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 - 할인행사
샘 멘데스 감독, 아네트 베닝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자기 과시형 SNS의 인기없는 사용자로서 지난 몇 년 동안 느낀 점은 실제로 행복한 것 보다 타인한테 행복하게 보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낭비라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좋아요'의 숫자와 댓글에 민감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엔 인기 얻는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님을 실감하고 어디나 슬슬 멀어지게 되는게 내 SNS의 말로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행복을 가장하는 건 연예인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부가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경우가 제법 있는 듯하다. 미국도 예외는 아닌 듯 가족이란 이름만으로 묶여져 있는 구성원들이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라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어느 주의 주택가에 두 가정이 있다. A 가족은 딸과 아내의 무시로 자괴감과 무기력에 빠진 아버지이자 남편,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부동산업자인 어머니이자 아내, 반항기가 가득한 어두운 10대 소녀이자 딸로 구성되어 있다.

 

B 가족은 해병대 출신으로 나찌 시대 물품 콜렉터인 엄격한 아버지이자 남편, 무기력에 하루종일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식물같은 어머니이자 아내, 비디오 찍는 취미를 갖고 있는 마약상인 10대 소년이자 아들로 이뤄져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특별해 보일 것 없는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을 유지하며 사는 그들의 속은 서서히 썩어간다. (이래서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다'는 건가?) 10대 자녀가 있는 가족들이 서로 대화가 없는 것은 태평양 건너서도 비슷한 풍경인가보다.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를 물고 뜯고 끌어내리기 시작하는 그들은, 그럼에도 각자의 관습에 맞게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사춘기를 맞고 있는 십대 소년 소녀와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는 부부는 가족이 아닌 밖에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다. 


A 가족의 경우. 가장은 직장 상사의 비리를 알고 협박한 후 1년 치 퇴직금을 받고 무기력한 직장 생활을 그만둔다. 최대한 책임감이 적은 맥도날드에 취직해서 패티를 구우며 몸을 키우기 시작한다. 왜냐.. 딸 친구인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소녀의 "너네 아빠 섹시해. 몸만 좀 키우면 되겠어.."라는 말을 듣고. 

아내는 성공한 부동산 업자와 바람을 피우며 새로운 활력을 찾아간다. 그의 성공한 이미지를 벤치마킹하면서 총 쏘는 기쁨도 알게 된다. 방아쇠와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딸아이는 자신를 추앙하는 신도를 얻는다. 이웃집에 살면서 자신을 비디오로 촬영하며 그녀를 숭배하는 소름끼치는 소년에게 마음을 뺏긴다.


B 가족의 경우. 가장은 여전히 가족의 전통적 가치, 아름답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전에 약물복용과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킨 아들을 감시하면서. 

아내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면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집 안에 떠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듯이.

아들은 아버지 몰래 마약딜러를 하며 큰 용돈을 벌어 비디오 기구들을 산다. 비디오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촬영하는 예민한 소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존재는 다름아닌 이웃집에 사는 소녀다.


A 가족 소녀의 친구, 모델 지망생인 예쁜 소녀는 평범하게 사는 것은 매우 비참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항상 시험해보고 싶어하는 소녀가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란..! (그렇다고 얘 잘못은 아닌게.. 머 예쁜 게 죄도 아니고..)


가족들의 갈등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최고조로 달아갈 때 들리는 한발의 총성. 그리고 깨달음은 왜 항상 늦게 오는지. 모든 것을 다 잃고 겪어봐야 깨닫는 사람들은 늘 어리석고 그래서 평범하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건 미덕이다. 미덕은 강요된 것이 아니기에 지켰을 때 아름답다. 영화의 메세지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아름답게 살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도 본인의 자유이지만.


아직 중년이 안 되어서 그런지 10대 소녀가 어둡게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게 더 안쓰러웠다.


특히 십대에는 세상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비참한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나도 실은 그랬었다. 어떻게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냐, 하고 조금 현실을 내려놓은 지금에는 그때를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 때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게다가 옆에는 거의 모든 남자애들이 흠모하는 예쁜 친구가 있다면. 친하게 지내지만 100% 마음을 열지도 않고 나를 은근 슬쩍 밑으로 보는 것도 분명한, 그럼에도 내 눈에도 예쁜 친구가 있다면.


열렬히 자신을 숭배(worship) 하는 소년의 존재는 그래서 더 반가웠을 것이다. 그것도 걔도 어느 정도 매력이 있어서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면.


창문 너머에서 자신을 카메라로 응시하는 소년을 위해 속옷을 열어젖히는 장면과 소년을 경멸하는 척 하면서도 자기를 지켜보는 걸 속으로는 기쁘게 생각해서 웃는, 그걸 반사된 거울에서 포착한 소년의 카메라가 확대되는 장면은 단언컨대 영화의 베스트 씬이다.


소년의 사랑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빠를 죽여달라고 하는 무리한 부탁을 해보거나 떠나자는 소년의 대책없는 말에도 고민없이 따라 나설 수 있는 10대 소녀의 치기어린 드라마는 무척 내 맘을 끌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었어도 나를 더 많이 좋아해준 사람에게 고마움보다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순진한 신도들을 등치는 교주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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