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장난 - 미네르바의 올빼미 05 미네르바의 올빼미 5
프랑수와 부아예 지음, 김경희 그림, 신광순 옮김 / 푸른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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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지된 장난’은 1952년 르네 끌레망 감독의 흑백영화와 귀에 익은 주제곡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영화다. 그 이전에 1947년 프랑스의 프랑수와 부아예가 동명의 소설을 썼다. 이 책과 영화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비춰 보여, 그 맑은 눈망울에 비친 전쟁의 잔혹함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반전소설이자 반전영화이다.

 

 제목이 말하는 금지된 장난은 표면상으로는 무덤놀이 혹은 십자가 놀이다. 열 살 소년 미셸과 다섯 살 소녀 뽈레뜨가 이런 놀이를 하게 된 배경에는 전쟁이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40년 6월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이지만 이들이 사는 생페마을은 세상일에 다소 눈이 어두운 시골마을이다. 피난길에 부모를 잃고 우연히 흘러들어오게 된 이 마을에서 뽈레뜨는 아직도 전쟁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뽈레뜨의 눈에 죽음이란 기도문을 외우고 성호를 그어야할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저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 금방 살아날 것만 같은, 장난 같은 일이다. 뽈레뜨는 마을의 신부를 통해 목숨 있는 것이 죽으면 기도를 하고 성호를 그어 슬픔을 표현하며 명복을 비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입 큰 늑대’에 의해 부모와 개가 죽는 것을 본 뽈레뜨는 주검에 대한 심한 애착을 보인다. 아이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아이가 자신에게 위안을 주려고 안간힘을 썼던 미셸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쏟는 장면에서 누구든 가슴이 시릴 것이다.

 

 십자가는 고난과 구원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생페마을 사람들은 십자가를 소홀히 하고 지내왔다. 역설적이게도, 십자가를 만들고 훔치기까지 한 미셸만이 십자가의 소중한 의미를 알고 있는 듯하다. 위선적인 신부와 성당의 형식적인 십자가는 이들의 잃어버린 신앙심과 허울뿐인 종교관을 말해준다. 싸움을 일삼던 돌레 집안과 가나르 집안의 사람들이 뽈레뜨와 미셸이 만든 공동무덤에서 자신들만의 십자가를 챙길 때에도 성당꼭대기의 거대한 철십자가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들에게 구원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전쟁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도 십자가의 경종은 크다.

 

 십자가를 잊고 있었던 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나마 십자가에 눈을 돌리게 해준 사람은 뽈레뜨다. 뽈레뜨는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뽈레뜨는 ‘역사가 그들에게 준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십자가를 나누어 가지며 즐거워하고 양가의 결혼식도 준비한다. 결국 행복과 평화는 아이다운 순수함과 계산되지 않은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형식적인 종교나 폭력 따위로는 얻을 수 없는 고귀한 가치라고 생각된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비인간성을 뽈레뜨의 순진무구함와 대비하여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뚜렷이 드러낸다.  

 

 돌레와 가느르 집안의 사소한 갈등처럼 전쟁은 자기 쪽 입장만 내세워 양보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전쟁은 많은 피해를 남기지만 특히 어린이들에게 입히는 상처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므로 이들의 영혼에 입힌 상처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전쟁은 한낱 장난이 아니다. 밝은 미래를 위해 전쟁은 금지되어야하는 장난 중에서도 영순위에 해당한다. '금지된 장난'은 이런 메세지를 한 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빚어낸다.

 

 중학 1학년과 함께 읽었다. 영화를 함께 보면 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디비디가 모두 품절이어서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몇몇 흑백스틸사진을 보긴 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소설의 곳곳에 숨어있는 상징과 시대배경을 이해하고 다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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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5-2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산되지 않은 가치들이 울긋불긋 피어나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읽오보고 싶어요. 퍼가도 돼죠?^^;

프레이야 2006-05-20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
 
뚱보, 내 인생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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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권력인 요즘 '뚱보'를 내세운 동화류는 이제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뚱보, 내 인생>은 그런 선입견에서 조금 벗아난다.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학생이 보기에 좋을 청소년소설로서 성장소설적인 내용이다. 책은 벵자멩이라는 뚱보가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제목과 표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프랑스의 작가 미카엘 올리비에는 열여섯의 뚱보 남학생에게 꽃 한 다발을 손에 들려놓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꽃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있다. 책은 이 학생이 자신의 몸과 관련하여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주도하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아주 맛있는 요리의 전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듯 벵자멩의 학교생활과 하루일과, 생각, 꿈과 소망,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조미료를 많이 넣지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93킬로그램의 벵자멩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사가 되는 꿈을 갖고 있고 클래식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다. 중간에 있는 것이 편하다는 것도 터득한, 어찌보면 평범함 이상의 보석을 자기도 모르게 갖고 있다. 먹는 것을 통해 즐거움과 위안을 받던 벵자멩은 클레르라는 여자친구에게 연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뚱뚱한 몸을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먹는 일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것으로 전락한다.

