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무렵의 어린이날 난생 처음 스니커즈를 신어본 한 꼬마가, 스니커즈의 인디언 핑크색과 예쁜 생김새에 매료되었던 소녀가 시와 동화를 사랑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분주한 직장생활을 뒤로한 어느 봄날, 신나게 써내려간 자신의 이야기가 동화 속 마법처럼 데뷔작이 되었다.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저학년 부문 대상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의 김유 작가를 3월의 이른 아침에 만났다. 볼로냐 여행을 하루 앞둔 작가는 사랑스러운 '스니커즈 발견가' 구구의 탄생 비화를 아낌 없이 공개해주었다.
(기획:창비 / 사진:창비 / 인터뷰:알라딘 이승혜 / 2013-03-21)
어린이 책 만드시는 일을 하다가 동화 작가가 되신 과정이 참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하셨어요?
제가 동화책을 많이 읽고 자라지는 못했어요. 그 동안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 문예창작과에 진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어린 시절에 동심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동화책을 읽으면서 그 동심이 살아나는 것 같은 거예요. 어린 시절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동화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다시 끌어올 수 있고 결국은 이게 다시 사는 셈이 되더라고요. 한 10년 전쯤, 그때부터 동화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지금까지 갖고 왔어요.
본격적으로 동화를 읽었던 그 대학 시절에는 어떤 작품을 제일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 현덕의 <너하고 안 놀아>인데요. 동화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책을 교과서처럼 봐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삐삐 롱스타킹>도 제 어린 시절을 연상하면서 푹 빠져서 본 책이고요. 그런데 저는 삐삐하고는 다른 아이였어요. 삐삐처럼 활발하거나 씩씩하지 못했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그런 모습의 제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마법의 설탕 두 조각>, <학교에 간 사자> 같은 좋은 책도 대학 시절에 처음 읽었어요. 동화책 중에 좋은 책이 참 많구나 했었죠.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는 어떻게 구상하신 작품인지요?
구상은 좀 오래 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없고, 현실적으로 시간도 부족하고… 그래도 계속 구상하고 메모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쓰게 된 건 회사를 그만두고 난 작년 봄이었어요. 몇 달 사이에 이 작품을 정말 신나게 썼죠. 제가 가장 잘 아는 얘기부터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썼던 습작이나 단편동화에서는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만큼 저를 드러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 아는 얘기를 써보자는 게 이 작품의 출발점이었고요. 그래서 더 즐겁게 썼던 것 같아요.
주인공 구구가 저와 가장 닮은 점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게 됐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 구구하고는 성격이 많이 달랐어요. 구구랑은 다르게 정말 소극적이었고, 호기심은 많았지만 표현을 잘 못했어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는데 그런 모습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참 안타깝게 느껴지죠. 그래서 구구한테는 신나는 일만 생기도록 쓴 것 같아요. 구구가 작품 속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자로 활약하는데 이건 제가 원했던 저의 모습, 마음속에 그렸던 모습들을 구구한테 옮겨서 표현한 것 같아요.
스니커즈를 좋아하시냐고 물어보는 건 너무 당연한 질문일까요?(웃음)
좋아해요! 신발, 우선은 신발 자체를 참 좋아하고요. 일반 운동화는 어쩐지 어감도 뭉툭하고 투박하기도 한 것 같은데... 그런데 스니커즈는 참 멋지지 않나요?(웃음) 이름도 그렇고 여러가지 모양이나 색깔도 굉장히 다양하고요. 스니커즈라는 이름도 ‘살금살금 걷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나온 거고, 그래서 어쩐지 스니커즈를 신으면 되게 신나고 사뿐사뿐 날아갈 것 같잖아요.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선물, 정말 기뻤던 선물을 받았던 게 바로 스니커즈였어요. 제가 살던 동네에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부모님들이 다 외출을 하셔야 할 때면 제가 잠깐씩 가서 그집 아기를 돌봐주곤 했었거든요. 아이 아버지께서 저한테 보답으로 어린이날 선물을 사주신 거예요. 당시에 흔하던 그런 하얀 운동화가 아니라 인디언 핑크 색에 앞코는 얄쌍하고 끈 대신 찍찍이가 달린 굉장히 예쁜 신발이었어요. 스니커즈, 처음 신어보는 모양의 스니커즈였어요. 그 시절에는 굉장히 비싼 신발이기도 했고요. 그때 그 스니커즈를 신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도 평범한 아이구나.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 신발을 신을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요. 그때가 아홉 살 아니면 열살, 구구랑 비슷한 나이였어요.
그때 그 스니커즈를 선물 받은 꼬마가 이런 멋진 동화작가가 됐다는 걸 아저씨도 알게 되신다면 정말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외로웃 이웃을 위한 잔치’에 초대를 받은 구구와 키다리 아저씨가 본인들이 왜 외로운 이웃으로 불리는 건지 의아해하는 대목이 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씁쓸한데요.
