시시피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동화작가로 활동하는 선생님,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요? 글쓰기가 교사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하고요.

 

우리 학교에서 내가 인기 1순위야(웃음). 아이들이요, 어른들이 이제 한번쯤 생각해보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든가 영화의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바람 이런 것들과 똑같이, 아이들도 한번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게 소원이에요. 그걸 쓰는 선생님이 담임이니까, "선생님, 제 얘기는 안 쓰실 거예요, 안 될까요?" 이렇게 묻기도 하죠(웃음). 나대현은 며칠 전에 저한테 와서, "선생님! 나대현의 모험도 하나 쓰세요." (웃음) 그랬죠.

 

이런 건 있어요. 작가 생활도 해야 되고 교직 생활도 해야 되니까 시간 적으로 늘 쫓기죠. 방학이 아니면 집중적으로 동화를 쓸 시간도 없고. 애들하고 공부도 해야지, 강연도 다녀야지, 맨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정말 시간이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희망을 갖게 되죠.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의 10년의 화두가 '동심이란 무엇인가'였어요. 아이들다운 마음, 아이같은 마음이 대체 뭐냐. 너도나도 말은 많이 하는데 나는 내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아이들의 삶을 아주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탐색하고 기록하고 정리해놓은 게 있기 때문에요.

 

나는 이제 동심에 대해서 알겠다라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그런데 동화를 쓰고 있으면서도 동심이란 게 대체 뭘까를 아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동심을 동심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아이들과의 학교 생활이 도움이 됐으니까, 힘들어도 받아들이는 거죠. 이제는 학교 밖의 동심, 도시 밖의 동심을 사냥하러 떠나볼까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동심에 대한 탐색을 좀 더 넓혀가고 새로운 동심 이야기도 좀 쓰고 싶고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어린이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이제 작가로서 발걸음을 내딛은 분들이라면 공통된 소망 중 하나가 오래오래 동화를 쓰는 것일텐데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동심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탐색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후배 작가분들께 동심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면요?

 

제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작가 학교 수업을 십년 동안 했었는데요, 작년까지. 이 작가 학교에서 지망생 분들께 했던 이야기가 몇 가지 있어요. 우선 서둘러 결혼부터 해라. 아이를 낳아서 키워 봐라. 그러면 동심이 뭔지, 동심에 대한 밀착도가 커질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끊임없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키워라. 머리로 아이들을 이해하는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생활에서 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를 넓혀야 아이들이 뭘 원하고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 두가지를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다시 배불뚝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극 초반부 김배불뚝이가 멧돼지처럼 꼼짝도 안하고 버티고 있어서 빗자루 선생님이 고생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멧돼지란 표현은 참 재밌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고집불통에 물러설 줄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꽤 힘드실 것 같거든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이번에는 후배 작가가 아닌 후배 선생님들을 위한 팁으로 여쭤봅니다.

 

나는 말 안 듣고 버티는 이런 아이들을 기술적으로 지도하는 방법을 안다기 보다 그 순간을 오히려 즐기는 쪽이에요. 선생님들한테는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애들이랑 그냥 노는 거니까.

 

작품 속에서 빗자루 선생님이 배불뚝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주시는 말씀이, 너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려준 고마운 학생이다'였는데요.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꼭 주어야 하는 것, 현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의 동심의 특성 중의 하나가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그때 행복감을 느껴. 아이들이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통로가 뭐냐면 대게가 놀이, 놀이나 상상. 그러니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면서 공부를 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이나 학교가 아이들의 행복은 뒷전이고 공부를 맨 앞에다 놓으니까, 말로는 21세기가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승부를 거는 시대라고 말로만 그래놓고, 개똥이나 뭐 상상력이나 창의성은 길러주지도 않으면서 머릿 속에다 집어 넣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잖아요, 우리 현실이. 중요한 건 아이들 상상의 세계, 창의성의 세계에 어른들이 동조하는 거예요. 그게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거라고. 그러니까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여지를 좀 줘야 하는데, 학교나 어른들이 가장 안 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아이들 서넛이 모여서 열심히 놀면서 막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체험을 해, 교과서에서 체험할 수 없는 걸. 멋진 체험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시계를 보면서 '학원 갈 시간이다, 고만 놀아!' 이런다고. 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런 현실에서 내 동화를 읽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아이들한테 컴퓨터 게임 같은 놀이 말고, 서로 어울려 놀면서 정말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울 수 있는 계기와 여유를 아이들한테 주면 아이들이 얼마든지 스스로 잘 노는데, 그러면서도 교과서 공부도 하고요. 양날개처럼 스스로 즐기는 상상력의 계도 키워주고 우리 사회가 이뤄놓은 사회적인 틀이 있잖아요, 아이들한테 원하는 그것도 키워주고. 그 양쪽이 같이 가야 하는데, 한쪽에 너무 쏠려 있다고. 우리 어른들도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아이들을 못 집어넣어서 안달을 하는지. 이 아이들한테 숨통도 틔워 주면서 공부도 하라고 여건을 마련해줘야죠. 그런 이야기가 책 마지막에 니가 정말 학교나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뭘 해주어야 하는지 다 보여줬다, 이런 문장으로 표현된 것이죠.

 

아이들에게 여유를 마련해주는 것을 책 읽기의 측면에서 말씀해주신다면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직접 선생님이 읽어주면 애들이 알아서 도서관으로 가요. 아이들은 제가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그 감동을 살려서 읽어줬을 때 자기가 읽는 것보다 몇 배 더 즐거워해요. 책 읽어주기, 책 읽고 독후감 쓰라고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선생님이랑 부모가 정말 좋은 동화책을 선별해서 읽어주거나 같이 읽는 것, 난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봐요. 그럼 애들이 다양하게 아하, 이야기의 세계가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니까. 책 속의 세계가 이렇게 풍요롭고 모험이 넘치고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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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동화집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의 바탕에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늘 불안했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 있다. 자신과 닮은 등장인물들, 서로 다른 아이들 그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쉽사리 가치판단을 두지도 않는다. 최나미 작가는 어린 아이들의 세계,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껴안아 보호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과 섞이고 아프더라도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사실을 냉정하리만치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준다. (기획 : 한겨레아이들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또 한 권의 책을 독자분들께 선보이는 소감이 어떠세요.


늘 걱정이 되는 게, 이 이야기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하는 거예요. 벌써 열 번째로 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요. 어쩌면 이 글들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독자가 예전보다 많아졌을까, 적어졌을까 이런 생각까지 더 들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단편집,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작품들이기 때문에 컨셉 잡는 것도 재밌게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항상 또 책이라는 거는 요때까지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출간하기 직전까지. 그 다음부터는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쓰신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이란 작품은 얼마 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요. 서문 중에서 '책은 시간을 담는 그릇'이란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이번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또한 그릇으로 비유해주신다면.


어떤 때는 원고가, 이야기가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근데 그런 게 작가의 눈이란 게 굉장히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특별하게 그걸 찾아봐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가끔가다 어느 순간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건 독자분들이 좋아할 지는 모르겠는 거예요. 그렇지만 안 쓰면 안 될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 때가 있는데, 그 지점 지점들이 이번 책에는 담겼던 것 같아요. 울컥했다든가 화가났었다든가 즐거워서 이 얘길 한번 해야겠다든가 이런 것들이 다 있는 거고요. 제일 처음에 썼던 작품은 다시 고쳐서 쓰기는 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죠. 그런 작품을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니까, 내 생각이 예전보다 얼마만큼 더 나갔고, 안 나갔고 하는 것들이 확연하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좀 부끄러운 부분들도 있었고요.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너무나도 풋풋해서 남한테 보여주기가 민망하다... 그런 작품들도 있었어요.


표제작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의 결말을 보고 놀랐거든요. 반성과 이해가 없는 결말. 이야기 자체가 사실 송현이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규미한테도 마찬가지고요. 갈등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의 편에 분명하게 손을 들어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해와서 그런지, 결말에 가치 판단을 두지 않은 이유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걱정쟁이 열세살> 같은 작품은 제가 저랑 가장 비슷하고, 닮았다고 생각을 하는 작품이거든요. 근데 아마 이번 작품집에서도 다섯 편 중에 가장 닮았던 작품은 '천사를 미워해도 될까요'일 것 같아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도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나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한테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상황을 보면 늘 민폐는 이 친구가 저에게 끼치고 있고, 죄책감은 제가 가지고 있고, 그런 상황들이 주변에 많았는데요. 어렸을 때는 이미 그게 착하다, 나쁘다로 늘 구분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저는 아무리 뭔가 잘하려고 해도 쟤보다 늘 안 착한 애고, 들 착한 애인 거예요. 왜 그때는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될지 안 될지에 대한 걸 늘 고민했어요. 내가 안 착해서 벌을 받는 거구나, 안 착해서 이런 일이 오는 거구나라는 걸 굉장히 많이 생각을 하면서 컸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게 아이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훨씬 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와 닿는 걸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착하고 안 착하고로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그걸 그 아이대로 그냥 봐주는 것, 이건 규미기 때문에, 이건 송현이기 때문에 인정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너무 착해서 도리어 민폐를 끼치는 송현이 같은 친구 말고, 또 어렸을 때 싫어했던 얄미웠던 친구들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되게 어중간한 성격인 것 같은데 제 스스로 생각할 때, 특히 저보다 더 세고 강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나는 항상 그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럼 그때 저는 이제 나중에 쟤네들은 후회하겠지, 나중에 반성하겠지, 뉘우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세상이라는 건 그런 게 또 아니잖아요. 어떤 친구가 어느 순간 나한테 굉장히 나쁘게 한 게 있는데, 또 뒤돌아보면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반대로 그애한테 잘못을 한, 이런 관계들이 같이 어울려 있어서, 세상 자체는 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입체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인물 중에 제일 끌렸던 인물이 '리모컨'의 선화였거든요. 제가 되돌아봐도 어린 시절 주변에 비슷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고, 사실은 슬기도 선화를 좋아하는 건데 표현이 서투른 거잖아요. 선화도 마찬가지로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런 거구요.


