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를 모르면 웃을 수도 없다 책세상 루트 4
박우현 지음 / 책세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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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은 언제인가부터 중요한 과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대한 인지도에 비하면 구체적이며 실용적인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논리에 대한 기본 이해와 구조를 가르쳐주지 않기도 하거니와 '논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는 책이 별로 없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해하는 언어의 한계 안에서 논리를 설명해야하는데 어려운 용어를 쉽게 이해시키는데에 연령적인 한계가 있기도 하다. 초등학생은 그 용어를 어려워하니 '논리'와 관련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논리를 알 수 있도록 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책은 중학1학년 이상의 학생들로, 추상적인 단어들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졌다면 흥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겠다. 논리적인 글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을 연이어 예로 들어 웃음 속에서 논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말을 낳는다. 논리적인 생각이 논리적인 행동과 말을 낳는다. 하지만 이 책은 말이나 글이 행동을 낳고 더불어 생각의 집도 지을 수 있다는, 어쩌면 역설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우리는 말과 행동에서 모순이나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이 흔히 있다. 글은 그런 오류를 범하기가 더욱 쉽다. 글은 문장과 문장이 유기적으로 맺어진 관계다. 관계의 중요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도 그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감에서 의미가 발생하듯 문장과 문장 간의 유기성에서 글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의미)가 드러난다. 사람간의 관계가 매끄러우려면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듯 문장 간의 관계가 물 흐르듯 이어지려면 적절한(건전한) 논리가 매개체로 되어야한다. 이 책은 전제와 결론, 다시 말해 이유와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떠한 요건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예화들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며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뉘어 '논리'와 '언어'와 '삶'을 이야기한다. 목차에는 '추론, 개념과 정의 그리고 오류' 라는 제목으로 각 장이 시작되며 다시 소제목들로 나뉘어 이어져 모두 17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이 끝나면 '생각해볼 문제'라는 꼭지를 두어 유머이야기 두 가지를 문제로 제시하고 그것에서 논리와 관련한 문제를 꺼내 생각해보게 한다. 추론에서는 귀납/ 연역/ 유비추론을 비교설명하고 개념과 정의에서는 유개념과 종개념 그리고 정의를 내릴 때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사항은 유개념과 종개념에 대한 저자의 확산해석이다. 공통점을 근거로 정립된 유개념과 종차로 인해 구분된 종개념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눈을 길러야한다는 의견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뜻이다.

글을 쓰는 아이들을 보면 글의 제목 쓰기를 어려워한다. 유개념을 파악하는 눈이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말이다. 유개념에 대한 경시는 비단 글쓰기에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의 인식에도 여지없이 고개를 든다. '차이점만 생각하다 보면 차이점의 근거가 되는 공통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유개념이 없는 종개념은 부모 없는 자식들과 같다. 우리는 제목을 알아야 한다.' '공통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파주의에 물들기 쉽고 공동체의식이 결여되기 쉽다.' '부분은 전체를 위해 존재하고 전체는 부분을 위해 존재한다.' (p104-105)

오류를 다루고 있는 장에서는 웃음을 유발하거나 별로 그렇지 않은 일련의 상황들을 제시하며 갖가지 오류를 나열한다. 다소 산만하게 서술되어 오류에 대한 여러가지 용어나 개념이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장을 읽어보면 우리의 언어와 행동, 그것이 파생하는 우리의 삶이 오류로 범벅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저지르곤 하는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고 그것으로 다시 고민하고 다시 오류에 빠지는 순환논법의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언어와 웃음에 대한 철학이 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라고 했다. 침묵도 언어이며 '모든 언어는 삶의 형식을 보여준다'. 올바른 언어생활은 올바른 삶의 형식을 구축하는데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웃음은 오류에서 발생하지만 그 오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용으로 덮어주는 미덕을 지녔다고 한다. 논리를 모르면 웃을 수도 없다고 한다면 논리를 모르면 관용도 베풀기 어려워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아, 이 결론은 혹시 오류가 아닌지..)

