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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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에 대해 '우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세계를 아는 것, 그 사람의 우주를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우주를 다 볼 수 없는 것 처럼 사람이 담고 있는 우주는 다 볼 수도 없고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참 많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는데 매번 날을 세우다가 어쩌다 한 번쯤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할 때, 나도 그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집이 딱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아니어서 가끔 집에서나 잘 통하는 야한 농담을 던지다가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걸 느꼈을 때나 색이 화려한 옷을 즐겨 입어서 자주 퉁박을 듣는다던가, 보기보다 냉정한 성격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면 나도 당황스럽다.

 

나도 그들에 대해 당연히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유난히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답답함을 느낄 뿐더러 터놓고 얘기를 못하니 거리를 두고, 남의 옷차림 자체에 참견하는 오지랖(당신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다!)에 이해를 못하며, 근거없는 온정주의로 나를 나쁜 사람을 만드는 사람을 나는 싫어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싫어한다'는 강한 표현을 쓰는 게 좀 두렵지만 내 마음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면 그렇다. 사람에게 있어서 호불호가 강한 내 성격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다. 사람 별로 안 좋아하고 팍팍한 성격은 이제 받아 들여야지.(사람을 안 좋아해서 책 블로그는 계속 하는걸까?)

 

내가 내 우주를 바라보기 힘드니 다른 사람 우주도 보일리가 없다. 심리학은 그래서 발달하지 않았을까. 내 우주를 바라보기. 내면 바라보기. 한 번 사는 인생 지금만을 즐기며 단순하게 쿨하게 신나게만 살면 좋으련만... 그게 안 되는 게 사람이니...

 

과거에 벗어나기란 누구도 쉽지 않다. 게다가 내가 원치 않은 엄마를 얻은 탓에 자기도 모르게 성격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하니 무서운 일이다.

 

그 매력에 빠져 한 때 심리학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지만 내 의지도 아닌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성격이 만들어진다는 게 좀 부당하게 느껴져서 마음 편하게 관심을 꺼 뒀다가 우연히 가볍게 읽으려고 꺼내들어 단숨에 읽어내렸다.

 

사람의 성격을 너무 심리학적으로 푸는 것 같은 느낌도 있어 약간 거부감도 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읽기 쉽고 동감이 가는 에세이다.

 

신경이 더 곤두서게 마련인 여행에서 사람 관찰을 더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여행갔을 때 이탈리아 프랑스 할머니들이 곱게 꾸미고 다니는 걸 종종 봤는데, 그걸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그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여자들이 좋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건강하다고 느껴진다. 역시 사람은.. 집안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드 <How I met your mother>에는 항상 수트를 입고 여자 꼬시기에 혈안이 나 있는 '바니'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바니는 30살 이상의 여성은 상대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여자와 'father's issue'라고 하는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한 여자들을 찾아 위로해주고 하룻밤을 보내기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인 그도 역시 부재한 아버지와 방탕한 어머니와 같은 부모와의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드라마 캐릭터라 그저 매력적인 '바니'도 현실에서는 잘못된 부모를 만난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분류될테지.

 

내가 그럼에도 바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그런 여자이기 때문이겠지. 내가 고르지 못한 부모는 포기하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하면서 살아야겠다. 심리학에 대한 책을 너무 읽다보면 가족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에 좀 자제해야겠다. 가끔 불안할 때만 읽고 마음을 다 잡는 정도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사람은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그거.. 진짜 어렵다. 나라도 열심히 사랑하기. 사랑받는 사람되기. 올해는 이런 목표를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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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뷰티 - 할인행사
샘 멘데스 감독, 아네트 베닝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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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자기 과시형 SNS의 인기없는 사용자로서 지난 몇 년 동안 느낀 점은 실제로 행복한 것 보다 타인한테 행복하게 보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낭비라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좋아요'의 숫자와 댓글에 민감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엔 인기 얻는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님을 실감하고 어디나 슬슬 멀어지게 되는게 내 SNS의 말로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행복을 가장하는 건 연예인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부가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경우가 제법 있는 듯하다. 미국도 예외는 아닌 듯 가족이란 이름만으로 묶여져 있는 구성원들이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라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어느 주의 주택가에 두 가정이 있다. A 가족은 딸과 아내의 무시로 자괴감과 무기력에 빠진 아버지이자 남편,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부동산업자인 어머니이자 아내, 반항기가 가득한 어두운 10대 소녀이자 딸로 구성되어 있다.

