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나무꾼? 동화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눈에 익을 이름, 또는 좋아하는 이름. 지은이나 옮긴이란에서 그 이름을 발견한다면, 주저 없이 그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신뢰를 받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린이 책 기획실.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담은 어린이 책 번역과 논픽션 집필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멋진 독서 체험을 선사해온 햇살과나무꾼이, 2012년 봄 또 한 권의 새로운 책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를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험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기만의 생존법을 가진, 신기한 재주를 가진 동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지난 20여 년 간 어린이 책과 함께 걸어온 햇살과나무꾼의 치열하고도 즐거운 발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인터뷰이 : 햇살과나무꾼 박정선 실장님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7)

 

알라딘 : 알라딘에서 햇살과나무꾼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니 집필과 번역을 합쳐 400종 가까이 됩니다. 올해로 기획실이 설립된 지 얼마나 됐는지요?

 

햇살과나무꾼 : 실제로는 92년부터 내부에서 준비를 시작해 사업자등록증을 낸 건 94년이구요, 첫 책이 나온 게 93년이던가요?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지금까지 작업한 책이  전집이 1천종 정도 단행본이 3~4백권 정도되는 것 같아요. 구성원은 총 7명입니다.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란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햇살과나무꾼 : 대표이신 강무홍 주간님이 지은 이름이에요. 사람들은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데 햇살이 비치면 덥지 않냐 물으시기도 하는데, 나무하는 계절은 겨울이니까요. 처음에 강무홍 주간님이랑 저랑 같이 시작을 했거든요. 회사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던 그 때 그런 모습이 떠올랐대요.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모습이 이미지로 떠올라서 햇살과나무꾼이 되었죠. 나무꾼이 나무를 떼서 따뜻한 겨울을 나듯이, 저희가 기획.집필한 책들이 어린이의 마음에도 따뜻하게 전파됐으면 좋겠다는 해석을 이후에 저희가 붙이긴 했어요.

 

알라딘 : 20여 년이면 활동 초기와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책 시장이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 작업 방식의 변화도 클 것 같습니다.

 

햇살과나무꾼 : 엄청나게 변했죠. 1990년대 초반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것이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했었고요. 서점에서도 어린이 코너를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어린이 책의 위상도 그랬지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에게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하고. 어린이를 위한 무언가를 따로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을 적을 때였어요. 지금은 교육 열풍에다가 어린이의 인권, 어린이도 보호받아야 한다, 애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윽박지르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이 많이 있지만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에는 어린이란 개념 자체가 척박했고, 지금은 과잉이죠. 너무 과잉이 되어서 부모가 자기 일, 자기 존재까지 잊은 채 어린이들만 위하는 게 지나치다 싶죠.


강무홍 대표님과 제가 둘 다 운동권 출신이에요. 공장에 있다가 사회에 나와보니까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옛날 운동권들은 웬만큼 일어를 할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번역을 한번 해보자 했는데, 출판사에서 정해준 번역만 하는 건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기왕 번역하는 거 재밌는 책을 하자는 것과, 우리가 운동에 청춘을 바쳤는데 내가 바친 청춘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이후에 사는 것은 참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의 연장 선상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 했을 때 사회과학을 연구할까? 아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 결국은 인간해방이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인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 어린이라고 하는 코드를 잡고, 이어서 어린이 책을 중점적으로 파고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번역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요. 원서 사기도 힘들고, 해외여행 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아마존에서 클릭 한번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지만. '혹시 미국에 아는 사람 있어? 일본에 아는 사람 있어?' 수소문해서 국제전화로 어렵게 책을 구해야 하는 시절이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을 골라서 번역자가,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찾아가 이 책 내보면 어떨까요, 제안하는 것이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죠. 그리고 영어 책이든 불어책이든 무조건 일어 번역서를 가지고 우리말로 옮겼어요. 저희도 일어를 했듯이, 일어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일어본을 번역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고요. 원본을 소중히 해야한다 그런 개념보다는 비용 절감을 중요하는 게 과거의 풍토였죠. 지금이야 저희가 조금 이름이 알려졌지만, 옛날에는 '기획? 어린이책을? 어린이책을 뭐하러 그렇게 공들여서? 그것도 외국의 저작권료까지 물어가면서?' 하는 반응들. 너희는 곧 망할거다, 쓸데 없는 데 그렇게 공을 들이다가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미국에서 현지, 동시 출간되는 책도 많고, 출간되기 전에도 원고가 검토되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 그러니까 소공자 소공녀 그런 것들 있잖아요? 흔히 말하는 세계명작, 아직도 그걸 읽고 있었던 때였어요. 당시 해외 현대어린이문학이라고 하는 건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고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각각의 계층들, 특히나 약자들이 보호를 받고 그런 사람들이 주체가 된 문학의 모습이었는데요. 사회제도 이런 것들도 많이 발전되고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들이 일천한 상태였던 거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다보니 굳이 현재 영국에서 나오고 있는, 이제 막 출판되고 있는 좋은 어린이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죠. 또 그런 책들은 로열티를 꼭 냈어야 하거든요. 뭐하러 그렇게 큰 돈을 들이느냐라는 거였죠. 다른 나라 아이들과 같이 발맞춰서 커나가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옛날에 내가 읽었던 책을 읽고 있으니 이게 뭐가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햇살과나무꾼이 유명 작품들을 다 독식했다는 말씀도 하시는데, 당시에는 그런 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경쟁자가 없었어요. 이제는 출판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저희는 뒤로 한발 물러나 있고, 미국이나 일본에서 뜨는 작품들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경쟁자들도 많고 하니까요. 저희는 이제 묻혀 있는 좋은 작품을 찾는 데 주력을 하고 있죠.

 

알라딘 : 오늘의 햇살과나무꾼을 만든 중요한 순간, 어떤 도약의 시기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햇살과나무꾼의 첫 발걸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이거예요. 그러니까 햇살과나무꾼이 좀 알려지기 시작하고 사회 분위기도 바뀌고 단행본 시장에서 좋은 책을 고르려고 하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 엄마들이 등장한 것, 어린이도서연구회 같은 단체의 등장, 좋은 책을 찾는 하나의 바로미터로서 옮긴이도 보게 되고 작가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부터죠. 초기에는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사람 이름을 써야지, 햇살과나무꾼 옮김이 뭐냐. 지금은 곰돌이co. 같은 이름도 있고, 이런 이름들을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웬 햇살과 나무꾼 옮김? 항의 들어온다는 거예요. 신뢰성, 공신력 다 문제가 되어서 안된다는 거죠. 당시에 작가 이름 대신 '편집부 옮김'이 들어가는 어린이 책이 많았다는 건 참 아이러니 하죠. 그래서 '햇살과나무꾼 옮김'을 써도 될 만큼 저희가 알려지고 옮긴이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던 것, 그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다음으로는 번역 인세를 받기 시작한 시점. 그전까지는 번역료가 다 매절이었는데 인세를 받는다는 건 본격적으로 '번역 기획'을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인세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좀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만부는 넘어가줘야 손익분기가 나오는 게 되니까. 초반에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이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너무 소모적으로 되어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매절한 원고에 대해서는 출판사가 돈을 주고 산 거니까 관여하기가 힘들고. 내 자식을 팔아버린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인세가 1%라도 걸려 있으면, 출판사에서 그 책을 바꿀 때 꼭 얘기를 해주시고.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못 팔리면 못 팔린대로 우리가 인세를 적게 받는 것으로 책임을 질 수 있으니까요. 또 많이 팔리면 많이 팔리는대로 계속 인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 굉장히 큰 터닝 포인트가 된 기점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으로 저희가 집필을 하기 시작한 것. 그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어요.


알라딘 : 이쯤에서 햇살과나무꾼에서 새롭게 펴낸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햇살과나무꾼 : 동물 이야기, 식물 이야기 이런 책들이 사실 넘쳐나죠. 다큐멘터리들도 많고요. 생태계에서 왜 아주 신기한 것들이 많잖아요. 어! 와! 얘네들이 어떻게 저렇게 사나, 저 해달 좀 봐봐 진짜 귀엽다! 이런 감상이 하나 있고, 또 학교에서 '포유류는 어떻습니다' 하고 배우는 것이 하나. 이 두 가지가 이렇게 따로인 것은 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동물의 생태를 보는 건 이런 것들이 단순히 신기하고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잖아요. 어린이들은 지적 호기심이 굉장히 왕성한 존재들이거든요. 그렇다면은 동물들의 신기한 모습들로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거기에서 무언가를 끌어내주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 열매가 엉뚱한 데서 맺힌다거나, 그냥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갑자기 '그래서 말이죠' 하고 결론을 딱 꺼내놓는 것은 별로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린 두 가지를 합쳐 놓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 다음에 나올 책은 거꾸로 살아가는 동물들한테 배우는 생태계인데요. 우리가 흔히 낙타들한테는 다 혹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혹이 없는 낙타 얘기를 하는 거죠. 또 포유류는 전부 새끼를 낳는다고 알고 있는데, 알을 낳는 포유류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냥 포유동물이란? 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리고 세 번째 권은 식물. 특이하게 살아가는 식물들을 통해 배우는 생태계 이야기입니다. 신기한 생태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고, 그 생태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그런 것들이 재미있게 지식을 습득하는 하나의 안내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취지에서 기획을 한 거죠.

 

알라딘 : 신기한 생활 방식을 갖고 있는 책 속 동물을 하나 소개해주시면 좋겠어요. 스스로 떼죽음을 당하는 노르웨이레밍 얘기를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너무 불쌍하기도 했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어린이 책에서 이런 잔인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지적을 하신 분도 있죠. 한 동물만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진 않은데요. 불가사리가 자기 위장을 꺼내서 먹는 것도 재미있고... 해달이 물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 돌에 딱딱 부딪쳐 전복 같은 것들 껍질을 까먹잖아요. 해달이 어떻게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지도 책에 나오지만, 그 해달의 생태를 아는 것도 중요한데 이 생물들이 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마다 생태계라고 하는 것에 엮여 있고, 먹이그물 먹이사슬에 얽혀 있고. 해달의 가죽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자꾸 잡아가니까 해달이 많이 사라지고, 해달이 먹는 해초숲까지 사라지게 된 거예요. 해달이 없으니까 해달이 까먹었던 성게들이 갑자기 증식을 해버린 거죠. 그래서 성게가 해초들을 막 끊어버려서 숲이 사라지게 되는 것. 그렇게 해서 한마디로 인간이 생태계를 깨뜨리는 거죠. 그런 것들까지도 이 책에 같이 포괄하고 싶었어요.

 

요즘 어린이 논픽션에 아쉬운 게 있다면 이건 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요.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인간의 시각으로 '아... 동물이 잡아가요,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같은 식의 의인화를 하는 것들요. 인간의 감정을 넣어서 하는. 그런데 자연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고, 그렇게 잡아먹는 것도 자연의 법칙 중 하나인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너무 인간의 감정으로만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 사실 가죽을 벗기는 나쁜 놈들은 따로 있는데. 좋은 다큐멘터리라도 너무 감정이 실려 있거나, 그런 나레이션이 들어가 있는 건 싫거든요. 요즘은 워낙 퓨전의 시대이긴 하지만.

 

문학을 읽는 내 감정의 상태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흥미로울 때의 내 뇌의 상태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다큐는 다큐의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논픽션에는 논픽션의 문법이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탐구하고, 사고하는 훈련을 해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의 방식은 적당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저 어린이 책이라는 이유로, 이야기의 허울을 씌워서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햇살과나무꾼에서 쓰는 책들은 되게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친절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처럼 꾸며져 있지 않아요. 다만 독자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이야기처럼 쉽게 씌여져 있어서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거기 숨어 있는 사실과 본질 때문인 것. 그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된 거야? 하면서 야 이거 진짜 재미있네! 하는 것 있잖아요. 정보가 정말로 잘 배열되어 있고,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독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저 자신도 그런 논픽션이 좋아요. 인문적 방식으로 자연과학을 알려주려고 하는 책보다는요.

 

알라딘 : 다시 번역 이야기로 돌아가서, 번역할 작품을 선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것이 있으시다면. 사실 판매량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으실 것 같거든요.

 

햇살과나무꾼 : 저희가 고르는 기준이라고 하는 건, 낼 건지 말 건지가 아니라 일단 기획서를 쓸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것인데. 선택의 순간에 던지는 질문은 '이 책 꼭 우리가 해야 돼?'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과감히 포기를 해요. 계속해서 생각하는 건 보이지 않는 햇살과나무꾼의 독자들이에요. 그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고르려고 애를 써요. 정말 안 팔릴 것 같지만 정말 좋은, 그런 책이 있다면 선택을 해요. 그리고 출판사를 찾는 거죠.

 

번역서는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결과와 판매 동향을 알고 난 뒤에 가져와서 할 수 있고, 새로운 출판사가 단 기간에 종수를 늘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만요, 번역 자체의 고유의 기능은 사실 정말로 세계 유수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한다, 그런 문화의 선구자적 느낌이라고 할까요? 진짜 문화의 벵가드로서의 그런 역할. 우리도 한국의 고유한 것,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런 것들로 어필을 하듯이, 외국의 그런 것들을 번역해서 들여오면 되잖아요. 퓨전이나 세계화도 좋지만. 진짜 우리나라에서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을 만날 때 정말 기쁘거든요. 독자들이 아 이 책은 정말 독특하다, 햇살같다, 그런 애기를 들을 때.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좋은 작품들을 골라서 번역을 하려고 애를 쓰죠. 기왕이면 그 책들이 다 잘 팔리면 참 좋겠지만. 안 그런 경우도 많지만. 번역을 하면서도 이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업무라는 것도 잊고, 읽는 내내 가슴이 뛰는 책들을, 이런 책들만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알라딘 : 혼자 하는 번역과 햇살과나무꾼처럼 여럿이 하는 번역, 무엇이 다를까요.

 

햇살과나무꾼 : 일단 기획성, 혼자서 어떤 책을 기획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내부 시스템을 갖춘 회사 조직이나, 출판사와의 오랜 관계나 노하우 같은 것들의 뒷받침을 받을 수 없으니까. 똑같은 책도 어느 출판사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데요. 단지 잘 팔리고, 못 팔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잘 팔린다는 건 그러니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읽는다는 것이잖아요. 사계절이면 사계절, 비룡소면 비룡소, 출판사마다 자기 독자군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 독자군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출판사를 선택하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저희도 실패를 많이 하죠. 이 책은 차라리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훨씬 잘 될 수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책들이 있어요. 그렇게 책이 독자를 찾아가게 해주는 것, 이런 것들은 개인이 하기에 조금 힘이 들 수 있죠.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아무리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일단 한국말도 잘 해야 하고요. 저희 작업의 경우엔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특수성이 있잖아요. 어린이 소설과 논픽션, 그림책 이 세 가지가 다 번역의 문법이 달라요. 동화 번역을 잘 한다고 해서 어린이 논픽션 번역까지 자동으로 잘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림책 번역? 그거 진짜 쉽지 않아요. 그림책 중에서도 영유아 그림책 번역, 진짜 어렵거든요. 영어로 보면 쉬워요. 이 쉬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까, 그게 정말 어려운 문제거든요. 그런 여러 장르를 다 번역을 해낼 정도가 되려면,많은 연차가 쌓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번역을 주 업으로 하면서 혼자 쌓아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햇살과나무꾼은 회사니까 선배들이 가르쳐줄 수 있고. 저희는 최소 3년차는 넘어야 혼자서 해볼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어떤 분들은 저희를 프리랜서 모임으로 알고 계시기도 하는데 일반 회사와 같이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거예요. 인턴 기간은 1년이에요.