드디어 난생 처음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거듭하는 실패는 자기파괴욕구와 상실감만 더한다. 게다가 클레르에게 고백한 사랑의 감정이 이해받지 못하자 벵자멩은 거의 실성할 지경에 이르러 성격장애 증세까지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과 좌절이 벵자멩의 미래에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되는지는 벵자멩의 태도에 달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척 귀중한 것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과거, 단란했던 가족의 사랑, 특히 엄마의 포근한 애정을 되살려 깨닫고 그것에서 안정감과 충분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점이다. 섬광처럼, 자신안에 이러한 감정이 빛날 때 벵자멩은 상실감에서 회복된다.

다른 여자를 찾아 엄마와 헤어진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까지도 멋지게 소화해서 승화시킬 수 있게 된 벵자멩은 "가볍고 재미있게 구는 법"과 "사랑에 빠져 넋이 나간 얼굴을 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역설적으로 살아야 더 잘 살아지는게 인생일까. 벵자멩이 '우정'으로 양보한 감정이 의외로 '사랑'으로 돌아올 때 그는 비로소 스스로 접시를 밀어내게 된다. 감정도 이성도, 몸도 마음도 이제 벵자멩의 그것들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된 듯하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듯 삶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현재의 절망도 모두 추억으로 자리할 것이고 그 모든 경험과 감각들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형성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현재의 고통에 울고 있을 필요도 없고 과거에 매달려 있을 필요도 없다는 말이 된다.

<뚱보, 내 인생>은 먹어대는 행위에 현미경과 청진기를 동시에 대고 있다. 벵자멩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에서 어릴 적 몸무게를 불려갔다. 숫자가 커지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꼈을 테다. 벵자멩이 먹는 음식이 열거되고 남은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간식을 비롯해 그가 먹는 갖가지 음식이 열거된다. 또한 그 음식을 먹을 때의 감정과 심리가 잘 묘사된다. 좋아하는 것을 먹지 않을 수 있으려면 마음이 편안해야하고 걱정이 없어야한다는 글귀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벵자멩은 헤어진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인정 받지 못한 어설픈 사랑고백으로 인한 자기혐오감과 실패를 거듭하는 다이어트 도전에 대한 두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단순히 먹는 행위 이면의 심리를 자세히 포착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있다. 특히 소피아줌마와의 대화에서 인생을 멋지게 사는 역설적인 방법을 얻고 심리학자에게서는 미궁 속에서 빛을 볼 실마리를 잡는다.

벵자멩이 한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요소들이 복잡한 구조로 얽혀서 작용을 한다. 순간의 감각들, 스치는 경험들, 그것에서 얻는 인식들이 여러부류의 사람들(어른들을 포함하여)과 나누는 소통과 화학작용이라도 하는 것 같다. 요리도 이렇게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듯이 뚱보, 벵자멩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요리할 것이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사가 되는 꿈을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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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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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순지라는 여자아이가 감당해나가는 불행에 말문이 막혔다. 너무나 담담하게 겪어내는 불행이라 어찌 보면 그것 자체가 순지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몽실언니'가 떠올랐다. 순지는 현대판 몽실언니 같다. 몽실언니는 전쟁이라는 커다란 슬픔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망가지는 경우였지만 이 책의 순지는 현대의 전쟁 아닌 전쟁 중의 중학생이다. 아빠의 실업이 뜻하지 않게 가지고 오는 불행의 연속을 순지는 무척이나 꿋꿋하고 지혜롭게 견뎌낸다.

가슴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불행의 연속에서 코만이 아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온기는 유일하게도 '밥이 끓는 시간'이라는 묘사가 나오는 대목이다. 영세 가구공장에 다니던 아빠가 남들처럼 영악하게 일자리를 옮겼더라면 순지네의 불행이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휴일이면 자장면 한 그릇의 외식으로 행복해하고 밥이 끓는 시간 동안 구수한 밥 냄새를 맡으며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갔을 테다. 실직자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작가는 따져묻지 않는다. 그저 독자가 그점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중학교 1학년인 순지가 맞부딪히는 어둠의 그림자를 작가는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여과하겠다는 의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의 이기적이며 본능적인 욕구와 위선적인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또래 남학생의 비이성적인 호기심도 비린내 나도록 묘사하고 있다. 순지라는 1인칭 화자를 내세워 그 또래 학생들이 보고 듣고 겪으며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어쩌면 가장 악랄하고 불행하고 비합리적인 일들을 순지로 하여금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한다. 삶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호의적이지도 않음을 똑똑히 보게 한다. 삶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악의적인 방식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음을 청소년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이야기일까.

