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마음이 자라는 나무 4
아지즈 네신 지음, 이종균 그림, 이난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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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아지즈 네신을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아지즈 네신은 필명이다. 우리나라에 '제이넵의 비밀 편지'가 번역되어 있다고 하니 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는 14가지의 우화가 담겨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보석처럼 빛난다. 한창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중학교 1학년 이상의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지즈 네신은 글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라 더욱 믿음이 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동식물이다.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특유의 상상력으로 비틀어놓았다. 동식물의 세계를 통해 인간 세상을 꼬집어주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 떨리고 두근대는 심장을 느낄 수 있다. 예리하게 사회현실과 제도를 비틀고 정확하게 문제를 꼬집어내려고 하는 점이 그렇다. 이야기의 구성도 재미있다. 생각지 못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이끌기도 하고, 놀라운 반전과 반전의 반전이 이야기에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작가는 모든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자유와 평등, 화해가 꽃피는 세상, 인간이 존중 받는 세상, 억압에서 해방된 새로운 인간상의 구현, 위선적인 모습이 아닌 참된 인간상, 담장이 없는 세상... 이런 것들에 대한 희망을 전하고 싶어한다. 또한 '멋진 것과 옳은 것'에서는 세상을 해석하는 詩의 힘에 대해 은유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삽화는 이종균님이 그렸는데 이야기의 상징과 주제를 잘 전해주고 있다. 마치 판화 같은 느낌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준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우리 현실과 제도에 빗대어 생각해볼 점들이 있으니 읽고 어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훨씬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중2 학생들과 함께 읽었는데 지금 비틀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이 제일 많았다. 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 개인의 특성을 살려주지 못하는 교육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다. 이 책을 보면, 당장 뾰족한 답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함께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 그리고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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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7-1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저도 좀 강독반에 끼워주시면 안될까요?^^; 작가의 메시지와 학생들이 불만이 섞인거 멋지네요.
'당장 뾰족한 답이 안 나온다.'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답을 내서 문제인 거 같아요. 이리저리 모순이 많은 세상에서 교육제도 또한 예외가 아닌데.... 넘 쉽게 답을 내버리는 모습이 참 문제 가아요. 뾰족한 답이 안 나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로 여기도록 해서 토론하는게 좋은 것 같은데....

2006-07-19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7-1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고마워요. 오타 고쳤슴다..^^
 
키다리 아저씨 청목 스테디북스 25
진 웹스터 지음, 김창직 옮김 / 청목(청목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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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키다리아저씨는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며 예전에 가졌던 느낌과 다른 것들이 있었다. 중학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우선 편지체라는 점이 아이들이 읽기에 쉽게 느껴졌다. 또한 한 여학생이 멋진 기부자의 도움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독립적인 성장을 하는 이야기와 반전이 재미를 주는 눈치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발신되는 답장 없는 편지를 읽어가는 독자는 어느 지점에서부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눈치를 챌 수 있다. 하지만 좀더 이야기에 푹 빠지지 못하는, 아니 이야기에 너무 빠지는, 어쩌면 순진한 독자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에 의외의 결말에 놀란다.

진 웹스터가 이 작품을 낸 시기는 1900년대 초반이다. 당시 미국사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사회를 엄격하게 지배하며 보수적인 성향이 곳곳에 박혀있는 시기이다. 주디가 살아온 고아원은 밀폐되고 부조리한, 자유의지나 인격은 무시되는 사회를 상징한다. 18년을 살아온 그곳에서 주디를 벗어나게 해 주는 손길은 어느 평의원의 기부에서 시작된다. 주디의 문학적 재능을 보고 대학 4년간의 학비와 용돈을 넉넉히 지원해주는 독지가는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대학생활 4년 간의 이야기이다. 신입생일 때와 학년이 하나씩 올라갈 때의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는 주디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신나는 부분은 매력적인 여자를 한 사람 만나는 일이다. 유쾌하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씩씩한 주디. 재치까지 겸비한 주디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공민'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주디는 대학에서 거치는 모든 배움의 과정과 학문의 세계에 무척 열정적이다. 사교적이고 솔직담백한 성격에 자유의지를 사랑하는 주디는 자신의 소소하거나 다소 큰 일까지 스스로 결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키다리아저씨의 경제적 도움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고 학비를 벌어 많은 돈을 되돌려주기까지 한다.