 

알라딘 : 좋은 어린이 책 번역, 나쁜 어린이 책 번역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햇살과나무꾼 : 일단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별도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먼저 기본, 보편을 지키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어린이 책으로서 더 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고 보는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번역의 기본은 '원작을 살리는 번역'이에요. 원작자가 누구든 간에, 그 번역자의 필체가 그 여러 책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가끔씩 봐요. 이건 누구 번역 같다, 생각이 드는 번역은 나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해요. 번역자는 뒤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원작자의 문체, 문체라고 하는 건 그 작가 고유한 것이잖아요. 그것이 비록 한국말로 옮겨지더라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번역자의 할 일이고 기본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린이 책이라는 명명 하에, 이 부분은 좀 재미없는데 애들이 이해하기 쉽게 좀 고쳐보자, 한 두줄 정도는 빼자는 건 안 될 일이죠.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 원본 대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살짝 문장이나 단어를 뺀 번역들을 보게 되는데요. 이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문학이라고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짝살짝 빼고 또는 자기 문체로 바꾸어버리면, 원작의 향기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데. 아무리 어린이 책이라고 하더라도 원작자가 지루하고 따분한 몇 행을 써 놓았으면 번역에도 그게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빼야할 문제는 아니다. 일반 성인물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요새 번역 가지고 말들이 많잖아요. 뭐 의역이니, 직역이니. 이런 말들이 많은데 도대체 의역이라고 하는 게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 도대체 누가 번역자한테 의역할 권한을 주었는가하는 문제. 그걸 번역의 개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고요. 어떤 어린이 책은 긴 문장을 탁탁탁탁 끊어놓죠. 그렇게 되면 문체가 달라져요. 탁탁탁탁 아주 경쾌한 문체가 되어버리거든요. 원작자는 그렇게 안 썼는데 그렇게 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알라딘 : 엄격하게, 최선을 다해 원작자의 문체를 살린다는 번역을 번역다운 번역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필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글쓰기는, 논픽션에 요구되는 미덕일텐데요. 집필하는 책에 일관되게 담고자 하는 햇살과나무꾼만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요.

 

햇살과나무꾼 :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뭔가라고 물으면 결국 가치관일 것 같아요.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것은 다 한 가지 분야를 다룬 책이 수십 종이잖아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어떤 관점에서 정보를 독자한테 전달할 것이냐. 위인전, 역사에선 특히 사관이 중요하겠구요. 생짜 그대로 훈계하듯이 이건 옳지 않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말고. 또 설익은 좌파의 느낌이 너무 내거나 너무 국수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 말고요.

 

일단은 좋은 가치관에서 정보를 취합해야 하겠고요. 두 번째로는 아이들한테 열려 있는 집필, 독자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어린이 책 집필을 하고 싶어요. 어떤 책은 정말로 교과서 내용, 사실 자체를 그대로 나열해 쓰는 데 그치기도 하잖아요. 그 반대편에 똑같은 정보를 주더라도 단순히 그 정보를 달달 외우도록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린이들로 하여금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들이 있죠. 읽었던 사실들은 혹시 기억이 안 날 수 있지만, 읽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 순서대로 따라 읽으면서 사고 훈련이 되는 그런 책들을 쓰고 싶죠.

 

사실은 저희가 이제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 동화는 번역을 하면서 왜 논핀션은 집필을 하느냐. 문화나 정서나 이런 것들은 전세계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데, 정보나 이런 것들은 쉽지 않거든요. 우리가 무엇을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 생각하게 할 것인가. 한국에 현재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부각시켜서 전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필요성 때문에 논픽션은 번역이 아닌 집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이세움에서 나온 <세상을 바꾼 말 한마디>라는 책이 있어요.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겠다 - 스피노자'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가 아니라, 그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게 됐는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책을 써보자해서 시작하게 됐는데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게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아니죠. 내 머릿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재취합하는 것들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잘못된 책들을 베끼고 베끼고 또 베끼는 경우도 생기는 거죠. 명언 취합을 하다보니 스피노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대요. 아무리 찾아도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 거예요. 수소문해서 스피노자 연구자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도 왜 한국에서 스피노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회자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도 안중근 의사가 한 말로 많이 알고 계시잖아요. 그냥 안중근 의사가 어떤 책에서 보고 글귀가 좋아서 그 얘기를 쓴 거래요. 이런 비슷한 경우들이 너무나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자료 조사하다보니 전부 다 거짓말인 거예요. 정말 그래서 저희가 우리끼리 이 책은 불편한 진실이다(웃음). 이 책이 사실이면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책 속의 글들이 틀린 거잖아요.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든지, 지구가 멸망하면 이런 것들은 에피소드로 만들어내기 좋잖아요. 특히 어린이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좋은 말이고. 일본은 자료가 굉장히 많고 잘 관리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식으로 잘못된 자료를 잘못 담은 책들도 꽤 많거든요. 조사를 해봤더니 일본에서 검증되지 않은 책을 번역해서 출판, 이걸 또 다른 곳에서 보고 자료로 취합하면서 틀린 것들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거죠.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만 보고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독자분들의 신뢰가 두터운데,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햇살과나무꾼 : 앞서 말씀드린 저희가 번역서를 선택하는 기준 같은 것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한번은 어떤 독자분께 이 책은 햇살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 독자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 다음부터는 출판사에서 의뢰하셨을 때 저희 답지 않은 책이라고 판단이 되면 이 책은 번역을 못하겠습니다 하고 사양을 하기도 하고요. 의뢰 받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지 더 철저하게 보게 됐어요. 몇몇 출판사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알라딘 : 어린이 책 번역을 막 시작하신 분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조언을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햇살과나무꾼 : 예전에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햇살과나무꾼 번역학교를 하면서 했던 얘기인데, 번역이 혼자서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번역을 많이 해봐야 하겠죠. 좋은 번역서를 많이 봐야되겠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번역을 잘 하는 건 기본인데, 그 번역가의 소신이라고 하는 것과 더불어서 경쟁력. 경쟁력은 어차피 자신이 키울 수 밖에 없어요. 이 책도 괜찮고, 저 책도 괜찮겠다 해서는 경쟁력이 없는 거예요. 자기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할 때 좋은 번역이 나오거든요. 그림도 그래요. 화가분들하고 작업을 예로 들면요. 화가가 마음에 들어한 원고에는 그림도 잘 나와요. 그런데 그냥 직업상 의뢰가 들어와서 그냥 했다, 좋은 그림이 나오지 못하죠. 번역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는 청소년 성장소설이 잘 맞는다, 하면 그 분야에서 출판된 책과 원서를 섭렵한 다음에 번역할 책을 고른다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번역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처음에 하기 쉬운 시행착오들이 칼데콧 상을 받았다, 그런 작품들 있잖아요. 미국에 사는 내 동생이 뭐 미국에서 요새 이 책이 너무 재미있다고들 한다 했다면 그 책들에는 관심을 가지면 안 돼요. 관심을 아예 꺼야 돼요. 그런 작품들은 누군가가 이미 계약을 했을 거예요(웃음).

 

알라딘 : 이건 참 실용적인 팁이네요!

 

햇살과나무꾼 : 그런 책들보다는 나만의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책을 고르는 게 현실적이겠죠. 묻혀 있는 책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아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은 그런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른다면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처음부터 번역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난항을 겪겠죠. 그런데 번역은 정말 처음부터 잘 할 수 없어요. 그건 확실해요. 정말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해요.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알라딘 : 마지막으로, 앞으로 십 년 후 햇살과나무꾼의 모습을 그려보신다면요?

 

햇살과나무꾼 : 이십 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면서 자부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저희가 떼부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좋은 책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을, 변함없이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유가 된다면 번역 작가 양성이 꿈이에요. 논픽션 작가 양성도 그렇고, 같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지금 당장은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후에는 어린이도서관이라든지 좋은 책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본은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좋은 책을 우리가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것, 그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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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광 2017-11-0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신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독자가 햇살과 나무꾼이라는 이름을 믿고 사는 책을 만드시니 그 자부심이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필요한 어린이 책 많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는 캡슐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작고 소심한 동동이가 선택한 상대는 '고약한 왈가닥', '여자 깡패', 시도때도 없이 오빠를 못살게 구는 얄미운 여동생 묘묘!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동동이의 영혼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빠의 몸.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소개팅까지 대신 치러야 하는 동동이 앞에는, 마법처럼 '영혼이 훌쩍 자라는' 놀라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3월 오후,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의 김소민 작가를 만났다. 아이들을 끔찍히 좋아하고, 그만큼 떡볶이를 좋아하고, PC방 나들이가 취미인 동화작가. 해사한 웃음이 매력적인 김소민 작가가 아이처럼 밝고 꾸밈 없는 말로 자신의 두 번째 동화책을 이야기한다.

 

(사진 : 비룡소 홍보기획부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08)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과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은 작가들이 책이나 영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데, 이 소재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처음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은 저학년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써야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배려나 이해 같은 것들이었거든요. 제가 놀이터 같은 데 자주 가서 아이들이랑 자주 어울리고 관찰도 하는데요. 애들이 잘 놀다가도 갑자기 얼토당토 않게 싸우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이해'를 말하면 전혀 못 알아들어요. 이 아이들이 엄마를 이해하거나 친구를 이해하거나 강아지를 이해하려면... 애들은 강아지도 잘 때리거든요(웃음). 어떻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이해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영혼을 바꾸는 걸 떠올리게 됐어요. 영혼을 바꾸면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알아듣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시작했던 거고요.

 

캡슐 마녀라는 건, 한 2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사랑의 리퀘스트란 프로그램을 제가 보고 있었거든요. 때마침 제가 많이 아팠었고요. 약을 먹고 골골거리고 있는데 TV에 나온 아픈 아이를 보는 순간, 그애처럼 약봉지를 들고 있던 저에게 강한 연대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면서 뭔가 이 캡슐 속에서 마녀가 튀어나오면 좋겠다! 여기서 시작해 어떤 영상들이 쭉 떠오르고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거죠.

 

이해를 하는 것, 서로 배려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차례차례 정해놓은 순서대로라기보다 짬짬이 메모해두었던 것들, 그 생각들을 불려나가게 됐어요. 영혼을 바꾸는 것에 대해선 정작 제가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써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동동이랑 묘묘 또래 아이들하고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궁금해요, 그 애들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딱 초등학교 1학년. 요새 입학철이잖아요, 두근두근할 거잖아요. 처음 학교에 가는 게 얼마나 좋을까. 저도 입학식에 가 있고 싶어요. 입학할 나이가 되어 보고 싶어요, 새로운 사회로 들어가는 그 첫 느낌을 갖고 싶어요.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 보면, 예전 그 경험을 다시 한번 새로 하게 되는 거라고 말씀들 하시더라구요.

 

저도 빨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워봐야겠군요!(웃음)

 

많은 동화에 작가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에서 역시 작가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찾아볼 수 있나요?

 

저랑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애들은 책을 보면 딱 제가 묘묘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하하. 제가 태권도를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거든요. 정말. 아침에 태권도학원에 가면 저녁까지 집에 안 오고, 사범님네 집에 가서 밥까지 먹을 정도로 항상 사범님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고. 특히 도복을 너무 좋아해서 맨날 입고 돌아다녔어요. 저희 오빠는 또 정말 착하거든요. 제가 아기였을 때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오빠는 저랑 다섯 살 차이가 났고 이름이 민기였거든요. '민기야, 소민이 좀 보고 있어' 엄마가 말씀하고 밖에 나가셨는데, 정말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오빠가 꼼짝 안하고 앉아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대요. 그렇게 순둥이거든요. 착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런 오빠가 누굴 때린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저는 묘묘처럼... 아주 묘묘랑 똑같이 악랄하게 오빠를 괴롭히진 않았지만(웃음) 태권도를 좋아하는 건 정말 묘묘랑 꼭 닮았어요. 밥을 안 먹어도 태권도 연습은 열심히 했지요.

 

너무 착한 오빠라 동동이랑 묘묘처럼 싸울 일이 실제로는 거의 없었겠어요. 그럼 혹시 아버님은 약사...(웃음)

 

틀리셨구요(웃음), 약국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게 저한테 좀 있나봐요. 약국에 가면 맛있어 보이는 이상한 게 너무나 많고. 어른들이 바카스를 마시는 그런 모습이 왠지...(웃음)

 

왈가닥 캐릭터를 좋아해서 그런지 묘묘한데 눈길이 많이 갔는데, 조역이다보니 출연 분량이 너무 적어서 드려보는 질문이에요. 아빠 몸 속으로 들어간 동동이가 영혼이 바뀌자마자 얄미운 동생 묘묘를 야단치잖아요. 그동안은 기 한번 못 펴고 살다가... 아빠 호통에 깜짝 놀란 묘묘가 대성통곡을 하는 그 장면은 그대로 끝이 나는데요. 그 후에 아빠가 사과하는 장면, 묘묘의 마음을 풀어주는 대목이 이야기 전개상 필요하진 않지만, 현실에서라면 이렇게 자기 속을 뒤집어놓은 부모님을 순순히 용서해주는 아이들은 없을 것 같거든요.

 

저도 사실 생각은 했었거든요. 뭔가 화해하고 넘어가야되지 않나, 그랬는데요. 아이들은 제가 생각할 때 어른들처럼 담아두지 않는 것 같아요. 너그러워요. 직접 낳아서 키워본 적이 없어 잘 알진 못하겠지만. 놀이터에서 싸울 때는 엄청나게 싸우지만, 또 다음날이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정말 철이 없는 것 같은데도 또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보살필 줄 아는 그런 것들. 책속에서도 영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직전, 동동이가 묘묘를 보면서 측은해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부분에서 말씀하신 화해의 느낌까지 다 녹여서 전하고 싶었어요.

 

그 다음으로 아빠로 변신한 동동이를 기다리고 있는 게 민숙자 아줌마와의 소개팅인데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동이가 엄마가 생기는 건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과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게 바로 '엄마 냄새'잖아요. 엄마를 끌어 안았을 때 나는 향기를 동동이 친구들은 우유 냄새라고도 하고 장미꽃 화장품 냄새라고도 했어요. 작가님은 엄마 냄새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세요?

