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권리,라는 작가를 처음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 <싸이코가 뜬다>로 한겨례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우선 두가지 제목만 봐도 제목을 좀 특이하게 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기심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이다. 2000년부터 42개국 여행을 했으며 앞으로 북한을 가보고 싶다는 젊은 작가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난 꿈만 꾸고 있으니. 이 책은 저자가 352일 동안 39개국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써내려간 소설이다. 지도와 함께 세계 여러나라의 유명한 곳을 대리여행하는 재미는 솔솔하다. 그러나 여행안내서 같은 걸 기대하면 곤란하고(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저 소설의 배경으로서 역할한다. 한국에서 유럽, 남아메리카를 거쳐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의 여정이 이어지는데 그다지 소설적인 공간적배경으로 필연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스토리의 전개에 반드시 그 공간이 유효적절하다기보다 그 공간에 스토리가 따라가는 인상이다. 그저 주인공 스무살 청년 고유석의 성장기로서의 긴 여정으로 보면 적당할 듯하다.   

저자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는 후기에서 그는 여행관을 이렇게 적어둔다. - 여행은 제자리 버티기다. 없음에서 버티기, 외로움에서 버티기, 인생이라는 고통 속에서 버티기. 그에게 여행은 버티기 위한 삶으로, 그런 삶의 훈련으로서 한 몫 하는 것 같다. 여행이 그렇듯, 인생도 대개 있기보다는 없음, 충만감보다는 외로움이 자주 자아를 흔들어 놓는다. 그런 생각은 망상과 혼돈의 시기를 사는 유석에게 여행의 기회를 주게 된다. 유석은 저자 자신의 한 부분 또는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가볍고 유머러스한 서술로, 실제 여행을 하면서 겪었고 보았던 일들이 소설 속 에피소드로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 그것이 사건과 인물의 성장에 모종의 역할을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너무 우연에 기대어 등장하는 건 아닌가싶다. 공간의 이동이 크고 잦고 뜬금없이 바뀌어버리는 통에 혼란스러운 면이 다소 있다. 

음모와 시기 질투,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자화상에 얽힌 의문, 반전, 해결 등의 사건전개에 미술 예술론이 전개되는데, 이 부분은 좀 천천히 곱씹어 읽어볼 만하다. 이런 부분에선 진지한데 곧 가볍게 능청을 떨며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지 않은 서술을 이어간다. 저자가 이 소설 속에 담은 예술관에 좀더 귀기울여 보면 흥미롭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색다른 표현이 눈길을 끈다. 그야말로 '영감님이 오셨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가 바라는 건, '한 송이 할미꽃이 피어 있는 영감의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이 된 심정'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렇게 파낸 영감의 정수를 그의 영혼 안에 집어넣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원래의 자리에서 기능하기를 바라고, 호기심과 욕심을 채울 때까지 그는 미친 속도로 영감의 무덤을 도굴'했다.(95쪽)  하지만 금세 유머러스한 문체로 가볍게 날려준다. - 그는 또한 '영감이 재채기를 하며 무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며 '변비 걸린 나,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영감님을 몸 밖으로 토해낼 때가 온다. 봉인되면 해제되는 날이 오듯이.'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끙끙의 시간을 오래도록 가졌다. (96쪽)  이런 식이다.  

눈 오는 아프리카!  이것이 상징하는 건 '영감은 어떻게 오는가?'라는 질문 자체다. 이 물음은 저자가 자신에게,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에게 묻는 것일 수도 있다. 모작에 재능이 있는 미술대학 재수생 유석은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사람들과 벌인 토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 같은 예술가의 내부에서는 그동안 단순히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조합하고 재구성해서 영감을 탄생시키지. 영감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상태에서 탄생되지.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아. 나는 어떻게 해서 그러한 영감이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술가의 내면에 떠올라서 예술가를 무한한 상상의 기쁨으로 충족시켜 주었다가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곤 하는지 궁금해서 미치겠어. (275쪽)

 
   

 