주디의 독립은 경제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고 사회의 모든 일들에 열린 눈으로 생각하려한다. 불필요한 소비나 사치에는 절제심을 발휘하려 노력하면서도 옷가지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또한 지긋지긋하게 생각해오던 고아원 세계를 4학년이 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이른다.  고아원은 또 다른 세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준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이다. 매초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겠다고, 불행을 느끼는 순간(하다못해 이가 아플때도) 에도 행복을 생각하겠다는, 밝은 기운이 넘치는 인물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 주디. 그녀는 언제까지나 그런 친구로 우리 기억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의 여자가 부유하고 멋진 남성을 만나 행복으로 간다는, 어쩌면 신데렐라 같은 결말이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가 아직도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개척하며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되기 위해 바람직한 성장을 하는 재능있는 인물이라면 이런 정도의 행운이 따를 수도 있다는, 아니 따라야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작가는 실제로 대학시절의 한 어려웠던 친구를 모델로 주디를 그려냈다고 한다. 그러한 친구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은 주디와 주디가 사랑하게 되는 남자 (결말이 나오기 전에는 명문가의 도련님이지만)의 매력적인 품성이 더욱 독자를 끄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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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7-0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른이 되어서 읽어보니 주디가 참 매력적이더라구요. 키다리 아저씨 그후 이야기도 재밌답니다. ^^
 
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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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멕시코 유카탄 반도 남쪽의 면적 약 11만Km2, 인구 1천 4백만의 국가. '영원한 봄의 나라'로 불리는, 찬란했던 마야문명의 중심지. 6월 24일자 모 신문에서 과테말라 명예 영사관, 이종균 재해병원 원장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과테말라와 한국은 지난 1962년 10월 24일 수교했다. 과테말라는 6.25 한국전쟁 때 7천704달러를 원조하며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과테말라는 국민의 인종 구성에서 마야 인디언이 전 인구의 55%를 차지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마야문명의 중심으로 유명하다. 마야문명은 체계적인 신성문자, 정밀한 태양력, 영(0)을 포함한 20진법, 세련된 조각, 회화 등 16세기 초 스페인에게 점령 당하기 전까지 고대사회에서 가장 진보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소녀>를 손에 들고 있었던 나는 지면을 많이 차지하고 있던 이 기사가 너무나 크게 눈에 들어왔다. 과테말라와 우리나라는 역사적인 시련이나 국민성 같은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이 원장은 1997년에 과테말라를 다시 찾았을 때, 오욕의 역사와 잔인한 36년간의 내전(1960-1996)에 마침표를 찍고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과테말라의 진면목을 재발견했다고 밝혔다. 비록 그동안 숱한 내.외환에 시달렸고 영토는 작을지라도 풍부한 자연자원과 낙천적인 국민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찬란했던 문명을 이루었던 마야인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후손들이 이제 막 어둠에서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나무소녀, 가브리엘라는 그런 후손들 중의 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강하고 자존심이 세고 자신과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뭇가지를 꼭 잡듯 꿈을 놓지 않고 사람이 존엄하다는 진실을 체현하려는 열여섯 소녀였다.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여 멕시코 국경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는 실재인물의 육성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하는 작가의 변이 더욱 뜨겁다. 그래서인지 솔직대담하게 그려내는 장면들 앞에서 전율하였다. 마야인들이 대지와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 앞에서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인디언들이 자연을 바라보고 자식들을 가르치는 대목에서는 아름다운 공명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형제를 사랑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매설하지 않는 인디언들의 태도에서 잔잔하지만 여리지만은 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

가브리엘라는 본능처럼, 자궁을 찾아 기어들어가듯, 나무를 오른다. 높이 더 높이... 오를수록 하늘이 가까이 있다. 그곳에 올라 있으면 꿈을 잡기도 더 쉬워질 것만 같다. 하지만 나무(여기선 마치치나무가 자주 등장한다)는 가브리엘라의 영원한 고향이, 엄마가, 되지 못할 것 같아 보인다. 그녀는 나무 위에 앉아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그 모든 잔인한 장면들을 보고도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죄책감에 빠지게 하고 꿈에 대한 실날같은 희망을 향한 힘도 무력하게 한다. 나무는 이제 정신을 고양시키기는커녕 자신을 비참하게 하고, 타락하게 하고, 유일한 혈육인 막내 알리시아도 팽개치게 한 꼴이 되었다.

그러나 나무는 역시 살아있었다. 가브리엘라는 쓰레기더미 같은 난민수용소를 빠져나오다가 문득 저주스러운 나무를 피하려하고 있는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상처를 잊기 위해 다른 것에 몰두하며 그것을 회피하려고만  하였다. 이제 그녀는 나무를 피하기보다는 그것을 타고 더 높이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달라진 것은,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동생 알리시아와 함께 가는 길이라는 점이다.