흙을 일구어주지 않아도 잘 피어나는 맨드라미처럼 순지도 그렇게 앞날을 스스로 헤쳐가며 잘 살아갈 것이다. 일용직으로 일하다 왼손의 손가락 네 개가 잘려나가도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아빠는 상심하여 집을 나간다. 시골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이복동생 순달을 입양보내고, 집을 내 준 보증금마저 외삼촌이란 작자에게 털리고 나서도 순지가 세상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문득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을 보이며 순지에게로 걸어오는 아빠.

"밥은 드셨어요?"

일 나갔다가 들어온 아빠에게 말을 건네듯 하며 밥을 끓이는 그 시간이 생애 가장 따뜻한 순간일테다. 이제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행복의 서막이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는 각 장마다 앞에서 끄는 짧은 싯구다. 각 장의 이야기에 잘 맞는 싯구들이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며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그 중에서도 아래의 글귀는 순지의 삶에 두껍게 덮힌 먹구름을 걷어줄 것만 같은 희망을 보여준다.

- 서성거리는 달빛 아래서 거미들이 또 안테나를 치고 있다. 내일은 좀더 좋은 소식이 걸려오려나보다.           

                 - 이진영 <폐가에는 달빛이 살고 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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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소 - 중국문학 다림세계문학 1
차오원쉬엔 지음, 첸 지앙 홍 그림, 양태은 옮김 / 다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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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는 중국인이다. 세계문학 시리즈로 청소년을 겨냥하여 다림에서 묶어내는 책의 하나이다. '바다소'라는 생소한 이름은 네편의 단편 중 두번째 것이다. 네편 모두 성장의 진통을 겪고 훌쩍 크는 아이들의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다. 성장의 통과의례로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은 '숲'이다. 여기 <바다소>에서는 '물'이 그 배경으로 배수진을 치고 있다.

'물'은 맑고, 변화하며, 순한 것 같지만 급하고 때로는 과격하다. 잔잔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때로는 무서운 얼굴을 하기도 하고 잔혹하기도 하다. '물'은 사람의 의식이다. 물밑의식은 내면의식이기도 하다. 여기 등장하는 네편의 작품은 하나같이 물을 배경으로 한다. 물에서 사건이 이루어지고, 물을 사이에 두고 갈등이 일어나며, 물에서 화해하고, 죽어서도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이야기를 읽어가는 내내 물은 기쁨이기도 하고 가슴에 스미는 슬픔이기도 했다.

'빨간 호리병박'에서 뉴뉴는 자신에게 설렘을 주었던 빨간 호리병박으로 인해 오해가 생겨 우정을 깨뜨리고나서 호리병박을 버려두고 홀로 물을 저어 나아간다. 호리병박은 어른이 되기 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의지의 대상이다. 그 대상은 육체적, 물질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것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뉴뉴는 호리병박을 물결따라 보낸다. 나의 판단과 가치관으로 자아를 확립하여 '나'의 삶을 살아가는 의식을 말한다. 누군가의 가치에 기대어 내가 흔들리고, 혹은 내가 없을 때 진정한 성숙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테니 말이다.

'바다소'는 열다섯 살의 소년이 역경을 이겨내고 한 사람의 남자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할머니가 홀로 모은 돈으로 바다소를 사서 집으로 끌고 오기까지 바다소와 소년이 겪는 이야기가 자세히 펼펴진다. 진흙탕을 뒹굴듯, 묘사가 워낙 상세하여 실감날 뿐만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긍정적인 생각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소년의 뜨거운 콧김과 온몸에 난 상처가 눈앞에 그려진다.

'미꾸라지''아추'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관심과 사랑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사람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잔인함과 이기심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율이 인다. 하지만 사람의 내면에 동시에 간직되어있는 선함을 간과하지 않는다.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부분이 이것이 아닌가싶다. 본래의 양심을 되찾고, 자신을 단죄하는 힘은 폭넓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픔을 겪기 마련이다. 크든 작든, 사소한 것이든 엄청난 것이든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그것과 스스로 화해하는 과정에서 성장을 거듭한다. 여기 네편의 단편들은 그러한 주제를 하나의 커다란 상징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게 한다. 이야기 전체의 사건과 배경과 인물에 그 주제가 녹아있다. 진솔하되 경박하지 않게 심리를 표출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에둘러 느끼게 한다. 각각의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상징과 은유가 되어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준다.