유석이 가장 사랑한다는 에곤실레의 <변용> 등 두루 등장하는 유명작품들, 화가로서 색을 보는 눈, 예술혼을 불러주는 자신의 마돈나, 예술작품 속의 긴장, 위작과 모작에 대한 이야기가 무겁지 않게 나온다. 특히 유석은 <변용>을 보며 인생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난 이 작품을 보지 못해 모르긴 해도 소설 속에 묘사를 해두었다. 유석은 이 그림을 보며 '예술을 한다는 건 중력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도 깨닫는다.  "절망으로 절망을 이기려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지구상 어딘가에 또 있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구절이 마음에 든다. 스무살 시절, 혼돈과 치기와 자기정체성의 모호함으로 고뇌했던 시간들!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그 시절의 정신세계를 떠올려 주는 구절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고 기대 충분한 가능성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작품 전체를 이어가는 정신은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그리고 다시 들어가기'라는 신화에 가깝다. 어둡고 광막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성장한 듯한 그는 자신 안의 어린아이 - 사소한 감정에 넘어지고 헤맨 아이, 최장거리를 날고 걷고 기어서 온 아이 - 를 떨쳐내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는 초반에 최교수가 그에게 한 충고를 되돌려보면 두 가지 해답 중 전자를 실천한 것처럼 보인다. - "예술가가 그림자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태양의 바로 밑에 서거나 암흑 속에 자신을 가둬야 한다." (32쪽)  저자는 종결부분에서 여성성에 좀 더 기울어지는 듯하다. 고향에는 홀로 된 어머니가 그를 기다리며 점심 준비에 바쁘다. 고향이자 어머니는 그를 키우고 나아가게 한 빛과 바다, 빗과 지팡이로 상징된다. 아이다운 영감의 소중함은 강조되고.  

 세계를 돌았지만 성장했다기보다 아이의 얼굴을 하고 돌아온 유석, 그건 역설적인 의미로 '영감은 어떻게 오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처럼 들린다. 여행은 돌아오는 데에 의의가 있다는 말은 흔한 말이지만 몇겹의 의미를 가진다. 여행을 삶으로 등치해두고 보면 그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 그것은 나그네의 여정을 떠난 자가 고향으로 돌아옴이고, 다시 아이로 돌아옴이다. 이 책 <눈 오는 아프리카>는 여행을 이렇게 말한다. 성장을 통해 아이다운 진정한 영감을 간직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얼굴로 '빈곤과 행복'이 공존하는 일상의 현실로 돌아옴이라고. 그저 하얀 캔버스일 뿐이었던 '눈 오는 아프리카'는 마음 속에 간직하는 동경의 이미지, 마음의 고향에 가깝다. 그 모든 경계와 습관, 익숙함과 나태함으로부터의 이탈이고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출일 것이다.       

   
 

어머니라는 빛을 통해 아버지라는 그림자를 지운다. 어머니라는 바다를 통해 아버지의 죄를 씻는다. 어머니라는 빗을 통해 아버지라는 동요를 잠재운다. 어머니라는 지팡이를 통해 아버지라는 미로를 헤쳐 나간다. 마침내 아이는 어머니라는 빛과 바다와 빗과 지팡이 없이도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운다.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한다. 색깔도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는 영감을 이용해 소박함과 인정, 빈곤과 행복이 있는 곳으로 언젠가 들어갈 것이다. (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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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가지 못한 길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 만나 나는 -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축복' 98-99쪽)

 

 장영희 선생은 이 시를 번역할 때 왜 

 "가지 못한 길"로 하셨을까. 

 "가지 않은 길"이 더 맞을 듯한데... 

   

  이 책에 김점선 화가가 그려넣은 그림이 오늘따라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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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6-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십니다^^

프레이야 2009-06-24 19:27   좋아요 0 | URL
흔히들 알고 있는 시이지만 오늘 아침 다시 읽어보며 전과는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하늘바람 2009-06-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참 좋다 했어요
그땐 어려서 특별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의미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여서
하지만 살아갈 수록 점점
가지 못한 길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의미가 생겨나네요
수많은 길들이요

프레이야 2009-06-24 19:27   좋아요 0 | URL
살면서 점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이 나네요.
왜 가지 않았을까. 용기가 없어서? 우물 안 개구리여서?

hnine 2009-06-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번 보면 열번 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시 같아요.
오늘은 마지막 두 줄이 특히 눈에 들어오네요.
사람들이 많이 간 길을 택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간 길에 끌리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그 사람 일생에 많은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요.

프레이야 2009-06-24 19:29   좋아요 0 | URL
마지막 두 행이 의미있지요.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사람, 그를 우린 영웅이라 부를 수도 있을까요.
소소한 의미로 봐도 그런 사람은 쉽지 않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마지막 두행이 오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네요.
많은 사람이 다닌 길을 선택해서 그런가..

프레이야 2009-06-24 19:30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은 사람이 다닌 길을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던 것 같아요.
다시 살라면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어떨지 저 자신도 모를 일이죠.^^

비로그인 2009-06-2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뒤돌아보지 말자!가 모토랍니다. 단순(혹은 무식)하게, 씩씩하게!

