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좋아하는 내 남자 후배 춘봉(가명).

지금 대학원 과정에 있으면서 대학원 건물에서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춘봉이는 가끔씩 내가 학교에 가면 날 가장 반겨줬다. 그럼 선배된 도리로서 밥 한끼 사주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 같은 대학원 과정의 한 여학우와 사귄다고 했다. 그 친구는 다른 학교 출신이라 나랑 얼굴만 아는 정도. 당연히 함께 밥도 먹어본 적이 없다. 주위에서 그러는데, 서로 너무 좋아 죽는단다. 어찌나 연애에 빠져 있는지 둘이 붙어다닌다는 말. 대체 어디가 어떻게 좋길래 그러냐고 물어보고 싶고 같이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안났다.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학교를 방문했을 때, 마침 비가 왔는데 우연히 춘봉이를 만나 그의 차를 애인과 함께 타고 정문에서 대학원 건물로 올라갔다. 나를 뒷자리에 두고 둘만의 이야기가 시작하더군. 우리 뭐 먹을까? 비도 오고 하니 알탕 어때? 그래, 저번에 거기 일식집 가서 알탕 먹자..  아, 형! 형이 학교 왔으니 같이 먹어도 되고..  아니야. 나는 다른 사람도 있으니 너네끼리 가서 먹어.. 그래도.. 아니야 괜찮아..

결국 어떻게 하자는 확답없이 대학원 건물로 들어서서 다른 후배들을 만나서 밥 먹자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데. 10분이나 지났을까? 벌써 둘이는 사라졌다.. 우리도 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둘은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전화를 했더니 벌써 알탕을 시켰다나? 그래도 춘봉이의 애인과 처음 식사할 기회였는데, 나와 식사를 처음으로 같이 한다는 생각보다는 오늘도 어떻게 하면 둘만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까가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섭섭했다.. 물론 내가 한번쯤 거절한 것은 안다. 그러나 내가 거절한 것은 나한테 같이 먹자고 말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알탕 먹을 계획을 다 세워놨다는 것이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당히 오늘은 둘만 먹을테니, 다음에 보자고 내 앞에서 말을 하던가. 둘이 몰래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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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애할 때는 90년대 초반. 아무리 포스트모던의 시대라지만 시대 저항의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랬나? 연애란 것도 너무 개인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제일 싫어했던 연애는 조직(?)의 분위기를 저해하는 짓거리들이었다.

1학년 1년동안을 열심히 활동했던 한 동아리가 갑자기 싫어졌는데, 동아리의 활동을 하러 온 것인지, 연애질 하러 온 것인지 분간이 안가는 이놈의 연애 분위기가 그 원인이었다. 남녀가 사랑한다는데 뭔 참견이 많냐고? 한참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한 여학우가 집에 일찍 가봐야 한다고 나가면, 그 애인이란 작자도 꼭 따라 나가서 기어코 집까지 데려다 줘야 한단다. 흥. 그래 세미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니네 연애가 더 중요하다 이거지?  방학때 세미나 하러 모이자고 하면, 둘이서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 못하겠단다.. 흥, 둘이 잘 해봐라.. 엠티를 가도 꼭 분위기는 사랑의 스튜디오 분위기다. 여기 놀러 왔냐? 이 아까운 시간에?

이런 식으로 몇 쌍이나 헤쳐 모여를 해대는데, 연애란 것에 아니 그들의 잘난 연애란 것에 신물이 났다. 그 결과 동아리 탈퇴란 극약처방을 나 자신에게 내렸다.

나라고 조직에서 연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직이라고 하니 무섭군. 나라고 어떤 단체내의 여학우와 연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그 단체는 아니다. 그렇지만 단체의 분위기를 깨지 않는 내에서, 어쩌면 우리들의 만남으로 인해 단체의 결속이 강해질 수 있는 연애를 추구했다. 그래서 우리 커플에게 붙는 표현이 'OO학과에서 가장 모범적인 커플'인 것이다. 나는 그 모범이란 단어를 즐겼다. 무릇 연애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떠들고 싶었다.

둘이 사랑에 빠져 아무 것도 안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위에서 모두 칭찬하는 사랑이란 것을 해야 한다. 왜냐고? 그래야 모범적인 연애를 하는 것이니깐.. 그래 나 범생이라 연애에도 모범적으로 한다는 것을 좋아한다, 어쩔래?