 

B 가족은 해병대 출신으로 나찌 시대 물품 콜렉터인 엄격한 아버지이자 남편, 무기력에 하루종일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식물같은 어머니이자 아내, 비디오 찍는 취미를 갖고 있는 마약상인 10대 소년이자 아들로 이뤄져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특별해 보일 것 없는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을 유지하며 사는 그들의 속은 서서히 썩어간다. (이래서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다'는 건가?) 10대 자녀가 있는 가족들이 서로 대화가 없는 것은 태평양 건너서도 비슷한 풍경인가보다.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를 물고 뜯고 끌어내리기 시작하는 그들은, 그럼에도 각자의 관습에 맞게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사춘기를 맞고 있는 십대 소년 소녀와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는 부부는 가족이 아닌 밖에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다. 


A 가족의 경우. 가장은 직장 상사의 비리를 알고 협박한 후 1년 치 퇴직금을 받고 무기력한 직장 생활을 그만둔다. 최대한 책임감이 적은 맥도날드에 취직해서 패티를 구우며 몸을 키우기 시작한다. 왜냐.. 딸 친구인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소녀의 "너네 아빠 섹시해. 몸만 좀 키우면 되겠어.."라는 말을 듣고. 

아내는 성공한 부동산 업자와 바람을 피우며 새로운 활력을 찾아간다. 그의 성공한 이미지를 벤치마킹하면서 총 쏘는 기쁨도 알게 된다. 방아쇠와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딸아이는 자신를 추앙하는 신도를 얻는다. 이웃집에 살면서 자신을 비디오로 촬영하며 그녀를 숭배하는 소름끼치는 소년에게 마음을 뺏긴다.


B 가족의 경우. 가장은 여전히 가족의 전통적 가치, 아름답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전에 약물복용과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킨 아들을 감시하면서. 

아내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면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집 안에 떠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듯이.

아들은 아버지 몰래 마약딜러를 하며 큰 용돈을 벌어 비디오 기구들을 산다. 비디오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촬영하는 예민한 소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존재는 다름아닌 이웃집에 사는 소녀다.


A 가족 소녀의 친구, 모델 지망생인 예쁜 소녀는 평범하게 사는 것은 매우 비참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항상 시험해보고 싶어하는 소녀가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란..! (그렇다고 얘 잘못은 아닌게.. 머 예쁜 게 죄도 아니고..)


가족들의 갈등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최고조로 달아갈 때 들리는 한발의 총성. 그리고 깨달음은 왜 항상 늦게 오는지. 모든 것을 다 잃고 겪어봐야 깨닫는 사람들은 늘 어리석고 그래서 평범하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건 미덕이다. 미덕은 강요된 것이 아니기에 지켰을 때 아름답다. 영화의 메세지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아름답게 살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도 본인의 자유이지만.


아직 중년이 안 되어서 그런지 10대 소녀가 어둡게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게 더 안쓰러웠다.


특히 십대에는 세상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비참한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나도 실은 그랬었다. 어떻게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냐, 하고 조금 현실을 내려놓은 지금에는 그때를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 때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게다가 옆에는 거의 모든 남자애들이 흠모하는 예쁜 친구가 있다면. 친하게 지내지만 100% 마음을 열지도 않고 나를 은근 슬쩍 밑으로 보는 것도 분명한, 그럼에도 내 눈에도 예쁜 친구가 있다면.


열렬히 자신을 숭배(worship) 하는 소년의 존재는 그래서 더 반가웠을 것이다. 그것도 걔도 어느 정도 매력이 있어서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면.


창문 너머에서 자신을 카메라로 응시하는 소년을 위해 속옷을 열어젖히는 장면과 소년을 경멸하는 척 하면서도 자기를 지켜보는 걸 속으로는 기쁘게 생각해서 웃는, 그걸 반사된 거울에서 포착한 소년의 카메라가 확대되는 장면은 단언컨대 영화의 베스트 씬이다.


