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햇빛

 

 

 

1

 

꼬박꼬박 출퇴근 다니던 때보다 한 주에 두어 번 대문 밖 구경하면 허허 출타가 잦구나 싶은 요즘에 하늘 올려다볼 일이 더 많다. 한 번 쓰고 나니 두 번 쓰기는 겁날 만큼 식상한 문장이지만, 저런 문장이 가져다주는 어떤 정동까지 식상한 것은 아니다. 일상이 바빠지면 하늘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거나, 아니면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오래 잊고 살아온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거나 한다. 아무것도 쫓아오지 않을 때(혹은 잠시쯤 그렇게 착각해도 될만한 여유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하늘이 하늘로 보인다.

 

하루에 한 번, 볕이 제일 따뜻할 때 옥상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 열 곡쯤 듣는다.


  "잘 들어봐새소리가 들리지 않아저쪽 어딘가에서."

  나는 재진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나는 귀를 기울였다잠시 후내 귀에도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들리네."

  "난 새소리를 아주 잘 들어아주 어렸을 때는 새들이 많은 시골에서 자랐나 봐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재진의 말을 듣고 보니 살아오면서 내가 새소리를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인 건 많아야 서너 번뿐인 것 같았다스무 해 동안서너 번뿐이라니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우리가 언제나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새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김연수스무 살

 

 

 

2

 

딱 하나 아는 가을방학의 노래 가사에 이별하고 난 후의 일상을 그린 이런 대목이 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사랑 하나 끝내고 난 뒤에 하는 일들치고는 일상적이기 그지없다. 사랑하는 중에도,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중에도, 혹은 사랑을 하면서도 어쩐지 지난 사랑이 그립다 싶은 날에도 역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살지 않나,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보면 이별이라는 게 뭐 그리 큰 변화를 수반하는 사건은 아닌 것처럼도 보이고.

 

크고 작은 모든 불행은 글쓰기의 씨앗이고, syo 역시 연애가 안 좋을 때나 이별한 후에 감정에 절어 눅진눅진한 글들을 잔뜩 써댔다. 써댔다와 싸댔다 사이의 오묘한 포지션. 꺼내서 널어 말려야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걸 글자로 집어 빨랫줄에 너는 일에는 아주 속전속결이었다. 그러니까 저 가사가 더 싱겁고 성에 안 찰밖에. syo가 가사를 쓴다면 이런 식이지 않을까. 너가 떠나고 나는 쓰고 쓰고 또 쓰고, 할 말도 쓰고 못할 말도 쓰고, 네가 봐도 쓰고 네가 안 봐도 쓰고,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니 심지어 지금 이 노래 가사까지 쓰고 앉았잖니, 훠우워어 베이베 라랄랄라……. , 가사에 묻어나는 이 곡진함 좀 보소. 눈물 젖은 라랄랄라는 또 어떻고…….

 

가장 최근의 이별 후에 특별히 글이 늘지 않았다. 당시에 코로나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지켜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느라 아등바등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고, 또 나머지 시간은 이놈의 구청을 때려칠까 말까를 고민하는데 소진하다 보니, 글이고 나발이고 시간 자체가 태부족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어쩐지 이별 감수성 자체가 예전같지 않았다. 그건 그 직전의 10년짜리 연애가 깨졌을 때도 느꼈던 변화였다. 확실하다. 나는 낡아가고 있다. 절차대로.

 


땅바닥이 옴폭옴폭 파인 곳마다 물이 말라붙어서 소금 결정이 되어 있었다어떤 결정은 장미 융단 같았고어떤 결정은 볏짚더미 같았고어떤 결정은 눈송이가 쌓인 것 같았고모두 소금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내가 연갈색 장미등를 조금 가져가려고 한 덩이를 작게 떼어냈더니가 갑자기 장미들이 덜 아름다워 보였다세상의 어떤 것은 영영 잃어버린 상태일 때만 우리가 가질 수 있고또 어떤 것은 멀리 있는 한 우리가 영영 잃지 않는다.

리베카 솔닛길 잃기 안내서

 

  너에게 아주 오래된 거울 하나를 쥐여줄까 당하그 거울 속으로 들어가 석삼년 녹슬면서 기다릴 거라고 말할까 당하내처 달릴까 당하,

  물까치들이 울음소리를 찍어 바르던 풀숲 가에서 따라 울던 바람

 

  우리는 서로를 통과할 수 없는 바깥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쉽게 내릴 수 없어서

  아무것도 몰라도 다 아는 것 같아서

 

  한가운데가 아니고 내가 너의 변두리쯤이어서 들어가지 못해서 좋았던 당하

안도현, <당하부분

 

 

 

3

 

이별 후는 아니고, 사랑이 있긴 있는데 사랑같지 않은지 영 허한 일상을 언급하는 노래로, 위의 것보다 훨씬 더 유명한 곡이 하나 있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운도옹을 하아고오.”

 

탈락. ‘운동나오는 순간 그 즉시 남의 노래.

 

 

 

--- 읽은 ---


203. ‘장판에서 푸코 읽기

박정수 지음 / 오월의봄 / 2020

 

철학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잘 정리해 머릿속에 차곡차곡 넣어놓은 철핚 개념은 그 자체로는 옷장 속에서 영영 꺼내지 않는 옷처럼 무의미한 지식인 것은 아닐까? 어떤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을 꺼내와 그 문제에다 비비는 것, 그 접점에서 조흔색처럼 생겨나는 개념틀과, 좌표와 방향성을 갖춘 움직이는 개념들이 유일하게 진짜 의미 있는 철학이라면? 이 책은 철학의 에 관해 선명하게 알려준다. 푸코는 거들 뿐이다. 그래서 좋았다. 그렇지만 독자가 겨냥하는 것이 장애라는 사회적 개념이 아니라 푸코의 철학 개념 그 자체라면, 다른 입문서를 권합니다.