가브리엘라가 나무와의 일체감을 되찾게 된 건 여섯살의 알리시아 덕분이다. 충격과 분노와 상처로 말을 잃어버린 동생, 어려서부터도 자신 마음속의 이야기와 스스로 대화할 줄 알았던, 자신의 분신 같은 동생으로 하여금 가브리엘라의 삶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그것은 죽은 것 같아 보이는 나무둥치에서 새싹이 돋는 것과 같다. 땅속을 깊이 파고 내려가 온갖 굴욕을 견디고 있는 나무의 뿌리. 가브리엘라에게 닥친, 상상도 못 했던 비참한 현실은 과테말라가 '영원한 봄의 땅'이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아도 그녀에게 있어 '봄의 땅'이란 역설적인 의미를 준다.

가브리엘라는 지금 어딘가에서 행복한 삶을 가꾸고 있을 테다. 나무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나무의 끈질긴 생명처럼, 그렇게 살아있다.

ps : 이 책의 종이는 재생용지로 보인다. 코를 대면 짙고 씁쓸한 나무냄새가 난다. 6월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달이라 전쟁과 평화를 소재로 한 책을 아이들과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다. 지금도 세계 84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나무소녀>는 전쟁의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그리고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미쳐가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고학년이상의 학생들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미화하지 않고 담담하고 써내려간 글에서 작가의 절제된 감정이 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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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6-3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들여다보기가 없군요. 궁금한데요.
이 이야기가 아이들 책에도 있었던 듯 한데요.

프레이야 2006-06-3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초등6학년 책 잘 읽는 아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삽화는 많지 않구요. 수수하니 그래요. 표지의 그림은 알리시아가 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림 같네요..

수진샘 2006-07-01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쓴 글에 비해서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읽힙니다. 특히 가브리엘라가 '나무 위에서 죽음을 피하던 장면'을 해석한 부분에 공감이 갑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거든요. 글쓰는게 매번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많이 배우고 갑니다.
 
판소리와 놀자!
이경재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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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라고 하니 아이들은 별로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왜 관심이 없을까. 우리 전통의 것에 대한 낯섦 때문인 것 같다. 잘 알지 못하면 낯설고, 낯설면 어렵고 그래서 다가가기에도 부담스러운 것 같다. 판소리는 우리의 소리인데 아이들은 역시 다른 소리에 더 익숙해져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 소리를 좀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한다는 뻔한 소리를 또 하게 되는 책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건, 이 책이 판소리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간접경험을 할 시간을 선물한다는 점이다. 남원의 한 산자락에 있는 연수원에서 여름 한 달 간 판소리를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이 모였다. 이곳의 선생님은 동편 판소리 '흥보가'의 전수자인 전인삼 선생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연실이라는 초등학생의 일기가 뼈대를 이루며 전개된다. 연실이는 가명의 인물이지만 그외 이곳에서의 소리 연수 과정이나 명창들의 이름을 비롯한 판소리에 대한 모든 내용은 모두 실재의 이야기다. 글을 쓴 이경재선생도 이 배움에 참여하며 흐뭇하고 벅찬 시간을 글로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화 형식을 빌어, 판소리라는 조금은 거리가 먼 것 같은 이야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대화체로 그대로 옮겨놓아 읽기에 참 맛깔나다. 권삼득, 송흥록, 김성옥 같은 명창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걸쭉한 입담으로 술술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보면 판소리에 대한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판소리의 종류(서편제, 동편제, 중고제)와 소리의 종류를 비롯해 전해내려오는 판소리 다섯마당의 내용과 가치와 판소리를 지켜야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소리꾼들이 어떻게 핍박을 받았는지, 서민들의 고통과 기쁨과 슬픔을 대변하는 판소리에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담겨있는지 쉽게 설명해준다. 이야기형식을 빌다보니 판소리에 대한 내용이나 명창의 계보 같은 게 복잡하게 보이고 왔다갔다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딱 소리꾼', 송만갑 명창의 꿈 이야기는 진정한 소리꾼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말해준다. 이 외에도 명창들의 '소리사랑' 방법과 굳은 의지를 보며 외길을 가는 명창들의 삶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한다. 득음의 경지란 듣는 상대에게 맞는 다양한 소리뿐만 아니라 진정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명창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소리는 우리 미래란 말이여." 라는 한마디에 우리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전해진다.

중학 1학년 아이들과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도 아이들이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 잘 안 읽고 와서 속상했다. 역시나 우리 것은 따분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고전 수업을 할 때와 비슷한 반응을 느꼈다. 여기서 fusion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것은 우리 것 그대로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의 가치와 양식을 접목하여 좀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친해지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선생님이 들려주는 판소리 풀이>를 실어놓았다. 이야기 안에서 언급된 판소리 구절들을 원래의 가사와 풀이말로 함께 보여준다. 판소리나 단가에는 옛말이 많이 나오니까 얼른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요즘의 말로 풀이해 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자주 만나고 말을 걸고 친해지도록 노력하는 게 필요하겠다.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하지만 시험공부 해야한다면서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갑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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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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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접목되어 흥미진진한 이야기구조를 이루어낸다. 이런 류의 동화나 청소년 소설은 적지 않게 있지만 이 책은 특히 전율적이었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편견과 선입견, 가장 치욕스러운 감정까지 들춰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가장 고귀한 품성을 결국은 끄집어내어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미술계 인사들이 역사상 최고의 명화로 꼽는 그림은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린 에스파냐의 화가, 디아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고 한다. 어느 명화 관련 책에서 몇  번 본적이 있는 그림이다. 놀랍게도 이 한 폭의 그림으로 작가는 짧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본능적인 감정에 요동치는 부분도 있고  따스한 가족애로 가슴에 물이 흐르기도 한다. 평소 장애인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였다.

