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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힘이 세다 : 한국편 ㅣ 세상을 바꾼 여자들의 빛나는 도전 이야기
유영소 지음, 원유미 그림 / 함께자람(교학사)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은 양성평등을 은근히 부르짖는 쾌활한 분위기의 창작동화에 가깝다. 하지만 부제 '세상을 바꾼 여자들의 빛나는 도전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여성인물이야기 책이다. 세계편이 먼저 나왔고 한국편이 뒤이어 나왔다. 세계편에서는 제인 구달, 마리 퀴리, 아멜리아 에어하트, 마더 테레사, 아웅산 수지, 헬렌 켈러, 마거릿 버크화이트가 등장한다. 아이들이 잘 모르고 있었던 인물들을 더 많이 다루고 있어 바람직하다. 한국편에서는 최승희, 최은희, 정정화, 박에스더, 명성황후, 이태영 그리고 조수미를 만날 수 있다. 대개의 5학년 아이들이 명성황후와 조수미 정도를 친근하게 들어본 정도였다.
인물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만나게 해 줄 때는 다소 조심스럽다. 한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각도로 조명해볼 수 있을 정도의 눈을 가질 수 있기 전에 어른들의 성급한 마음이 설익은 인물이야기책을 들이미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업적은 분명 있으니 한 인물의 업적 정도는 알고 넘어가겠지만 그 인물에 대한 판에 박힌 듯한 인식이 생겨버릴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 인물을 이해하려면 그 인물이 살았던 사회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보다 폭 넓은 통시적인 이해가 가능하려면 초등고학년에(독서력이 있다면 4학년 쯤에) 인물이야기를 만나게 해 주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힘이 세다>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는 여성인물들이다. 별 어려움을 모르고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험난한 길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이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킬지 안타까웠다. 역시 아이들은 나의 우려대로 그들이 몸담았던 암울한 시대의 비극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선 나도 별반 크게 다를 게 없겠지만 말이다. 이들 주인공의 공통점은 조수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제강점기를 살아냈던 여성들이란 점이다. 만약 이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라면 어떤 길을 택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역시 그 성품대로 강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뜻을 펴서 세상을 바꾸어보려 애썼을 거라 믿고 싶어진다.
무용가, 기자, 의사, 여자대통령, 변호사 또는 판사, 그리고 음악가(성악가) 같은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이들은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는 잊고 자신들의 꿈에 대해 조잘댄다. 인물의 이야기가 아이들의 꿈에 그런 식으로 접목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좀더 정의감이 돋보이는 아이라면, 사회의 편견과 온갖 종류의 불평등, 식민국과 이념의 대립이라는 참담한 역사, 비굴한 동족에의 배신감과 굴욕감 앞에서 자신의 참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의 의지에 목이 메이고 가슴에 강한 빛 한 줄기가 들어왔을 것이다.
압록강을 수차례 건너다니며 독립자금을 나를 때에도 겁나지 않던 정정화가 후에 우리 경찰에게 수모를 당하고 무릎이 꺾일 때, '독립자금을 가져오겠다며 겁없이 국경을 드나들던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 차가웠던 마룻바닥이 내 가슴마저도 식게 만든 것이다.' 라는 대목에서 난 쓰라렸다. 쉰두 살의 정정화 의사의 가슴에 붙타는 애국심을 일순간 싸늘하게 만든 건 일제시대 경찰과 다르지 않았던 우리 경찰이었다고 나온다. 우리가 그래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자유와 평등은 이같은 인물들의 고난의 선물이다.
이 책은 일곱 명의 여성인물을 다루다보니, 깊이보다는 압축된 내용으로 중요한 업적과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인 배경설명도 다소 부족한 면이 있지만 흐름을 이해하는데 그리 부족하지는 않다. 인물의 사진이 적절히 나와있어 처음 만나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리 낯설지 않게 보여주어 아이들에겐 실제와 동떨어진 인물이기 쉬운 점을 덜고 있다. 그외 인물의 자서전 등의 자료글과 주변인물들의 말을 실어 인물을 좀더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또한 조수미 같은 현대 생존 인물도 등장시켜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힘을 다정한 편지글로 전해준다.
이 책과 함께 세계편도 보고, 아이세움에서 나온 여성인물이야기 시리즈를 연계하여 보여주면 좋겠다. 엘리너루스벨트, 아멜리아 에어하트, 최은희, 이태영, 수잔 B. 엔터니까지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