 

 

 

--- 읽는 ---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 사라 밀스

/ 나쓰메 소세키

진실에 복무하다 / 권태선

쓰기의 감각 / 앤 라모트

고전잡담 / 장희창

판타스틱 과학클럽 / 최지범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11-05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핚 하니까 뭔가 끄하핚 하고 애쓰며 읽는 듯한 느낌인데 단칼에 응 내가 읽었는데 철핚 개념 볼라면 딴 거 봐 하고 쿨하게 짤라주시니 좋네요. 잃은 게 클수록 더 절절한 뭔가가 나오고 별 거 아닐 수록 시답잖고 안 써지는 게 아닐까 지레짐작해봅니다. 저는 뭘 좀 잃고 난 뒤에야 오래 쉰 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던 한 해였습니다.

syo 2020-11-05 20:19   좋아요 2 | URL
한 해가 어느덧 다 끝나가고 있군요. 여기나 거기나,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2020이었나 보네요.

어떨 땐 도리어 너무 큰 걸 잃고나면 그 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직후에 바로 몰아치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상실감이기 때문에 몸이 알아서 일단 미뤄놓고 차차 곶감처럼 빼먹는달까요. 아무렇지도 않다가 시간이 지난 어느 훗날 영화보다 갑자기 꺼이꺼이 울어제끼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반유행열반인 2020-11-05 20:33   좋아요 1 | URL
남은 한 해도 다가올 해들도 울 일 적고 웃을 일 많으시길 언제나 빕니다. 나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뭔가 신돈 짤 같은 거 붙여야 할 것 같은 ㅋㅋㅋㅋ)

2020-11-05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7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11-0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싀 .. 장판 저도 챕터 1다 읽고 이건 좋은 책이지만 원하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른 푸코 입문서 찾고 있었는 데 다음 글에 올려 두셔서 그거 부터 보려고요. 근데 장판 추천한 거 쇼님임 😑

syo 2020-11-08 11: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다시 말하지만, 쉽긴 장판이 쉽다! 그리고 장판은 좋은 책이에요!
 

 

바람이 부네

 

 

 

1

 

간지러운 게 문제였다. 한랭건조해지는 날씨를 피부도 따라가는가. 한랭하고 건조한 피부나 그 덕에 쓸쓸하고 애처로운 마음 같은 건 참아낼 수 있지만, 간지러운 건 인간의 의지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벅벅 긁다 보니 내 몸에 나도 모르는 흉터가 자꾸 생긴다.

 

더러워서 간지러운 게 아니라구요. 오전 오후 하루 2회 머리 감고 샤워하는 청아한 syo. , 그게 문제인가?

 

팔을 촥 꺾어서 등을 위아래로 쓸어보면 등판에 일정 간격의 선들이 가로로 좍좍 그어져 있는 것이 선명하게 만져진다. 모내기 마친 벼처럼 나란하다. 만석꾼 되겠군.

 

이런 형태의 등짝선을 두고 야한 뻘소리를주로 목욕탕에서주고받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농담이란, 누구야, 어젯밤엔 또 누굴 얼마나 못살게 굴어줬길래 이렇게 응? 누가 이랬어? 뭐 이런 시답잖은 것들을 말하는 건데, 그러나 어른의 삶이 어언 16년이나 지속되는 동안, 지금껏 누구도 내 등짝에 그래 주지 않았어……. 아무래도 내가 동기부여에 실패했나 보지. 꾸준히도 실패해왔나 보지. 그런 이유로 오늘도 내 등짝선은 내가 스스로 만든다.

 

손톱을 바투 깎아 보았다.

 

 

 

2

 



화학적으로 완벽한 아침은 대략 다음과 같다내가 아직 비몽사몽일 때첫 번째 햇살이 나의 눈꺼풀을 통과하여 망막에 닿는다망막은 시신경을 통해 뇌와 연결되며뇌의 솔방울샘이 이제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의 생산을 중단한다. [나의 멜라토닌 수치가 서서히 낮아지는 동안적당량의 코르티솔이 분비된다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잠에서 깬다.

마이 티 응우옌 킴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자연스럽게 잠에서 깬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잠을 자는 방은 창문이 거대해서 좋은 와중에 불편하다. 애초에는 마냥 좋았었는데, 어느 날 누워 있다가 건넛집 2층 창문 안쪽에서 손걸레를 들고 왔다갔다 하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서 그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보일 테면 보이고 볼 테면 보라지, 하는 마음으로 마치 창문 따위 없거나 아니면 창문 너머에 타인의 세상이 없는 것처럼 굴며 살았다. 커튼은 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건 남자라서 누릴 수 있는 자동적 특권의 일종이겠지.

 

그런 태도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봄인지 이른 여름인지 애매했던 어느 날, 집에 찾아와 에어프라이어로 치킨을 해주겠다는 여자친구의 말을 듣고 번뜩, , 창문을 가려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치킨을 해 먹자는 그녀의 말 뒤에 다른 뭔가가 숨겨져 있는지는 그 시점에서 내가 확신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치킨만 해 먹고 냠냠냠 맛있다 하고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늘상 확신할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집주인인지 청소업잔지 헷갈릴 만큼 부단히 청소하는 옆집 할아버지께 섹스하는 엉덩이를 보여드릴 수는 없었으므로. 그게 내 엉덩이든 다른 엉덩이든 간에.

 

우리 동네는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데 특별한 방식이 없다. 저녁나절 해서 자기 집 앞에 놓으면 되는데, 이건 구청이나 수거업체에서 정한 룰은 아니다. 그저 남의 집 앞에 내놨다가는 사회 발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한심한 도덕성에 관한 그 집 주인의 찌렁찌렁한 10분 스피치가 온 골목에 울려 퍼질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 간의 암묵적 규칙에 가깝다. 딴소리. 하여튼, 특별한 방식이 없다 보니 그냥 집 앞에 늘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커다란 비닐 봉투에 담아서 배출하는 추세였다. 그래서 우리 집도 검은색 대봉투를 인터넷으로 100매씩 사서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데, 그게 가림막으로 맞춤했다. 한 네 장 정도를 이어서 스카치테이프로 창문에 발랐더니 정말로 바깥 세상이 없어졌다. 마음먹고 바르면 쓰봉으로 암막도 만들 수 있는 신기한 세상. 그럭저럭 영상은 막았는데, 소리는 입술로 막기로 할까…….