 

이야기 마지막 아빠 결혼식에서 동동이도 새 엄마 품에 안겨서 비누 냄새를 맡잖아요. 아주 연한 비누 냄새, 비누 냄새인데 약간 반찬 냄새도 섞인. 저는 지금도 엄마를 잘 껴안는데요, 엄마를 좋아해서요. 지금도 이 다음에도 엄마를 생각할 때도 엄마 냄새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제 단편 '새우젓 냄새'도 냄새에 집착하는 이야기인데요(웃음). 엄마 냄새, 저에게는 약간 반찬 냄새가 섞인 아이보리 비누 냄새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지갑 속에 끼워져 있던 낡은 연애편지 한장으로 동동이를 낳아주신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셨잖아요. 연애편지가 나중에도 한번 더 나오지만, 아주 예쁜 글이었거든요. 두 편지 모두 다. 그래서 김소민 작가님은 연애편지를 엄청나게 많이 써 본 고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애편지를... 진짜 연애편지는 써 본 적이 없어요.

 

앗 그게 정말이세요?

 

왜나하면 제가 쓴 편지를 친구가 읽게 된다면 그 후로는 그 친구를 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그 정도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요. 연애편지를 남자에게 쓰게 된다면, 그 편지를 끝으로 다시는 못 만나게 될 지도 몰라요. 책속에 쓴 건 투영, 연애편지를 쓰고 싶은 욕망의 투영이라고나 할까. 하하.

 

민숙자 아줌마한테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동이 뒷모습이 너무 좋았는데, 작가님이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은 어떤 페이지에 있을지 궁금해요.

 

캡슐 마녀한테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요, 그래서 이 그림. 처음 화가분이 그려주신 걸 보고 진짜 빵 터졌고, 아이들도 재밌어할 것 같았거든요. 이 대목에서 뭔가 상쾌해하지 않을까, 게임 레벨도 20단계나 올라가 있고, 캡슐도 두개나 더 주고 가고. 헉! 이러면서 신나하지 않을까. 이 장면 보면서 막 신나했으면 좋겠다. 기대를 많이 품고 있어요.

 

 

 

아이들과 자주 만나시는 건, 동화 쓰시는 것하고도 연결이 되나요?

 

동화를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아이들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요. 틀에 갇혀 있지도 않고, 선입관도 없고, 너그럽고. 우리 어른들은 안 그렇잖아요. 태어난 지 10년도 안 된 아이들은 자연하고 더 가까워서 자연을 알고 지내는 것에서는 어른들의 선배가 아닌가 싶고.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도 얘네들은 하느님 부처님 같은 대답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럼 전 깜짝 놀라면서 애들은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아요.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데 가서 놀다가 아이들 고민 같은 걸 듣게 되면, 또 나름 일리가 있는 말들이고요. 아이들은 말썽만 피우는 게 아니라 각자 다 분명한 입장이 있더라구요.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제가 모르는 게 생기면 또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좀 귀찮아하긴 하지만(웃음).

 

아이들이 너그럽다는 것,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래서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에요.

 

어른들은 미워하면 정말 미워하잖아요. 아이들은 그냥 살짝만 미워하고 금방 또 받아주고. 그런데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른들의 미움을 학습하는 것 같아요. 왕따 문제 같은 것들도 너무 가슴 아프고.

 

동동이가 캡슐을 먹기 전에, 육체와 영혼 중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의 정의를 내려야 할지 헷갈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육체와 영혼,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시겠어요?

 

진정한 존재의 주인은? 단호하게 영혼이요. 아이들이 어리지만 끌려다니기만 하지 말고, 그 너그러움 그대로 개개인만의 영혼을 가진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캡슐 복용 전 주의사항에 나오는 성분 소개를 보면, 보름달 늑대의 욕심 25%, 살모사의 교활함 12%, 산양의 순진함 8%... 그리고 나머지는 비밀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 비밀을 공개해주실 수는 없나요?

 

아 그건 영업 비밀이라서 안 되는데... 캡슐 마녀한테 허락을 받아야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두 영혼 중에서 한 영혼이 불쑥 커 버리면 약 효과가 끝나버린다는 것도 주의사항 중 하나죠. 캡슐 마녀가 이렇게 약을 제조한 이유가 따로 있겠지요?

 

작품은 항상 끝을 맺어야 하구요, 이왕이면 그 끝에서 아이들이 뭔가 새로운 것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당장 아이들한테 시급한 문제는 성장이잖아요. 육체의 성장만큼 중요하게 가슴도 자라주어야 하는데.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서 처음부터 정했던 목표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영혼이 자란다는 게 뭐지?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궁금해하길 바라기도 했어요.

 

수리수리 약국에는 두 사람의 영혼을 바꿔주는 캡슐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병, 소심한 성격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병,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는 병 등등을 고치는 다양한 약이 있는데요, 작가님이 처방 받고 싶은 또 다른 캡슐이 있다면요?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부끄러움을 잘 안타는 그런 캡슐이 필요해요!

 

마녀 할머니처럼 유능한 약사가 된다면 고쳐주고 싶은 사람들의 병이 있나요?

 

일단 현대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병은 다 고쳐주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도 많이 아프셨거든요. 갱년기 증상에 젊어서부터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고단한 몸,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준 일도 있었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병이 왔는데 한꺼번에, 관절부터 시작해서 안 아프신 데가 없는데 약을 먹어도 듣지 않았어요. 호흡 곤란도 몇 시간씩 오는데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으로서 많이 고통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의 모든 병을 다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의 몸을 갖게 된 동동이가 발도 커지고 털도 나고 방귀소리도 엄청 커져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신체적인 변화 외에 어른과 아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요?

 

비근한 예가 되겠지만 고정관념 같은 것들 있잖아요. 어른들은 보통 한 사람을 낙인 찍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절대 뒤도 안 돌아보잖아요. 어른들은 이렇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정말 다양하게 보더라구요. 이면을 보는 건 아이들이 아닌가 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아이와 어른이 똑같은 게임을 할 때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웃음) 누가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바보와 아이들만이 진짜 답을 알고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어른들은 고정되어 있는 면이 많지만, 아이들은 변화무쌍한 생각들을 할 수 있고... 그런 생각의 차이가 가장 크지 않을까요?

 

동동이가 민숙자 아줌마와의 첫 데이트를 앞두고 코치를 받을 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모른다는 말에 아빠가 이렇게 대답해요. '상대방을 좋아하고 걱정하는 마음의 표현이 사랑이다'. 나중에 동동이가 쓰게 되는 편지글에 나오는 '평생 당신을 걱정하며 살고 싶습니다' 같은 프로포즈도 너무 근사하고.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말과 행동을 몇 가지 더 알고 계시면 들어보고 싶어요.

 

하하. 그걸 알면 제가 벌써 결혼을 했을텐데... 선물 공세? 떡볶이 사주기!(웃음). 사실 동동이가 어떻게 보면 연애의 고수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요. 기본적인 데이트 원칙은 다 알고 있잖아요. 먹을 거 사주고, 차 태워주고, 같이 놀고. 아이의 눈으로 조금 엉뚱한 판단을 해서 그렇지만.

 

연애의 고수답게 택시 타고 드라이브하는 장면도 꽤 로맨틱하거든요. 민숙자 아줌마는 동의할 수 없으시겠지만! 동동이가 딱 만원어치만 드라이브를 시켜달라고 기사님께 부탁하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드리는 질문! 지금 제가 만원을 드리면 어디로 떠나고 싶으세요? 추천해주실 만한 택시 드라이브 코스가 있으세요?

 

여기(신사동)서 만원어치면 한 사당까지 갈 수 있으려나요? 그럼 사당 떡볶이 집에? 사당동 조스 떡볶이!

 

 

 

아빠가 된 동동이가 묘묘 머리를 감겨 주다가 같이 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아빠도 이렇게 울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 순간이 바로 영혼이 자란 순간이었던 거죠? 영혼이 자란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으로 쓰신 것 같아요. 작가님도 이렇게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 경험,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한번 꼽아주셨으면 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작가님이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영혼이 크게 자랐다고 생각되는 멋진 사람, 작가님이 꼽는 '영혼의 키다리'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번 소개시켜 주세요.

 

'영혼의 키다리'라. 게임을 하다 레벨이 올라가는 건 많이 봤는데 말이죠...(웃음) 아,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아이가 한명 있었어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엄마랑 둘이서 같이 사는 아이이였는데, 엄마가 매일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하신대요. 어느 날 또 엄마가 잔소리를 하셨는데 그게 불쌍했다고 했어요, 엄마의 잔소리가. 평소에는 그냥 엄마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그랬는데, 그날은 똑같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꼭 나를 보며 우는 것처럼 보였었다고. 듣고 나서 한동안 멍했어요. 저도 사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아주 최근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걔는 너무 빨리 성숙한 건지, 가슴도 짠하고 벌써 그런 감정을 느낄 나이는 아닌데. 그래서 그 친구가 요새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영혼이 급속도로 성장한 사람이 아닐까...

 

책 띠지에 너무 크게 써 있어요. 수상고료가 천만원!(웃음) 실례지만 주변에서 상금을 어떻게 쓸 계획인지 많이들 물어보지 않으세요?

 

이미 술값으로 많이 나갔구요, 계속 물어 뜯기고 있구요... 만신창이가 돼 가는 것 같아요(웃음).

 

애들 게임비도 좀 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물론 이미 한턱 냈죠! PC방 가서 초코파이도 사주구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두 번째 문학상 수상이세요. (김소민 작가의 첫 번째 책은, 2011년 5월 출간된 '제5회 소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실험용 너구리 깨끔이>)

 

처음 상을 탔을 때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정말 상을 주시긴 했는데 제가 계속 쓸 수 있는 깜냥이 있을까? 자문도 많이 하고 자학도 많이 하게 되고 또 잘 써야 하는데 하는 고민도 많이 하고. 첫 작품을 쓰면서는 너무 많이 힘이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읽고 영향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작은 책이지만. 이 책을 좋아하는 친구도, 싫어하는 친구도 있을텐데 내가 그래서 함부로 쓰면 안 될텐데 하는 걱정이 많았고요. 주제도 들어가야 하고, 뭔가 도움이 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해, 이런 생각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 가 있었는데요. 이번에 쓸 때는 TV에서 본 이야기가 발단이 되었던 것, 거기 하나 더해서 힘든 아이들이 읽었을 때 재밌다, 신난다 기분이 한껏 좋아졌으면! 그런 바람이 컸어요.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에 작은 여운이 남아 주면 충분하다고. 정말 재미있게 써보고 싶다, 애들을 재밌게 해주고 싶다, 이런 생각 하나만 가지고 썼더니 오히려 저도 더 행복했던 것 같고, 또 아이들도 그래서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는데.

 

아 지금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아주아주 잘 나가고 있어서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작가님이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을 뽑는 심사위원이라면 어떤 작품에 마음이 가실 것 같으세요?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제가 나름대로 보기에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이에요.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어떤 글은 정말 진심으로 썼다는 게 느껴지고요. 어떤 작품에는 쓴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것저것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제 마음에 딱 와 닿는 이야기, 인물, 대화, 문장들이 있는 작품이라면 수상작으로 뽑고 싶을 것 같아요.

 

수리수리 약국이 워낙 발랄하고 즐거운 동화책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왠지 앞으로 슬픈 이야기도 쓰실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거든요.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사실은 제가 아직 캡슐 마녀의 마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웃음) 일단 가장 큰 것은, 이제 두 번째 작품까지 내고 나니까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 거구요. 독자가 한명 두명 늘어난다는 건 좋게든 나쁘게든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 사람이 하나둘 생긴다는 것이니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책읽기인데요. 쉬운 그림책을 쉽게 쉽게 보다가 글밥이 갑자기 확 많아진 책을 접하게 되는 시기의 아이들, 이 아이들이 이 때 재밌는 책을 못 만나게 된다면? 한 10살부터 계산해서 90년 정도는 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거, 그 좋은 책을 평생 못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사명을 가지고 아이들한테 아,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신나는 거구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캡슐 마녀의 다음 이야기도 쓰고 싶고요.

 

 

속편도 꼭 써주세요! 그리고 제가 동화 작가로서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여쭤보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해주신 애기로 짐작해보자면 PC방이랑 놀이터...(웃음), 그리고 또 작가님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캡슐 마녀를 쓰기 직전까지 지방에서 작은 레스토랑 사업을 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지방에서 요양도 할 겸 내려갔어요. 굉장히 바쁘게 지냈던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도 많이 건강해지고 할 즈음에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구요. 그렇게 정신 없이 살다가 저도 캡슐 마녀를 만나서 아주 행복해졌어요. 그리고 일상은 짐작하셨듯이 PC방, 놀이터, 떡볶이집...(웃음) 틈틈이 여행도 다니고요. 본과를 졸업하고 나서 법대에 편입을 하면서 아동 인권,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상담소든 인터넷이든 어떤 곳이든 장소와 역할에 상관 없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존중해줄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봐야겠다하고 있어요. 지나온 제 삶의 여러가지 경험들이, 아이들이 신나게 살아가는 데 힌트를 줄 수도 있으니까.

 

올해 이루고 싶은 소망 같은 것 있으세요, 2012년에.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많은 아이들한테 재미있었다는 얘기, 신났다는 얘기 많이 듣고 싶구요. 그리고 늘 주위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더 늦기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는데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을 읽었거나 앞으로 읽게 될 알라딘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 드릴게요. 또 같이 PC방에 다니는 친구들한테도 인사해주세요!

 

알라딘 독자분들께는요. 저도 마음이 많이 어두웠던 적이 있고 힘들어도 보고 아파도 보고 그랬는데, 어쨌든 좀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처신을 가볍게 하자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은 가볍게 살 수 있으니까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을 읽고 잠깐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질 수 있다면 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PC방 절친들이 사실은 제 정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전혀 모르고, 얘기해줘도 믿지도 않고요! 에이 무슨 이모가 이러면서. 백수인줄 알고 있어요. 그 친구들한테는 이모한테 좀 예의를 좀 갖춰라...(웃음) 이모한테 반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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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사랑은 걱정하는 마음
    from 엄마는 독서중 2012-03-19 04:07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 어른인 내가 봐도 재밌다, 그래서 두 번이나 읽었다.^^내가 재밌다고 소문냈더니, 초등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려고 차례를 기다린다. 저학년에게 좋은 책 카테고리에 넣었지만 고학년들이 더 좋아한다. 이해의 폭이 더 넓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작가님의 미모와 인터뷰도 알라딘에 올라와 있다. http://blog.aladin.co.kr/tenam/5482391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
 
 
정소담 2012-03-1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들이 너그럽다'는 말이 여운이 남네요~ 좋은 인터뷰 기사 잘 봤습니다 ^^
 

 

그림책 <마이볼>은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아버지를 추억하며 쓴 , 일러스트레이터 유준재의 자전적 이야기다. 무대는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OB 베어스가 원년 우승을 차지한 1982년. 당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야구에 빠지게 된 건 순전히 야구광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때문. 작가는 처음에는 재미있는 야구 이야기로, 나중에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그림책으로 읽히길 바란다고 말한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속수무책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떤 이들에게. 그리고 언젠가는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고, 그 자신도 아버지로 살아가게 될 다음 세대에게.