소년의 사랑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빠를 죽여달라고 하는 무리한 부탁을 해보거나 떠나자는 소년의 대책없는 말에도 고민없이 따라 나설 수 있는 10대 소녀의 치기어린 드라마는 무척 내 맘을 끌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었어도 나를 더 많이 좋아해준 사람에게 고마움보다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순진한 신도들을 등치는 교주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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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000 킬로미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마누엘레 피오르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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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처음으로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후, 번듯하게(?) 직장을 잡고 나를 먹여살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가 더럽게 안 통한다는 서유럽권만 골라 다녀와서 그런지 다른 환경이 주는 이국물에 심히 심취되어 있었다.

 

목적없는 여행(내 인생에서는 큰 의미였지만서도)에 로밍같은 건 해 갈 리가 없으니 당연히 엄마와의 통화는 와이파이가 되는 호스텔에서만 가능했다. 엄마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전화를 걸면 (밤낮 싸돌아 다니다) 10시쯤 되서야 전화를 받거나.. 내가 8시에 밥을 먹다가 엄마가 자기전에 전화를 하는 식이었다.

 

물론 처음에야 잘 도착했다는 보고 정도는 했지만 슬슬 나중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여기 새로운 걸 경험하려고 온 건데! 나는 애가 아닌데! 가족한테 전화하다가 대화가 끊기 잖아요! 라면서...엄마한테 손 안벌리고 간 게 처음이라(으이유.. 내가봐도 한심타) 이런 반항의식이 더 심했다.

 

관광하면서 느낀 것은... 관광객은 역시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 관광만 하는 것도, 즉 놀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는 거 였다. 시간 죽이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긴 하지만 추운 날씨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내 과자 삥 뜯는 집시들도 무서웠고)

 

40일 동안 자유를 신나게 만끽하고 와서 서울에 오니 우울 그 자체.. 사실 나의 문제였음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게 아니다. 말도 안 통한 곳에 혼자 가서 죽지 않고 돌아왔으니 여기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곧 시들시들해졌다.

 

어쩌면 유럽여행에서 내가 얻고 싶었던 건 나 어디어디 가봤어요 하는 경험이라기 보단 날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취직은 이제 더는 백수로 살 수 없다는 절박감이 밀어붙여서 되었다.

 

책은 풋내기 시절의 사랑에서 중년의 위기(?)까지 공유하는 두 여인과 또 다른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경험의 부족인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다만 가슴을 때리는 대사가 몇 가지 있었다.

 

"떠나는 것 보다 돌아오는 게 더 힘든거야.."

 

"사람을 못 믿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식물을 좋아하게 되지.."

 

떠나는 거야 싫었던 일을 모두 잊을 수 있지만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게 될 때는 내가 부정했던 것들을 다시 껴안고 살아야 되는데 그걸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 더 큰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임을 잘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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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헤븐스 도어 - 아웃케이스 없음
토마스 얀 감독,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 외 출연 / 대경DVD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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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간이 좀 나면 예전에 봤던 영화를 찾아보고 있다. 뭔가 안전을 추구하는 불황형 영화 선택이랄까. 예전에 한 번 보고 좋았던 영화는 두 번 보면 더 좋고 처음에 못 봤던 것까지 보이는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이래서 첫인상이 틀렸다고만 할 수 있는지!


영화는 며칠 후면 죽을 두 사람이 만난 이야기치고는 가볍고 재밌다. 영화를 언뜻 보면 남는 것은 두가지.  도어즈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멜로디. 그리고 손에 꼽을 만한 멋진 엔딩 장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멋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역할은 그들에게만 남겨두기로 하고...


겉보기에도 서로 다른 두 남자. 이 둘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며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망연자실해서 진탕 취한 그들. 당연히 죽기 전에 뭐할꺼야? 라는 질문을 하고, 이들 중 하나가 바다에 가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되자 나머지 하나는 놀린다. "천국에서는 모두 바단에 대해 얘기해.. 솟아 오르는 태양, 붉게 물드는 바닷물.. 근데 넌 아무 할 말도 없게 되지"


데킬라에 잔뜩 취한 이들은 바다를 보러 탈출을 감행하게 되고, 어쩌다보니 마피아의 돈이 든 멋진 벤츠를 훔친다. 그리고 좀 즐겨보기 위해 은행을 털고 예쁜 옷을 마련한다.( 얘들은 트렁크에 돈 가방이 있는 줄 몰랐다.) 이들은 쫓기는 몸이 된다. 다행이 그들을 쫓는 경찰과 마피아 조직원들은 무진장 멍청하다. 이들은 신나게 쫓긴다. 쫓기면서 그들만의 버킷 리스트 몇 개를 만들고 이뤄가면서 그들은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곧잘 이런 질문을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얼 할래?"