프레이야 2009-06-24 19:30   좋아요 0 | URL
만치님!! 야호! 그거에요.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될거에요.
묵묵히 앞으로 가는 거에요, 우리.

2009-06-25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5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6-2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가지 못한 길~~~을 하나라도 줄여봐야지요.
그래서 주말에 부산역으로 고고~~~ 알죠?^^

프레이야 2009-06-26 01:21   좋아요 0 | URL
에너지 오기언니~~~ 역시~~~
넘 좋아요. 대환영이야요!
뽀송이님에게도 낼 연락해보려구요.^^

향기 2009-06-26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 ㅎㅎ
프레이야님 페이퍼보고 저도 방금 질렀어요 ^ ^

프레이야 2009-06-27 08:47   좋아요 0 | URL
호호~ 마음에 쏙 드실거에요^^

꿈꾸는섬 2009-06-27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이 시를 늘 품고 다녔었는데 시처럼 살고 있진 않네요.ㅎㅎ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는거죠?

프레이야 2009-06-27 08:48   좋아요 0 | URL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을때가 더 불행한 걸까요...
 
<어머니를 돌보며>를 리뷰해주세요.
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살아가다 뜻밖의 재난이 오면 먼저 '왜 하필 나한테?'라는 의문과 함께 그것을 부정하고픈 심정으로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이 책은 21세기의 흑사병이 될지도 모를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된 노모를 돌보는 일이 온전히 자신의 임무가 된 딸의 기록이다. 그녀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서 일과 가정을 뒤로 하고 어머니의 곁을 지켜주며 7년을 보냈다. 그녀의 50대가 바쳐진 셈이다.  

저자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가 어머니와 나눈 7년간의 작별인사는 지적인 서술이 돋보이며 인간 내면에 대한 겸손한 관찰과 탐구를 바탕으로 한다. 고전과 책의 인용, 철학적 사유, 신화의 인용, 의학계 보고 등 자료를 찾은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녀의 기록은 상당히 침착하고 이지적이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의학계의 진실, 노인보호요양소의 실태, 여러 의사들과의 면담(환자 보호자로서) 등 현실과 부딪히며 깨달은 점도 느낀대로 적어놓았다. 신파조로 흐르지도 않고 자신의 불행에 도취하여 동정을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감과 온기를 주는 부분은 특히 인간의 정서와 감정에 대한 고찰을 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마저도 학계의 자료를 바탕으로 중심을 잃지 않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녀가 느끼는 작가다운 은유적 언어와 독특한 감성은 이 책을 대단히 품격있게 만든다.  

그녀는 이 기록을 통해 끝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것은 7년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해왔던 질문이기도 하고 그녀의 재난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방법이기도 했다. '지혜'를 '옳음'의 의미로 끌어안는 저자는 상당히 지혜로와 보인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육신을 육신이게 하는 것은 영혼이라는 것. 삶의 상실감을 떠안고 살아오면서도 늘 사랑스러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어머니가 '영혼의 폐허더미' 속에 오두카니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옆에 앉아 꺼져가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중엔 자신의 시력에도 이상증세가 오면서 하나의 장애로 어머니의 병을 바라보게 된다. 인지능력을 잃게 되는 이 병은 고통조차 알 수 없을 테니 오히려 다른 장애보다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타인의 입이 틀렸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대화와 인지능력을 상실해가는 어머니에게서 그녀는 한 가지 확신을 하게 된다. 치매를 앓고 있어도 내면에 의미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인 활동은 이제 완전히 정서에 의존하는 어머니. 말기로 갈수록 '어머니의 말은 논리로서 이해되기보다 오로지 메타포로만 이해되었다'고 한다. 작은 표정의 변화, 다른 중요한 몸짓들 마저도 하나의 상징이었고 그녀의 '자아'를 그 상징을 통해 보게 되었다는 기록에서 저자의 섬세함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녀가 "정서"에 밀접하게 다가가 상대를 인정하는 요법에 공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인정요법의 목표는 '기억이란 것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전에 환자들이 정서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그리스어 '파토스pathos'를 어근으로 만든 'depathia'(무정서증) 라는 단어를 어머니의 상태에 이름 붙였는데, 어머니의 정서는 치매나 우울증과는 다른 종류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란다. 행복감이나 안도감 같은 건 전혀 없이 오로지 절망, 두려움, 분노 같은 어두운 정서만 보인 어머니의 정서를 이름한 것이다.