관계 상에서 일단 권력이 형성된 건데, 저는 그 권력이 일단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뭐냐면 제가 가끔 동화를 쓸 때 처음에는 학교 같은 데 가서 아이들끼리 노는 걸 잘 구경하고 그래요. 근데 그러면 옆에 같이 있으면 애들이 한 다섯여섯명만 모여도 곧바로 서열이 생기는 거예요. 말투만 들어도 이들의 서열 관계라는 것을 알겠고, 거기서 뭔가 비약이 돼서 왕따 문제까지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 성격 자체만 가지고 나눌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근데 그러면서 거기에서 약간 과신하게 되는 관계가 '얘는 내 밑에 있고...' 라던가 이런 것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 버리면, 슬기와 선화 같은 상황이 되는 거고, 알고 보니 상황 자체는 이렇게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이죠.


슬기가 자기의 못된 성격, 치부 같은 것을 드러내게 된 원인이 선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거든요. 말씀하셨듯이 아이들 다섯명만 모이면 서열 관계가 형성된다고 하셨던 것처럼, 저도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 뜨끔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그런 아이들의 내면을 보시는지 궁금해요. 동화의 인물들이 너무나 실제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에 수록된 다섯 편 중에 한 세 편 정도는 어렸을 적 늘 불안했던 제가 바탕에 있어요. 관계에서 뭔가 잘 풀어내지 못하고 정말 잘하려고 하는데 뭔가 자꾸 어긋나는 게... 엄마 아빠가 주는 스트레스보다 친구들하고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어요.

 

제가 잠깐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었거든요. '리모콘'의 선화를 아마 조금 생생하게 느끼셨다고 하면, 그 아이의 실제 모델이 있었거든요. 그 친구를 제가 되게 좋아했었어요. 좋아하면서 그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들 관계들을 바로 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어른의 고집이었던 거예요. 사실은 절대 관여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 문제는 그 아이들 사이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있는 거고, 그 방식에 되게 충격을 받기도 했고요. 실제 방식이 제가 쓴 동화랑 꼭 같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아, 이게 어른이 얘기하는 게 다 맞다고 볼 수는 없는 거구나, 애들끼리 해결하는 과정이 있는 거고, 이들이 겪어야 하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방법을 잘 몰라서, 관계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가 종종 있잖아요. 관계를 마음 먹은대로 이끌어나가기는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인데, 아이들에게는 오죽할까 싶기도 하고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요, 저는 아이들이 다들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요즘에 대안학교도 많고 굉장히 특별하게 키워지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저희 때는 그런 것 없이 굉장히 평범한, 심지어 과외도 없었던 그런 시기를 보냈는데, 어찌 되었건 각자가 통과하는 그 시기가 힘들 때도 있고,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들이 있는 것이고. 지나보면 그 시간들이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되고요.


제가 아이들한테도 잘 하는 말이 '아이들은 세상이 키운다'는 말이에요. 서로 다른 아이들이지만 학교에서 만큼은 그곳에서 같이 있는 동안 만큼은 여러 과정을 다 겪으면서 경험을 하는 게 건강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하거든요. 강연 갔은 데 가서 어린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너희들은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체로 소중하다고 꼭 말해요. 이 시간을 정말로 건강하게 잘 넘겼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거든요. 저는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어른들이나 불가항력에 지지 말아라, 이런 세상에 지지 말고 가야 한다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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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소중하다는 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그림책 <우리는 학교에 가요>는 케냐, 캄보디아, 콜롬비아, 네팔 네 나라 아이들의 낯설고도 흥미로운 등굣길 풍경을 통해 우리에게 꿈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환기시켜준다. 서울교육박물관에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인 황동진 작가가, 독특한 콜라주 작업에 작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할 것 없이 매일 반복되는 학교 가는 길, 그러나 이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 줄지 그려본다면, 학교에 가는 일상은 이전과 다르게 다가올지 모른다. 오랜 시간의 공들인 결실이 드러나는 구성의 탁월함, 그림 하나하나에 깃든 아이들을 위한 마음, 그리고 호소력 있는 마지막 문장까지, 황동진 작가의 첫 책 <우리는 학교에 가요>의 출간은 작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의 기분 좋은 출발로 보인다.

 

(인터뷰 장소 : 서울교육박물관 / 사진.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4-20)

 

 

학예연구사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학예연구사란 직명이 한자어다보니까 잘 모르시는 분도 많은데, 보통 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라고 하죠. 박물관에서는 학예연구사라고 하면,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유물들을 과학적으로 보존 처리도 하고, 그 다음에 기록도 하고, 그걸 가지고 전시나 교육 자료로 활용하면서 디스플레이까지 마무리하는 일을 합니다. 큰 박물관 같은 경우에 부서별로 담당 업무가 있고, 작은 박물관에서는 한사람이 이 모든 일을 다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학예연구사란 박물관을 움직이는 가장 중추적인 핵심 직원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독도서관 안에 이렇게 서울교육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지는 드나들면서도 전혀 몰랐었거든요. 홈페이지 소개를 보니 개관 년도가 1995년이더라구요. 지금 재직하고 계시는 서울교육박물관에 대해 소개 좀 부탁 드릴게요.

 

우리 서울교육박물관은 지난 1995년에 개관을 했어요. 주요 전시하고 있는 목적이나 방향은,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많은 분들께 제대로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고요. 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교육이 오래된 전통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나 동기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연구하고, 그 후에 전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운영 주체는 서울시교육청이고, 정독도서관 부설 기관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현재는 한국 교육사를 바탕으로 끌고 가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고요. 우리 부모님 세대나 베이붐세대들이 추억이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옛날 교복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전시하는 쪽으로 많이 컨셉을 바꾼 상태이기도 하구요.

 

 

황동진 작가님께서는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려서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준비를 하진 않았구요. 애초에는 제가 미술을 전공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살면서 꿈이란 게 조금씩 바뀌어나가게 되잖아요? 이제 나이를 한살 한살 먹고 세월이 지나면서 꿈이 바뀌게 되는 거니까. 그전에는 다른 일을 하다가 대학교 때쯤 됐을 때 학예연구사란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었던 거죠. 너무 힘들고 제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래서 이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시작하게 됐구요. 이제 이곳에서는 근무한지가 꽤 됐죠.

 

그럼 지금 하시는 일에는 만족을 하시고요?

 

만족하죠. 정말 만족하는데 이제 또 그림책이라는 다른 일을 벌이게 되니까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보니 직업하고 연관이 있었네요. 첫 번째 책의 소재를 학교 가는 길로 잡으신 게요. 학예연구사로 일하시는 바쁜 와중에 그림책 시작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미술 전공을 하셨다는 얘기도 앞에서 잠깐 들려주셨는데요.

 

욕심이 많아서 그렇죠(웃음). 그림책도 사실 대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됐어요. 20년도 넘은 얘기죠. 한참 된 얘긴데, 처음엔 단순히 그림책 작가를 일러스트레이터로만 생각을 했어요. 그 어떤 구성이나 서사 같은 건 아주 쉽게 본 거죠. 너무 몰랐던 시절이라... 저는 어렸을 때 코끼리나 개구리, 그런 단순한 그림과 짧은 글이 들어간 책을 보고 자란 세대인데요. 대학교 때도 그림책의 서사에 대해 분석해보는 게 아니라 그냥 쑥쑥 넘겨 보는 거죠. 좀 쉬워보인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이거 해서 밥 먹겠나 싶어가지고 일단은 접었다가, 학예연구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니까 옛날에 가지고 있었던 꿈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3년 전에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 그림책을 잘 알려주는, 잘 배울 수 있는 아동문화컨텐츠 학과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이제 거기 입학을 해서 2년 반 동안 공부를 하면서 <우리는 학교에 가요>를 준비하게 된 거죠.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림책의 서사나 플롯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사실 이 작품 나올 때도 그림은 제일 뒤로 늦춰졌던 부분이에요. 구조를 탄탄하게 하는 데 한 7, 8개월 정도 투자를 했고요. 그 다음에 그림은 한 5개월 정도 그리게 됐고요.

 

역시나 처음부터 구성에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이셨다는 게 이해가 가네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나중에 하나로 물리는 구성이 쉽게 나온 것이 아니었네요. 구성도 그렇지만 문장에서도 재미있는 리듬이 느껴져서, 이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시네요(웃음). 저 혼자만 생각했는데, 알아주셨으면 했는데.

