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몸 살이의 경제학

 

 

 

1

 

목놓아 불러보았으나 개놈이는 돌아오지 않으려나 보다. 추운 겨울이 온다.

 

 

 

2

 

많이 놀았다. 연초, 한두 달 쯤 일을 하고 나니 올해는 아무래도 100권을 읽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의 절반을 더 넘기고 일을 관두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읽은 책이 200권이니, 과연 많이 놀았다. 때마침 읽기도 지쳤고 쓰기도 지루하니, 숨어볼까.

 

 

 

3

 

먹고 살 방편을 만들긴 만들어야 하니까.

 

 

 

4

 

이불 밖은 춥다. 돌돌 말고 있으면 꼭 내 한몸만 따뜻하다.

 

 

 

--- 읽은 ---

 


195.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

 

인류 최초의 금기는 사랑과 관계있지 않을까. 사람이나 가축을 죽인다거나 곡식을 훔치는 것에 대한 처벌을 정하기 훨씬 전에 이미,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을 정하고 그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사람의 영역 바깥으로 몰아내는 대적불가의 금기가 있었을 것이다. 수만 년의 세월을 들여 인간들은 그 금기가 품은 독기를 조금씩 빼 왔으나, 금지된 사랑은 아직도 무겁고 무섭다.

 

약하고 홀로 설 줄도 모르는 남자가 하필 가장 어려운 전장에서 세상과 맞선다.

 


 


196.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

 

영화는 끝나지 않았고, 기록하고 회상할 만하지 않은 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아두는 것이 삶이라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질투를 걷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카메라고, 삶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197.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도 있지만 말은 많아도 탈은 적은 것도 있는데, 아무래도 고대사가 그런 듯하다. 고대라서 그렇겠지. 4대 문명이 모두 한민족의 작품이라든가 신라가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다든가 하는 참신하고 미친 소리도 있다는데, 설령 그렇다 한들 이제 와서 어쩌라고 그 난리인지.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데 얼마나 많은 날들을 투여해야 비로소 역사의 소중함을 몸으로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될까. 이 왕국의 영토가 어디까지 뻗었고 저 왕의 업적은 또 어디까지 뻗쳤는가를 외우는 일에서 재미와 뿌듯함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유형의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삶이 더 희망찼을까.

 

고문서를 뒤적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을 뛰어다니는, 범인의 눈에는 일견 쓸모없어 보이기도 하는 역사가들의 그 지난한 노력들과 그 결과물을 담담히 서술하는 역사책이 이제는 쿨하고 좋은 것 같다. , 표지부터 쿨한 색깔.

 

 

 

 

198. 우리를 속이는 말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20

 

듣자니 주식의 세계에는 작전세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판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를 취한 후 다시 다음 판으로 움직인다.

 

인간이 언어의 도구임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자유의지와 주체성을 확신한다. 엄마 아빠를 처음 발음하는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벌써 사람은 언어에 염색된 존재임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무색투명한 객관성과 중립성을 강조한다. 그조차 이미 하나의 언어적 족쇄라는 것을 모르고. 그건 정교하지 못해서 불공평한, 아니, 정교하게 불공평한 사회 구조로부터 필연적으로 유발되는 개인의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의 21세기형 변종이다. 언어는 반드시 인간을 휘두르고, 인간은 여지없이 언어에 조종된다. 오늘날, 생각이 언어를 만든다고 믿는 것은 뭐랄까, 최저시급을 받고 법정 근무시간을 아득히 초과하는 노동을 하느라 하루하루 연소 되고 깎여나가면서도,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 적혀 있으니까 내가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믿고 내일도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기를 선택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 결과가 내게 바람직할 수는 있지만, 언어를 조작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더욱 바람직할 수 있다.

 


 

 

199. 일단, 성교육을 합니다

인티 차베즈 페레즈 지음 / 이세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

 

확실한 동의와 안전을 확보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라는 조언이다. 이를테면, 항문 자위를 통해 전립선을 건드려보면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과 그러니까 한 번 해 보라고 권하는 것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위치한 서술 같은 것. 방법과 준비요건(청결이 알파요 오메가! 손톱도 깎아라!)에 대한 설명도 늘 빼놓지 않는다. 섹스는 경쟁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말에 감동. 감동할 데가 아닌 지점에서 감동하는 나 자신에게 또 감동……. 앞으로의 섹스라이프는 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

 

, 독자로 남자 청소년만을 상정하고 있다. 청소년 책에도 꼼꼼하게 감동하는 귀요미 독서가 syo.

 



 

200. 연년세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

 

놀랍게도 그저 그랬다. 그가 그저 그렇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기본값이 있어서, syo에게 황정은은 아무리 그저 그래도 별 네 개 미만을 받을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마찬가지로 기댓값도 있다 보니 별 반 개를 깎으면서 내 마음도 깎여나가는 기분. 차분하게 마음을 타고 넘는 문장들이 여전해서 안심하는 중.

 

 

 

--- 읽는 ---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 장석남

고전잡담 / 장희창

성가신 사랑 / 엘레나 페란테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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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0-3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쿠 골고루 많이도 읽으셨어요. 싸우자 세상! 모든 것을 시도해 보겠다! 패기가 넘치면서 이불도 돌돌 마는 글이네요.

syo 2020-11-01 15:24   좋아요 1 | URL
매일매일이 주말 같군요. 아무래도 패기보다는 이불이지만요.

반유행열반인 2020-10-3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나는 좋았는데... 전자책도 다시 샀는데... 거 몇 번 더 읽으면 좋지 않을까요. 파묘 두 번 읽으니 더 좋더라구요 저는.

syo 2020-11-01 15:23   좋아요 1 | URL
그럴까요? 자기 전에 읽은 거라 약간 태도가 불량했을 수도 있어. 목욕재계 후 경건한 마음으로 읽지 못하구....

블랙겟타 2020-10-3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과는 다르게 이불 안에서 뒹굴 거릴 수 있어서 저는 겨울이.. 좋아요 ㅋㅋㅋ

syo 2020-11-01 15:2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이불 안에서 혼자 뒹굴거리는 것도 재밌지만, 그렇지만, 어휴, 뭐랄까,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