 

   
 

- 사람들은 원인을 잊으면 결과적인 고통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서란 것은 노랫가락처럼 그 원천이 잊혀진 지 한참 후에도 머뭇거린다. 분노, 두려움, 후회는 뇌의 폐허더미에서 귀신처럼 서성거린다. 음악적인 비유를 하자면, 가사를 까먹은 지 한참 후에도 머리에 희미하게 달라붙어 있는 곡조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감정이란 것은 그것을 일으킨 사건이 사라진 다음에도 오랫동안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다. - 222쪽 

 
   

 

저자의 기록을 읽어가다보면 초반의 이지적, 객관적 성격이 점점 정서(감정)적, 주관적 성격으로 조금 더 기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그리스인들의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고대 히브리인의 언어에 매료된다. '히브리어에는 전반적으로 정서를 아우르는 말은 없지만 사랑, 증오, 욕망, 즐거움, 슬픔, 심지어는 전도서에 나오는 권태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풍부했다.'(246쪽)  감정을 조절하는 뇌에 대한 연구기록을 찾고 폐허더미가 된 어머니의 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녀는 그 노력마저도 어머니의 두려움을 진정시키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안도감을 느끼려는 그녀의 노력은 가상하다는 말로 부족해 보인다. 

기록의 후반에서 내게 가장 마음에 와닿는 생각이 있었다. 의무를 행하는 일에 대한 미덕과 의무를 행하는 일의 핵심은 비실용성과 비합리적인 행위에 있다는 저자의 글이다. 그것은 죽음을 보내는 일에 관해서도 비효율성, 비실용적인 것을 믿는 문제다. 그녀는 '단순히 편리한 것만 선택하는 일은 우리가 죽은 자에게 보여야 할 존중심을 감소시킨다. 그런 의식에는 노력이 들어가고, 시간이 소요되며, 우리 삶을 방해한다.'라고 적었다.(289쪽)  그녀는 화장이 좋겠다는 생각을 이제 바꾸게 되었다. 어쩌다 볼 수 있는 기나긴 장례행렬은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생각해 볼 시간과 기회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광경을 거의 볼 수 없다'며, 이런 사라짐이 우리를 더욱 빈곤하게 만든다고 적고 있다. 합리성에 경도될 만한 서구 사고방식의 반대편에 있는 의견이다.

저자는 (끝내,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 어머니가 죽음을 향해 걸어나가는 지난한 과정에 스텝을 맞추며 함께 춤을 추었다. 이제 그녀는 죽음에 내어준 어머니를 회상하며 '우아한 문자 DNA'에 새겨져 흐르는 메세지로 생명과 사랑을 예찬한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하느님의 역사가 대부분 그렇듯, 사랑도 양날의 검이다. 우리 안에는 사랑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 사랑의 시작은 본능적인 일이겠지만 결국은 선택이다.(295쪽)'라고 말하는 저자는 종교적 신념 너머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인 것 같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인데 그 두려움(생후 6개월이 지나야 느낄 수 있다고 함)에 대한 두려움은 의도적으로 재난의 무작위성에 무지하게 만든다. 이오네스코의 '레퀴엠'이 죽음이 다가온 왕 - 이는 은유적 의미로 모든 사람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왕이니까. - 에게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라는 훈령이라면 이 책은 죽음의 폐허더미에 갇힌 왕과의 대화이고 춤이다. 허물어져가는 육신과 정신에 대한 애정 충만한 보고서로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물론 잠재적 재난자인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중요하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죽게 될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 기억을 혼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의무를 행하는 일은 기억을 맑게 유지시킨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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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06-23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에대해서 아무생각없이 살아왔는데, 프레이야님 페이퍼를 보니 또 생각할 꺼리가 생겼습니다. 고추를 말리다가 장독대에서 떨어져 뇌가 으깨놓은 두부처럼 되어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도 나구요.

프레이야 2009-06-23 02:41   좋아요 0 | URL
아.. 반딧불이님 _()_
누구나 죽음에 대해서 아무 생각없이 살아갈 겁니다.
돌아갈 때 육신의 온전함에 대한 생각도 솔직히 써놓았더군요.ㅜㅜ

비로그인 2009-06-2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말할 수 없이 슬펐지요..
어렸을 적의 어머니와 돌아가실 때의 어머니가 너무 달랐습니다.
그점이 더 슬프더군요..


프레이야 2009-06-24 19:26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_()_
저도 어렸을 적 어머니와 지금의 고희가 된 어머니만 비교해도 참 다르다 싶거든요.
마음이 짠해지는, 그런 것이요. 아름다웠던 그 미모와 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Sisters on the roa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부지영이라는 여성감독에의 기대가 이어질 것 같다 가족과사랑의 의미를 길위에서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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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 Th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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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육체의 허망함과 영생에의 갈구를 지독한 이야기에 담다. 이해숙의 눈 연기에 공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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