 

그림 페이지는 페이지 전체에 그림이 꽉 찬 것하고, 프레임이 들어간 그림으로 구분이 되는데요.

 

그렇죠. 처음에 제가 편집한 그림이 따로 있어요. 따로 있는데, 책으로 나온 건 출판이 진행되면서 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이 된 것이긴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프레임을 갖고 있는 그림과 아닌 그림, 그것도 전체적으로 규칙이 있잖아요? 레이아웃을 잡으면서 한 건데, 그림 속에서 어떤 진행이 이루어지는 것과, 제가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풀로 하고요, 다 애착은 가지만 그래도 어떤 리듬을 주기 위해서 조금 줄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부분은 그렇게 하얀색으로 테두리를 줬습니다.

 

다른 페이지랑 앵글이 달라지는 페이지를 보면서는 이 자유로운 시선 전환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림책은 보는 사람의 관점이나 보는 사람을 존중하면서 만드는 거지, 작가의 기분에 그려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정서적인 상황을 극대화할 때는 정면성을 유지하고 싶어서 이런 앵글을 유도하는 건데요. 그 정면성이라는 게 어떤 피사체건 배경이 됐든지 간에 보는 사람의 눈이 정 가운데 위치하게끔 해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조감도 형식으로 볼 때도 정수리가 보이게 그리고요, 그 다음에 서 있는 방향을 볼 때는 배꼽 정도의 위치를 보게끔 정면성을 유지하는 것, 그럴 때 그 캐릭터가 갖고 있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작업했습니다.

 

인물이나 사물, 풍경 경계선에 들어가는 테두리는 이 그림들을 잘라서 붙인 자국인 거지요?

 

콜라주 작업을 한 이유는, 그림이 약하니까 비주얼로 좀 어떤 특이한 느낌을 주려고 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도 있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제가 그림을 엄청 잘 그린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자르다 보니까 손가락이 거의 굳을 정도였는데, 한번에 되는 게 아니니까 실패하면 또 그리고 자르고 해야 해서...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인 이유는 그림책이라는 매체는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 기반을 갖고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인데요. 콜라주 작업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텍스트보다는 그림을 먼저 보잖아요. 보면서 제가 오려 놓은 라인을 따라 눈이 움직여요. 모니터링해보고 저도 느낀 건데요. 그러면서 그냥 단순히 잘 그린 그림보다 아이들이 정서적인 활동이 잘 일어나고요. 한번 볼 것도 두 번 보고 그런 면이 있죠. 원화 전시를 했었던 저 프린트물 같은 경우에는 종이책 보다는 훨씬 잘 표현이 되더라구요. 스캔을 받을 수 없는 작업물이라 하나하나 촬영으로 하느라고 편집팀에서 굉장히 힘드셨죠.

 

 

가위질하기 제일 힘들었던 그림, 실패를 많이 해서 재작업이 많이 들어간 장면도 있겠어요.

 

있죠. 특히, 네팔 이야기 부분인데요. 네팔에서 아이들이 힘들게 언덕을 오르는 장면. 사실 굉장히 크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지면에서는 디자인이나 규칙 때문에 많이 줄어들었어요. 많이. 실제로는 책에 인쇄된 그림의 두 배 정도 크기가 되죠. 이 장면에 아주 작은 사람까지도 다 오려붙이다 보니까 그많이 힘들었죠. 잡는 손은 큰데 그림은 작으니까. 사실 이 아이들 크기는 쌀알보다도 아요. 아이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어, 아저씨 이거 어떻게 잘랐어요?' 하고 알아봐서 너무 고맙고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작업하신 게 아닐까 단순하게 짐작을 해버렸었네요. 이 소재, 학교 가는 길이 그림책에 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이 등굣길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만드셨다는 게 참 흥미롭고요. 저도 출근길에, 저는 회사에 가니까 다른 사람들의 등굣길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매일 같이 만나는 한 부자가 있어요. 아빠가 아들 유치원 등굣길 배웅을 해주는 모습을 매일 똑같은 시간에 봐요. 정류장에서 유치원 버스가 올 때까지 아빠가 같이 기다려주는 건데요. 매일 보는데도 질리지 않고 두 사람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더라구요. 작가님이 등굣길에 대해서 이렇게 각별하게 관심을 가지신 까닭도 어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왔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네, 맞아요. 작품을 해야 하니까 아이디어나 소재를 찾고 있는 와중에 이렇게 캐치를 하게 된 거지만, 작품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그 안에는 제 어린 시절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경험이나 알던 사람들이 다 녹아들어 있는 거죠. 처음 동기가 됐던 건 제 아이인데요. 굉장히 성실하고 착한 학생인데, 그런데도 보면 아침에 차에 탈 때까지, 제가 데려다주려고 할 때요, 탈 때까지 무슨 특공대가 어디 출동 나가는 것처럼 늘 바쁘더라구요. 그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또 운전기사처럼 대기를 딱 하고 있다가, 아이가 타면, 쳐다볼 시간도 없이 출발을 하는 게 재미있더라구요. 이걸 이야기로 한번 풀어보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시작이 돼서 일본, 중국... 여러 나라의 등굣길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찾다 보니까 처음에는 한 열 개의 나라 정도가 재밌는 에피소드가 모이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진행을 하면서 계속 가지치기를 한 거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책에 실린 네 나라가 나오게 됐고요.

 

네 나라를 구성하는 내용 중에는 사실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좀 도시락을 잘 못 싸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 다음에 중학교 때쯤 되면요, 신문 돌리고 뭐 가사 노동을 하느라고 숙제 못 해오는 애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그나마 행복하게 사니까 배 안 곯고 요새 흔히 말하는 알바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 친구들이 조금 이해도 안 됐고요. 제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어렸을 때는 심하게 무시까지 했었어요. '쟤는 왜 숙제도 안 해오나... 쟤는 왜 미술 시간인데 크레파스도 안 갖고 오나... 너무 한심하다...' 그런데 커서 제가 부모가 돼서 그런 것들을 느끼니까 너무 가슴이 아픈 거고, 어렸을 때 제 생각이 너무 창피하고 나쁜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그런 친구들의 모습도 사실 조금씩 보여주려고 애를 썼고요. 케냐의 이삭 같은 아이가 그런 경우죠. 집안 일도 하고 공부도 해야 되는, 그렇게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 지금도 동시대에도 끊임없이 생겨나잖아요. 우리나라라고 없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만약에 그런 상황에 있는 친구들이 이 책을 본다면 좀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

 

콜롬비아 편 같은 경우에서는 누나가 동생을 챙기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누님들이 본인들은 실내화를 못 사고 덧버선 신고 들어가는데, 부모님이 준 돈으로 저한테 이제 실내화를, 막내라고 또 귀엽게 컸다고 하얗고 반짝반짝한 걸 사주셨거든요. 저는 뭐 그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실제로 손잡고 질질 끌려가듯이, 막내니까 어리광이 있어서 학교 가기 싫어하잖아요. 그랬던 기억도 있고. 그런 것들이 좀 녹아 있구요. 네팔 편 같은 부분을 보면 책 안에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요. 함께 학교에 가고, 또 그 과정에서 기다려줄 수 있는 친구들. 어렸을 때는 의미를 모르지만 커서 보니까 그런 친구들이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 아닌가. 혼자만 가지 말고 좀 같이 가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책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학교에 가요> 작업을 위해 조사하셨던 다른 나라의 특이한 등굣길 풍경 하나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까 잠깐 언급하셨던 중국 아이들의 등굣길도 궁금해지는데요.

 

중국은 제가 조사할 때만 해도 그냥 저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다 그렇지만요. 최근에 어떤 포털 사이트에 동영상도 떴더라구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등굣길' 해서 케이블 안에 들어가서 위험하게 학교에 가는 모습이 있었죠. 중국은 정말 너무 넓다보니까 여러 나라의 환경이 다 섞여 있어요. 그 중에서도 옛날에 차마고도 같은 그런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굉장히 높은 산악지대에 있어서 사다리를 위에서 선생님이 잡아주고 손을 끌어줘야지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제가 흥미를 느꼈던 곳은 일본의 눈 많이 오는 지역인데요. 선진국이라 실제로 많은 고난을 겪는 학생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양 옆에 눈이 어른들 키보다도 높게 쌓여 있는 길을 아이들이 걸어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등굣길 풍경을 <우리는 학교에 가요>의 한 꼭지로 넣어보신다고 가정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세요? 등굣길이 아주 짧은 사람도 있고, 긴 사람도 있는데. 정독도서관 올라오는 길에 또 학교가 많잖아요. 참 예쁜 길인데, 매일 출근하시면서 보는 길이니까 이 골목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실 것 같기도 하고요.