구구는 엄마 아빠를 한 순간에 잃고 고아가 됐어요.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 고아원에 보내야 된다, 의논을 하는데요. 어떤 결핍이 있는 사람을 봤을 때, 저 사람은 외롭다라는 규정을 우리가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요. 키다리 아저씨는 혼자 살면서 많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특별한 벌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 사람은 분명히 외로운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사실 그들은 전혀 외롭지 않은데 타인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걸 반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키다리 아저씨랑 구구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구구 친구들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데요. 구구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따뜻한 마음씨, 친구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친구를 사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 같아요. 구구와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편견을 갖지 않고 만날 수 있다면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구구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아이고, 키다리 아저씨랑 몽돌이를 뺀 나머지 또래 친구들을 한 사람씩 보면은... ‘에이뿔따구’는 엄마 아빠가 다 있어요. ‘떡진머리’는 엄마하고만 사는 아이죠. 다양한 환경에서 각각 살아가는 아이들인데 다 나름의 결핍이 있어요. 부모님이 계신 아이조차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모이면 아주 어려운 일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거죠.
키다리 아저씨가 만든 노래 중에 ‘기분이 아주 좋으면 노래를 부르고 기분이 아주아주 좋으면 시를 쓴다’는 가사가 있어요. 실제로 기분이 좋을 땐 어떻게 하세요?
제가 노래를 좋아는 하는데 잘 하지는 못하거든요. 음치 박치여서 절대 노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고요(웃음). 시는 좋아해요. 대학에 들어갔을 때도 처음에는 시 공부를 먼저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동화로 옮겼는데 시하고 동화는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시적 상상이 동화로 왔을 때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시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대목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에서는 힘든 상황이나 아픈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자고 강조를 하셨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일찍부터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사는 것 같아요. 제가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에서 ‘우리동네에는 100명이나 있다’는 좀 과장된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모두 왕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자기 의사나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안타깝거든요.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면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는데 그걸 어른들이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울고 싶고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많이 놓일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다면 좀 더 삶이 풍요로워지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하신 부분이 있다면요?
캐릭터를 가장 먼저 생각했어요. 캐릭터가 선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주인공 구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인데, 이 아이가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포인트로 잡았어요. 구성이나 결말을 정해 놓고 쓰진 않았는데 쓰다 보니까 구구가 가는 대로 이야기도 같이 따라 흘러갔어요.
아동복지시설에서 문학예술 강사로 활동하셨을 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르쳐주셨는지.
문학예술 강사직이 우리나라에는 10년 전부터 있었더라고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arte) 곳에서 하는 사업인데 문학 수업은 최근 한 2년 사이에 자리를 잡았어요. 저는 파주 쪽에 있는 지역 아동 센터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게 됐어요. 부유하고 풍요롭게 사는 친구들도 많지만 어려운 친구들도 참 많잖아요. 여전히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는 걸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을 만나면서 느끼게 됐는데요.
제가 맡은 수업이 4, 5,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3학년 친구들도 같이 수업을 들었어요. 책을 읽고 같이 써보는 게 기본 목표였지만 막상 그렇게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책을 읽고 쓰게 하는 것에만 집착을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울툴불퉁하게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고, 또 의자 밑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아이도 있고, 막 웃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밉다 혹은 왜 저러지가 아니라 제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저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는 그런 걸 깨닫고 많이 배우기도 했죠.
그래서 어려운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읽었을 때 마음에 와 닿을 만한 그런 그림책들을 골라 가지고 가서, 만날 때마다 그 한 권을 같이 읽는 것에 의미를 두었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기뻤어요. 저 역시 이 수업으로 인해서 어떤 치유를 받는 느낌이 있었죠.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어린이들 만나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직접 쓰신 책을 읽어주신다면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어요!
안 그래도 친구들한테 책을 보내줬어요. 그 중에 한 아이가 ‘딱 쌤이 쓴 거 같아요’라고 소감을 전해줬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늘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제 목소리와 저라는 사람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제 실제 모습하고 다르게 책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오는 건 가짜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다른 어떤 칭찬보다 기뻤어요.
작가님의 일상에서 활력소가 되어주는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랑 둘이서 함께 지내는 언니요. 언니도 문학을 전공했고 동시를 쓰고 있어요. 저희가 딸만 다섯인데 언니가 넷째, 제가 다섯째고요. 서로 읽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거나, 다른 대상에 대해서 의견을 많이 주고 받는 편이에요. 언니는 동시를 쓰고 저는 동화를 쓰니까 서로의 작품을 제일 처음 읽는 독자가 돼서, 날카롭게 지적을 해주기도 하고요. 지적을 받을 때면 화도 났다가 내가 고민을 더 해야 하는구나 자극도 받고요. 언니가 저의 멘토이자 가장 큰 자극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동화를 써나가고 싶으신지 계획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의 독자가 되어주실 분들께도 인사 말씀 부탁 드립니다.
우선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제 동화에는 유머도 있고 반짝이는 상상력도 있고 넌센스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다 같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는 게 목표고요. <어린 왕자>처럼 거듭해서 읽게 되는 작품, 처음 봤을 때 못 봤던 걸 두 번째 읽었을 때 새롭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어린 왕자>가 두고 두고 보고 싶은 책인 것처럼 우리 구구도 그렇게 사랑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분들한테요.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는 구구라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구구는 자신보다 더 외로운 상황에 놓인 친구들, 이웃을 따뜻하게 같이 안아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가요. 건강하고 밝은 이야기니까 많은 분들이 보시고 같이 힘을 내고 구구를 응원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쓰면서 그 동안의 제 아픔이나 상처들이 많이 치유되기도 했어요. 이 책을 출발점 삼아, 저도 앞으로 구구랑 같이 씩씩하게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