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며>를 리뷰해주세요.
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살아가다 뜻밖의 재난이 오면 먼저 '왜 하필 나한테?'라는 의문과 함께 그것을 부정하고픈 심정으로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이 책은 21세기의 흑사병이 될지도 모를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된 노모를 돌보는 일이 온전히 자신의 임무가 된 딸의 기록이다. 그녀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서 일과 가정을 뒤로 하고 어머니의 곁을 지켜주며 7년을 보냈다. 그녀의 50대가 바쳐진 셈이다.  

저자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가 어머니와 나눈 7년간의 작별인사는 지적인 서술이 돋보이며 인간 내면에 대한 겸손한 관찰과 탐구를 바탕으로 한다. 고전과 책의 인용, 철학적 사유, 신화의 인용, 의학계 보고 등 자료를 찾은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녀의 기록은 상당히 침착하고 이지적이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의학계의 진실, 노인보호요양소의 실태, 여러 의사들과의 면담(환자 보호자로서) 등 현실과 부딪히며 깨달은 점도 느낀대로 적어놓았다. 신파조로 흐르지도 않고 자신의 불행에 도취하여 동정을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감과 온기를 주는 부분은 특히 인간의 정서와 감정에 대한 고찰을 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마저도 학계의 자료를 바탕으로 중심을 잃지 않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녀가 느끼는 작가다운 은유적 언어와 독특한 감성은 이 책을 대단히 품격있게 만든다.  

그녀는 이 기록을 통해 끝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것은 7년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해왔던 질문이기도 하고 그녀의 재난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방법이기도 했다. '지혜'를 '옳음'의 의미로 끌어안는 저자는 상당히 지혜로와 보인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육신을 육신이게 하는 것은 영혼이라는 것. 삶의 상실감을 떠안고 살아오면서도 늘 사랑스러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어머니가 '영혼의 폐허더미' 속에 오두카니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옆에 앉아 꺼져가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중엔 자신의 시력에도 이상증세가 오면서 하나의 장애로 어머니의 병을 바라보게 된다. 인지능력을 잃게 되는 이 병은 고통조차 알 수 없을 테니 오히려 다른 장애보다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타인의 입이 틀렸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대화와 인지능력을 상실해가는 어머니에게서 그녀는 한 가지 확신을 하게 된다. 치매를 앓고 있어도 내면에 의미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인 활동은 이제 완전히 정서에 의존하는 어머니. 말기로 갈수록 '어머니의 말은 논리로서 이해되기보다 오로지 메타포로만 이해되었다'고 한다. 작은 표정의 변화, 다른 중요한 몸짓들 마저도 하나의 상징이었고 그녀의 '자아'를 그 상징을 통해 보게 되었다는 기록에서 저자의 섬세함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녀가 "정서"에 밀접하게 다가가 상대를 인정하는 요법에 공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인정요법의 목표는 '기억이란 것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전에 환자들이 정서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그리스어 '파토스pathos'를 어근으로 만든 'depathia'(무정서증) 라는 단어를 어머니의 상태에 이름 붙였는데, 어머니의 정서는 치매나 우울증과는 다른 종류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란다. 행복감이나 안도감 같은 건 전혀 없이 오로지 절망, 두려움, 분노 같은 어두운 정서만 보인 어머니의 정서를 이름한 것이다.

 

   
 

- 사람들은 원인을 잊으면 결과적인 고통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서란 것은 노랫가락처럼 그 원천이 잊혀진 지 한참 후에도 머뭇거린다. 분노, 두려움, 후회는 뇌의 폐허더미에서 귀신처럼 서성거린다. 음악적인 비유를 하자면, 가사를 까먹은 지 한참 후에도 머리에 희미하게 달라붙어 있는 곡조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감정이란 것은 그것을 일으킨 사건이 사라진 다음에도 오랫동안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다. - 222쪽 

 
   

 