 

많이 떠오르는데요. 굉장히 가슴 아픈 게, 우리나라 학생들 등굣길 뒷모습을 보면 너무 슬퍼요. 처음에는 우리나라 학생들 등굣길고 하나 넣으려고 했었어요. 보통 일반적인 가정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되면 어머니들이 깨우는 데 너무 힘이 들잖아요. 그런 장면들부터해서 뭔가 꿈과 희망을 주면 좋겠는데, 싸우는 장면만 생각나고 아이들 이렇게 뒷모습이 늘어진 장면만 떠오르더라구요. 실제로 초등학교 1, 2학년만 되어도, 제가 아침이 많이 봤는데 많이 쳐져 있어요. 책에 묘사한 나라들은 훨씬 더 쳐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교육을 통해서 자기의 인생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큰 옷을 입고 찢어진 가방을 들어도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학교에 간단 말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사는 우리나라는 아이들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가기 싫은 데엘 가는 것처럼 학교에 가는 모습이죠. 아닌 학생도 있지만요. 그런 것들이 가슴 아프고요.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하셨나요?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는데, 거기서 조금 조금씩 골고루 다 배웠어요. 저랑 가장 친하고 잘 아는 분들 얘기가, 대학 시절하고 이번 책하고 그림이 너무 바뀌었대요. 옛날에는 잘 그리긴 했지만, 그게 뭐 기교적인 거였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동 심리나 그런 걸 다 배우고 표현하려고 애를 쓰니까, 그림의 이야깃거리나 느낌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얘기를 많이 들어요. 공부한 보람을 정말 많이 느끼죠.

 

말씀해주신 걸 듣고 나니까 숙명여대 대학원 아동문화컨텐츠 학과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지는데요. 그림책 작가를 준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곳에서 배우신 과정, 커리큘럼에 대해서 짧게 소개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숙명여대 아동문화컨텐츠학과는 일단 다른 데서 교육 받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면요. 그림이나 시각적인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게 아이들한테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걸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 물론 제가 그 강의를 구성한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배운 것으로 느끼기에는 그렇다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작가의 의도나 얼마나 많이 팔릴 수 있는지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책이냐는 거죠. 0.5%밖에 안 되는 소수 집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로 아이들을 위하는 작가들이 있어야되지 않나, 그런 아주 좋은 컨텐츠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학과가 생겨났고요. 실제 교육도 그렇게 받고, 그러면서 하여간 제가 이 작품을 구상하고 여러 출판사에 갖고 다니면서 들은 공통적인 얘기가, 어디서 공부했냐 그리고 이 글의 구성이 너무 단단하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국내에서 그림책을 공부할 수 있는 유명한 곳도 여럿 있는데, 그곳 비해서 이 아동문화컨텐츠 학과만의 강점이라면 정말 본질을 알고 나서 아이들을 위한 아주 좋은 음식을 만드는 그런 음식점 같은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세상에 나온 첫 번째 책, 처음 손에 쥐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많이 행복했죠. 행복했고,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컸어요. 책이 많이 팔린다던지, 제가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요. 너무 많은 매체들이 책을 만들 때 제목이나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려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언뜻 볼 땐 누추해보일 수 있고 매가리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고, 나왔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가장 행복했죠.


기억나는 독자 분들 반응으로는 어떤 것이 있으세요?

 

초등학생들은 저희가 행복한 거군요! 하는 굉장히 어른스러운 말도 들었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걸 꼭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아닌데, 다분히 교육적인 대답을 했더라구요. 정말로 기분 좋았던 대답은, 진짜요? 아저씨가 진짜로 이거 했어요? 그거죠(웃음). 짧지만 많은 얘기, 좋아요. 아이들이 또 너무 체계적으로 얘기하면 거짓말이잖아요. 그 표현이 제일 좋았고, 어른들한테 들은 얘기는 제일 좋은 게 그거죠. 서평을 써주신 분이였는데, 본인이 파주에 살면서 지나가는 탱크를 얻어 타고 학교에 가셨던 적이 있대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자기 어렸을 때 그 학교가는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 학교의 의미, 학원 폭력이니 그런 게 많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어른으로서 가슴 뭉클했다. 특히 뒷장면을 보고 거의 다 뭉클했다고 하시니까, 감동을 줬다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그게 제일 기분 좋죠(웃음).

 

이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이 작가님이 가지신 꿈 하나를 이룬 과정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첫 번째 작품에서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고요. 마지막 문장을 보고 뭉클했거든요. 크게는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을 빌려 해주셨다고 보고, 이 꿈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까닭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아, 예 맞아요. 사실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틀이나 정말 제가 말하고 싶은 얘기는 '일상의 소중함'이에요. 그러니까 어려서 대통령도 되고 싶고, 요즘은 연예인도 되고 싶고 그런 여러 가지 꿈이 있는데 꿈은 꼭 가져야죠. 잊어버리는 게 나쁜 거죠. 그런데 그 꿈을 이루는 방법은 뭐 로또를 산다든지, 아니면 갑자기 천지가 개벽해서 지위가 바뀌길 바라는 그게 꿈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그냥 다 존경할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나는 그게 좋은 꿈이고 그게 꿈의 올바른 형태잖아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하루하루 모여야지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통 등산을 하다 보면 왜 처음에는 우리가 급한 경사라고 못 느끼지만 다 올라와서 보면 굉장히 높이 올라와 있잖아요. 자기가 높이 올라간다는 걸 인지하고 올라간다면 겁나서 못 올라갈 것 같아요. 그 한발 한발,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이닦고 세수하고 밥먹고 또 어딘가로 공부하러 간다든지 일하러 간다든지 그런 것들이 결국에는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거.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제발 그 결과만 보고 가지 말고, 과정이 제일 중요한 거고 과정을 이루기 위해선 하찮은 일부터 하나하나 이렇게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죠.

 

 

그렇다면 어렸을 때, 대학시절보다 더 어렸을 때 작가님께서 갖고 계셨던 꿈 중에서 혹시 지금 이루셨거나 아직은 아니지만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게 있다면 여쭤봐도 될까요?

 

아주 어렸을 때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었던 꿈인데요. 중간 중간, 사람이란 게 조금 더 좋아보이는 것들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럴 땐 잠깐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메인도로로 들어왔다가... 삶이란 걸 긴 여행이라고도 표현하잖아요. 근데 그 여행이란 게 요즘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물리적으로 빨리 도착을 해서 많은 걸 퍽퍽퍽퍽 점 찍듯이 돌아다니면서 증명사진처럼 탁탁탁탁 찍고, 맛집도 가보고 그러면 뿌듯한 게 있고. 또 길을 잘못 들어서 샛길로 가서 어떤 구멍가게에서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서 사는 얘기 듣고 그 마을에서 나온 나물 하나 무쳐 준 거 얻어 먹고 시간이 돼서 가야될 때 못 오고 또 다시 오고 이런 여행도 있고요. 둘 중에 어떤 게 낫다 소중하다 옳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제 생각은 꿈이란 건 그 큰 줄기만 있으면 약간 빠졌다가 다시 와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도 정말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게 제 꿈이지만, 현실이 있고 일상이 있어서 포기 안하고 계속 가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 계속 생각하고요. 그래서 지금의 제 일상 역시 꿈을 계속해서 이루어가는 과정이고,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학교에 가요>를 통해서 꿈을 향해 가는 의미 있는 출발을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직 자기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잖아요. 모른다기보다는 꿈이란 게 아직 생기지 않은 아이들도 있을텐데, 사실 그 꿈을 가져라라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꿈을 가져라' 이 한 마디로 끝나면 너무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자기 꿈,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고민하는 이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있을까요? 굳이 애써 찾으려 하지 말고, 각자가 꿈이 나타나길 천천히 기다려보면 될까요?

 

그 기다리는 방법이 문제인데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대로 그러니까 오늘만, 아니면 잠깐, 그 다음에 요거 하나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절대 그러면 안 되고, 당장 꿈이 뭔지 모르더라도 어떤 지표가, 도표가 대각선으로 막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꿈이 뭔지 모르더라도 앞으로 찾아올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는 모호할 수밖에 없잖아요. 너무 뚜렷하기도 참 어려운 그런 시기죠. 어린 나이라면. 그런 아이들일수록 특히 부모님들이 그날그날 해야할 일들, 그리고 꼭 그 자리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밥을 먹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자야 되고. 그게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면, 제 경우에도 그렇고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한 2~3학년, 3~4학년 정도 되다 보니까 거의 뭘 시켜서 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어려서 그런 것들을 잘 잡아주면, 그런 습관들이 잘 잡히면 아이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커져서 실제 어린 아이들은 못 하는 게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제도나 그런 게 잘못 돼서 어른들이 잘 할 수 있는 아이들 손다리를 다 묶고 키우는 거거든요. 많이 가르친다고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교육을 시키다보면 능력이 개발이 될 거고요. 체조선수가 꿈이었다가, 화가가 꿈이었다가 꿈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그 과정들 인생들이라는 게 아름다운 거고, 하여간 잘 살기 위해서는 꿈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해요.