이쯤에서 그때 연애 편지를 공개한다. 우리의 연애편지 속에서 사랑한단 말 하나 없는 것이 정말 웃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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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같이 안먹었다고 별별 소리를 다 하는군.. 너는 완전히 삐짐이 선배야.. 넌 말이야..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 따위 조직이니 단체니 하는 것과 연애를 연관시키는 이런 글을 쓰다니 시대감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반성하고 시대감각이나 익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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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5-09-26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녜요! 시대를 떠나서 상식이랑 안 맞는 행동이 있다구요 ^^

비로그인 2005-09-2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흐. 서림형!! 너무 귀여우세요 _-_)~ 근데. 그 조직은 어떤 조직인가요?
혹시. 총학생회를 말하는 건가요? 저의 죽마고우가 그쪽에 있거든요. 궁금해서요.

엔리꼬 2005-09-2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2000년도 이후 세대가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다행입니다.. 호호호
가시장미님.. 총학생회가 뭔가요? 저희는 그런 조직 몰라요.. 당시 총학생회가 얼마나 무서운 조직이었는데요.. 저희는 아주 작은 우리끼리의 모임이었어요.. 헤헤
그런데, 뭐가 그리 귀엽나요? 제가 혼잣말 하는것이? 히히

클리오 2005-09-2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젊은 애들 연애에 너무 심하게 삐지시는거 아닙니까. 질투하시는거죳!! ^^ (걍 한참 좋은가보다 하고 이쁘게 봐주세요. 그래봤자 기껏 그렇게 좋을 기간은 몇 달인데... 점차 정신이 들거여요... 흐..) 음, 제 생각에는 90년대 초반의 연애도, 사람 나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무슨 70년대도 아니구욧!!! ^^ =3=3=3

날개 2005-09-2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저 편지가 서림님이 쓰신 것? +.+ 오오오~ 무조건 추천이야요!

sooninara 2005-09-2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너무 심하게 범생이이심..쿄쿄쿄
삐지진 마셔요^^ 후배님이 다음엔 꼭 같이 식사하면서 여친을 인사 시키시면 좋겠네요.

진주 2005-09-2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어이쿠 이거 죄송하게 되었네요. 춘봉이는 제 남동생이야요..
애를 좀 더 예절교육을 시켜 내보냈어야 하는건데.......
누나 배춘몽이 대신 사과드립니다......
-배춘몽 드림-

엔리꼬 2005-09-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젊지도 않아요.. 30이 넘었는걸요.. 에효. 그래도 거의 처음으로 연애하는 애니깐 봐줍니다. 내가..
날개님... 10년 전 제가 군대 다닐 때(진짜 다녔습니다. 집과 군대를 왔다갔다) 애인님께 적은 편지입니다.
수니나라님.. 범생이도 어떨 때는 필요한 법이죠. 그렇지만 요즘 직장에서 보이는 여성 범생이들 때문에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진주님... 춘봉이는 실제 제 후배 이름이기도 합니다. 물론 위 이야기 주인공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춘몽이란 이름도 너무 정겹습니다.

Phantomlady 2005-09-2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연애하는 것들이라니.. 그나저나 이것이 모범적인 연애편지인가요? @_@
그치만 점 범생이도 싫다구요=3

검둥개 2005-09-2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삐짐이 선배 맞으시군요. ㅋㅋㅋ 첨 연애한다는데 봐주셔야죠. ^^;;;

인터라겐 2005-09-2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연애편지도 주고 받으셨단 말예욧~ 흐흐흐ㅡㅎ
원래 연애시작하면 눈에 뵈는게 없다잖아요.. 너그러이 용서하세요...

마냐 2005-09-2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헬헬....아니, 연애편지가 어찌 저렇단 말임까. 갑자기, 저 비스무리한 옛날 편지들이 생각나는군요. 흠흠....디게 재미없는 편지였는데, 그게 딴맘을 품은 편지였을까요? ㅋㅋㅋ 암튼, 삐짐이 선배....흐흐. 후배들은 그걸 몰라요. 선배가 늘 내리사랑을 베푸는게 아니라, 가끔 삐질 수도 있다는걸. 눈에 넣어도 안아플 후배들에게 가끔 섭섭하다는 걸. 한살이라도 더 먹은 우리가 참아야 한다구요? ㅋㅋㅋ

엔리꼬 2005-09-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랍님.. 모범적인 연애편지라기보다는.. 저도 저거 보고 놀랬어요.. 최근에.. 물론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써있죠, 다른 편지에는...
검둥개님... 봐줄려고요..안그래도 어제 전화왔더군요.. 같이 밥이나 먹자고.. 제가 시간없다고 거절했지만..
인터라겐님.. 제가 군대 다닐 때라 연애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수십통 되지요 아마?
마냐님.. 저는 공식적으로 사귄 뒤에 저런 편지를 날렸어요.. 소위 작업성 편지는 아니었다고용.. 후후 그리고 그땐 순진해서 과 동기들 모두에게 여름방학때 부산 내려와서 엽서도 보내고 그랬어요.. 흐흐 순진했던 시절..
저도 선배들에게 잘하는 편이 아니라, 저를 욕하는 선배도 많을 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