'논리'가 무엇인지, '논리적'이 되려면 어떤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리고 논리가 삶의 집을 짓는데 왜 필요한 것인지를 알고 싶으면 이 책을 보면 좋겠다. 논리란 딱딱하고 아전인수격인 게 아니라 부드럽고 넓은 품을 가진 친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게다가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논술이 중요한 과목이라 생각되어 논술학원을 찾는 학생들과 어머니가 함께 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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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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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반올림 3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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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모건스턴은 미국출신 유태계 프랑스인이다. 출신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 이전에 모건스턴의 작품 속에는 개성있고 당차며 적극적인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해서인지 몰라도 재기발랄하면서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하나같이, 통통 튀는 공을 받아 치며 이리저리 공을 굴리고 이편저편으로 발을 디디며 주인공과 함께 가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재치있는 문장과 참신한 어휘의 선택, 생동감과 현실감이 느껴지는 사건전개와 허를 찌르면서도 시적인 비유같은 것들로도 충분히 유쾌하지만, 언제나 인물에 부여하는 작가의 포용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중학교 1학년>을  이제 중학생이 될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바람의 아이들'에서 엮는 '반올림'시리즈는 청소년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 책은 6학년을 마감하려는 학생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의 학생들이 읽어보면 공감도 되고 이래저래 흐트러진 생각의 조각들을 얼마간 주워담을 수도 있겠다. 중학교라는 이름에 설렘과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을 예비중학생들에게 또는 중학교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을 맞이할 친구들에게도 이 책은 학교의 의미와 그곳에서 배우는 것들의 가치, 삶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에 한번쯤 생각의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중학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호기심이 더 한다. 우리네 중학교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몇가지 다르게 보이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는 심의회 같은 것이다. 여기서 학교를 개혁하는 길에 대한 학부모의 적극적인 제안과 체험학습에 드는 경비문제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 보수적인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마르고는 '돈도 안 드는 일'을 한 가지 제안한다. '학교'라는 이름부터 바꾸어 학교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 자체를 바꾸어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학교'를  '앎의 터전', '탐구모임', '삶의 현장' 같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학교를 '감옥'이라고 여기는 마르고의 입을 통해 던지는 작가의 생각이 신선하다.  

기대감과 현실의 결과 사이에는 예측불허의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마르고는 중학교입학통지서를 일흔 번이나 들여다보고 새로운 시작을 하지만 학교생활은 만만하지가 않다. 유난스럽다고 퉁을 주는 언니, 곧 익숙해질거라며 말로만 해결하려는 소극적인 엄마, 권위적인 선생님, 생각지 않았던 과중한 숙제, 인색한 수행평가, 별 의미도 인생도 없는 시 쓰기, 담배를 권하는 아이들, 개선에는 무관심한 아이들, 난데없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친구. 적극적으로 반의 일을 주도하고 아이들에게 적당한 자극도 주려고 노력한 마르고가 얻은 이름표는 '우리반 최고의 바보'라는 은근한 조롱이다. 이런 기분으로 간 로마로의 단체여행이 그리 산뜻할리도 없다.

여러가지 사건들로 좌절감과 소외감을 느끼지만 좌충우돌 1학년을 겪은 마르고는 알게 모르게 생각이 영글어 있다. 존경하는 뤼롱 선생님께 편지도 쓰고, 자유로운 하늘아래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행복을 누리는 자신의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꼼꼼히 기록해둔 각 과목의 노트들이 공중으로 날아가 낱장으로 흩어져버려도 오히려 기분이 가뿐해지는 걸 느낀다. 아더가 그랬던 것처럼 마르고도 세상을 향해 또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의 결과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여겨진다. 마르고는 이런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다. 불만이 있으면 개선이나 개혁을 계획하는 마르고는 체념하고 '룰루랄라하기'만을 하는 반아이들을 이끌어가려고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자신만의 색깔과 주장을 버리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기억될 1학년 나날의 마지막 장면마저도 마음 속에선 어느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다. 