매일 꿈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원래는 우리나라로 한정해서 여쭤보려고 하진 않았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이 책을 볼 초등학생 아이들한테 응원 한마디 해주신다면요?(웃음)

 

응원이요? 응원까지...(웃음) 지구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지구에 출현한 이후로, 모든 활동은 교육적이지 않은 게 없었고, 학교가 없던 시절에도 뭐 사냥을 하는 법을 배운다든지, 낚시를 하는 법을 배운다든지, 비형식적인 교육도 있었잖아요. 그렇듯이 학교라는 건물, 이 체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에서 가장 좋은 제도 중의 하나인데요. 비록 요즘 어른 학생들에게도 할 게 너무 많고 학원도 너무 많고, 그래서 학교 가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나이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학교 가는 걸 많이 싫어하진 않고, 중고등학생보다는 초등학생들이 친구 만나는 즐거운 마음에 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 마음 쭉 잃지 않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고 또 성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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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2012-06-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터뷰 가슴에 와 닿네요. 우리 아이들은 등교길이 고행길 같아 보여요. 오히려 험난한 길을 걸어서
저 아이들의 학교길이 행복해 보이네요. 어쩔까나 우리아이들....
다음책은 아이들이 신나하는 도서관 이야기 써 주세요. 서가사이 이책 저책 손길가는대로
구석에 앉아서 책에 빠진 아이들요...

박경미 2013-01-06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등학교때 처음 정독도서관 가서 공부했었는데...
그래서 황동진작가님 많이 보았어요~^^
배우 엄태웅씨 닮아서 눈길이 많이 갔던것 같아요.^^
저도 지금 꿈꾸고 있는것 이루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간직하고 있거든요...^^
인연이 더 닿는다면 저의 동화에 삽화를 그려주시면 영광일것 같아요.~^^

지금, 초등학생 저학년을 가르치고 있는데
작가님처럼 저의 소박한 꿈도 이루어지는 날이 분명 오겠지요. ^^

풋풋했던 청년모습에서 저와 같은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것도
대단한 인연이라 생각됩니다.~^^

항상 지금처럼 새로운꿈에 도전하시는 승리하는 삶 살아가시리라 믿으며...^^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를 섬뜩하리만치 대담한 설정으로 풀어내며, 위험 수위를 한참 넘긴 오늘의 맹목적인 소비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 끝도 없이 새로운 물건을 욕망하는 오늘의 우리 모습. 이에 대한 적지 않은 문제의식을,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 책 대상작 <지도에 없는 마을>을 선택한 독자들의 분주한 손길에서 엿볼 수 있다. 파격적인 작품과 상반되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매력을 가진 최양선 작가님께 직접 들어본 <지도에 없는 마을> 이야기.

 

(인터뷰 장소 : 인문카페 창비 / 사진 : 창비 어린이 편집부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9) 

 

 

<지도에 없는 마을>은 분량에 비해 사건과 플롯이 굉장히 촘촘하기 때문에, 설계하는 과정이 까다롭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작품의 첫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맨 처음에는 사라진 도시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요. 물에 담긴 도시에 대해서요. 작년 초에 어떤 분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어요. 잠실 있잖아요. 그분이 어렸을 때 잠실에 살았던 분인데 어렸을 때는 그 지역은 그냥 물이였대요. 개간을 해서 오늘의 잠실의 모습이 된 거라고 하더라구요. 듣고서 처음에는 물에 잠긴 사라진 도시를 생각하다가 그렇게 시작을 한 것 같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사물로 변신을 한 가족 이야기인데요. 주인공 아이만 남고, 나머지 아이들이 다 사물로 변신하게 되는 내용의 단편을 제가 쓴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두 가지가 합쳐져서 장편으로 가면 좋겠다, 처음 세운 얼개는 그랬습니다.

 

사실은 불편한 동화였습니다. 필요성을 알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주제를 건드리기 때문에요.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평소 생각이 어떠신지요?

 

보면 사람들이 중독되어 있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면 쇼핑도 그렇고. 일종의 마음의 병처럼 생각이 되는데요. 자아나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니까 사물로 마음을 채우려고 하는데 결국 그게 그렇게 채워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또 광고, TV 광고를 보면 굉장히 불편함을 느껴요. 광고에서는 자꾸만 사라고 사라고 하는데, 저게 없으면 안 돼! 넌 바보야! 도태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 평소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에요. 화가 나고 저런 것에 속으면 안 돼, 항상 느끼죠. 자동차 광고도 특히 그렇고 그런 것들이 다 저를 불편하게 하는데요. <지도에 없는 마을>이 아이들 책인데, 이런 주제를 아이들 책이기 때문에 쓸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요. 어렸을 때는 다른 공간에 살다가 어느 순간 어른이 돼서 현실에 온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아이들 사는 공간도 현실도 똑같으니까요. 그리고 제 주변의 아이들을 보면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아이들도 굉장히 명품에 대해서 많이 알고 또 좋아하더라구요. 명품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것의 가치가 아닌 소비에만 너무 집중을 하니까요. 명품 자체는 굉장히 좋은 거잖아요. 명품이라는 게 굉장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지는 건데 그걸 생각하기보다 명품으로 자기 자신을 채우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방법이 잘못된 그런 여러가지 생각들이 모여서 이걸 아이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로 쓰고 싶었어요. 그냥 적나라하게 쓰기는, 현실 그대로 쓰기에는 좀 뭐하니까 재미있게 다른 방법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저도 <지도에 없는 마을>을 사라고 사라고 해야 하는 입장인데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웃음). 집착이란 것이 어떤 물건이냐에 따라서 좀 더 경계해야 할 게 있을텐데, 사람들이 이 물건에는 정말 집착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 한 가지만 꼽아주세요.

 

스마트폰이요. 저희 애들은 핸드폰이 없어요. 안 사줬어요. 엄마도 절대 스마트폰으로 안 바꿀 거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어요. 큰애는 정말 아빠가 오면 스마트폰만 계속 만지더라구요. 그래서 주말에는 저희 신랑 핸드폰을 제가 압수해요. 신랑도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어요. 전철을 타도 사람들이 그것만 보고 있잖아요. 그럼 저는 당당하게 '나는 아니야' 하면서 책을 보죠. '나는 너희들과 달라' 이러면서. 자부심을 약간 느끼면서 책을 봐요, 저는(웃음). 물론 스마트폰이 무조건 나쁘지는 않은데, 너무 매달려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우리가 집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물건이 스마트폰인 것 같아요.

 

그럼 혹시 이런 물건이라면 집착을 좀 해도 괜찮지, 이렇게 허용해주실 수 있는 물건은요?

 

근데 모든 물건이 집착만 안 하면...(웃음). 집착해서 좋을 물건은 없겠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랑, 새로운 걸 계속 갖고 싶은 거랑은 다르잖아요. 어느 정도 적당한 선이 있어야지.

 

보담, 해모, 리안, 구진, 호돈... 등장인물들에 이국적인 이름을 지어주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지도에 없는 마을>의 무대가 현실이라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실이 아닌 공간이니까 한국적인 이름으로 가면 오히려 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였어요. 생활동화가 아니니까 중의적으로 가자, 완전히 이국적이지 않으면서 또 너무 한국적이지 않은 이름으로 하려고 했죠.

 

처음에 보담이를 여자아이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일러스트를 보고서야 성별을 제대로 알았거든요.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어공주 이야기, 인어공주가 아니라 인어공주를 사람으로 만든 바다마녀에 주목하셨어요.

 

제가 마녀를 좋아해서요. 마녀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마녀의 나쁜 이미지는 사회, 역사가 만들어놓은 측면도 크니까요. 마녀사냥이라든가 중세시대에 여자를 사악한 존재로 몰아가던 것이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던 그런 것처럼. 그런 것들을 알고 나서는 마녀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애착이 생기더라구요. 사람들 마음에 마녀 같은 구석이 다들 있으니까. 그래서 마녀를 좋아해요. 그래서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 의해서 나쁜 이미지를 얻었지만, 그렇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지도에 없는 마을>의 바다마녀 해모는 어찌 보면 상당히 과격한, 동화책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캐릭터인데요.

 

해모가 어떻게 보면 저랑 가장 닮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해모랑 소라. 소라보다도 해모가 가장 저랑 닮은 캐릭터가 아닌가 싶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해모예요.

 

아니! 이 얘기를 들으시면 독자분들이 놀라지 않을까요.

 

아이고. 그럼 소라라고 해주세요, 소라(웃음).

 

 

표지에도 등장하는 '거대한 고물상'은 물론 일러스트가 있긴 하지만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특히 작품 초반의 인상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우디를 좋아해요. 건축가 가우디를 좋아해서 그의 건물 같은 공간을 생각했어요. 굉장히 신화적인 느낌이 드는. <지도 없는 마을>에 나오는 고물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딱딱한 건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있었죠. 무언가가 새로 태어나는 신화적인 공간이요.

 

그래서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공간 묘사에 공을 많이 들이지 않으셨을까 짐작했습니다.

 

많이 어렵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길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지도에 없는 마을>의 공간이 현실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썼거든요. 사람들이 판타지라고 하지만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을 해요. 작품에 나오는 바다라든가 하는 공간이 없는 공간이 아니잖아요. 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공간이 새롭다기 보다 저에게 익숙한 현실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도에 없는 마을>, 추리소설처럼 몰입해서 속도감 있게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유머 코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건, 의도하신 바였는지요?

 

의도했다기보다도 그런 데 소질이 없어서요. 재미있게 말도 잘 못하고. 몇사람만 있을 때는 곧잘 얘기를 하는데 사람이 조금만 많아지면 말수가 적어져요. 제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지도 않고요. 소질이 없으니까 안 되는 것 같은데요(웃음). 좀 그런 편이에요. 어두운 면도 많고요.