저자의 기록을 읽어가다보면 초반의 이지적, 객관적 성격이 점점 정서(감정)적, 주관적 성격으로 조금 더 기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그리스인들의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고대 히브리인의 언어에 매료된다. '히브리어에는 전반적으로 정서를 아우르는 말은 없지만 사랑, 증오, 욕망, 즐거움, 슬픔, 심지어는 전도서에 나오는 권태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풍부했다.'(246쪽)  감정을 조절하는 뇌에 대한 연구기록을 찾고 폐허더미가 된 어머니의 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녀는 그 노력마저도 어머니의 두려움을 진정시키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안도감을 느끼려는 그녀의 노력은 가상하다는 말로 부족해 보인다. 

기록의 후반에서 내게 가장 마음에 와닿는 생각이 있었다. 의무를 행하는 일에 대한 미덕과 의무를 행하는 일의 핵심은 비실용성과 비합리적인 행위에 있다는 저자의 글이다. 그것은 죽음을 보내는 일에 관해서도 비효율성, 비실용적인 것을 믿는 문제다. 그녀는 '단순히 편리한 것만 선택하는 일은 우리가 죽은 자에게 보여야 할 존중심을 감소시킨다. 그런 의식에는 노력이 들어가고, 시간이 소요되며, 우리 삶을 방해한다.'라고 적었다.(289쪽)  그녀는 화장이 좋겠다는 생각을 이제 바꾸게 되었다. 어쩌다 볼 수 있는 기나긴 장례행렬은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생각해 볼 시간과 기회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광경을 거의 볼 수 없다'며, 이런 사라짐이 우리를 더욱 빈곤하게 만든다고 적고 있다. 합리성에 경도될 만한 서구 사고방식의 반대편에 있는 의견이다.

저자는 (끝내,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 어머니가 죽음을 향해 걸어나가는 지난한 과정에 스텝을 맞추며 함께 춤을 추었다. 이제 그녀는 죽음에 내어준 어머니를 회상하며 '우아한 문자 DNA'에 새겨져 흐르는 메세지로 생명과 사랑을 예찬한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하느님의 역사가 대부분 그렇듯, 사랑도 양날의 검이다. 우리 안에는 사랑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 사랑의 시작은 본능적인 일이겠지만 결국은 선택이다.(295쪽)'라고 말하는 저자는 종교적 신념 너머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인 것 같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인데 그 두려움(생후 6개월이 지나야 느낄 수 있다고 함)에 대한 두려움은 의도적으로 재난의 무작위성에 무지하게 만든다. 이오네스코의 '레퀴엠'이 죽음이 다가온 왕 - 이는 은유적 의미로 모든 사람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왕이니까. - 에게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라는 훈령이라면 이 책은 죽음의 폐허더미에 갇힌 왕과의 대화이고 춤이다. 허물어져가는 육신과 정신에 대한 애정 충만한 보고서로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물론 잠재적 재난자인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중요하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죽게 될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 기억을 혼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의무를 행하는 일은 기억을 맑게 유지시킨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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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06-23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에대해서 아무생각없이 살아왔는데, 프레이야님 페이퍼를 보니 또 생각할 꺼리가 생겼습니다. 고추를 말리다가 장독대에서 떨어져 뇌가 으깨놓은 두부처럼 되어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도 나구요.

프레이야 2009-06-23 02:41   좋아요 0 | URL
아.. 반딧불이님 _()_
누구나 죽음에 대해서 아무 생각없이 살아갈 겁니다.
돌아갈 때 육신의 온전함에 대한 생각도 솔직히 써놓았더군요.ㅜㅜ

비로그인 2009-06-2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말할 수 없이 슬펐지요..
어렸을 적의 어머니와 돌아가실 때의 어머니가 너무 달랐습니다.
그점이 더 슬프더군요..


프레이야 2009-06-24 19:26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_()_
저도 어렸을 적 어머니와 지금의 고희가 된 어머니만 비교해도 참 다르다 싶거든요.
마음이 짠해지는, 그런 것이요. 아름다웠던 그 미모와 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