 

그 봄에 그렇게 붙여놓고 귀찮아서 오래도록 떼지 않았다. 또 올 텐데 귀찮게 뭐하러, 하며 시꺼먼 김칫국을 마셨던 건데, 알고 보니 이 봉다리가 그간 아침 햇볕을 차단하면서 내 멜라토닌의 자연적 감소를 방해해왔던 듯. 어쩐지 아침마다 일어나기가 그렇게 싫더라니, 이게 다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21세기는 과학이다. 게을러도 과학적으로 게을러야 되는 시대다.

 

 

 

3

 

쓰고 보니 두 꼭지가 비슷한 느낌이다. 등 긁기를 빙자해서 뭔가를 호소하고 있고, 멜라토닌을 입에 담으면서 뭔가를 원하고 있는 눈치다. 집구석 생활도 큰 문제 없이 그럭저럭 평안하다는 증거겠고, 삼십 대 뒷길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건강할 대목에선 건강하다는 의미로구나 한다. 가을은 과연 사랑과 양생의 계절인가요. 아니면 syo가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syo인가요.

 


 

몸이 아프면 슬쩍 달라붙어 당신 손을 잡고 그 어깨에 기대 밥 한술 받아먹고 싶다 사랑한다고 사랑받고 싶다고 말을 못해 무슨 병에라도 옮아서는 곧 떨어져 버릴 듯이 매달려 있고 싶다

이향, <사과전문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에는 손이 저절로 가는 법이지어쩔 수 없어돼지는 손을 내미는 대신 코를 내밀지돼지는 말이네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해두고 코앞에 맛있는 음식을 놓아두면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까 코끝이 점점 늘어난다고 하더군맛있는 음식에 닿을 때까지 늘어나는 거지정말 집념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니까.”

나쓰메 소세키산시로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무엇일 수 있는가?

  그러니까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엇'일 수 있을 때왜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한 편의 소설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질문이다.

김다은혼밥생활자의 책장


욕망은 멀리 쏘다니게 할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돌아다니게 해야 할 것이네욕망을 완전히 가둘 수는 없으니까이룰 수 없거나 이루기 어려운 것들은 내버려두고 가까이 있거나 이루어질 성싶은 것들을 따라다니되모든 것은 똑같이 하찮고 겉보기만 다를 뿐 속으로는 똑같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네.

_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인생이 왜 짧은가


 

 

--- 읽은 ---

 


202.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피 / 2018

 

소설가도 정말 놀랄 정도로 엄청 돌아다니는 직업이로구나 싶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엄청 돌아다녀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괜히 서늘해지기도 하고, 작품을 빙자해서 여기저기 잘도 놀러다니는구만, 하는 질투심도 고개를 쳐든다.

 

이 나라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주인공(혹은 작가 자신)이 외국 어느 있어 보이는 나라의 이름만 들어도 있어 보이는 거리 이름을 줄줄 나열하며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면 괜히 화딱지가 나기도 한다. 이러고 말 거면 구글맵으로 보고 써라, 그냥, 괜히 작품 빙자해서 관광하지 말고. 실제로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직접 그 거리들을 둘러보면서 내면에 획득한 무언가를 다른 장면이나 서술 방식에 실어서 은근히 전달하고 있는데, 독자인 내가 열등감에 찌든 빙충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툴툴거리는 중일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런 부단한 떠돌아다님을 통해 나온 책이 이정도 된다면, 읽는 입장에서는 열등감이고 나발이고 그냥 땡큐땡큐만 연발할 뿐이다. 언젠가, 내가 이 사람의 일곱 배를 떠돌아 다닐 수 있는 날이 온다고 해도, 아마도, 내가 하는 이야기가 이 사람의 칠분의 일만큼도 즐겁고 아름답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읽는 ---

장판에서 푸코 읽기 / 박정수

/ 나쓰메 소세키

스무 살 / 김연수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이수영



--- 갖춘 ---

진실에 복무하다 / 권태선

리듬분석 / 앙리 르페브르



 


댓글(4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11-0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순…순결한 등짝…

syo 2020-11-03 10:34   좋아요 0 | URL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 뜬금포

다락방 2020-11-03 10:37   좋아요 0 | URL
1 만 읽고 쓴 댓글임을 고백합니다 ㅋㅋㅋ
1만 읽고 이거 쓴 다음에 다시 올라가서 2부터 읽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여기는 내가 그런말을 할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의바름) 이만총총.

syo 2020-11-03 10:41   좋아요 0 | URL
ㅋㅋㅋ예의마저 갖춰 버린 티아바타 천재님이시여.


잠자냥 2020-11-0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그 검은 비닐 햇빛 투과하면 밖에서 다 보이는 그런 거 아니에요? (-.- )a

syo 2020-11-03 10:3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저도 신경쓰여서 몇 번 올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빛 자체가 투과가 거의 안 돼...

비연 2020-11-0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나라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다.. 에 더 화들짝...

syo 2020-11-04 09:34   좋아요 0 | URL
그럴 수도 있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시면 생각보다 많은 불쌍이들이 있답니다 -_ㅠ

비연 2020-11-04 16:20   좋아요 0 | URL
헉. 그냥 놀랐을 뿐.. 불쌍한 건 아니죠^^;;;; 여행은 몸으로 다녀야만 여행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에..
쇼님은 마음으로 안 가는 곳 없는 여행가잖아요. 오히려 부러움~

수이 2020-11-0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에 복무하다 읽고 리뷰 대회 참가하시는 건가요? 쇼님이 1등 먹을 거 같다!!

syo 2020-11-04 09:34   좋아요 0 | URL
설레발은 안돼요. LG도 그러다가 야구 망했어.....