 

한편의 완결된 이야기이긴 한데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그 다음 이야기, 2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자작나무 섬 초등학교에 부임하기 전까지 교장 선생님의 개인사도 정말 궁금하고, 바벨탑 쇼핑 센터 사람들이 무슨 일을 더 벌일지도 걱정이 되고요. 나중에 엄마는 잘 살 수 있을지... 혹시 속편을 염두에 두셨는지요?

 

글쎄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웃음).

 

책을 읽은 아이들도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게 될 것 같아요. 특히 자신의 소비에 대해서 돌아 볼 수 있고요. <지도에 없는 마을>을 읽고 나서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될 지 모를 독자분들처럼, 한 편의 동화가 작가님 개인의 관심사를 단숨에 확장시켜주었던 경험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파란 시간을 아세요?>랑 <파울로의 눈물>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파란 시간을 아세요?>는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워낙 화가분이 유명하셔서. <파올로의 눈물>은 눈물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예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만 모여사는 마을이 있어요. 그곳에 사는 사람은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단 한 사람만 빼고요. 파올로라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슬플 때도 울고 기쁠 때도 울고 항상 눈물을 흘리는데 이 사람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꽃이 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파올로가 울면 꽃을 가질 수 있어서요. 그러다 어느 순간 파올로는 영웅이 돼요.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든 순간부터 파올로는 사람들 앞에 나오고 싶지 않아서 숨게 돼요. 숨다가 결국 이 사람은 떠나요. 그리고 파올로가 배를 타고 떠날 때 물속에 꽃이 피어 있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면서 떠난거죠. 파울로가 떠난 다음,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게 돼요. 그러면서 다시 꽃이 피게 돼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인데, 이 책이 그런 경험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시는 책하고 쓰신 책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웃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와, 이번 창비 좋은 어린이 책 수상작 <지도에 없는 마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시간 차가 좀 나는데요.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는 2009년에, <지도에 없는 마을>은 작년에 썼어요. 그 작품이 4월에 나오는데 아마 보시면 아실 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커다란 세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 두편의 동화가 서로 다른 작품이지만, 하나의 방향은 같다라고 생각을 해요. 먼저 쓴 작품에서는 제 자신을 그냥 다 보여준 것 같아요. 물론 읽는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그걸 알고 있잖아요. 그랬다면 두 번째 작품에서는 조금은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도에 없는 마을>이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조금은 객관적으로 쓴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이야기만으로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보기는 힘들었거든요. 작가님의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 직접 여쭤보고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동화 쓰기 전에 소설을 습작했었고, 처음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을 한 것도 어떤 작품을 읽고서였는데요. 그때도 그 작품이 판타지였어요. 되돌아보니까 그렇더라구요. 판타지가 중요한 하나,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평범한 아이였거든요. 왜 그런 애 있잖아요. 튀지 않고 묻혀 있는 애. 그런 아이였어서 특별히 의식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동화를 쓰는 데 가장 큰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현실인 것 같아요. 현실이 힘들어질수록 더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럼 요즘 작가님이 마음에 안드는, 작가님을 가장 괴롭히는 현실은...

 

저도 애들이 있고 하니까 애들이 너무 힘든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저 혼자 어떻게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진짜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놀 수 있는 공간도 친구도 없는 거예요. 엄마로서 가장 힘든 때가 그 때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또래하고 어울려 놀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예요. 제가 그 부분을 대신 채워줄 수가 없는데, 채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엄마로서도 힘들고 또 아이도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다요.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에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걱정할 게 적어지죠. 전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아닌 저하고 제일 가까운 저희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지는 것 같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를 생각하면... 그게 그래서 제가 동화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자녀분들이 혹시 이번에 나온 엄마 책도 읽어봤나요?

 

예, 저희 큰애가 남자애라서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어 했어요.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이고, 딸은 1학년인데 솔직히 어려울텐데도 엄마가 쓴 거라고 읽더라고요. 대견해요. '이거, 이해가 되니?' 물어봤더니 이해가 된대요. 근데 큰애가 '이해도 안 되면서!' 이래요(웃음). 작은애는 조금씩 조금씩 읽는데, 큰애 같은 경우에는 학년이 높으니까 한번에 싹 읽는데 재미있어 했어요.

 

 

아들딸이 보담이처럼 수업을 땡땡이친다면 용서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보담이는 호기심이 너무 왕성해서 그런거였는데(웃음).

 

용서 못해줄 것 같아요!(웃음). 그런 애들이 있어요. 주변에 보담이 같은 아이들이 있어요. 말썽도 많이 피우고 애들도 괴롭히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 혼란스러운 게, 객관적으로는 안쓰럽잖아요.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니까요. 그런데 이런 아이가 현실적으로 저희 애들이랑 부딪히는 걸 보면 '어우, 쟨 정말 왜 저래(웃음)' 하게 돼요, 어쩔 수 없이. 그런데 보담이도 솔직히 그런 아이니까, 이게 동화와 현실의 차이겠지요(웃음).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죠.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하고요. 그러면서 제 아이한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을 때도 있고, 저도 사람이다보니까 그런 아이를 보면 미울 때가 있고. 그런데 이제 그렇게 생각을 안 하려고, 한번 거르게는 된 것 같아요. 동화를 쓰지 않았다면 저는 그 애가 밉다고만 생각하고 삐뚤어진 면만 볼 수도 있겠는데, 개인적으로 동화를 쓰다 보니까 조금 다르게 한번 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쟤가 참 마음이 아픈 아이구나.

 

심사평도 책에 인쇄가 되어 있고 직접 들으신 평도 있겠고 그리고 온라인 서점의 리뷰들. 마음에 드셨던 <지도에 없는 마을> 후기가 있으세요?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라는 이야기가 정말 좋더라구요. 아, 그런가? 내가 창조했나?(웃음) 그러면서 지난날을 이렇게 되돌아보니까... 아! 그 얘기를 하면 좋겠어요. 어일 때 샘터에서 일하고 싶은 게 제 꿈이었어요. 대학로에 있는 샘터 출판사 있잖아요. 중학교 때 처음 대학로라는 델 가봤는데, 샘터 건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건물에 담쟁이가 덮여 있는 걸 보고, 그냥 그것만으로도 저기서 꼭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화를 쓰고 싶다고 처음 생각하고 서점에 가서 가장 먼저 손에 들었던 책도 샘터에서 나왔던 그림책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였나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책을 가장 먼저 들고 봤거든요. 어느 순간에 되돌아보니까 왜 처음에 가졌던 마음 같은 것 기억을 하게 되잖아요. 내가 처음에 그 그림책을 봤었지 하면서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장소와 공간에 대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지도에 없는 마을>에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보니까, 비슷한 영역의 작품을 쓸 계획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집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외계 소년과 지구 소녀의 사랑? 우정과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연애라고 하면 너무 가볍고요. 사랑에 가까운 우정? 그런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또 외계인이 나오다 보니까 공간이 또 달라지겠죠?

 

<지도에 없는 마을>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또 앞으로 읽어주실 알라딘 독자분들에게 인사 한마디 해주세요!

 

뭔가 자기가 자신의 마음을 옮길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 하나씩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마음을 주는 물건들이 있잖아요. 이게 마치 나와 같은, 그런 애착이 가는 물건이 하나쯤은. 돈의 가치, 다른 사람들이 만든 가치가 아니라 내가 만든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는 그런 것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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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이 주는 첫인상만으로 판단하기엔 이르다. 장난감처럼 엄마를 사고 파는 이상한 세상에서, 생애 처음으로 엄마를 갖게 된 여덟 살 현수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순식간에 달려나가는데, 이 괴짜 같은 동화를 신나게 따라가다 도착하게 되는 지점은, 엄마와 나의 거리가 한 뼘 좁혀진 바로 그 자리다.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 책 수상작, <엄마 사용법>의 김성진 작가가 제시하는 엄마 사용법이란 생각하면 할수록 신통하고, 이제 막 시작된 봄처럼 따사롭다.


(인터뷰 장소 : 인문카페 창비 / 사진 : 창비 어린이 편집부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9)



지난 주에 볼로냐 국제도서전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여행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나요?

 

볼로냐 도서전도 궁금하긴 했지만 여행을 간다는 게 우선 즐거웠거든요. 유럽 가는 게 처음이라서. 인상 깊었던 건 이거였던 것 같아요. 도서전 입구에 긴 통로가 있는데 그 빈 벽에 판넬을 쭉 세워놨어요. 이게 뭔가? 처음엔 공사가 안 끝난 건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도서전에 참가하지 못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기 그림을 붙여놓는 자리였던 거예요. 하나씩 하나씩 포스트잇이나 명함 같은 작은 종이에다가요. 처음에는 한두 개가 붙여 있었는데, 나중에 한바퀴 돌고 왔더니 그 벽이 꽉 차 있더라구요. 와! 멋있다! 그 종이는 한 사람이 하나씩만 붙여놨는데, 더 많이 눈에 띄기 위해서 여러 장 붙이고 싶은 욕심이 날 것 같기도 하잖아요. 그 그림들, 날 것의 그림들, 날 것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열정을 느꼈던 건 그 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관에 갔더니 우리 전래동화 그림책들을 외국인들이 무척 관심 있게 보는 거예요. 한국에서 있을 때는 전래동화가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그림,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긴 하지만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저도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가서 보니까 전래동화가 이렇게 새롭고 독특하게 보게 되더라구요. 그 독특함이라는 게 특별한 색깔이라는 게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는 그림책들에서 나온다는 걸 느꼈어요.