화가들이 충성심과 용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림에 그려넣는 대상은 '개'라고 한다. 이 말은 좌절감에 몸서리치고 있는 바르톨로메에게 들리는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17세기 스페인 마드리스, 펠리페4세가 모든 것의 위에 앉아 군림하던 시기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다. 화가 벨라스케스 역시 책의 뒷부분에 가면 등장한다. 그의 열린 마음과 곧은 정신이 바르톨로메의 인생에 빛을 준다. 벨라스케스는 실제로 시녀들이나 난쟁이를 왕족이나 귀족들과 동등한 배치로 하여 그림의 구도 안에 넣음으로써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작가는 자신이 벨라스케스가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갔고, 기가 막힌 상상력으로 이야기 하나를 자아냈다. 물론 작가의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지만 화가의 의도와 250년이 지난 시대에 사는 어느 작가의 상상이 꼭 맞아떨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보는 눈은 주관적인 인상과 자신만의 무한한 상상의 힘으로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심한 기형의 몸을 하고 있어 네발로 기는 편이 더 편한 베르톨로메는 검고 빛나는 눈, 섬섬옥수 같은 손 그리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유난히 인상적인 열살의 남자아이다. 신은 불구의 몸으로 태어난 이 아이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었지만 사람들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다. 편견이 가로막고있기 때문이다. 학구열이 높고 지력도 대단한 바르톨로메는 빠른 시일에 수사의 도움으로 글자를 익히고 <돈키호테>같은 까지 읽는다. 색채 감각 또한 뛰어나 벨라스케스 화실에서 일하는 도제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베르톨로메가 겪는 고난은 예수의 그것과 비교된다.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리라, 는 말이 절망의 순간에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당하는 모멸감과 상처는 읽는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특히 아버지 후안의 싸늘한 태도에 함께 분노하게 되지만 역시 아버지의 정을 막을 수는 없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말못할 고민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읽는이의 마음에 다소 위안이 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은 시점에 있어서 남다른 그림이다. 화가가 그림 속에 등장인물로 들어가 붓을 들고 서 있고 그림의 대상인 왕과 왕후는 정면의 거울을 통해 보인다. 즉 이 그림을 우리가 보는 게 아니라 그림속의 화가가 우리를 보는 것 같은 구도다. 가운데에 다섯살 짜리 공주가 깜찍한 모습으로 서 있고 주위엔 시녀들과 시동들이 서있다. 작가는 가장 앞줄 구석에 있는 믿음직스러운 개에 눈이 멈추었다. 개의 등을 밟고 서 있는 난쟁이 시동은 다른 시녀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바르톨로메를 학대하는 인물로 야비한 근성을 잘 드러낸다. 전제군주의 군림 못지 않은 기생적인 군림이 핍박 받는 약자에겐 더욱 괴롭다.

하지만 개는 그런 발길조차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개는 짖지 않는다. 다만 화가 나면 물 뿐이다." 개는 지금 내면의 힘을 느끼며 그 힘을 모으고 있는 순간이다. 작가는 바르톨로메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소수자를 바라보게 한다. 인종, 계급 그리고 신체적 장애 따위로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권마저 누리지 못하는 약자들의 있음직한 고통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가장 놀라운 상상은 그 개가 원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바르톨로메를 제자로 받아들인 노예출신 도제 파레하는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바꿀 힘이 네손에 없거든,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할 것이라 믿어라! 저는 운명도 언젠가는 바르톨로메의 편에 서리라 믿습니다."

파레하의 입을 통해 작가는 선을 향한 강한 믿음과 그것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진실을 향한 양심적인 발걸음을 확신한다. 진실은 흔히 보이지 않는 법이 아닌가.

자, 이야기는 결말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공주의 인간개가 되어 '자신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바르톨로메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 볼만하다. 드디어 힘없어 보이기만 했던 가족 모두의 유쾌한 힘이 발휘된다. 마술, 그것은 마술이다. 희망적인 결말이 흐뭇하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화가의 손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희망을 걸고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볼 줄 아는 눈. 우리에게도 이런 눈이 없다면 정말 불구의 몸이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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