수이 2020-11-04 20:04   좋아요 0 | URL
음......... 그럼 제주도는 🤫 할래요

라로 2020-11-0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문제네! 너무 자주 씻지 마세요. (이젠 이런 글만 보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다른 나라에 가실 계획이 있다면 엘에이 먼저 생각해봐요. 여기 날씨는 토비 님께 별로 도움이 안 되겠지만, 볼 곳도 나름 있고, 나도 있고, 일단은 유명하잖아요오~~~.ㅋ

syo 2020-11-04 09:3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엘에이 = 여기, ‘나도 있고‘ 이런 부분이 주옥같군요 ㅎ
아, 하루 두 번 안 씻을 생각을 하니 슬프다....

라로 2020-11-05 01:37   좋아요 0 | URL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우리 이쁜 토비 님~~~!! 사실은 그게 다에요. 나도 있고,,, 우리집에 와요. 큰아들방에서 지내고, 나랑 놀고, 맛있는 거 사줄게.ㅎㅎㅎㅎㅎ (막 꼬시는 분위기로 전환!ㅋㅋ)

syo 2020-11-05 19: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과연 syo의 첫 해외여행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반유행열반인 2020-11-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킨은 아무렴 옳다.

syo 2020-11-04 09:36   좋아요 1 | URL
혼자서 먹어도 맛있고 둘이 셋이 먹어도 겁나 맛있는 치킨은 아무렴 옳다.

2020-11-03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4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풍오장원 2020-11-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전집 정주행중이신가요 ㅎㅎ 하루 샤워 두번하면 피부가 더 건조해진대요..

syo 2020-11-04 09:37   좋아요 1 | URL
전집 정주행까지는 아니고, 전기 3부작만 읽고 말아야지 했는데 또 후기 3부작이 땡기네요..

바람돌이 2020-11-04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 댓글을 남기나요? 쇼님 글을 항상 아주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 늘 감사한 마음으로 소개해주는 책으로 보관함도 빵빵하게 채우고요. ㅎㅎ 오늘은 저 1번 글을 보다가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요. - 음 제가 약간 오지라퍼입니다.
쇼님의 증상과 똑같은 증상을 거지고 있는 남편과 살고 있는데요. 쇼님의 증상은 약한 아토피일 가능성이 많구요. 기본적으로 피부가 건조해서 생기는 증상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심해지실겁니다. 손톱 바투 깍아봤자 소용없고요. 제일 쉬운 증상완화방법은 지금 바로 슈퍼에 가셔서 싸구려라도 바디로션 하나 사셔서 샤워후에 열심히 발라 주세요. 물론 성분 좋은 비싼걸 사면 더 좋으나 굳이 그러지 않고 바르기만 해도 훨씬 나아집니다. 바디로션 얼마 안합니다. 그리고 샤워는 하루 한번 정도로 줄이는 것이 좋으나 꼭 하루 2번씩 샤워를 해야 한다면 1번은 비누를 안쓰는것으로 하심이 가려움 예방에 좋을겁니다. 이상 소원들어주는 오지라퍼 바람돌이였습니다. 아 글구 친구 신청해도 받아주세요. 아 싫으시면 어쩔 수 없구요. ㅠㅠ

syo 2020-11-04 09:39   좋아요 0 | URL
길고 유익한 댓글 감사합니다.
바디로션 사놨는데, 귀찮아서 안 바르고 먼지 적립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늘 귀찮고 게으른게 문제네요.
그렇지만 오늘부터는 모래요정님 말씀대로 꾸준히 발라보겠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당^-^

바람돌이 2020-11-04 20:36   좋아요 0 | URL
음 모래바람편에 근면과 성실을 보내야 하는거였군요. 곧 보내겠습니다. 까삐까삐룸.....

라로 2020-11-05 01:3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이 모래 요정으로 친구도 아니었는데 급등급 업 된 거에요? 그럼 나는? 가디언 에인젤? (벌컥벌컥 - 김칫국 마시는 소리;;;)

syo 2020-11-05 19:25   좋아요 0 | URL
모래요정은 바람돌이님의 타고난 정체성인지라ㅎㅎㅎㅎㅎ
어린이의 친구!

가디언 에인젤 폼나는데요? ㅎㅎㅎㅎ 그거 시켜드릴게요ㅎ

바람돌이 2020-11-04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하나더요 어껀 제품을 쓸까 고민된다면 세타필 바디로션 추천합니다. 가격 저렴하고요. 1kg용량에 2만원대입니다. 혼자 쓰면 6개월도 가능합니다. 남자분이시니 무향에 저자극이라 가격대비 품질 좋습니다. ㅎㅎ

syo 2020-11-04 09:39   좋아요 1 | URL
심지어 사놓고 먼지쌓는 바디로션이 세타필이었습니다....

모운 2020-11-04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타민B를 좀 더 챙겨 먹고 다이알 비누를 사서 쓰게. 환절기 때마다 같은 증상으로 고통 받았는데 많이 좋아졌다.

syo 2020-11-04 20:17   좋아요 0 | URL
저렇게 써놔서 그렇지, 내쪽은 ‘고통‘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고,
그냥 등 긁다 나도 모르게 가는 흉터 몇 개 만든 수준이지.

비타민은 꾸준히 먹고 있고.

모운 2020-11-04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말해도 안 들을 거 같아... 바이트 또 낭비했다 또 탄소 배출을... 지구여 미안하네

syo 2020-11-04 20: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거 재밌는데?

2020-11-04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4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0-11-0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요님 증상은 외로움때문 ㅋㅋㅋ
커피,차 줄이시고 수분 섭취량을 늘려보세요.
간지러울때는 손톱이 아닌 효자손! ^ㅎ^

syo 2020-11-05 19: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요즘 scott님, 기승전syo가을남자 ㅎㅎ
바디로션 바르기 시작하니까 거의 안 간지러워요 ㅎㅎ

NamGiKim 2020-11-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선생 관련 신간이 나왔군요. 읽을 책이 또 늘었습니다.

syo 2020-11-21 11:14   좋아요 1 | URL
읽을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뿅뿅뿅 늘어나고 있겠지요? 이놈의 삶은 너무 짧네요....