 

<엄마 사용법>에서 사용하신 대화체 문장 때문에 긴장감 있게 읽게 되는 효과가 있었거든요. 좀 더 귀 기울여서 읽게 되더라구요.

 

문체는 이 아이 생각을 하다가 나온, 인물에서 문체인 것 같아요. 현수라는 아이가 어떤 아이일까 생각하다보니까 현수가 어쨌어 저쨌어하는 문장이 저절로 만들어지더라구요. 문장이 한번 만들어지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같은 형식으로 쭉 가게 된 것 같아요.

 

장난감 엄마라는 건 아이들이 좋아하는 두 가지를 결합해놓은 것 같아요. '장난감'이랑 '엄마'. 이 생명 장난감이란 소재는 어디서 얻으셨는지 궁금하고요.

 

사실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제목이 먼저 나왔어요. 그러니까 '엄마 사용법'이라는 제목에서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고민만 하다가 사실은 묵혀 놨었죠. 머릿속에 던져 놓고 아, 뭔가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 두었다가 한 6개월 정도 지났었나? 우연히 친구가 애완견을 분양 받아서 키우게 됐는데, 그 집 아이가 강아지가 생기니까 제일 처음하는 게 인터넷 검색이더라구요. 강아지 키우는 법을 배우려고 '어떻게 하면 강아지가 날 좋아하나요?' 이런 것들을 검색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까, 애완견에 대해서도 저렇게 공부를 많이 하는데 엄마한테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훨씬 소중한 엄마에 대해서 우리가 보통은 당연히 나한테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받아야 된다는 생각만 하잖아요. 그때 아, '엄마 사용법'이 이 이야기였구나라고 깨닫고 그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됐었죠. 그리고 나서 생명 장난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고요. 엄마를 사온다면, 강아지처럼 사온다고 하면 그런 엄마는 어떤 존재가 될까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장난감처럼 조립부터 시작하게 되겠구나.

 

엄마 사용법. 은근히 입에 붙기 힘든 제목이에요. 어떤 동료는 <엄마 사용설명서> 좀 빌려달라고...(웃음). 우리 대부분이 가장 친밀한 존재인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배우려는 노력을 쉽게 하지 못하는데, 아이들도 <엄마 사용법>을 읽고 자각하지 못했던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 같아요.

 

어린이들이 읽는다고 전제하고, 말씀하신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썼는데 재밌는 건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의 반응이었어요. 한 선배가 이 책을 전철 안에서 읽었었나봐요. 문자가 왔어요. 이거 우리 애도 읽어야겠지만 우리 집사람이 먼저 읽어야겠다, 야. 어른들이 읽고 오히려 아이들한테 잘해줘야지하는 얘기를 더 많이 하시더라구요. 정작 아이들은 이걸 읽으면 오~ 조립한 이야기가 재밌어요!(웃음). 그래서 아 그렇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방식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거구나 했지요.

 

현수랑 장난감 엄마, 그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것이 고릴라인데요. 주문한 엄마가 태어나는 모습을 같이 보고 싶다는 민지의 청을 현수는 뿌리치잖아요? 생명 장난감은 눈 뜨고 처음 본 사람을 따르게 되어 있는데, 엄마가 자기 대신 민지를 먼저 보고 좋아할까봐 걱정이 돼서요. 그래서 거절을 하니까 민지가 '고릴라 똥이나 맞아라'하고 악담을 퍼붓는데 깜짝 놀랐거든요. 뭐? 고릴라 똥이라고?(웃음) 이야기 뒷부분까지 읽으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데, 특별히 고릴라라는 동물을 등장시킨 이유가 있으세요? 고릴라를 좋아하시겠지요?

 

고릴라의 느낌을 좋아해요. 고릴라를 보고 있으면 나이든 현자 할까... 고릴라들이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나이 든 어른처럼 보이더라구요. 그런 느낌 때문에 고릴라를 좋아하기도 해서 <엄마 사용법>에 동물을 넣기로 했을 때 자연스럽게 고릴라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느낌이 뭔가 사람하고 가깝잖아요. 굉장히 마음이 깊을 것 같은 동물이고요.

 

나중에는 고릴라가 말도 하는데 말투가 엄청 느려요. 고릴라들은 원래 그렇게 느릿느릿 말을 할까요?(웃음)

 

고릴라가 처음부터 말을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웃음). 성격으로 봐서도 그렇고요.

 

파란 사냥꾼들이 고장난 장난감들을 잡아다 가두는 차에 피노키오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피노키오도 나무 인형에서 사람이 되는 장난감 엄마랑 비슷한 존재인데요.

 

피노키오가 이 이야기 종류에서는 어떻게 보면 원전격이라고 할 수 있고, 관련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넣었던 부분은 아이들한테 이 존재가 뭔지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였고요. 사실 제가 생각한 원류는 사실은 책속에서도 썼지만 알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 신화적인 측면을 염두하고 쓴 거였어요. 피그말리온 같은 경우가 피노키오의 원전이라고 보거든요. 신화적인 측면에서 그런 깨어나는 이야기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거든요. 엄지 공주, 아니면 콩깍지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들이라든가 원류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쪽이긴 한데, 아이들한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피노키오 상징을 사용했던 거죠.

 

현수가 좀 엉뚱한 아이라서, 해가 쨍쨍한 날에 느닷없이 선생님한테 오늘 비가 올 것 같냐고 물어봤다가 핀잔을 듣잖아요. '미안하지만, 질문은 그만하고 이제 제발 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런데 현수는 주눅 하나 들지 않고 선생님 잘못이 아니니까, 미안할 필요없다고 귀엽고 응수를 하는데요. 작가님도 학창시절에 그렇게 재치 있는 답변할 줄 아는 센스 있는 학생이셨는지요?

 

낯선 사람하고 얘기하는 걸 굉장히 쑥스러워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현수 같은 아이를 굉장히 부러워했어요. 자기 생각을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그런 성격을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현수 같은 아이가 정말 부러웠으니까.



<엄마 사용법>이 가진 여러가지 분위기가 집필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요? 전반적인 속도감, 재기발랄함과는 상반되게 현수를 보면서 안쓰러운 대목이 종종 등장하니까요. 현수에게는 한번도 엄마가 없었고 그래서 너무나 엄마를 갖고 싶어했고, 나중엔 그토록 바라던 엄마가 생기지만 언제 잡혀갈지 몰라 불안해하는 모습이 애달프게 느꼈졌거든요.

 

그때 그때 순간의 기분에 몰입을 하게 되니까, 주인공을 따라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즐거운 대목을 쓸 때는 얼굴에 웃음이 지어지고, 슬픈 대목을 쓸 때는 긴장이 되고. 그리고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다시... 감정을 따라가면서 집필을 한 것 같습니다.

 

다들 한번씩 이런 숙제를 해봤을 것 같아요. 행복한 우리 가족의 모습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하는 현수를 보면서, 작가님이 기억하시는 가장 행복했던 장면이 궁금해졌어요.

 

이건 조금 약간 다른 얘기인데요. 행복해던 기억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혼을 내시면요. 저희 큰 형은 가만히 회초리를 맞았어요. 혼 내는 게 위에서부터 이렇게 순서대로 내려오는데, 그 다음으로 작은 형은 회초리 앞에서 약간 몸을 틀고요. 그런데 저는 밖으로 도망을 갔어요(웃음). 도망 가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나면 작은 형이 저를 찾으러 와요. 아버지는 걱정이 되셔서 혼내는 건 잊으시고, 돌아온 게 다행히라고 생각하셨죠. 그래서 저는 혼도 안나고, 항상 얼른 와서 밥 먹어라로 끝이 나죠. 그게 기억이 나네요, 행복했던 일보다. '내가 도망갔을 때 아빠가 오히려 날 걱정하고 데리러 왔어' 그렇게 생각했던 날들이요.

 

아주 영특하셨네요!(웃음). 그리고 너무나 절묘해서 감탄했던 것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현수 엄마를 막 감시하고, 그래서 현수가 위기를 느끼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림 없는 상태에서 글을 먼저 쓰시고 나중에 그림이 입혀진 책으로 보셨을텐데, 책하고 정말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라 만족이 크셨을 것 같아요.

 

김중석 작가님을 만난 게 굉장한 행운인 것 같아요. 첫 책을 내는 신인이 이런 그림을 받아서 작업을 할 수 있다라는 게. 아마 제가 봤을 때는 그분 그림 작품 중에 <엄마 사용법>에 있는 그림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이게 걸작이에요, 그분의 걸작(웃음). 앞으로 김중석 선생님, 그리신 작품 중 대표작이 뭡니까 물으면 <엄마 사용법>이라고 하셔야겠다(웃음).

