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5시경에 상주에서 압사사고가 났다. 자세한 내용은 뉴스를 참조하시고..
1.
상주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상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전거 타는 비율이 높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자전거를 배운다. 단지 골목 어귀에서 자전거를 타는 데 그치지 않고 통학은 무조건 자전거로 한다. 상주라는 곳이 좁기도 하지만, 상주 시내를 다니는 버스나 택시가 별로 많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래서 자전거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에서는 외국 사례와 함께 꼭 상주를 소개하곤 한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상주는 친근하기만 한 그런 도시이다. 적어도 내게는...
2.
그런 도시에서 압사 사고가 났다. 그것도 상주 자전거 축제의 마지막 행사로 시민운동장에서 mbc에서 마련한 쇼를 보기 위해서인데. 축제 행사를 살펴보니 자전거축제에 안어울리게 특별행사란 이름으로 평양교예단 공연, 묘기와 마술공연, mbc 가요콘서트가 그것이다. 도대체 자전거 축제란 이름으로 이런 공연들은 왜 유치하는가?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겠지. 자전거와 전혀 관계없는 이런 행사들이 과연 자전거의 대중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려나? 글쎄 상주시를 알리고 상주시 돈을 버는데는 유익했을지 모르겠다. 축제다운 축제가 그 축제의 생명력을 길게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3.
압사사고를 뉴스에서 전하는데 기자가 이런 멘트를 한다. "특히나 가요콘서트엔 노년층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많이 출연할 예정이었으며, 사망자 중 노년층들의 피해가 커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노년층들의 피해가 커서 안타까운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안타까움이 더하다니... 또 한가지, 전도유망한 한 젊은 과학자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을 때도 이런 말을 사용하고, 제대를 10일 앞둔 병사가 사망했을 때도 그 '안타까움이 더했다'는 말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노년층이 아니고 젊은층이었다면 덜 안타까웠단 말인가? 갓 입대한 사병이 죽었다면 차라리 낫다는 말인가? 전도유망하지 않고 잘나가지도 않은 사람이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 이제 이런 말은 영화의 클리셰처럼 뉴스에서도 아무런 생각없이 사용하는 것 같다.
허망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