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몇몇 페이퍼를 읽고 난 소감은? 아, 난 정말 자기소개서 '특기'란에 하나도 쓸 것이 없는 사람인데, 또다시 한번 좌절을 안기는구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뭐 공부 잘하고 이력서에 쓸 만한 것들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자화자찬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쓰지 못할 이야기가 너무 많을 것 같아 바통도 오지 않았는데 그냥 쓴다.
- 여성친화적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들으면 이게 웬 자랑거리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성친화적이란 내 성향이 충분히 자랑거리로 여긴다. 대학교 어느 수업에서 검사했던 남성성/여성성 테스트에서 나는 당당히도 어느 여자 과동기보다 훨씬 여성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가진 여성성을 장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여성이 시중을 드는 술자리에 간 적이 없으며 갈 계획도 없고, 육아를 말하는 매체에서 항상 '어머님들이~ '하며 육아를 은근히 어머니의 몫으로 간주하는 데에 대해 분개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천국이라 남자들이 살기엔 좋지 않다는 북유럽 어느 국가를 은근히 동경한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인 508호에는 나를 제외한 5명이 모두 여성이다. 나는 그 틈바구니속에서도 드라마와 임신, 육아에 대해서 열심히 수다를 떨며 적응하고 있다. 그 결과 '차언니'가 나의 별명이 되었다. 알라딘에서도 초창기 내 글만 보고 '여자 알라디너'로 착각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건 나의 글 쓰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글의 소재, 생활의 중심, 생각의 지향점이 여성친화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성친화와 여성취향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며, 많은 여성들이 관심있어 하는 화장품, 향수, 멋진 드레스, 멋내기, 섬세한 연애소설, 맛난 음식 만들고 먹기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다만, 세상은 여성성이 강해질 때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수의 남성 부류 중 한 명이다.
-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알라딘의 누구처럼 남자답게 생기지는 못해서 '잘생겼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그래서인가? 여자들이 대쉬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인상이 좋다', '선하게 생겼다'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다. 저번 학기 첫 강의시간 이후에도 한 학생이 '선하게 생기셨다'면서 강의 기대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 사람의 인생(마음?)은 그 사람의 얼굴에서 알 수 있다.' 뭐 대충 이런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얼굴의 인상이 좋다는 것은 요즘과 같은 험악한 경쟁시대에 살아가기 부적합한 인물이란 말과 동일하다. 회사의 면접에서는 많이 떨어졌다. 회사 입장에서는 내 생김새가 충분히 나약하게 보일 수 있다. 그래도 내가 회사 영업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돈 떼먹고 도망간 잡아다가 윽박지르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가졌으니 나는 내 인상이 세상에 써먹을 데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나 어렸을 땐, 총명하고 귀엽게 생겼다는 말까지 들었다. (아래 사진 참조)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0024113148459.gif)
- 음감이 좋다.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을 누구보다 더 반가워했다. 노래를 그리 잘 부르지는 못해서 점수가 항상 좋지는 못했지만, 음악시간만큼은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중학교 때 청음 테스트로 시험을 봤을 때 나는 모든 음을 다 맞췄다. 주위에서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나는 그 눈빛들을 즐겼다.
아무래도 조기교육의 덕이라고 본다. 유치원 때는 피아노, 국민학교 2학년부터는 바이올린을 배워서 그런지 음감은 내가 봐도 좋다. 기타는 내가 독학했다. 물론 클래식 기타가 아니라 통기타 코드 잡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남들보다 특출했던 것은, 새로운 노래를 부를 때도 기타 코드를 보거나 외우지 않고 감으로 코드를 잡았다는 사실. 이건 기타를 얼마나 잘 치는가 하고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그래도 노력을 안하니 어쩌겠는가? 지금 피아노는 다 까먹었고, 바이올린을 잡은지는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렇지만 노래를 들으면서 그 음의 계이름을 바로 제시할 수 있고, 초등학교 때 배웠던 바이올린 곡이 나오면 바이올린 운지법에 맞춰 왼쪽 손가락이 움직인다. 내가 다시 바이올린을 잡는 날은 언제일까?
- 감투를 많이 썼다.
중학교 2학년때 어쩌다 부반장을 했던 이후로 감투를 많이 썼다. 여학생들의 몰표(난 그렇게 믿고 있다)를 받아 성당 주일학교 중학교 학생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땐 공부를 못했기에 감투는 커녕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조용히 지냈다.
대학 이후로는 내가 다른 세상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서 그런지 감투를 많이 썼다. 2학년 1학기 과대표, OO학과 학생회장, 군대가서 6개월동안 견장도 달았고(이건 빼자), 대학원 교육계열 학생회 학술간사, OOOO학연구회 회장, 대학원 OO학 연구회장, 하이텔 ㅁㅈㄱㅇ 동호회 초대회장, OO대학교 OO대학 민주동문회장...
중요한 것은 거의 대부분이 간선이 아닌 직선이란 사실. 그리고 그 중 절반은 내가 하기 싫다는데도 억지로 떠안겼단 사실. 물론 이건 그만큼 할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란 것도 있지만 그만큼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었다는 말도 된다는 사실. 에헴.
올해 초 연구회장을 마치고 이제 당분간은 어떤 감투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실은 내가 더 이상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래도 감투를 썼을 때가 좋았지...
- 알라딘의 활동에 대해
알라딘에서 아직 주류서재인이 되지 못해 바통도 못받았고, 리뷰도 한심하고 비참할 수준으로 올려져 있지만, 몇몇 페이퍼 순위에는 상위에 랭크가 되어 있다는 사실도 부끄럽지만 밝혀야 할 자랑거리.
다음은 서재 방문객 total 3000 이상 된 알라디너를 대상으로 한 조사 중 일부 항목입니다.
첫째, 전체 페이퍼 대비 추천받은 페이퍼 비율 : 52%로 32위에 랭크중.
둘째, 전체 방문객 수 대비 추천받은 횟수 비율 : 2.3%로 22위에 랭크중.
(방문객 중 1/6이 나이기 때문에 실제 비율을 더 높을 것으로 사료됨)
셋째, 전체 댓글 대비 추천받은 비율 : 7.9%로 18위에 랭크중.
넷째, 전체 알라디너 중 아이를 둘 이상 둔 부산출신 기혼 알라디너 중 현재 서울에 살면서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total 3000명의 방문객과 50명 이상의 즐찾 서재인 수를 보유하였으나 책 리뷰는 하나밖에 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
-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내 장점에 대해서도 고백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