 

그리고 <엄마 사용법>에 악역이 한 명 나옵니다. 정태성이라고(웃음). 정태성이 알고 있는, 정태석이 생각하는 엄마의 역할이랑 현수가 얘기하는 거랑은 조금 미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었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엄마랑 구름을 같이 보고 싶다고 말했던 거였어요. 엄마랑 구름을 보고 싶어하는 아이? 흔히 볼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구름 보는 걸 좋아해서요. 산책하면서 구름을 보는 걸 좋아해요. 하늘에서 구름 모양이 자꾸 변하잖아요. 야, 저 구름 예쁘다 그러다가 다시 보면 구름이 모양이 또 바뀌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들 그럴 줄 알았는데...(웃음)

 

저도 갑자기 밖에 나가 엄마랑 같이 구름을 보고 싶어지네요! 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건요. 태성이나 현수처럼 작가님이 갖고 계시는 엄마의 이상형이라고 해야 할까, 현수를 빌려서 들려주시지 않았던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엄마 사용법>에서 현수가 엄마한테 원하는 게 분명하게 있잖아요. 어떤 부분은 제 어린 시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바라는 건 엄마가 절 혼내주시는 거? 과자 만들어주면서 재료 심부름 시켜주는 것? 다른 친구들 보면서 이런 게 부러웠어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중학교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가, 고등학교 지나고 대학생이 되면서 친구들이 하는 투정을 듣잖아요.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 우리 엄마 왜 이래하면서 투덜투덜(웃음). 우리 엄마가 나 야단쳐하고 하소연하는 그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과자를 만들어줬다라는 것보다 그것 때문에 심부름을 시키는 것, 뭣 좀 사와라 하는 것 자체가 부러웠거든요. 그런 엄마가 부러웠기 때문에 <엄마 사용법>에도 그런 마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렇잖아. 사람들은 이웃집 아이한테는 야단을 안 쳐요. 잘해주잖아요. 내 아이한테는 야단을 쳐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야단을 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이 제가 가장 엄마한테 바라는 모습 같습니다.

 

고릴라도 그렇고 현수네 엄마도 그렇고 마음이 생긴 장난감이잖아요. 장난감에 마음이 생기면 무거워진다는 설정, 마음의 무게를 보여주는 장치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썼던 말인데요. 처음 막 배달된 엄마는 가볍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들어 있는 박스도 현수가 거뜬히 들 수 있고요. 나중에 사람이 되고 나면 무게 차이가 생기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설정이었어요. 써놓고 보니까 정말 중요한 말이었구나 생각했고요. 가끔 그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쓸 때는 몰랐었다가 나중에 의미를 알게 되고 그게 정말 중요한 문장이 되는 경우들이요.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 현수는 '엄마 사용법'을 완전히 익히게 되는데요. 이제 아빠 차례로 넘어와서 아빠가 아내 사용법을 배워야 될 것 같아요. 아빠도 현수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아빠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빠도 기본적으로는 현수를 이해해주려고 하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은 책에 엄마와 현수와의 관계만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나중에 이어질 엄마하고 아빠하고의 관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서,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빠는 거기에 맞춰서 엄마를 현수처럼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학상 삼관왕이시더라구요. KB작가상이랑 한국안데르센 상, 그리고 창비 좋은 어린이 책 수상까지.


KB같은 경우에는 얼마 안 됐지만 단편 부문에서 빨리 자리를 잡은 공모전이라고 생각하는데 2010년도부터 신인들을 대상으로 단편 공모를 했었어요. 저 때도 그랬고 한회에 천 편 가까이 응모가 되는 것 같아요. 한국안데르센 상 역시 단편 공모전인데, 이름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웃음). 창비 좋은 어린이 책은 꼭 갖고 싶은 타이틀이었죠.


이렇게 상을 받은 작품들을 무조건 좋은 동화라고 할 수 없지만, 수상작 중에 좋은 작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만큼 독자분들도 매년 기다리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데요. 작가님께서도 작가인 동시에 동화를 읽는 독자기도 하니까 여쭤보고 싶어요. 독자분들이 문학상, 어린이 문학상에 기대하는 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새로운 작품이라고 할까요. 문학상 수상작 심사에서 똑같은 작품을 뽑지는 않잖아요. 한발이라도 앞선, 전진을 했다라고 하는 작품들을 뽑기 때문에 그래서 기존 작품과는 뭔가가 다르겠지 이런 기대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로 활동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글은 계속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한 10년? 처음에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대학교 때는 학자가 되고 싶었죠. 사회학자가 되고 싶었다가 대학원을 안 가게 됐고, 그렇다면 뭔가 창의력이 있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은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해보자. 시나리오 쓰는 일은 한 2~3년 정도 한 것 같아요. 그쪽에서 일하다가 돈 떨어지면 취직을 하고, 취직했다가 돈이 좀 모이면 다시 글을 쓰고. 그런 반복을 하다가 동화를 쓰자 생각한 건 어린이 독서지도를 하게 되면서부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화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쓰는 건 당연히 소설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관심을 안 가졌었거든요. 독서지도를 하면서 동화를 읽으면서, 아 내가 예전에 진짜 몰입했던 이야기들인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렸을 때 봤던 동화책. 피노키오라든지 몬테크리스토 백작... 다시 이 이야기들을 읽게 되니까 무언가가 돌아온 느낌이 들었지요.


요새는 공부랑 학원 때문에 아이들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많고... 초등학생을 둔 부모님들께서 간혹 동화책 나이가 지났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가끔 있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할 정말 멋진 책들이 많은데...


그건 제가 봤을 때 어머니들께서 약간의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독서지도를 하다 보면,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똑똑하거든요. 책이라는 것이 사고력을 길러줄 수밖에 없거든요. 영어를 하든 사회를 하든 과학을 하든 모든 공부의 기반은 사고력의 문제니까요. 학원 수업을 열심히 듣는 아이들이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많요. 초등학교 3, 4학년에 올라가면 책을 읽은 아이와 읽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격차가 확 벌어져요. 이제부터는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고력이 반드시 필요한 그런 문제들을 풀어야 하거든요. 달라져요. 부모님께서 정말 아이가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진짜 괜찮은 아이가 되길 원하신다면 책을 진짜 많이 읽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것은 특히 어렸을 때 결정이 많이 나죠.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솔직히 읽힐 시간이 더 부족하고, 그때 가서는 본인 스스로가 읽고 싶어하지 않으면 정말 방법이 없으니까. 저학년 때 책을 많이 읽혀 줘야 아이들이, 진짜 어머니들이 원하는 그런 아이가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정말 중요하죠.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즐겨서 읽으시는 작품을 소개해주셔도 좋고요.


예전에는 움베르토 에코를 많이 좋아했고요. 요즘에는 주로 이제 신화 계열 책들을 많이 읽거든요. 신화 해석하는 것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요. 한국 동화작가로는 마해송 선생님. 그분이 <토끼와 원숭이> 쓰신 것 맞죠? <떡배 단배>를 어렸을 때 읽었는데 처음에는 한국동화인 줄 몰랐었고요. 그 <떡배 단배>하고 <토끼와 원숭이> 이야기는 세계 어느 동화하고도 견주어도 앞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작품이 많이 안 알려졌더라구요. 저는 한국동화 중에서 딱 한 작품만 고르라고 하면 이 작품을 꼽을 것 같아요. 최고예요!

 

<엄마 사용법> 이후에는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세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긴 한데, 구상하고 있는 단계라서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인공들이 저절로 엉뚱한 데로 갈 때가 있거든요.

 

그럼 그 주인공들을 따라가시는거죠?

 

예, 그러니까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흔히 작가를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신과 같은 존재라고. 근데 전 그말을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말 안에는 작가가 이렇게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말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그 말이 틀렸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라는 건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성경에 창세기가 있잖아요.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설계를 딱 했거든요. 아마 하느님의 뜻대로 됐으면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났을 거예요. 근데 주인공 아담하고 이브가 갑자기 엉뚱한 짓을 하거든요.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거기서부터 긴 이야기가 뻗어나오는 거잖아요.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도 좀 비슷한 것 같아요. 내가 설계를 하고 인물과 배경까지 다 만들었는데 주인공이 갑자기 엉뚱한 행동을 하면서 갑자기 이야기가 커지고 증폭되고 달라지고. 하느님이 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재미를 좀 느낄 때가 있어요. 나 생각이랑 관계 없이 얘기가 가고 있네? 생각도 못한 엉뚱한 길로 튀었는데 좋다! 그래, 가보자! 이렇게요. 그래서 아직 다음 작품은 틀도 세우고 배경도 만들었는데 그 인물들이 어떻게 어디로 갈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엄마 사용법>,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어주시길 바라고 계세요?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가장 기본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재미있다, 없다일 것 같은데요. 감동? 이런 건 아이들 입에서 잘 나올 수 없는 단어니까 일단은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읽고 나서 따뜻한 느낌, 왠지 엄마 옆에 가서 기대고 싶은 느낌 같은 걸 받았으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엄마 사용법>이 엄마를 한번 안아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쑥스럽겠지만 엄마를 한번 안아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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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6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