NamGiKim 2020-11-21 22:03   좋아요 0 | URL
계속 폭증하고 있는 중.ㅋㅋㅋㅋㅋㅋ

syo 2020-11-23 02:32   좋아요 0 | URL
다 읽으시고 부디 건승하시길....
 

 

매너 있는 버뮤다

 

 

 

1

 

41313331. 성남시청이 진지한 진동 2회를 수반하며 매일 전송하는 문자메시지에 의하면, 지난 25일부터 오늘까지 내가 사는 지역에 발생한 신규 확진자 수는 4, 1, 3……, 1명이다. 개근이로군.

 

 

 

2

 

읽고 있는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울이 그런 영화에나 나오는 미래 도시처럼 바뀌었다는 사실을 안 건 지난가을이었다해가 저문 뒤의 저녁 때 부암동 고갯길을 밟으며 인왕산 쪽으로 넘어가는데 멀리 남산타워의 모습이 보였다. '또 가을이구나!'라는 감회가 가슴 한 편으로 솟구치는가 싶었는데 동행하던 사람이 "지금은 대기질이 보통이에요"라고 말하는 거다.

  "남산서울타워 기둥을 보면 알 수 있어요빨간색이면 나쁨초록색이면 보통파란색이면 좋음."

  그러고 보니 남산서울타워 기둥의 색깔은 초록색이었다그러니까 서울에서는 "또 가을이구나."라고 외치기 전에 남산서울타워 기둥의 색깔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었다그러니 서울은 얼마나 미래에 가까이 가 있단 말인가!

  시끄러운 시국에 사시사철 대기질을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물려받은 재산은커녕 부모 형제를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에 가족력이 있는 병에 걸린 신세와 같다고나 할까이제 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싶겠지만바로 그 이유로 모든 사람을 원망하고 싶다터 잡고 사는 땅의 꼴이 이렇다 보니 더욱 여행을 꿈꾸게 된다.

가장 그리운 곳은 일본의 나가사키맑았다그리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파랬다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말해서 뭐하겠는가노르웨이 베르겐미세먼지와 황사의 보호막 없이 있는 그대로의 햇볕을 마주하며 이대로 실명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중국 베이징만 아니라면 어디를 가든 지금 여기보다는 숨쉴 만하다내가 1981년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쓰겠다. 21세기가 되면 해외여행을 자주 다닐 것입니다숨 쉴 곳을 찾아서.

김연수언젠가아마도


 아오, 재미져.

 

 

 

3

 

작년 이맘때쯤엔 하루에 한 번 이상 강제적으로 미세먼지라는 단어를 듣고 살았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아광속으로 흘렀고 눈 깜빡 했다 싶더니 또 한 해 슥삭인데, 미세먼지라는 말만큼은 어쩐지 더이상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된장독에 구더기 걱정하게 생겼냐고, 지금 건물주가 임차료를 더블로 불렀는데. 미세먼지 심한 날이면 꼭 전화를 걸어와 마스크 마스크 신나는 노래를 부르던 작년의 엄마가 생각난다. 좋은 노래였지만 나는 따라부르지 않았지. 얼굴에 땀도 차고 달리면 숨도 차고 안경에 습기도 차는 그따위 물건에 돈을 지불하느니 차라리 미세한 먼지들에게 폐포 임대차 계약을 맺어주겠다! 그랬는데, 지금은 집 앞 슈퍼에 음쓰봉투를 사러 갈 때조차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코 부분을 최대한 꾹꾹 눌러준다. 예쁘게 하고 다니려고 마스크 스트랩조차 샀다. 살려고. 안 아프고 살아 보겠다고.

 

 

 

4

 

조금 더 읽어나가면 이런 대목도 있다.

 

세상이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하지만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내가 궁금한 건 인간이란 어디까지 긍정적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그건 아마도 지옥도 정겨워질 때까지가 아닐까.

같은 책

 

, 언젠가 정겨워지고야 마는 것인가, 아마도.

 

 

 

5

 

11, 12월에는 성의 역사 세 권을 읽는다. 4권까지 나왔는데 왜 3권까지 읽기로 정했는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시면, 중쇄에다 개정에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결과, 꼴랑 세 권인데도 표지 디자인에 통일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감히 상상컨대, 최초에는 세 권 다 3권처럼 촌스러운 형광 대일밴드 안에 부제를 집어넣은 디자인으로 뽑아냈는데(syo가 가지고 있는 세 권), 아무리 그래도 대일밴드는 아니다 싶었던 혁명 세력이 떨치고 일어났고, 투쟁 끝에 밴드 마니아를 축출, 개정된 1권은 부제를 간략한 밑줄 위에 올려놓았다. 썩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다시 8,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며 밴드 마니아가 돌아왔다. 그러나 한 번 권력을 잃고 월드컵이 두 번 열릴 동안 쓸개를 핥아야 했던 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개정된 2권에서는 과감하게 대일밴드를 떼 버리고 젊은 감성에 부합하며 복식 매너의 상징성까지 갖춘 최신 니플 밴드스타일을 도입한 것이다. 올여름 당신의 얇은 흰색 반팔 티셔츠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최고의 선택! ‘쾌락의 활용에서 ’, ‘이 이루는 락활용 삼각지대의 정중앙에 주요 부분이 오도록 부착하세요. 버뮤다 삼각지대에 들어선 비행기처럼, 겉에서 볼 때 뿅 하고 완벽하게 사라질 겁니다…….

 

 

 

6

 

개론서도 한 권 읽기로 했는데, 지금 syo가 보유하고 있는 푸코 관련 개론서 등등은 요런 구성이다.



아무리 봐도 장판이 제일 쉬워 보여서, 일단 거기서 시작. 차곡차곡 읽어서 이 기회에 푸코 패스도 개척해 볼까.

 

 


7


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드립도 못 치고 무심한 가운데 10월의 마지막 날을 떠나보냈다. 그거 정말 1년에 딱 한 번만 가능한 완전 효자콘텐츤데….

 



+

 

제목을 저따위로 붙여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물론 있었다.