이 책은 세밀화 같은 글과, 글에 걸맞는 수묵화 같은 삽화가 잘 어우러져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낯선 배경과 이름, 중국 남부의 풍습 같은 것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책장을 덮을 때까지 관심과 긴장을 놓지 않게 할 만하다. 서정적인 문장과 마음 깊숙한 곳을 후비고 들어오는 깊이 있는 눈이 마음을 흔든다. 중학 1년 정도가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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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오월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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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면 떠오르는 걸 말해보라고 하면 가정의 달, 스승의 날, 붉은 장미 같은 기쁘고 화사한 연상을 하기가 쉽다. 우리가 연상하는 것은 체험과 연관이 있거나 개인의 인상적인 느낌이 실리는 계기와 관련되기 마련이다. 5.18 민주화운동이 다른 나라의 일도 아니고 크지 않은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인데 우리는 오월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그것을 재바르게 떠올리지 못한다. 작가가 '누나의 오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두를 보면, 작가는 이 점을 안타깝게 여겨 이같은 청소년 소설을 썼다고 생각된다.

청소년 소설은 어떤 스토리라인과 사건을 다루더라도 저변에 '성장'이라는 주제를 안고 있다. 청소년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중도이자 경계에 있는 길이다. 어쩌면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길인지도 모른다. 그 길에는 아픔과 슬픔이 있고 깨달음이 있으며 그와 동시에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누나의 오월>에 나오는 기열이와 누나의 이야기는 그런 비밀스런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역사의 노도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바꾸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나의 오월>은 실재인물 박효선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 작가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역사의 진실을 꾸밈없이 잔잔하면서도 강단있는 문체로 드러냈다. 단문장으로 수월하게 읽히는 장점도 있다. 작가는 교실 폭력, 5.18 민주묘역, 슬픔, 어른... 이런 것들을 키워드로 하여 점점 광주에서 있었던 그날의 진실로 접근한다.

부반장이 5월은 슬픔의 달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중3인 '나'는 '어른'이란 단어에서 문득 '슬픔'을 느낀다. 내심 부끄러웠던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보게되고부터다. 일곱살 터울이었던 누나의 죽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민주묘역으로 체험학습을 간 날, 무덤 앞에 놓인 어느 누나의 사진을 보며 자신의 누나를 떠올리게 된다. 진실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었던, 진실에 대하여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성장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누나의 꿈이 '나'의 '책가방'에 모조리 실렸던 그날부터 누나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세상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넓은 눈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눈을 뜲과 맞닿아 있다. 누나의 희생은 비단 가족적인 범주에 그치지 않고 이웃으로 나아가, 넓고 크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피를 나누어주는 값진 희생이다.

진실을 외면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는 누나의 슬프고도 어처구니 없어보이는 죽음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기억의 수면위로 떠올린다. '나'는 이제 진실을 캐내려하는 사람이 된다. 누나가 바라는 것은 망월동으로 묘가 옮겨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의 희생자가 진정 바라는 것이다. 억울하게 오도되고 죽음의 의미조차 무색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과 그 죽음의 가치와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땅에 함께 있음이 그 이유다. '나'가 한때는짧은 소견에 매도하기도 했던 누나가 그저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밝혀 그 넋을 보살피고 값진 목숨의 의미가 갱생될 때 우리땅에 화해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독자도 그것을 믿는다.

<누나의 오월>은 슬프고, 아름답고, 숭고하고, 강렬하다. 그리고 나 또한 어른이라는 이름을 갖고있기에 부끄러워지는 성장소설이다. 이 책의 다른 한 가지 장점은 재생지를 사용하여 가벼운 무게감, 손에 착 붙는 느낌의 크기와 따뜻함, 게다가 겉표지의 은은함이다.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이 연상되는, 작은 큐빅을 점점이 박아둔 겉표지가 눈을 밝게 한다. 숭고한 희생자인 '누나'에게 바치는 보석같은 헌사일까, 성장의 과정에 있는  '나'에게 바치는 격려의 박수일까. 아니면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간직해야할, 진실을 보는 빛나는 눈망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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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3-1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윤정모님인가요??
갑자기 긴가민가해요..

프레이야 2006-03-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의 꿈, 고삐,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등의 장편소설이 있어요...

반딧불,, 2006-03-1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삐가 생각이 안났어요.
그 분이라면 잘쓰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