 

이 책을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라 소개한 작가처럼, <마이볼>을 읽은 독자들은 저마다의 아버지에게 긴 편지를 쓰고 싶어지게 되지 않을까. 작가가 살짝 귀뜸해 준 다음 작품 얘기로 조심스럽게 짐작해보건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족을 응시하게 하는, 뜨겁게 포옹하게 만드는 또 한 장의 편지를 곧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1년 12월 27일, 한 아이의 아버지로 또 여전한 베어스 팬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이볼> 작가 유준재 님을 만났다.

 

(사진 : 문학동네 이상혁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1-12-27)

 

아버지와 캐치볼을 했던 이는 알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향해 던진 건 야구공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아버지가 내게 그랬듯이 나도 아이에게 미안함을 던지고 있다는 걸. 이 책은 추억 속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어른의 동화이자, 아버지가 될 아이들을 위한 성장서이다. - 박동희(스포츠 춘추 기자)

 

 

<마이볼>이 나오는 데 6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제가 이걸 가져왔는데, (<마이볼>의 출발점이 된 <뼘책>을 가방에서 꺼내면서) 이게 처음에 만들었던 책이에요. 어렸을 때, 한 2004년 정도에, 대학 졸업하고 몇명이 모여서. 한 여섯 명 정도 됐을 거예요. 그 사람들하고 같이 만든 <뼘책>이라는 책이 있었거든요. <뼘책 2>에 처음 실렸었어요, <마이볼>이. <뼘책 2>은 여섯 챕터인데, 맨 마지막에 제가 실었던 글이 마이볼이거든요. <마이볼>은 뼘책을 목표로 썼던 건 아니고, 한번 아버지와의 얘기를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기회가 닿은 거였죠. 그 다음으로 이제 쭉 작업을 했던 건 아니에요.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가 문학동네 원선화 편집자님이 제의를 하셔서. 단행본으로 내보지 않겠냐 말씀하셔서 다시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럼 이 <뼘책>은 처음 만드셨을 때 배포가 어떤 식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됐었나요?

 

저희가 만들어서 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아서... 어떻게 보면 개인출판 형식으로 냈던 거고, 판매는 이제 대형 서점이나 뭐 그런 쪽이 아니라...

 

아 판매도 하셨었어요?

 

아 예, 오천원씩 받고 팔았어요. 안 팔렸죠(웃음). 아티누스 같은 서점들, 홍대 앞 카페 같은데 그런 데서 팔았었어요.

 

아 그럼 그때 편집자 분께서 보시고.

 

전시도 했었거든요. <뼘책 2>로 전시도 했었는데, 그 전시회 때 보시고. 그때부터 단행본 작업을 위한 시작이 된 건데, 그때가 2008년도였죠.

 

<뼘책 2>(왼쪽)

 

글과 그림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책, 소감이 어떠세요?

 

기분이 좋죠. 애착이 더 가고, 기간도 워낙 많이 걸렸고. 기분이 좋죠(웃음).

 

아직 <마이볼>을 읽기 전인 독자분들께, 작가님 목소리로 어떤 책인지 짤막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제 아버지가 워낙에 무뚝뚝하고 그랬던 사람이라. 어렸을 때부터 참 대화를 하기 힘들었어요. 의사소통하기도 힘들고, 대화를 하기도 힘들고. <마이볼>에는 그랬던 아버지를 어떻게, 제가 아버지에 대한 것들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서 편지처럼 쓴 글이에요. 아버님한테 드리는. 아버지하고 가장 소통이 많았던 야구를 통해서, 야구라는 소재를 통해서였던 거죠.

 

<마이볼>이 출간되기 전에 고인이 되신 아버지께서, 만약 책을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솔직히 아버지도 보신 적은 있어요. 요기 요거(<뼘책>)로. 같은 책이니까. 2004년에 나왔던 책은 보셨는데, 그때도 아무 얘기를 안하셨어요(웃음). 워낙 무뚝뚝하신 분이라. 그래도 마음 속으론 기분이 좋으셨겠죠. 당연히. 아들이 책을 썼으니까. 자기 아버지한테 드리는 책이니까 기분은 좋으셨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하셨던 것 같아요. (웃음) 수고했다, 정도 얘기하셨던 것 같아요. 그냥.

 

이제는 작가님도 아버지가 되셨잖아요. 혹시 아이가 <마이볼>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됐나요?

 

아뇨, 아직. (표지의 야구공 그림을 가리키면서) 축구공인 줄 알아요(웃음).

 

아, 아이가 아빠책을 어떻게 읽었을지도 궁금했었거든요.

 

아직 읽진 못하고, 아빠 축구공 책이라고 그냥... (웃음)

 

그럼 <마이볼>을 읽은 사람들이 해줬던 이야기 중에 마음에 들거나 기억에 남는 감상평이 있다면요?

 

저는 <마이볼>을 보신 독자분들이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장황하게 슬퍼하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생각하고 쓴 책은 아니거든요. 몇몇 리뷰 들을 보니까 정말 슬프고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많이 하셨는데. 그런 것보다는 조금 가볍게, 아버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돼서 좋았다, 그게 더 좋더라구요.

 

아, 저도 작가님의 그런 바람이랑 다르게 읽은 독자였는데...

 

아아 예(웃음). 어떻게 읽으셨는데요?

 

아주아주 슬프게요(웃음).

 

예, 그렇게 슬프게들 읽으시더라구요. 사실 아버님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책에 하나도 쓰지 않았거든요. 쓰지 않았는데 그런 게 좀 느껴졌는지 슬프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렇게 안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어머니와 중매로 만나

동대문야구장에서 세 번 데이트하고 결혼을 했다." - <마이볼> 본문 중에서

 

첫 페이지 첫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고 간결한데, 그게 좋으면서도 혹시 부모님 결혼 에피소드가 이렇게 짧았을리가,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지, 숨은 이야기를 작가님께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대사를 아주 많이 고민했어요. 편집자분들도 그렇고. 아버지하고 결혼할 때 얘기는 어머님이 저한테 얘기해주셨든요. 어머님은 야구장에 한번도 가보신 적이 없고 야구도 전혀 모르시는데, 세 번을 데려가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데이트하는 방법도 모르셨던 것 같아요. 그냥 일단 본인이 재밌으시니까 좋아하니까 데려간거죠, 어머니를. 야구장에 딱 세번 데려가시고 결혼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게 기억에 굉장히 남았었어요, 저는. 아, 그 정도로 아버지가 재미없고 멋없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첫 문장에는 그걸 나타내고 싶었어요. 우리 가족. 그렇게 탄생이 된 거니까. 참 멋없는 아버지가 멋없이 결혼을 하셔가지고 우리를 만들었구나. 그런 얘기부터 시작하고 싶었어요.

 

작가님 결혼하실 때도 야구장 데이트는 빠지지 않았었나요?

 

아, 저희 와이프도 야구를 굉장히 싫어해요(일동 웃음). 그래서 딱 한번. 잠실 야구장에 데려갔어요. 그 이후로 한번도 가자는 이야기를...(웃음) 전 너무너무 재밌었는데, 다신 가잔 얘기를 안하더라구요.

 

"아버지는 늘 바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아버지 얼굴을 보기는 힘들었다.

어쩌다 운이 좋아야 과자나 만화책을 사 들고 퇴근한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밤늦게까지 아버지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 <마이볼> 본문 중에서

 

제가 <마이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초반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퇴근 길 장면인데, 퇴근길은 아주 큰 원형이고 이 길을 다 걸어서 오셔야 이제 집에 도착하는. 아주 고단한...

 

예, 그렇죠. 그렇게 읽어주셨으니까 제가 맞게 그렸나봐요(웃음).

 

아 그게 맞나요? 어떤 의도를 가지고 화면 구성을 하셨겠구나 짐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보면 아주 좋은 질문이신데요(웃음). 처음에는 원형이 아니라 아예 다이아몬드였어요. 처음 스케치했을 때는. 저는 아버지의 필드를 그리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그러니까 원래 그 홈베이스라는 게... 아시죠?(웃음). 홈베이스가 집 모양이잖아요, 그래서 거기 들어오면은 1점을 주는 거예요, 야구가. 그러니까 그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야구가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런 얘기도 많잖아요. 무사히 1루 2루 3루를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1점을 준다, 그러니까 잘했다라는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항상 맨날 집을 떠나서 자기 일을 보시다가 이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자기도 기분이 좋고, 저도 그렇고. 아버지가 그러니까 1점을 받으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기분이 좋다는 걸 나타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다이아몬드로 그렸다가, 그러니까 조형상 다이아몬드가 조금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이렇게 동그랗게 잡아봤습니다.

 

또 하나 이 페이지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아버지는 어떤 직업을 가지셨었는지... 아버지가 손재주가 좋으셨다는 이야기도, 뒤에 나오는데요.

 

아버지가 설계 일을 하시다가 건축일을 하셨어요. 처음에 설계 일을 하셨던 굉장히 꼼꼼하셨던 분이죠. 저에게 아무래도 그런 게 조금 영향을 줬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맨날 설계하시는 걸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까. 판이라고 하죠, 거기 자를 대고 그리시는... 그런 건축 일을 하셨죠.

 

쉬는 날이면 집안 구석구석을 손보셨다는 대목도 나오는데, 아버지가 수리하셨던 물건들은 작가님이 다 망가뜨린 것들이었나요?(웃음)

 

아마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아버님이 무서워서 집에 있을 때는 그러니까 뭘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진짜 혼났어요. 가만히 있어도 무서운 분이셔서 제가 그림 상에도 보시면 아버지랑 가까이 붙어 있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랑 항상 놀고 싶어도 가깝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림에서 잘 표현이 됐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항상 떨어져 있죠.

 

"쉬는 날에, 아버지는 말없이 신문을 보거나 집 안 구석구석을 손보았다.

낙서투성이 담벼락, 깨진 화분, 고장 난 라디오..." - <마이볼> 본문 중에서

 

그리고 이 장면에서 보면 주인공이 <보물섬>을 읽고 있잖아요.

 

야, 자세히도 보셨네(웃음).

 

그 보물섬에 얽힌 재밌는 얘기가 많을 것 같아서, 이 만화잡지에 대해서도 한번.

 

보물섬, 보물섬은 저도 기억나는 게 아버지가 가끔 미안하셨는지 맨날 늦게 들어오시고 하니까. 집에 오는 길에는 뭘 하나씩 들고 계셨어요 맨날. 과자도 사들고 오시고. 어느날은 보물섬을 들고 들어오셨더라구요. 그게 창간호에요, 이 여기 그려져 있는 게(웃음). 기억이 나요. 창간호 보물섬 10월호를 들고 오셨더라구요. 그때 기억이 많이 남아서 그려본 거예요.

 

그럼 어렸을 때 <보물섬> 말고 또 어떤 책을 좋아하셨어요?

 

보물섬이 워낙 인기가 많았었잖아요, 소년중앙이나 뭐 그런 것보다도. 그러니까 보물섬이라는 게 되게 컸던 것 같아요. 정말로 재밌게 읽었던 보물섬! 그리고 만화책 같은 거는 정말 열심히 봤죠.

 

초반에 아버지 무뚝뚝한 성격을 얘기해주셔서 이제 알 것도 같은데, <마이볼>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매 장면에서마다 표정이 하나도 없으세요. 화난 얼굴도 아니고 웃는 얼굴도 아니고. 안경을 낀 무표정으로만 그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예, 있어요. 입을 뺐죠, 제가. 어떻게 보면 가리기도 하고. 뺐던 게, 아버지 입을 그리게 되니까 아버지의 느낌이 안 나더라구요.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분위기가 아니더라구요. 제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항상 어려웠기 때문에 얘기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렇게 입을... 딸한테도 그림을 보면서 할아버지라고 알려주니까, 왜 입이 없어? 그러더라구요, 제 딸이. 왜 할아버진 입이 없냐고. 의도적으로 그 부분은 뺀 거예요.

 

아 말씀하신 걸 듣고나니까 구체적으로 더 이해가 가는데. 여쭤보기 전에도 살짝 이런 짐작을 했었거든요. 아주 친밀하고 살가운 사이처럼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래서 의아했던 것이 이 TV야구중계를 같이 보는 장면이었어요. 야구를 시작할 때면 아버지가 같이 보자고 부르셨을지, 아니면 아들이 알아서, 야구 보고 있는 아버지 곁에 따라 앉은 건지. 그러니까 책 속에는 나란히 앉아서 TV보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바로 전 상황이 잘 그려지지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부르신 게 아니고 아버지가 불렀다기보다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걸 저도 하고 싶었던 거죠. 아버지가 싫진 않은데 어려웠던 거죠. 그러니까 아버지 옆으로 좀 가고 싶어서 그러니까 제가 찾아가서 본 거예요. 이렇게 아버지 옆에 있으면은 아버지랑 얘기도 할 수 있고. 이 소파도 일부러 죽 이렇게 길게 늘려서 그렸어요. 아버지랑 얘기를 하고 싶어도 야구중계가 아니면 기회를 잡기가 힘들었었죠.

 

"아버지가 유난히 말씀이 많아지는 때는 야구 중계 시간이었다.

안타를 치지 않고도 1루에 나가는 방법,

동시에 두 명을 아웃시키는 방법,

삼진을 당하고도 살 수 있는 방법...

아버지는 야구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 <마이볼> 본문 중에서

 

그럼 야구가 처음 좋아진 어떤 순간이 있었다기 보다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걸 자연스럽게...

 

그렇죠. 그러다 보니까 야구가 너무 재미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랬던 거죠.

 

미즈노 글러브랑 배트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 미즈노 글러브를 갖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거였냐, 다른 분들한테 여쭤보기도 했었거든요.

 

그렇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이거면 끝나는 거죠!

 

처음 아버지에게 글러브를 선물받은 날 밤 글러브에 바셀린을 듬뿍 발랐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건 글러브를 길들이기 위해서였던 거지요?

 

그렇죠. 처음 새 글러브를 받으면 뻣뻣하잖아요. 어렸을 때 야구하셨던 분들은 아마 다 아실텐데요. 처음에 그 바셀린 로션을 바르면은 가죽냄새가 확 올라와요. 너무 좋으니까, 그 냄새가 좋은 게 아니라 글러브가 너무 좋으니까 다들 그걸 베고 자요. 공을 넣고 베고 자면 글러브가 부드러워지면서 공을 받기 좋게 변하죠. 옛날엔 그랬는데 지금도 다들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글러브를 아버지께 사달라고 조르신 거예요, 아니면 어떤 다른 날처럼 아버지가 퇴근길 선물로 불쑥 들고 오셨던 거예요?

 

솔직히 진짜 어렸을 때라 저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조르기도 했겠죠, 몇 번은. 아마 갑자기 가져오시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현관에서. 그 다음부터 다른 야구용품도 사기 시작하고...

 

 

그렇게 글러브가 생긴 다음부터 집 앞마당에서 세 부자가 모여서 야구를 하게 되신 거죠? 형은 타자. 타자 역할을 맡은 형은 실력이 어땠나요?