 

이건 너무 극단적인 질문이라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걍 집에서 최후의 식사를 하는 거지 뭐! 라며 가볍게 대답하곤 하지만.. 며칠 후면 죽을 수도 있다는 선고를 받으면 나는 어떤 일을 하게될까.


며칠 뒤에 죽는다는 보장이 있으면 카드 한도를 왕창 늘려놓고(은행을 털어볼 큰 간은 없으니) 온갖 명품을 휘감고 호텔같은 곳에서 신나게 돈의 맛을 한 번 보고 죽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근데 겁나서 못할듯.. 죽는 순간에도 카드빚은 무섭구나...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듯이 나도 희안하게 바다가 생각날 것 같다. 이왕이면 제주도의 맑고 투명한 바다를 보고 싶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지만 죽음만큼 삶에 대해 심각하게 만드는 게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봤던 미스테리 극장에선 언제나 저승사자 같은 분이 양팔을 꿰어 가거나 강 건너편에서 손짓을 하는 것에 익숙해서 죽는 순간이 좀 끔찍하게 여겨졌는데 예의 바르게 천국의 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들어갈 수 있다면 좀 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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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아담 브룩스 감독, 라이언 레이놀즈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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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어 공부를 위한 영화를 골랐다. 대게는 로맨틱 코메디를 고르므로.. 이번에도 로맨틱 코메디다.

 

그래서 3-4번 째 보고 있는 이 영화.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 해서 번역을 조금만 이상하게 해도 욕을 해대는 통에 (근데 간혹 더 괜찮은 것도 있는데.. 1:1로 뜻이 맞지 않다며 욕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듯.) 대부분의 배급사는 그냥 영어 제목을 택하는 것 같다.

 

원제는[definitely, maybe]. 아마도 꼭, 이런 식으로 그대로 한국어 제목을 붙였다면... 도저히 무슨 영환지 짐작이 어려울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도 좀 평범한 연애스토리 영화 같아보이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배급사가 잘 했다는 것이다.

 

가끔 기가 막히게 웃기는 제목들이 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번역된 한국어 제목이면 좋겠다. 입에 착착 붙으니깐.


광고 회사에 다니는 이혼남 윌 헤이즈는 대부분의 사람처럼 의도대로 살아오지 못한 불만감을 안고 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번은 딸을 만나러 가는 날이라 즐겁다. (엄청 헐리우드스럽다.) 그러나 그 날은 딸이 성교육을 받았던 날. 학교는 난리가 났다. (읭? 미국애들은 이런 거에 쿨하지 않고만.) 혼란스러운 딸은 계속해서 윌을 자극하고 결국 부모가 어떻게 만났는 지를 추궁하기에 이른다. (다시 엄청 헐리우드스럽게) 윌은 딸에게 자신이 결혼하기 전 만났던 여자와 젊은 시절 인생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 전 심각했던 애인 에밀리, 썸머, 에이프릴 이야기를 하면서 딸이 꿈많던 시절의 아빠를 만난다고 하기엔.. 영화 내용이 사실적이고 조금 19금적(?)이다. 동화같이 예쁘진 않아도 솔직한 얘기라 공감이 간다. 사랑이고 인생이고 동화같지가 않으니까. 그럼에도 반짝반짝하는 순간이 있으니까 조금 살만하지 않을까. 윌에게는 즐거운 과거(?)도 있었고 예쁜 딸도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영화의 백미는 윌이 이혼한 아내에게 딸아이를 넘겨주고 돌아오는 길에 센트럴 파크에서 네다섯명의 경호원을 끼고 운동하는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장면이다. 운동하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윌은 외친다. "헤이, 각하, 저는 19--년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윌리엄..."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운동에 심취한 전직 대통령은 엄지 손가락을 두어번 흔들고 갈길을 가버린다. 허탈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주인공.  

 

영화는 로맨틱 코메디라는 장르의 한계인 탓(!)에 그럭저럭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영어공부용으로 대사도 좋은 것이 많고 내용이 밝아서 아주 만족스럽다. 특히 마구잡이 우연이 범람하지 않아서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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