 

 

 

 

--- 읽은 ---

 


201.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12

 

시집 읽고 이런 걸 옮기는 건 처음이지만, 작가소개 전문을 인용해보겠다.

 

장석남 1965년 인천에서 났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몇 권, 산문집 두어 권 냈다.

 

이 짧은 소개를 통해 이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을 설명해본다.

  1. 일곱 권이나 되는 시집을 몇 권이라고 뭉갰다.

  2. 시집이나 산문집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3. “두어 권냈다고 쓰는 대신, “두어 권 냈다고 썼다.

이상.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젋은 시절의, 요동이 남아 있던 장석남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날은 도통하신 느낌이라, 어쩐지 다른 중학교로 진학한 초등학교 시절 단짝을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는데 걔는 이과 가고 나는 문과 간 그런 기분이랄지.

 

 

 

--- 읽는 ---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 박정수

과학을 기다리는 시간 / 강석기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 2020-11-01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장석남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읽고 똑같은 감정 느꼈어요 ㅋㅋㅋㅋ 근데 인간 철들면 예술 분야 다 그런 거 아닌가 싶고요. 저도 서른여섯살 운운하면서 살구를 따던 장석남이 훨씬 좋아요!

syo 2020-11-01 15:35   좋아요 2 | URL
하긴, 철안든자가 철든자가 되는 동안 새로운 철안든자들이 나타나니까, 철안든자가 꾸준히 철든자가 되어 주어야 세상이 철안든자로 점철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겠네요. 허허허.

그나저나 서른여섯살, 좋은 나이죠!

반유행열반인 2020-11-01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오는 날인데 비 이야기가 안 나왔다! 비 바다 나무 하늘 구름 이런 거 안 나오고 확진자로 시작해서 마스크 스트랩(예쁜 거) 찍고 푸코 또 푸코 십일월 첫날 시월말 드립치고...버뮤다네요. ㅋㅋㅋㅋㅋ

syo 2020-11-01 2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그렇게 되었습니다.
비바다나무하늘구름 여전히 많이 좋아하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것들 생각이 전혀 안 나더라구요 ㅎ

북다이제스터 2020-11-0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이러스 때문에 다들 차 몰고 다녀 출퇴근 시간 훨씬 더 막힌 지난 6개월 동안 미세먼지 없고 더 깨끗한 공기를 보면 자동차가 미세먼지 원인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

syo 2020-11-01 21:07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저는 그냥 큰 파도가 작은 파도를 덮은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또 아니었나 보네요....

초란공 2020-11-01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81년은 제게 ‘어린 아이만 같아라’하던 나날이었는데, syo님이 1981년에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셨던 나이(?) 라는 생각에 숨을 죽이면서 읽었네요. 그런데 김연수 작가의 글이었네요^^ 휴~ 김연수 작가의 꽃미남 얼굴이 떠오르면서도 syo님을 앞으로 어르신이라고 불러야 하는줄 알았습니다~ 역시 화면이 큰 전화기로 바꾸어야하나 하는 고민도 생기구요~

syo 2020-11-01 21:1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1981년이라면 저희 부모님조차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시절이네요.
큰 오해를 낳을 뻔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김연수 선생님도 이제 꽤 연배가 되셨구나- 하는 생각이 다 드네요.
아, 언제까지나 젊은 연수횽인 줄만 알았지.....

단발머리 2020-11-0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효자콘텐츠 드립 너무 들어보고 싶어요. 하루 지났지만, 어떻게 안 될까요? ㅎㅎㅎㅎㅎㅎ

syo 2020-11-01 21:11   좋아요 0 | URL
364일만 기다리시면 될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추풍오장원 2020-11-01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조주의 책은 사서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네요. 인간사랑 책은 이상하게 너무 딱딱해 보입니다. 행시생 시절 정치학 책에 데여서 그런건지... 나쁜책 같지는 않은데..

syo 2020-11-01 21:14   좋아요 1 | URL
저도 저걸 지나가듯 훑은 기억만 있어서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좋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일단 두께만 봐도 한 덩치 하는 게, 비슷한 영역을 다룬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 비해 압도적이잖아요?
 

 

한몸 살이의 경제학

 

 

 

1

 

목놓아 불러보았으나 개놈이는 돌아오지 않으려나 보다. 추운 겨울이 온다.

 

 

 

2

 

많이 놀았다. 연초, 한두 달 쯤 일을 하고 나니 올해는 아무래도 100권을 읽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의 절반을 더 넘기고 일을 관두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읽은 책이 200권이니, 과연 많이 놀았다. 때마침 읽기도 지쳤고 쓰기도 지루하니, 숨어볼까.

 

 

 

3

 

먹고 살 방편을 만들긴 만들어야 하니까.

 

 

 

4

 

이불 밖은 춥다. 돌돌 말고 있으면 꼭 내 한몸만 따뜻하다.

 

 

 

--- 읽은 ---

 


195.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

 

인류 최초의 금기는 사랑과 관계있지 않을까. 사람이나 가축을 죽인다거나 곡식을 훔치는 것에 대한 처벌을 정하기 훨씬 전에 이미,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을 정하고 그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사람의 영역 바깥으로 몰아내는 대적불가의 금기가 있었을 것이다. 수만 년의 세월을 들여 인간들은 그 금기가 품은 독기를 조금씩 빼 왔으나, 금지된 사랑은 아직도 무겁고 무섭다.

 

약하고 홀로 설 줄도 모르는 남자가 하필 가장 어려운 전장에서 세상과 맞선다.

 


 


196.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

 

영화는 끝나지 않았고, 기록하고 회상할 만하지 않은 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아두는 것이 삶이라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질투를 걷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카메라고, 삶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197.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도 있지만 말은 많아도 탈은 적은 것도 있는데, 아무래도 고대사가 그런 듯하다. 고대라서 그렇겠지. 4대 문명이 모두 한민족의 작품이라든가 신라가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다든가 하는 참신하고 미친 소리도 있다는데, 설령 그렇다 한들 이제 와서 어쩌라고 그 난리인지.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데 얼마나 많은 날들을 투여해야 비로소 역사의 소중함을 몸으로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될까. 이 왕국의 영토가 어디까지 뻗었고 저 왕의 업적은 또 어디까지 뻗쳤는가를 외우는 일에서 재미와 뿌듯함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유형의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삶이 더 희망찼을까.