 

아, 이건 뭐. 형이 타자도 했지만 계속 바꿔야죠(웃음). 세 명이서 밖에 놀 수가 없으니까. 아버지가 투수할 때도 있고. 계속 바꿔간다는 거죠. 꼭 타자만 했던 건 아니기 때문에...(웃음).

 

그러면 야구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셨겠네요?

 

그렇죠.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요즘도 놀이터에서 캐치볼하시는 분들이 종종 보여요, 아들을 데리고. 그래서 제가 글 쓰면서도 내려다보고 하는데요. 지금 캐치볼을 하듯이, 예전에도 일요일 같은 때 아버지들하고 야구하는 게 유일한 놀이였죠. 아버지가 알려주시고, 공을 잡고 그런 장면들이 제 기억에 아주 많았어요. 저도 꿈이 그거였어요. 아이를 낳아서 야구를 좀 가르쳐 주면 좋겠다!

 

아버지, 형이랑 셋이 야구하던 시절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제일 기억에 남는 거는, <마이볼>에도 썼듯이 제가 정통으로 맞아서. 형이 휘두른 배트에 맞아서 굉장히 크게 다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피가 진짜 너무 많이 났는데 '다 다치면서 크는 거야'(웃음). 그 대사도 처음에는 넣었다가 애들 보기에 좀 그런 것 같아서. 막 피가 난자한 상황에서 그런 대사(웃음).... 그래서 뺐어요.

 

참, 어머니 모습은 가족사진에서 빼고는 볼 수가 없는데요. 아무래도 야구 얘기라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로 집중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요.

 

처음에는 어머님이 화자로 전개하는 이야기로 구상을 해서, 사실 어머님 대사도 있었어요. <뼘책>에는 어머니 비중이 좀 있어요. 어머니하고 아버님하고 저하고 맨 마지막에 전화 통화하는 내용이 있어요. 근데 그걸 이번에는 뺐어요. 아버지하고 저의 이야기로 끌어나가보고 싶어서. 원래 <뼘책>에 실린 이야기는 아버지와 저를 포함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고요. 야구를 소재로 하긴 했지만, 야구를 풀려고 했던 이야기는 아니에요. 아버님이 이제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하고 대화를 할 때, 한번도 '아버지, 제가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해요' 하면서 시작해 본 적은 없거든요. 항상 '이승엽 요새 어때요?'하면서 말문을 열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면. 제가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은 어떻게 회상해볼 수 있으시겠어요?

 

82년도면 아마 야구가 제일 극적이었던 때라 그러니까 또 올해는 한국 야구가 30주년이 된 때다 보니까 얘기도 많이 하고. 그때는 너도나도 다 어린이회원. 다들 동네에 얘는 어디 거, 얘는 무슨 팀 잠바, 또 무슨 팀 잠바... OB잠바 입고 다니고 삼성잠바 입고 다니고. 그러니까 동네가 다 야구, 어린이들은 다 그거였어요.

 

그 때 작가님이 몇 살이셨죠?

 

따져보니까 그때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사진 중에, 제가 그때부터 미술을 많이 했었거든요. 사생대회라고 하나요? OB베어스 야구복을 아래위로 입고 사생대회 시상식에 나가서 굉장히 이슈가 됐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린 그림을 가져왔는데요. (일동 환호)

 

 

제가 상을 탔었거든요. 시상식에 야구복 입고 가 가지고. 아, 초등학교 2학년 때네요. 1학년 때 그린 그림으로, 2학년 올라가서 아마 상을 받았었나봐요.

 

와, 은상을 받으셨네요!

 

이게 한국 시리즈 6차전, <마이볼>에 나오는 그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에요. 그때도 그게 기억에 남아서. 어렸을 때 그린 이 그림을 그대로 <마이볼> 속에도 그대로 넣고 싶었었는데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결이 안 맞는 것 같아서 싣지는 못했지만.

 

혼자서만 외롭게 OB를 응원했던 건 베어스의 예쁜 유니폼 때문이었다고 하시는데, 그래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랑 형이 응원하는 팀(삼성)을 따라갔을 법도 하거든요. 두 사람이 혹시 삼성편으로 데려오려고 설득하지는 않으셨어요?

 

그것도 아마 어떻게 보면은 그 얘기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버지하고 다른 사람이라는 것. 물론 아들이고 아버지가 던진 공을 제가 받았지만... 어딘가에도 썼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던진 공은 아버지가 던질 수는 있어도, 받는 거는 아버지가 기대하고 설레일 뿐이다 라고 제가 썼었는데 그 얘기를 좀 암시했던 것 같아요. 디자인이 좋아서 그랬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제가 나중에 미술을 하게 됐잖아요. 그 걸 조금은 암시하고 싶었어요. 각자 좋아하는 게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게 된다는 것. 어렵게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번도 흔들린 적은 없어요(웃음). 지금도 흔들릴 생각이 없구요. 평생 OB 베어스 팬만 할 것 같아요.

 

이미 그무렵부터 확고하게 디자인에 대한 평가를 하실 정도였는데, 미술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으셨던 거예요?

 

그림 그리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이요. 소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주 예전부터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어린 시절에 벌써 구체적으로 정해놓지는 않으셨겠죠?

 

어렸을 때 꿈은 그냥 화가였겠죠.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다고.

 

그럼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작업하시게 된 계기가.

 

그건 대학교 4학년 때, 제가 작업실에 있는데 어느 날 디자이너분하고 선배님이 찾아오셨어요. 제가 섬유미술과를 나왔거든요. 에스키스라는 작업 해놓은 걸 그때 보시고. 지하 작업실이었어요. 두 분이 작업할 사람을 찾던 TTL잡지 표지 제목이 '언더그라운드'였고. 제가 지하 작업실에서 그리고 있는 걸 보더니 이 사람이 이걸 해야겠다, 얘가. 하셔서 그 표지를 맡아서 하게 된 게 일러스트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처음에는 패션 디자이너로 취직을 했었는데, 적성에 안 맞아서 바로 접었어요(웃음).

 

지금도 작업실에서 일을 하시고요?

 

그렇죠. 워낙 벌려놓고 해야 되는 일이니까 작업실이 따로 하나 있고. 집에서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저는.

 

아 그러면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딸이 보고, 예전에 작가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한테서 영향을 받을 수 있겠네요.

 

돌겠어요(웃음). 물감 같은 걸 갖고 제가 하니까 자기도 옆에서 계속 하고 싶어서. 막 물감도 찍어보고.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도.

 

<마이볼> 이전에도 동화책에 일러스트 작업을 하신 적이 있으세요. 그림 작업한 책 중에서 특별히 아끼는 작품을 하나 골라주실 수 있으세요?

 

제일 애착이 간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마이볼>이란 책도 윤소연 디자이너가 기획을 하셨는데요. 제가 초기에 <화성에 간 내 동생>이라고, 윤소연 실장님 권유로 단행본 책을 처음 하게 됐었거든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첫 작품이기도 하고 그리고 되게 재밌었어요. 새롭게 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동화책에 그림 그리는 작업이랑, 글과 그림 모두 작업하는 것 두 가지 병행할 계획이 있으세요?

 

처음 해봤는데, 글과 그림 모두 작업하는 것에도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구요. 그림만 참여했을 때와는 또 다른 만족감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참 어려운 작업이다 보니까... 확실히 글 그림을 같이 하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목표는 일년에 한 권?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 두 번째 작품 구상이나 준비도 시작하셨구요?

 

네! 아직 말씀 드릴 단계는 아니지만!(웃음)

 

앗 그럼 다음 작품도 기대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맞게 봤는지 모르지만, <마이볼>에 나온 82년 OB:삼성 6차전 경기가 야구장 첫 나들이였었던 건지요?

 

그거는... 솔직히 말씀을 드려야 하나요?(웃음) 사실은 이날 가지는 못했어요. 이날 갔다는 건 팩트가 아니에요(웃음). 그 전에는 몇 번 갔었죠. 아버지랑. 그 삼성이랑 경기가 있었을 때. 이 때는 표를 구하지 못했어요. 야구장에서는 못 본 경기였어요.

 

그럼 다른 경기 때, 처음 야구장에 들어섰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너무너무 좋았죠! 이런 세상이 있었는지를 몰랐을 정도로 화려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응원도구들, 그 와하는 함성소리, 같이 응원하면서 들어가거든요. 경기장을 그렇게 들어가거든요. 나올 때도 그렇고. 정말 좋았어요. 야구를 좋아하려면 야구장을 꼭 가야될 것 같아요. 야구장을 가지 않고는 야구를 좋아할 수가 없죠. 없습니다(웃음).

 

 

6차전 경기 때는 삼성이 졌는데 작가님은 기분이 좋으셨겠지만, 형하고 아버지는 영 아니었을 것 같거든요. 경기가 끝나고 분위기가 좀 험악해지지는 않았나요?

 

아, 평소 때는 아버님이 삼성이 지면 굉장히 싫어하셨어요. 근데 이런 날은 서로 잔치라고 생각을 하니까. 아버님도 그러진 않으셨구요(웃음).

 

올해 2011년은 야구 팬으로서 어떤 해였다고 말씀하실 수 있나요?

 

올해는 참 야구가 정말 많이 붐이었잖아요. 붐이었는데 저는 두산이 플레이오프를 못 올라가서 실망이었는데, 재밌었어요. 삼성이 대신 우승을 했잖아요. 삼성이 우승을 해서 아버지가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야구를 워낙 좋아하시니까 프로야구 출범 30주년 축하 메시지라도 한 마디해주신다면?

 

야, 그런데 이거 너무 야구 얘기만...(웃음) 30주년, 기분 좋죠. 야구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막 인기가 더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점점 더 많아지는. 다들 저처럼 손잡고 아버지하고, 온 가족이 손잡고 한번쯤은 야구장에 가보시면 좋겠어요.

 

<마이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랑 전혀 야구를 하지 않게 되고, 목욕탕도 함께 가지 않게 되었다는 대목이 있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이건 어쩔 수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으신지 작가님에게 한번 듣고 싶었어요.

 

어찌보면 쓸쓸한 얘긴데, 그런 시기들이 다들 있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자기 일에 빠지고, 자기 공부하고, 사춘기 지난 다음에 또 대학 들어가고 하다 보면은.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때는 정말 외로워지는 거거든요. 아버지는 외로워지고. 아들이 어렸을 때 다가서려고 했던 것처럼, 아버지도 그때 다가서려고 하면 아들이 바쁘잖아요. 사이는 또 벌어지고. 그때 모두에게 그런 쓸쓸함이 오게 되고, 뭐랄까, 그게 계속 이어지는 것 같은 것. 그런 쓸쓸한 그 느낌도 <마이볼>에 담고 싶었어요. 제가 커가고, 아버지는 늙어가고. 아버지는 언젠가 돌아가실 것 아니에요. 저는 또 똑같이 아버지가 될 거고. 또 제 자식은 제가 바쁠 때 저한테 다가서려고 해도, 제가 시간이 없어서 못 받아줄 거고. 계속 그렇게 이어져가는 것 같아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하신 게 그 얘기인 것 같아요.

 

예전 만큼 요즘 아버지들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잖아요. 예전 아버지들은 그래서 살갑지 못했고. 아무리 바빠도 요즘은 아빠들이 아이들한테 많이 치중을 하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앞에서 말한 이야기는 저희 세대에서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 같아요. 저희 세대 때 아버지들이 느끼는. 바쁘지만 살갑게 대해주지는 못하지만 아버지들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들은 애기들이랑 시간을 많이 갖기가 힘들잖아요, 그런 아버지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좀 해봤어요.

 

서문에서 본인의 아버지를 가리켜 '유명 인사는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의 든든한 가장이었던 평범한 나의 아버지'라 소개해주셨는데, 작가님은 앞으로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으세요?

 

저희 아버지처럼 어려운 아버지로 비춰질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아버지처럼 무뚝뚝한 아버지는 없겠죠, 없을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잘못하셨다는 게 아니고, 저는 조금은 아버지보다는 덜 무뚝뚝하고 따뜻한 아버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책임감. 책임감은, 어떤 아버지든 다 느끼는 책임감일 거예요. 제가 경제적으로 힘들고 그런 것을 떠나서요. 그런 책임감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한테 내가 어떻게 해주느냐가 아주 중요하잖아요. 아버지도 말씀은 없으셨지만 제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한다는 이야기는 은연 중에 계속 저한테 하셨던 것 같거든요. 저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제 딸한테 이래라저래라 다 꼬치꼬치 얘기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평생. 아버지로서요. 또 딸이니까 조금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어떻게 살아라라고 하는 얘기를. 다 해줄 순 없고 대부분은 지켜봐 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이의 미래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항상 지켜봐주는. 아버지의 역할인 것 같아요, 그게.

 

 

야구 얘기가 너무 많긴 한데(웃음), 이왕 준비해온 거니까 조금 더 여쭤볼게요. 앞에서 하신 말씀 중에 답이 이미 나오긴 했는데(야구를 좋아하려면 야구장에 가야한다!), 저처럼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해주신다면?

 

다들 얘기하시잖아요.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 같다고. 볼 때마다 역전의 드라마고, 자기 팀이 져서 실망할 때도 있고. 야구는 정말로 가만히 보고 있으면은 정말 인생 같아요. 누가 이런 얘길 했는데, 야구만 사람이 들어왔을 때 점수를 준다고. 축구나 농구나 공이 들어가야 점수가 나잖아요. 그런데 야구만이 유일하게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를 주는 운동. 일단 홈베이스부터 집 모양처럼 생겼고, 가족과 인생을 담고 있는 것이 야구라고 생각해요. 야구를 모르시는 분들도 꼭 야구 경기를. 제가 마치 야구 홍보대사가 된 것 같네요(웃음). 그리고 아버지하고 가족들이 꼭 같이 봤으면 좋겠어요.

 

제일 좋아하는 야구 선수를 공개해주세요! 그리고 본인이 야구 선수가 된다면 맡고 싶은 포지션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김동주 선수죠. 김동주 선수가 프랜차이즈 스타잖아요.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 선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저도 야구를 했었어요. 아버님이 하게 해주셔가지고. 리틀 야구 같은 걸 했었는데, 그때 유격수를 했었어요.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다시 하더라도 역시 유격수를 해보고 싶어요. 야구는 유격수!

 

야구가 유년 시절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쉽게 짐작이 돼요. 혹시 야구 외에도 어렸을 때 많이 좋아했던 것, 큰 영향을 줬던 것을 떠올려 보신다면요?

 

만화책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어렸을 때 책을 솔직히 많이 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만화책은 정말 좋아했어요. 야구 만화 재밌는 거 되게 많거든요. 야구만화 중에 H2 같은 거 너무 좋아하고.

 

<공포의 외인구단>도 혹시 좋아하셨어요?

 

너무너무 좋아했죠. 그 만화가 보물섬에 나왔던 거니까.

