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000 킬로미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마누엘레 피오르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 3월 처음으로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후, 번듯하게(?) 직장을 잡고 나를 먹여살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가 더럽게 안 통한다는 서유럽권만 골라 다녀와서 그런지 다른 환경이 주는 이국물에 심히 심취되어 있었다.

 

목적없는 여행(내 인생에서는 큰 의미였지만서도)에 로밍같은 건 해 갈 리가 없으니 당연히 엄마와의 통화는 와이파이가 되는 호스텔에서만 가능했다. 엄마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전화를 걸면 (밤낮 싸돌아 다니다) 10시쯤 되서야 전화를 받거나.. 내가 8시에 밥을 먹다가 엄마가 자기전에 전화를 하는 식이었다.

 

물론 처음에야 잘 도착했다는 보고 정도는 했지만 슬슬 나중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여기 새로운 걸 경험하려고 온 건데! 나는 애가 아닌데! 가족한테 전화하다가 대화가 끊기 잖아요! 라면서...엄마한테 손 안벌리고 간 게 처음이라(으이유.. 내가봐도 한심타) 이런 반항의식이 더 심했다.

 

관광하면서 느낀 것은... 관광객은 역시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 관광만 하는 것도, 즉 놀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는 거 였다. 시간 죽이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긴 하지만 추운 날씨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내 과자 삥 뜯는 집시들도 무서웠고)

 

40일 동안 자유를 신나게 만끽하고 와서 서울에 오니 우울 그 자체.. 사실 나의 문제였음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게 아니다. 말도 안 통한 곳에 혼자 가서 죽지 않고 돌아왔으니 여기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곧 시들시들해졌다.

 

어쩌면 유럽여행에서 내가 얻고 싶었던 건 나 어디어디 가봤어요 하는 경험이라기 보단 날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취직은 이제 더는 백수로 살 수 없다는 절박감이 밀어붙여서 되었다.

 

책은 풋내기 시절의 사랑에서 중년의 위기(?)까지 공유하는 두 여인과 또 다른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경험의 부족인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다만 가슴을 때리는 대사가 몇 가지 있었다.

 

"떠나는 것 보다 돌아오는 게 더 힘든거야.."

 

"사람을 못 믿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식물을 좋아하게 되지.."

 

떠나는 거야 싫었던 일을 모두 잊을 수 있지만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게 될 때는 내가 부정했던 것들을 다시 껴안고 살아야 되는데 그걸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 더 큰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임을 잘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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