 

고문서를 뒤적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을 뛰어다니는, 범인의 눈에는 일견 쓸모없어 보이기도 하는 역사가들의 그 지난한 노력들과 그 결과물을 담담히 서술하는 역사책이 이제는 쿨하고 좋은 것 같다. , 표지부터 쿨한 색깔.

 

 

 

 

198. 우리를 속이는 말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20

 

듣자니 주식의 세계에는 작전세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판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를 취한 후 다시 다음 판으로 움직인다.

 

인간이 언어의 도구임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자유의지와 주체성을 확신한다. 엄마 아빠를 처음 발음하는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벌써 사람은 언어에 염색된 존재임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무색투명한 객관성과 중립성을 강조한다. 그조차 이미 하나의 언어적 족쇄라는 것을 모르고. 그건 정교하지 못해서 불공평한, 아니, 정교하게 불공평한 사회 구조로부터 필연적으로 유발되는 개인의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의 21세기형 변종이다. 언어는 반드시 인간을 휘두르고, 인간은 여지없이 언어에 조종된다. 오늘날, 생각이 언어를 만든다고 믿는 것은 뭐랄까, 최저시급을 받고 법정 근무시간을 아득히 초과하는 노동을 하느라 하루하루 연소 되고 깎여나가면서도,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 적혀 있으니까 내가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믿고 내일도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기를 선택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 결과가 내게 바람직할 수는 있지만, 언어를 조작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더욱 바람직할 수 있다.

 


 

 

199. 일단, 성교육을 합니다

인티 차베즈 페레즈 지음 / 이세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

 

확실한 동의와 안전을 확보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라는 조언이다. 이를테면, 항문 자위를 통해 전립선을 건드려보면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과 그러니까 한 번 해 보라고 권하는 것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위치한 서술 같은 것. 방법과 준비요건(청결이 알파요 오메가! 손톱도 깎아라!)에 대한 설명도 늘 빼놓지 않는다. 섹스는 경쟁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말에 감동. 감동할 데가 아닌 지점에서 감동하는 나 자신에게 또 감동……. 앞으로의 섹스라이프는 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

 

, 독자로 남자 청소년만을 상정하고 있다. 청소년 책에도 꼼꼼하게 감동하는 귀요미 독서가 syo.

 



 

200. 연년세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

 

놀랍게도 그저 그랬다. 그가 그저 그렇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기본값이 있어서, syo에게 황정은은 아무리 그저 그래도 별 네 개 미만을 받을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마찬가지로 기댓값도 있다 보니 별 반 개를 깎으면서 내 마음도 깎여나가는 기분. 차분하게 마음을 타고 넘는 문장들이 여전해서 안심하는 중.

 

 

 

--- 읽는 ---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 장석남

고전잡담 / 장희창

성가신 사랑 / 엘레나 페란테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10-3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쿠 골고루 많이도 읽으셨어요. 싸우자 세상! 모든 것을 시도해 보겠다! 패기가 넘치면서 이불도 돌돌 마는 글이네요.

syo 2020-11-01 15:24   좋아요 1 | URL
매일매일이 주말 같군요. 아무래도 패기보다는 이불이지만요.

반유행열반인 2020-10-3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나는 좋았는데... 전자책도 다시 샀는데... 거 몇 번 더 읽으면 좋지 않을까요. 파묘 두 번 읽으니 더 좋더라구요 저는.

syo 2020-11-01 15:23   좋아요 1 | URL
그럴까요? 자기 전에 읽은 거라 약간 태도가 불량했을 수도 있어. 목욕재계 후 경건한 마음으로 읽지 못하구....

블랙겟타 2020-10-3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과는 다르게 이불 안에서 뒹굴 거릴 수 있어서 저는 겨울이.. 좋아요 ㅋㅋㅋ

syo 2020-11-01 15:2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이불 안에서 혼자 뒹굴거리는 것도 재밌지만, 그렇지만, 어휴, 뭐랄까,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llegoriker

 

 

 

영원히 바람 부는 벼랑에서 어떤 소리를 기다리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걸어 와서 커다란 나무의 드러난 뿌리 사이에 텐트를 쳤다. 벼랑에서 그가 하는 일은 바람에 맞서는 게 전부였다. 지구의 절반을 걷는 동안 흠집 하나 나지 않은 그의 튼튼한 구두가 부는 바람에 다 낡아질 만큼 오랫동안 그는 벼랑에 섰고 수만 개의 석양을 세고 요동치는 지평선을 손끝으로 다듬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이 충분하고 넘쳐서 이제 사람들은 영원을 이야기할 때 벼랑과 바람과 벼랑에서 바람맞는 사내를 묶어서 말했다. 저기 저 벼랑 위에 서 있는 영원을 봐. 사람들은 어부가 등대를 마음에 들여놓듯 사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부가 등대에게 말을 걸지 않듯 누구도 사내의 안부를 묻거나 해진 구두를 고쳐주거나 텐트 입구에다 잔치 음식을 두거나 하지 않았다. 영원함에게 그러하듯, 사람들은 사내를 원하고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런 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취급했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무참한 말 속에 들어앉은 광막한 외로움을 보라.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은 저 혼자서 변하지 않고 모든 변하는 것들을 지켜보며 영원한 외로움에 사무쳤을 것이다. 나는 영원의 목을 조르기 위해 태어났는데, 어째서 오직 나만이 영원의 증거물일까. 풀리지 않는 역설을 영원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영원의 마른 몸 위로 깎아지른 벼랑은 서고 바람이 그것을 끝없이 핥았다. 그리고 다시 영원의 절반그 역시 작은 영원일만큼 시간이 흘렀고 지구의 절반을 걸어 사내가 벼랑에 도착했던 것이다. 영원의 풍경에 등장하기 위해서, 영원함에 관한 알레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 사내는 낡지 않는 구두를 신고 와 여기에서 낡아가는 중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오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사내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영원히. 그 침묵 또한 하나의 영원일 것이다. 관심 어린 무관심. 사람들은 기어코 영원에 대한 관념을 완성했다. 영원에 대한 모든 지식이 낱낱이 밝혀져 한 문장으로 세상을 떠돈다. 영원한 건 없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단번에 영원의 모든 실체를 파악한 것처럼 굴며 온갖 형태로 그 소식을 변주하여 퍼뜨렸다. 나는 새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떨어뜨린들, 그 권세가 영원할 것 같으냐. 쯧쯔, 영원한 사랑 같은 허황된 말이나 믿고 있으니 결국 그 꼴이 났지. 아이야, 너의 그 빛나는 아름다움 또한 한때일 뿐이고 너 역시 언젠가 나처럼 늙고 낡아 세상의 뒷면으로 조용히 숨어들어야 할 운명이란다. 영원을 둘러싼 값싸고 구하기 쉬운 명제들로 가득 찬 세상이 그렇게 혼잡하고 시끄러운 동안, 벼랑 위에서 사내는 낡아가는 구두처럼 조용히 어떤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이고 사내가 노을에 녹은 빛처럼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그의 사라짐마저 영원에 대한 자신들의 낡은 관념을 영원히 타오르게 할 장작으로 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잊힐 것이다. 영원의 개념에 포획된 모든 개체적 사건들이 지금껏 그러했듯이. 사내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두통과 불면에 시달리는 밤이 많았을 것이고, 어쩌면 그조차 영원할 위험이 있었으니, 사내는 좁은 텐트 안에서도 길을 잃고 충분히 헤매었을 것이다.