 

야구 질문은 이제 진짜 마지막인데요(웃음), 평생 제일 기억에 남는 게임으로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그 박철순 선수 은퇴 경기요. 저도 갔었거든요. 펑펑 울었어요. 마운드에 키스를 하는 그 장면. 박철순 선수를 <마이볼>에도 그렸지만 정말 좋아하는 선수였어요. OB베어스 하면 박철순 선수죠. 박철순 선수 은퇴식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너무너무 울었었어요.

 

<마이볼>에 등장하는 박철순 선수(오른쪽)의 모습

 

 

작가님이 좋아하시거나 작가님에게 자극을 주는 그림책 작가들 소개도 좀 부탁 드릴게요.

 

저 같은 경우는 여러 작가들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에요. 3대 작가라고 얘기하는 존 버닝햄, 찰스 키핑,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세 작가들의 작품. 그리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새벽>이라는 그림책은 정말 많이 좋아해요. 유리 슐레비츠의 작품인데,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동 같은 게 있잖아요. 요즘은 일본 작가들 작품에 빠져있거든요. 초신타라든지 아라이 료지 같은 그림 스타일이나 해석 방법이 좋아요. 통쾌하다고 할까요? 특히 일본 서적들은 상상력도 너무 기발하고 통쾌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2011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해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나, 올해 안에 꼭 하겠다고 세워두신 계획이 혹시 있으세요?

 

일단은 저는 처음 책이 나왔으니까, 올해 안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제일 하고 싶은 건 이제 제 다음 책에 대한 구상을 좀 해봤으면 좋겠고. 올해 안에 제일 하고 싶은 건 한번 뭐라고 해야 할까. 요즘 조금 바빴었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2박 3일 정도 갔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어른들도 좋아할 수 있는 그림책이지만 어린이들, <마이볼>을 읽게 될 초등학생 독자들에게 특별히 한 말씀 부탁 드릴게요. 또 하나, '이번 겨울에 이거 한번 해봐'하고 권해주실만한 것 혹시 있을까요? 얼마 전에 겨울방학이 시작됐거든요.

 

추우니까 야구를 하기는 좀 힘들고...(웃음) 초등학생 친구들한테 뭘 시킬까...(웃음). 책을 많이 읽어보면 좋겠어요, 겨울방학에. 그림책을 많이 보고 상상력을 많이 키울 수 있는 그런 겨울방학이 됐으면 좋겠어요. <마이볼>이 솔직히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린이 책으로 처음에 나왔던 책이 아니라서 대상을 낮추는 작업이 사실은 좀 힘들었거든요. 조금 더 내려보고 싶었는데 완전히 내리진 못한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좀 어려운 책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모님한테 하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쉽게 처음에는 재밌게 야구 얘기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아버지 얘기라는 것을 나중에 조금 더 커서 느낄 수 있겠죠. 근데 그 조금 어렵더라도 재밌게 야구책으로 읽히면 좋겠어요, 어린이들한테는. 그리고 조금 더 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준재 작가님의 새해 소망 들어보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소망. 새해 소망은... 내년에 꼭 두산이 우승을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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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2-01-0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보게 되었는데 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책이네요^^

딸기꼬치 2012-01-03 18: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꼭 같이 읽어보세요!
 

소설가 심윤경이 돌아왔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공백기를 마치고. 다시 독자들을 찾은 그가 준비한 것은 뜻밖에도 세 권의 동화책이다.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 엉뚱하고 언제나 제멋대로지만, 그 통통 튀는 매력 앞에 어른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시리즈의 첫 세 편(<화해하기 보고서>, <개구리 폭탄 대결투>, <반짝 구두 대소동>)에서는 학교와 집, 떡볶이 가게를 안 가리고 온갖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귀염둥이 은지가, 2012년 초 출간될 세 편의 동화에서는 은지를 짝사랑하는 호찬이가 주인공으로 활약할 예정. 시리즈 출간을 앞둔 2011년 10월 6일, 동화작가로 변신한 심윤경 씨를 사직동의 한 까페에서 만났다. 매력덩어리 은지와 호찬이는 어떻게 탄생했는지부터 데뷔 10년을 맞은 소감, 올해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의 엄마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 심윤경 작가의 신작을 고대했던 독자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할, 새로운 소설의 출간 예정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사진 : 사계절출판사 정미은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서라벌 사람들> 이후 3년 만의 신작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간의 근황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2008년에 <서라벌 사람들>을 썼는데, 그 이후로 아주 긴 정체기가 왔어요. 개인적인 정체성의 위기이기도 했고. 제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할만큼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정체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화를 쓰게 됐어요. 그 전까지는 동화를 쓰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많은 것이 흔들리는 시기이니까 모색해보는 기회로 삼아보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뚜렷한 게 없으니까. 그러면서 마침 유아에서 어린이로 접어든 제 아이에게도 이야깃거리가 좀 더 풍성해졌죠. 아이와 아이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것들을 조금씩 모아서 썼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즐거웠고 여기 몰랐던 나의 적성이 하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는 저한테는 굉장히 고마웠던 작품, 힘든 시간을 같이 해준 작품이에요. 이제는 앞으로 어떤 힘든 시간이 돌아와도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기까지 동화가 참 많이 도와줬습니다. "

소설가로 데뷔를 하시고, 또 한번 동화작가로 두 번째 데뷔를 앞 두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가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났기 때문에 사는 지역도 떨어져 있고 성별도 나이도 또 조금씩은 다 흩어져 있는, 아이 또래 친구들이에요. 지방에 사는 친구, 남자아이들, 공부를 잘 하는 아이, 못 하는 아이, 이렇게 성격도 제각각이고. 누구나 자기 주변을 기준으로 살게 되잖아요. 저도 그랬는데, 좀 더 넓은 범위 안에서 아이들을 보게 된 거죠. 아 세상에 아이들이 이렇게 다양한데, 이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 코드를 저는 '웃음'으로 잡았어요. 웃음.  

아이들은 웃는 존재들인데 지금까지 이제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접했던 바로는 한국 아동문학에서 그 코드는 잘 짚어지지 않은 부분인 것 같았고요. 또 사회적인 책임감, 정의감각, 도덕, 그런 부분을 다루는 데 충실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한국동화라는 것에 대해서 약간은 부담감 같은 것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는 아이들도 느끼잖아요. 아이들은 많은 걸 받아들이는 존재들이지만, 무언가 목적성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부담이 되니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너희는 충분히 아름답고 재미있고 너희의 생활 자체가 굉장히 가치 있는 거다, 너희의 감정과 생활, 이것이 정말 좋은 소재가 되고, 가치 있다라는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동화의 독자일 때 그리고 동화를 쓰는 시작한 이후, 두 시기에 느꼈던 동화의 매력에 혹시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먼저 동화 작가로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입장에서 언제나,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이전에는 피상적으로 보던 것들을 글쓰기를 통해 주의 깊게 보고, 또 새로운 의미를 캐나가는 것이 보석찾기를 하는 것처럼 굉장히 기쁘거든요. 아이의 경우에도 내가 키우는, 내게 많은 일거리를 안겨주는 그런 존재이기만 할 때보다, 글의 소재로 삼으니까 또 아이가 다른 눈으로 보이더라구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이럴 때 욱 하고 또 저럴 때 욱 하는 순간이 많은데요. (웃음) 내 아이 뿐만 아니라 아이의 동네 친구들, 또 아이들 일이 어른들 일이 되어서 저도 휘말려 들어가고 그런 일이 생기는데, 많은 것이 객관화가 되고 많이 용서가 되고 '웃기면 용서한다. 나는 웃기면 용서하겠다'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저에게 웃음으로 접근하겠다는 기본 방향이 있으니까. 나는 얘 때문에 내가 진짜 미쳐 죽을 것 같은데,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남들이 날보면 참 웃기겠다, 나는 죽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서 피식하고 쌓였던 게 가라앉고 웃으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당사자가 아닌 제 3자로서 아 이 상황에는 이 아이의 자람과 개성이 녹아져 있구나라는 게 보이면서 더 좀 덜 감정적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아직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를 읽기 전인 독자분들께 미리 간단한 작품 소개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될 어린이들에게 기대하는 반응이 있으시다면 같이 들려주세요. 

"이 은지와 호찬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아주 평범한 초등학생들이에요. 작품 속에서는 아직 1학년이구요. 학교를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학교란 무엇일까라고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요. 그건 사실 부모쪽이 더 크기도 하죠.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아이들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그 첫 마음이 저에게도 굉장히 컸는데, 부담감이랄까 불안감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좀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들에게 학교에 간다는 건 굉장히 즐거운거고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다, 학교에서 너희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구요. 

(책을 읽게 될) 아이들에게 제가 바라는 건 정말 한가지 밖에 없어요. 보고 즐거우면 돼요. 정말 엄마 나는 이 책을 읽어서 너무 즐거웠어라는 반응?. 이게 벌써 끝나서 아쉬워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면 좋겠고요. 또 하나 특별히 더 바랬던 건요. 일반화이기는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그래도 책을 많이 가까이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남자아이들은 책읽기에 쉽게 흥미를 못 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이 동화가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더군다나 글밥과 부피가 꽤 되는 그런 책에 좀 약간 겁을 먹는 책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쉽게 편안하게, 아 글씨만 있어도 재미있네 즐거웠어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지독한 편식쟁인 은지는 흰 우유, 과일, 시금치, 김치, 나물 등 안 먹는 게 너무 많다. 은지를 놀려먹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개구쟁이 호찬이는 은지가 ‘골고루 먹는 어린이 스티커’를 한 장도 못 받은 걸 가지고 놀려댄다. 이런 은지에게 이모는 우유 한 잔을 쿨하게 마셔 보라고 부추긴다. 우유를 마시니 배 속이 꾸륵꾸륵 요동을 친다. 은지는 배 속에 수백 마리의 개구리들이 들어앉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배 속 개구리들 때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은지. 호찬이의 놀림에 그나마 남은 힘으로 호찬이 얼굴에 개구리 방귀 폭탄을 발사하는데... 
"여태 장조림만 먹었으니까 이제 다른 반찬도 좀 먹어야지! 골고루 먹어야 키가 크지!" 
엄마가 물을 가져와서 김치를 헹구어주었다.
"자, 우리 은지도 김치 잘 먹을 수 있지? 이제 물에 헹궜으니까 안 매워. 먹어 봐!"
"싫어! 너무 커! 작게 해 줘!"
엄마는 김치를 조금 잘라 주었다.
"아직 여기 고춧가루 묻어 있잖아!"
엄마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였다.
"자, 다시 한 번 씻었다. 얼른 먹어."
"싫어! 김치 씻은 물이 밥에 묻었잖아. 밥이 더러워졌어. 나 이 밥 안 먹어!"
나는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 놓았다.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 <개구리 폭탄 대결투> 본문 중에서

편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개구리 폭탄 대결투> 서문에서, 아직도 시금치랑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셨어요! (웃음) 아이들 편식 문제로 고생하는 부모님들이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건데,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도 순순히 먹게 만드는 비결을 알고 계시나요?  

"전혀 없어요. (웃음) 저희 딸이야말로 정말 특이한 입맛의 소유자라서 밥먹이기가 아주 편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먹는 것만 주면 아주 편하게도 먹이지만, 좀 색다른 걸 시도하려고 하면... 환경이라는 것이 항상 아이들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될 수 없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아주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저도 어릴 때 편식이 심했던 1인으로서 그 심정도 너무 이해가 가요.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너무 싫은데, 싫어 죽겠는데 어른들은 이 맛있는 걸 쯧쯔 하고... 기억나는 게 한 초등학교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저는 회가 그렇게 싫었어요. 그때는 회가 그렇게 흔한 음식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른들이 너무 맛있다고 하고. 한입만 먹으라고 하는데 저는 정말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때 어른들이 그 좋은 음식을 저에게 먹이고 싶었던 마음 그게 이제야 이해가 가지만. 아직까지 강렬한 그 죽을 것 같았던 (웃음) 기분이 또렷하게 남아 있거든요. 저는 제 딸에게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한번만 해보자, 이걸로 끼니를 다 채우라고 요구하지 않겠다 골고루 먹으라고는 안 하는데 한번만 해보자 그러면 그중에 정말 몰랐던 맛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한입은 해보자 우리 예의상. 그게 저와 저의 딸의 타협점이에요, 한 입!'"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은지는 시시하고 당연한 이야기는 싫어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주장을 굽힐 줄 모르는 아이다. 그러한 은지가 일기장에 엄마에게 억울하게 혼난 이야기를 잔뜩 써 놨다. 그걸 본 엄마는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도 억울하다 한다. 엄마와 딸이 대치 국면에 들어서 쉽사리 해결점을 찾지못하자 엄마가 깜짝 놀랄 새로운 제안을 한다. '화해하기 보고서'를 써 보자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씩 써 보면화해할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은지는 잠깐 엄마의 의도를 의심해 보지만,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아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엄마와 딸은 초저녁부터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떠올려보기로 하는데...

"이제 그냥 화해하면 안 될까, 엄마?"
나는 정말로 자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정말 중요한 내용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걸. 이대로는 화해할 수 없어."
나는 벌서 엄마의 사과를 받고 마음이 다 풀렸는데 엄마는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엄마는 나보다 속이 좁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말했다.
"뭐가 제일 중요한 내용인데?"
엄마가 이렇게 썼다.
4. 준비물을 미리 챙기지 않았다. 알림장을 쓰지 않았다.
"자, 어때?"
엄마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나는 투덜거렸다.
"뭐? 뭘 알아?"
"결국은 다 내가 잘못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한 번 더 야단치려고 그러는 거잖아! 전부 엄마 마음대로잖아!"  - <화해하기 보고서> 본문 중에서

<화해하기 보고서>에 등장하는 보고서 쓰면서 엄마랑 화해하기, 대단히 독특한 발상인데 어떻게 떠올리셨는지. 실제 경험이 책으로 들어간 건지 궁금했어요.

"하하 그 준비물 사러 시장으로 두 번 뛰었던 엄마가 바로 접니다! (웃음) 두 번 뛰었는데, 그때 우리 딸은 초등학교 1학년은 아니었고 더 어렸어요. 어린이집 다닐 때였어요. 그런데 아이니까 애기니까, 전달을 했는데 이제 저한테 떠듬떠듬 전달을 했는지. 그때 또 저는 마음이 급해서 화분만 들렸던 거예요. 그게 '야채 모종'이었어야 하는데 '야채'는 짤리고, 이제 '내일까지'랑 '화분'이라는 것만 입력하고 시장으로 열심히 뛰었는데 딸이 '이거 아니고!!!!!!' (웃음) 그래서 그 밤을 험난하게, 피차 험난하게 보내고...  