 

그 사내를 만난 적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기를. 자신만 속아 넘어가는 거짓말로 스스로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지 말기를.

 

어쩌면 영원은 순간이고 순간이 영원한 것이어서,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가는 선이 저녁으로 붉게 일렁이는 짧은 순간을 영영 바라보는 일 속에서, 그 일을 해내고 실패하며 일구는 시선의 뜨겁고 또 서늘한 교차로에서, 한 차례의 생 전체를 걸고 들리지 않는 우렁찬 소리를 기다리며 맨몸으로 시간의 늑골을 더듬는 길고 지난한 은유법 속에서, 우리는 빛을 타 넘고 우주를 살라먹는 찰나의 순간을 발견할지도 모르는데, 그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부르고 설명하고 옆에 앉히고 싶은 마음에, 차마 영원이라는 말을 빌려 온 것은 아닐까.

 

우리가 각자의 벼랑 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동시에 우리는 다른 이들의 세상을 영원에 대한 말들로 오염시키는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진심을 다해 유독하지는 않다. 영원을 믿지 않는 마음속에 영원에 대한 영원한 갈구를 숨겨 놓고, 아니라는 말이 적힌 종이를 뒤집어 아무도 몰래 혹시, 어쩌면, 이번만큼은, 다시 한번 더, 라고 써넣는다. 영원히 세어도 끝나지 않을 물음표를 적어넣는다. 사각사각, 희망이 마음의 표면을 스치는 소리, 섣부르고 위험하게 또 한번 몸을 던지는 소리, 세상을 침묵시킬 날카롭고 부드러운 소리, 지구의 절반을 걸어와 텐트를 치고 우리가 영원히 기다리는 소리가 있다.

 

 

 

 

--- 읽은 ---

 


194.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

 

인간과 사람이 다르듯, 공간과 장소가 다르다. 누군가에게 단지 공간일 뿐인 어떤 곳이 다른 누군가에겐 하나의 장소가 되고, 장소는 인간과 공명한다. 장소가 품은 기억은 인간을 연주하는 숙련된 손이고, 장소에 기록된 기억은 한 번 익힌 자전거 타기처럼 시간이 지나도 끝내 잊히지 않고 돌아온다. 물론 나 혼자 울고 나 혼자 아득해지면 그만이겠으나 그래도 그 마음을 전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무기가 언어라면, 아마 이야기는 이렇게 흐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 걸음으로 시내를, 예루살렘 가, 나이팅게일 가, 펠리칸 가, 파라디스 가, 임머젤 가, 그 밖의 많은 다른 거리와 골목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는지, 그리고 마침내 두통과 유쾌하지 않은 생각에 시달리며 중앙역 바로 옆, 아스트리트 광장에 면한 동물원으로 들어가 쉬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읽는 ---

연년세세 / 황정은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권오영

우리를 속이는 말들 / 박홍순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 이미화

맑스를 읽다 / 로베르트 쿠르츠

어른들의 거짓된 삶 / 엘레나 페란테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 정주영

 

 

--- 갖춘 ---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 신용목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10-29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작가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사게 된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그런데 정작 그 작가는 그 책의 전부
는 아니고 일부만 읽었더라는.

인연은 그렇게 가 닿는가 봅니다.

syo 2020-10-31 14:15   좋아요 0 | URL
저는 <아우스터리츠>만 읽었습니다.
이걸 읽고 나니까 다른 걸 읽을 엄두가 안 나네요.
사실 이것도 다음에 한 번 더 제대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전에 벤야민이랄지, 르페브르랄지, 이런 책들을 좀 더 읽은 다음에....

반유행열반인 2020-10-29 17: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놈아 너 말고...개놈이 어디갔어...

syo 2020-10-31 14:15   좋아요 1 | URL
개놈이가 죽은 건지, 아니면 올해 중2가 된 건지....

반유행열반인 2020-10-31 14:44   좋아요 1 | URL
회춘 ㅋㅋㅋ이십 살 젊어졌으면 이득이네요!!!

공쟝쟝 2020-10-29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개놈을 찾아서...

카알벨루치 2020-10-29 23:05   좋아요 1 | URL
푸하하하 개놈!!! 다덜 쇼군 중독증에 걸리신 듯 합니다 알라딘에 본좌엔 쇼군이...

syo 2020-10-31 14:15   좋아요 1 | URL
인간개놈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