그런데 우리딸이 굉장히 고집이 세거든요. 끝까지 주장을 하더라구요. '엄마도 잘못을 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저는 이제 두 번 뛴 생각 밖에 안 나구요. (웃음) 너무 힘든 생각밖에 안 나고 막 분하고 괘씸하고 나에게는 너무나 화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랬는데. 우리딸은 정말 한 군데만 딱, 왜 한놈만 친다 그러잖아요 하나만 주장하는 거예요. '나는 다 말했다, 엄마가 못 들은 거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기가 싫은 거예요. 나는 화나고 너무 고생했어,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너 때문에 니가 일찍 말하지 뭐 그런 여러가지 핑계들이 생각이 나는데, 아주 깊은 밤이 되어서야 받아들여졌어요. 딸 말도 일리가 있구나, 내 실수도 있는데 아이라는 이유로, 나는 어른이 아이를 야단치는 형식을 취하고 싶은 거였구나 얘는 아주 억울하겠구나.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아주 힘들게 받아들여지더라구요. 

근데 그런 경험이 저에게만 있는 건 아닐 것 같고요. 아이의 억울함이라는 게 가만 생각해보니까 제 어린 시절에서도 떠오르더라구요. 왜 엄마는 나의 억울함을 인정 안 해주지?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다는 아닌데. 고것만, 그래 그거는 엄마가 잘못했다라고 해준다면 내 마음이 훨씬 편할 것 같은데. 그 날 있었던 일을 하나의 둥그런 덩어리가 아니라, 이걸 잘게 잘라서 이건 니 잘못, 요건 내 잘못 이렇게 플러스 마이너스, 대충 이 정도만 해도 부분부분에 대해서 한번씩 짚으면은 적어도 받아들이기가 서로 훨씬 쉽고 덜하다나는 걸 어느날 이렇게 경험을 하게 된 거죠. 그런 다툼을 이렇게 좀 더 나눠서 정리된 형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거고요." 

다른 엄마들도 화해하기 팁으로 많이 활용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우리 둘의 (화해) 기술이 훨씬 더 좋아졌다는 생각을 해요."

주인공 은지 아빠 직업이 교도관인데요, 교도관 아빠를 둔 아이가 나오는 동화는 처음 읽어봤어요. 은지 엄마가 다니는 백화점도 동화 속에서 부모님의 직장으로 흔히 등장하는 장소는 아니구요.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동네가 그래요. 아파트촌이 반이라면 개인 주택촌이 반이고, 또 직업들도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더라고요. 이 동화를 쓰겠다고 마음 먹은 그 무렵에 제 친구 하나가 7급 교정직 공무원에 합격을 했다고 한턱 낸다고 하는데 아 맞어, 아 이것도 하면서 기억을 해뒀었고요. 제가 사직동에서 나고 자랐는데 저 어릴 때만 해도 근처에 서대문 형무소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교도관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어쩌다 가족 직업을 이야기하게 되면 늘 아빠가 공무원이라고만 얘기를 해요. 더 캐묻지도 않는데. 그리고 어느날 아주 오래 알고 지낸 다음에서야 그 친구가 실은 우리 아빠는 교도관이라 형무소에서 일을 하신다고 얘길 해줬죠. 흔치 않은, 인상 깊은 기억이었고요. 

그 두 가지가 생각이 나면서, 아빠들이 보통 집안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한방'이 있는, 엄할 때는 굉장히 엄하고 편안할 때는 굉장히 편안하고. 엄마가 무서운 것과는 다르게 한번 무서우면 아예 급이 다른. 그런 이미지를 굉장히 잘 나타낼 수 있는 직업이 교도관인 것 같았어요. 아빠는 벌 주는 거 하나는 확실하다, 뭐 그런. 그리고 백화점에 다니는 엄마는... 여자아이니까 예쁘고 화려한 거에 자연히 관심이 많을 수 있잖아요? 서민적인 직업이지만 아이가 굉장히 동경할 수 있는 공간에서 일을 하는. 그런 약간의 비틀림이 있는 직업들인데, 엄마는 그렇게 화려한 곳에서 서비스업을 하면서도 아빠랑 싸우면 늘 이겨. 그런 엄마가 더 쎄. 알고 보면 교도관인 아빠보다 우리 엄마가 훨씬 더 쎄더라, 아이에게 그런 신기한 느낌 그런 게 굉장히 매력 있게 느껴졌어요. 그런 가족 구성이."

가족 얘기 하시니까, 은지네 이모 얘기도 들어보고 싶은데요. 한 집에 살다보니까 은지가 이모랑 굉장히 친밀한 사이잖아요. 이모는 항상 무조건 은지 편을 들어주니까요. 집에서는 구박 받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고, 은지한테는 위대한 위치에 있는 이런 이모 캐릭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졌어요. 

"은지네 가족은 기본적으로 대가족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은지 아빠 엄마 동생. 그렇게 살려면 아파트라는 공간은 가능하지 않죠. 주택이어야 하고, 이모라는 존재는 그러니까 저희 어릴 때도 그랬지만 정말 1년 365일 센터 같은 존재죠. 이모만 오면 너무 좋고, 이모는 언제나 내 편이고 자기 아이들보다 나를 더 예뻐하고 엄마를 야단치는 일을 이모는 감싸주고. 이 동화 속에 나오는 이모는 상당히 철부지 이모예요. 집에선 구박 덩어리(웃음). 취직도 안해, 결혼도 안해, 돈도 허황되게 써. 아 이런 철부지야 하지만, 이 조카에게만은 절대적인! 너와 나는 한팀, 운명공동체, 우리는 무슨 사고도 서로 다 덮어준다라고하면서 똘똘 뭉치죠.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지원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로. 

이모의 캐릭터도 굉장히 아이 같죠. 덜 자란 어른인데, 은지는 자기한테 참 언제나 그 자체로 선물덩어리 같은 그런 이모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우리 이모, 아니 이모부까지. 이모와 이모부는 저에게 한 가족이에요. 부모님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계시는. 그분들이 저와 제 오빠에게 우리 남매에게 정말 전폭적으로 퍼부어주신 사랑과 지지는 이루 말로 다 못하죠. 집집마다 이모든 고모든 삼촌이든 그렇게 퍼부어주시는, 부모의 사랑과는 또다른 그런 게 있더라구요. 그런 느낌을 한번 살려보고 싶었어요." 

정규태나 호찬이, 은지, 또 민우 같은. 어린 시절 친구 중 동화 속 캐릭터의 모델이 된 사람도 혹시 있나요?

"이 동화에 나오는 친구들은 저의 어린 시절에서 초대한 친구들이 아니라, 제 딸의 주변에서 찾은 아이들이에요. 강은지라고 하는 이름은 제 딸의 같은 반 친구 이름이었는데요. 이름이 하도 예뻐서, 은지라는 이름을 쓰게 됐어요. 동화 속 은지하고는 전혀 달라요. 하지만 이름이 예뻐서 가져온 거구요, 이 동화 속에 나오는 친구들, 호찬이 은지는 양쪽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인데 둘 다 제가 설정하기로는 아주 평범한 아이들, 조금 엉뚱하고 자유로운 아이들이었어요. 아주 평범한 보통 아이들, 그리고 김지수나 이민우 같은 아이들은 상당히 흔한 캐릭터죠, 어디에나 있는. 착하고 공부 열심히하고 뭐 선생님한테 무난한 성격들, 편안한 성격들? 

그리고 이제 규태 캐릭터가 제가 돌아다니다가 본. 요새 아이들이 여러가지 교육을 받고 어른들한테 이제 자기 PR하는 시기가 일찍 발달하다 보니까 굉장히 제 눈에는 특이하게 보이는 친구들이 종종 있더라구요. '저는 이런 것도 할 줄 알고요'하는 말. 옛날 같은 경우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저는 공부를 잘해요' 그랬는데 요새는 그게 아니라 저는 '창의력이 뛰어나요'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더라구요. 아 요새는 자기 PR 종목도 바뀌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그 아이를 보면서 조금은 서글펐어요. 순수함 이상의 창의력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순수함이 최고의 창의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아이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창의력이 본질이 아닌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들은 아 참 똑똑하다 너는 창의력이 참 뛰어나구나 하고 말은 하면서도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어린아이의 정말 아름다운 본질은 조금 잃어버렸다는. 또래 친구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약간의 씁쓸함... (웃음) 또래 친구들은 아 또 시작이셔 잘났어라고 말은 차마 못하겠지만 그래도 씁쓸해하는.  

오히려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한 바 없는 다른 아이들에게 오히려 훨씬 더 창의력이 살아있고, 자연의 야성미가 살아있는 그런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가공되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자연스러움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 규태라고 하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언제나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돌볼게요, 제가 했어야 했었는데, 저는 다 알고 있었는데, 아, 안타까워요, 정말, 제 친구들은 왜 이렇게 어린 걸까요, 제가 잘 볼봐줄게요, 저는 이런 경우에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퐈야퐈야...' (웃음) '대화를 한답니다'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잘 하는 표현이 아니거든요. '저는 ... 한답니다'라는 말을 언제 어쩌다가 한번은 할수도 있겠지만, 만병통치약 같이 아이가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어어 저것은 그리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어쩌다 들었는데 그 표현이 재미있어서. (웃음)" 

그런 의미에서 은지는 굉장히 창의력 있는 아이가 아닐 수 없는데, <반짝 구두 대소동>에서 난데없이 강아지를 하겠다고 나서서 얼마나 웃었는지. 이 책 서문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은지를 칭찬하고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강조하셨던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현재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은 뭔지, 좋아하는 것 또는 최대의 관심사라고 할까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최고의 창의성은 순수함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따라갈 수 있는 아이의 더 좋은 점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무엇을 봐도 그것만큼 아름답지가 않아요. 그래서 은지와 호찬이, 이제 호찬이는 이번에 나온 세 권의 책에서 아직까진 주인공이 아닙니다만, 호찬이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이야기가 나올텐데, 은지와 호찬이는 그 자연스러움이 살아있고, 야성미라고 해야 할까, 설득되지 않는 아이들이에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 정말 진짤까? 하고 한번 의심하는 아이들. 저는 그 정신이 참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남들은 모두 대사가 많은 주인공이 제일로 좋은거야라고 하지만, 얘는 아 그게 힘들텐데... 대사가 많으면. (웃음) 하는 거죠. 그건 굉장히 힘든 일이야, 내가 하고 싶은 건 다른 거야, 하고 자기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본능적으로 잘 분별하는 아이. 

남들이 좋다좋다 하는 거에 결국 휩쓸려 가는 사람들이 다수인데,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키면은, 지키면서 자라면은 그게 꼭 공부에 도움되는 방향은 아닐 수 있겠지만 정말로 매력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공부 잘하는 건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차별성이 되지 못하고, 점점 더 매력으로 사람에게 강하고 명료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는 세상이 점점 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어떤 개성,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는 것이 정말 우리 아래 세대 아이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을 저는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요새 푹 빠져 있는 일이라고 하면은, 그게 저의 주제이기도 한 것 같네요. 세상에서 좋다고 말하는 것과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해 보는 중인 것 같아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예를 들자면 제가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그걸 깨닫기까지 무려 40년이 흐른 것 같아요. 여행을 저도 좋아하죠, 가면 좋은데 그것이 저의 본질적인 욕구, 저에게 정말 충만감을 주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여행은 좋다, 여행을 가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라는 많은 말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까 저는 그게 또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책도 늘 읽는 책이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책이 뭔가 그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렇게 분별하는 것, 타인의 욕구와 나의 욕구를 분별하는 그게 요새 저에게 아주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은지네 반은 학예회 때 라틴 댄스와 연극 [장화 신은 고양이]를 하기로 했다. 은지는 이모에게 선물받은 보석이 천 개 달린 예쁜 구두를 라틴 댄스에 신기로 하였다. 플라스틱 구두라서 신으면 무척 발이 아플 거라는 온 식구의 경고도 무시한 채 은지는 학예회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학예회 날, 보석이 반짝반짝하는 구두를 신었더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금세 발이 아프고, 은지는 비운의 짝꿍 호찬이와 라틴 댄스를 추다가 그만 스텝이 꼬이고 만다. 그바람에 호찬이와 한참 투닥투닥 싸우게 되는데... 

나는 강아지 모자를 쓰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민우를 졸졸 따라다녔다. 강아지는 원래 그렇게 주인을 따라다니는 거니까 말이다. 막내아들과 공주님이 결혼할 때도 나는 이민우와 정규태 공주 사이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강아지는 원래 그런 건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귀를 긁거나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면서 좀 더 강아지 같아 보이려고 노력했다.
우리 가족들은 연극을 보지 않고 모두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엇다. 어쨌거나 나는 대사도 하나도 없고 이민우 옆에 계속 있을 수 있어서 아주 편하고 좋았다.
(중략) 

"은지야, 엄마는 어디 계시니? 같이 사진 찍어줄게."
호찬이 아빠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백화점 세일 기간이라서 못 오셨어요." - <반짝 구두 대소동> 본문 중에서

<화해하기 보고서>, <개구리폭탄 대결투>, <반짝 구두 대소동>의 뒤를 이어 이 다음에 나올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에는 어떤 에피소드를 준비하셨는지 살짝 귀띔해주시겠어요? 

"앞으로 호찬이가 주인공이 되고 은지는 호찬이의 친구들 중 하나로 나오는 세 권이 더 준비되어 있는데요, 생일파티 이야기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네요. 규태... (규태 이름만 등장해도 웃음이 번지는 인터뷰 자리) 규태의 생일파티에 호찬이가 가서 대활약을 펼치게 되죠. 일단 생일파티에서는 소동이 한바탕 벌어지고. 친구끼리 정말 하기 힘든 한마디, 미안해. 미안하다고 인정하기까지의 그 정말 힘든, 아이들의 놓기 힘든 자존심, 아이들도 자존심이 있으니까요, 그 이야기가 있구요. 

또 하나는 사실은 이 시리즈의 처음이 되었어야 하는 이야기인데요, 입학 이야기가 있어요. 입학하기 이전까지 숫자나 한글, 더군다나 아이를 키우다보면 둘째는 엄마가 신경을 안 쓴다는 것, 덜 쓴다는 것이 정설이거든요. 큰애 때는 아주 열심히 준비해가지고 알파벳, 두자릿수 곱셈부터 덧셈, 뺄쎔까지 싹 다 해가지고 가는데, 둘째는 이제 '아 얘는 이제 걷는 것만 해도 너무 귀여워'로 만족하는 거요.(웃음) 그러다보니까 학교에 딱 입학할 무렵이 돼서 엄마들이 '너무 준비 안 돼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후르륵 달아오르는 시기가 또 있어요. 제가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도 그런 불안의 시기가 있었어요. 저는 아이가 하나고 그 불안이 꽤 강했는데, 학교에 간다는 게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한 경험이구나, 학교의 교육과정도 상당히 아이들 친화적이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학교 생활에 젖어갈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의 경험을 했었고요. 그런 느낌,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는 뭐였더라? 아, 그리고 이제 학교에서 일일교사처럼 엄마 아빠들이 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날은 또 은지 아빠가, 교도관이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은지네 아빠가 오시는 거죠. 호찬이네 아빠는 태권도 사범님이세요. 그래서 호찬이는 우리 아빠가 제일 쎄지,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더 쎈 존재가 나타나는 거죠. 호찬이는 사실 은지에게 상당한 호감이 있어요. 근데 아이니까,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을 못해서 늘 은지의 성질을 돋우죠. 둘이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호찬이는 늘 은지한테 다가가려고 노력을 하고요. 

그리고 장차 하고 싶은 이야기로 이런 것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 동화 속에서 아주 뚜렷하게는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은지네는 서민 가정이고 호찬이네는 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든요. 아이들끼리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부자야, 누구네는 더 부자야, 가진 물건이라든지 그런 걸 가지고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그런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 아이들이 좀 더 열린 자세라고 할까, 산다는 것이 이 모두에게 평등하지도 않지만 차이가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서열화되는 그런 문제는 전혀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의 세계가 있고, 어른들은 어른들의 세계가 있고,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그런 차이를 폭발시킬 필요가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두드러지게 드러낼 필요가 없다, 아이들끼리 얼마든지 잘 섞일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배워가는 것, 아이들도 배워가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것,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따님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책은 어떤 책인지 알고 싶어요. 아이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릴 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시는 편인지도 궁금하고요.

"학교 공부나 다른 건 아이에게 일임하다시피 하는 편인데요.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나름대로 아주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나름의 단계를 거쳐서 목표로 하는 최종 목표 지점은 고전이에요, 고전. 고전을 향해 가고 있어요, 제 딸은. 물론 여러가지를 읽습니다만, 고전도 편집본이 아닌 최대한 원전을 살린 고전을 읽게 하는 것이 저의 목표고, 도서관에는 잘 안보내요. 근처에도 어린이 도서관이 있는데,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면은... 사실 제가 도서관에 가도 책을 고르기가 어렵거든요. 그 엄청난 책 쓰나미 속에서 저도 어려운데 아이는 더 어렵겠죠. 그러다보니까 제일 쉽게 손이 가는 건 만화예요. 물론 여러가지 좋은 만화, 학습만화들도 많습니다만, 읽기라고 하는 본연의 기능에서 만화는 분명히 지양해야 하는 점이 있고요. 

저희 집에는 아이 책이 많지 않아요. 언제나 책꽂이 두 개, 크지 않은 책꽂이 두 개의 분량을 유지하거든요. 그 정도의 컬렉션이면 아이에게 충분하다고 생각을 해요. 여러 번 읽기,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게 제 생각에는 문장력을 키우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이가 그냥 단순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내용의 흐름을 따라가는 걸 넘어서 글을 쓸 수 있게, 문장을 쓰고 안정되게 글을 구성하는 능력은, 반복해서 읽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좋아하는 좋은 책, 좋은 소수의 컬렉션을 아이가 거듭거듭 읽도록 권하는 편이고요. 그래봤자 아이는 여러 루트에서 책을 접하기 때문에 제 커리큘럼 밖의 다양한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 제가 크게 감동했던 순간이 그래서 '너는 어떤 책이 제일 좋드냐,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라고 물었을 때였는데요. 그 때 마침 제 딸이 해리포터에 푹 빠져 있어서 당연히 대답도 해리포터일 거라고 예상을 했거든요. 근데 아이가 한참 생각을 하더니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가 좋다고. 자기는 그 작가를 진짜 만나보고 싶대요, C.S. 루이스가. 저는 그때 아, 이 아이가 도전의 맛을 아는구나, 아이들에게도 고전의 향기가 전달이 되는구나 하고 굉장히 기뻤어요. 아이가 책임감으로 책을 읽게 되어서는 안 되고 일단 시작은 즐겁게. 시켜서가 아니라 정말 즐겁게 애정에 넘쳐서 정말 자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달달달달 몇번 읽기를 바라구요. 저는 딸의 독서를 사실은 그렇게 섬세하게 보진 않고, 일단 고전으로 간다는 방향을 잡아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첫 작품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발표 후 10년이 지났는데, 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여러 변화를 겪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올해로 딱 10년이에요, 제가 글 쓰는 사람이고 앞으로 쓸 것이다라는, 나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시기가 작년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아무것도 못 쓰고 고민만 하던 시기에 희한하게 이런 정체성이 생겼어요. 앞으로도 나는 이 일을 할 것이다, 내가 제일 원하고 좋아하는 일은 이거다. 이전까지는 작가라는 직업, 일하는 환경, 만나는 사람들로 제 직업을 판단했다면, 좀 더 본질적으로 쓰는 것이 저에게 주는 거대한 의미와 이야기들을 작년부터 크게 실감한 것 같아요. 올 가을 제 새로운 소설도 출간이 임박했는데, 올해가 저에게는 인생의 분기점이 될 만큼 큰 전환점이 됐어요. 지난 10년,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나름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 시기는 제게 주어진 격렬한 육아기와 딱 겹쳐 있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10살이 되기까지는 일에 정말로 몰두해서 에너지를 쏟기가 힘든 환경이었고요. 아이가 10살을 넘기면서 이제는 저, 가족과 분리된 나와 나의 일을 다시 생각하는 그런 순간이 왔어요. 올해는 등단 10년이면서 마흔 고개도 넘겼는데 참 의미있는 한 해였고, 앞으로는 제 일을 이전과는 정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고, 또 훨씬 더 소중한 것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소설도 나오는구나. 기다리시던 많은 독자분들께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 되겠네요. 마지막으로 알라딘 독자분들께 전하는 인사말 부탁 드리겠습니다.

"알라딘이 참 그리워요. 2004년에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을 하면서 아주 많은 자양분을 섭취를 했어요, 알라딘이라고 하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독보적인 커뮤니티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얻었어요. 그 시절, 그 친구들, 이웃들과의 추억은 정말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저에게 쏟아주신 관심이나 애정에 비해서 제가 그동안 활동이 뜸 했던 것 같아서 반성하는 마음, 이제는 좀 더 열심히 자주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인사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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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반지 2011-10-2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심윤경이라는 이름만으로 소설을 구매했지요. 언제나 소설읽기의 묵직함을 느끼게 해주시는 작가의 동화책 또한 거듭거듭 반갑습니다.^^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의 그림책은 한국에서 기획되어 한국에서 초판이 출간된다. 낯선 나라의 신비로운 일러스트레이터가 한국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무척이나 이색적인 작품 활동과 출판 과정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를 그림책 작가로 데뷔시키는 역할을 한 번역가 이지원 씨, 그리고 애정어린 노력으로 그녀의 책을 만든 출판사들. 열정적인 한국의 조력자들을 통해 차츰 차츰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의 작품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다. 구조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일러스트, 한없이 자유로운 상상력과 그 안에 탄탄히 자리잡고 있는 논리, 다름의 무한한 가능성이 마법처럼 그림책 위에 펼쳐진다. 그리고 2011년 봄이 시작될 무렵, 국내작가 김희경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공동작업한 <마음의 집>의 볼로냐 라가찌 상을 수상은,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그를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신작 <여자아이의 왕국>과 함께 한국의 독자들을 찾은, 한국이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2011년 9월 23일 알라딘 독자들에게 건넨 이야기들.

(통역 : 설재인 / 사진 : 창비, 알라딘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승혜)

 

 

알라딘 I 한국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을로 접어든 것 같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을을 맞는 기분이 어떤지.  

"한국에서의 첫 번째 가을이다.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인데 한 번은 5월, 다른 한 번은 12월이었다. 먼저 5월에는 한국에 머무는 내내 비가 왔었고, 12월에는 너무 추웠다는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 시원한 공기와 산뜻한 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고, 모든 게 초록색이라서 너무 예쁘다. 폴란드에서는 이미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알라딘 I 초경을 시작한 날부터 여자아이는 자기 왕국의 주인이 된다는 비유를 담고 있는 신작, <여자아이의 왕국>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비밀스럽고도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월경을 끝내는 시기가 나에게 오면서, 월경을 할 수 있었던 기간 자체에 대해 그리움이 쌓이게 되었다. 월경을 겪던 그 기간을 책에 함축적으로 담고 싶었다. 내게 월경이 있었던 시간은 40년 정도다." 

알라딘 I <여자아이의 왕국>의 모티브가 된 초경을 한국에서는 사춘기의 시작과도 연결 짓곤 하는데 자신의 사춘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이켜본다면.

"내가 열살 때 초경이 왔다. 초경, 월경이라는 건 나에게는 아프고 고통스럽기만한 순간들이었다. 어떤 기쁨조차 느낄 수 없었다. 아, 나도 이제 여자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그냥 아이로 남고만 싶었다. 사춘기라고 하는 기간에 가슴이 자라고 월경을 해야하고, 그렇게 여자가 되는 준비를 하는 과정. 그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아팠다. 정신적으로는 아이인데, 몸만 속도를 앞질러 자라는 것이 굉장히 이상했다. 열살 아이의 생각으로는. 어깨가 잔뜩 굽은 자세로 걷게 되고, 자신 있게 가슴을 펴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랬던 만큼 그 시간은, 사춘기라는 시간은 행복하지 않았다. 여자가 된다는 준비 기간이 기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춘기는 내게 아팠던 기간으로 기억된다."

알라딘 I 한글의 간결한 논리성에 매료되어 <생각하는 ㄱㄴㄷ>과 같은 한글 그림책을 작업하기도 했는데, 한글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와 내가 생각하는 한글의 매력이란.  

"한국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논장 출판사에서 나온 <생각하는 ㄱㄴㄷ>을 준비하면서부터이다. 논장에서 처음 제의를 주셨을 때는 내가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나에게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글을 하나도 모르고 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써 본 적도 없는데. 이런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위한 한글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렇지만 출판사에서는 이런 나를 믿어주었고, 굉장히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그렇게 출판사의 도움으로 한글을 처음 보게 되었다. 한글이 가진 뜻을 전혀 모르다보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다 더 폭넓은 해석을 가지고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한글이란, 굉장히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짜여진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건축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조각처럼 정확히 맞춰지는 그런 느낌이 굉장히 아름답게 여겨졌다."  

           

알라딘 I <반이나 차 있을까? 반밖에 없을까>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두 사람이 한 가지 사실을 바라보지만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내용의 상대주의의 개념을 자주 다뤄왔다. 다리미 자국, 발자국, 연필이 온갖 형태로 변신하는, <문제가 생겼어요>-<학교 가는 길>-<생각 연필>로 이어지는 상상 그림책 시리즈도 이 개념의 발전 내지 변형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 주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상대주의는 내가 굉장히 즐겨 쓰는 개념이다. 모든 것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노느냐, 하나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마음의 집>에 등장하는 '마음' 또한 그 중의 하나다. <문제가 생겼어요>란 작품에서는 다리미 자국이 배가 되었다가 다시 섬으로 바뀌며 계속 변화를 거듭한다. 다리미 자국이란 것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문제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가능성을 나는 계속해서 그림책을 통해 말하려 한다. 테마는 항상 하나(상대주의)에서 시작하지만, 나오는 책은 제각각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띤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것이 내 작품 활동의 목표이고 과제이다. 상대주의 개념이 가장 이상적으로 드러나 있는 나의 작품으로는 <시간의 네 방향>을 꼽고 싶다. 그리고 나의 모든 책에 이 개념이 적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여자아이의 왕국>도 마찬가지다." 

 

알라딘 I 네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을 직접 만들면서 그림책 창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작품을 알고 있는지. 

"나의 가족에게, 새로운 책이 나오는 날은 항상 새로운 기념일 같은 날이다. 모두가 함께 모여 책을 펼쳐 보고, 각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와 예쁘다! 감탄하고 신기해한다. 마치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그래서 새로운 책, 제일 최근에 출간된 <여자아이의 왕국>이 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책일 것 같다. (웃음)"

알라딘 I 아이들은 태어나서 일정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 부모님 또는 어른들이 권해주는 책을 읽게 마련인데,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읽힐 책을 선택했는지.  

"내가 아이들에게 읽힐 책을 구입하던 시기의 폴란드는 굉장히 암흑기였다. 지금도 폴란드 그림책 시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때에는 거의 시장이 없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책방에 가더라도 언제나 다른 부모들과 똑같은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양이 워낙 적고, 공급이 잘 되지 않았고, 수요가 아무리 많더라도 부모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 전에는 달랐다. 내가 태어났던 해가 1960년, 어린 아이였던 내가 항상 일러스트레이션을 보고 자랐던 시기가 1970년대였다. 이때가 바로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전성기였다. 이 전성기는 1980년대까지만 지속되었다. 이후로는 공급이 되어도, 자유롭게 살 수 없었다. 나 자신은 그렇게 항상 예쁘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볼 수 있었는데 정작 나의 아이들에게는 공급조차 되지 않았다. 언젠가 두 시간이 넘도록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책을 구해 아이들에게 읽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나의 아이들과 똑같은 세대의 학생들은 어렸을 때 읽은 책이 모두 같다. 그 정도로 그림책 공급이 극단적으로 제한돼 있었다. 그림책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예쁜 일러스트레이션 하나라도 더 찾아내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이란 매체를 아이들 곁에 항상 가까이 하려고 애를 썼다." 

알라딘 I 대학에서 그림책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우선 강의는 그림책 작업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작가로서 글과 그림을 함께 담긴 책을 만드는 작업에 대한 강의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글과 그림 자체가 워낙 스스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형태이다 보니, 이 두 가지가 같이 있는 것,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글과 그림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을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강조하는 편이다."

알라딘 I <마음의 집>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가 '마음의 집은 가끔 주인이 바뀌곤 한단다'라는 문장이었다. 이렇게 바뀌는 마음의 주인들 가운데, 나의 마음에 가장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주인이 있다면. 

"마음의 주인은 항상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나의 두 번째 남편이다. 처음 부부의 연을 맺었을 때, 내 마음의 주인은 첫 번째 남편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뭔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났고,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들이 생기면서 나는 그를 떠나게 되었다. 첫 번째 남편이 떠나고 난 내 마음의 빈 자리에는 나 자신이 들어왔다. 내 스스로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었다. 결혼을 두 번 하고 새로 태어난 나 자신이. 그 시기가 굉장히 힘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혼할 당시 이미 나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 이제는 나의 주인이 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 I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를 좋아하는 알라딘의 독자분들께 전하는 마지막 인사. 

"우선 너무나도 저를 사랑해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 내가 낯선 문화권에서 온 낯선 사람,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신뢰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점이 너무 감사하다. 나는 그림책이 세계를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림책을 좀 더 사랑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그림책을 통해서, 그림책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세계를 좀 더 풍요롭게,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살기 좋은 상태로 만들 수 있도록 그림책을 더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탁자 위에 놓인 <마음의 집>에 눈길을 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책 자체가 항상 기쁘다. 그리고 내 첫 번째 남편이 한국어를 모른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마음의 집>은 내 첫 남편에 관한 책이기도 하니까. (웃음) 폴란드에서는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았으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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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mingel 2011-09-27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좋은 사람과 책(그리고 그림)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o^

딸기꼬치 2011-09-29 02:52   좋아요 0 | URL
예, 정말로 좋은 향기를 가진 분이셨어요. <두 사람>이라는 책은 꼭 한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