생을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건 이성보다 감성의 발달에 있지 않나싶다. 마르고는 지리한 수업 중 '심술괴팍단어장'을 돌리다 발각되지만 관대한 뤼롱선생님의 반응에 살 맛을 느끼며 '천사단어장'을 쓴다. 부정적인 단어들이 쏟아지던 머릿속에서 긍정적이며 황홀한 단어들이 술술 풀려나온다. 마음먹기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반사되는 모양새에 웃음이 묻어난다. 또한 마르고의 밝고 순수한 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은 갖가지 '바람'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다. 따분하기만 한 국어시간에 상상 속의 알피유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바람'으로 인해 황홀해진다.

마르고가 '감옥'이라고 생각했던 '학교'는 1학년을 마감할 즈음, 좀 다르게 다가온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작가는 생각의 개혁을 종용하지 않는다. 그저 서서히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주며 생각의 전환을 유도할 뿐이다. 마르고가 지은 싯구를 보면, 학교라는 또 하나의 사회 혹은 인생을 우리는 너무 기대하거나 폄하시킬 필요가 없을 듯하다. 학교는 곰팡내만 나는 곳도 아니고 '피 튀기는' 전쟁터도 아니며, 그냥 학교일 뿐이다. 학교에서 인생의 비밀을 터득하기에는 우리가 앞으로 더듬어가야할 길이 멀고도 길다. 더구나 학교가 우리에게 말하는 법과 주장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기에는 세상엔 너무 알아야할 것이 많거나, 알아야할 것이 너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2학년이 될 마르고한테서 일 년 전의 들뜸과 벅찬 기대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좀더 담담한 태도로 다가올 시간을 맞을 것 같다. 작가는 섣불리 낙관적인 눈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싹을 못 틔우는 씨앗도 있을 거라고 미리 마음의 여유를 두는 식이다. 세월을 거슬러 가서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걸, 이런 생각만이 든다. 깔끔하고 재치있는 문장과 아이들의 구미에 맞는 발칙하고 발랄한 어휘로 작가의 개성을 한껏 살린 번역의 맛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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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이런 거야? 반올림 7
캐롤린 발두 지음, 김혜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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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이 이런거야?>는 '바람의 아이들'에서 청소년 책의 시리즈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라고 약간은 투덜거리며 방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헨리와 데이비드는 외모나 취향에서 조금은 다른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데이비드가 여때까지의 삶과 '안녕'을 고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버리는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쓴 짧은 시를 발견한다. 여기에 나열되어있는 단어들은 단절되고 파격적이기도 하여 데이비드의 혼란과 설렘의 양면적 심정을 보여준다.

헨리와 데이비드가 대학교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고민을 하는 대목은 오래전 나의 그 시절을 반추하게 했다. 나는 이들처럼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 같다. 성적에 맞추어, 평소 해보고 싶었던 과목에 눈을 두고, 그렇게 결정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첫단추부터 잘못'일 수 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커리큘럼과는 다른, 대학교의 학부과정을 비춰주는 과목 중 하나가 헨리가 들어야했던 과목, '창의적 움직임'이다. 나중에 보니 이것은 발레수업이었다. 이 외에도 군데군데 재치있는 문장으로 역설적인 웃음을 불러낸다. 팝과 클래식의 음악, 고전작품 등도 언급되며 폭넓은 견해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책날개에 소개되어있는 것처럼 대학입시와 대학의 실상에 관한 책이라고 보기엔 거리감이 있다. 차라리 이 책을 혼돈과 치기의 시절에 관한 일면적 체험 정도라고 보면 실망하지 않을 듯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책임 앞에서 얼마나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좋은 시간들을 그렇게 흘려보냈던가.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대학 1학년 시절이다. 그 시절은 심리학을 공부하고픈 데이비드가 느끼는 것처럼 인생에 공백으로 남아 존재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진정한 학문에 대한 열정 그러나 부적절한 방법, 진지한 사랑과 견실한 우정에 대한 갈망 그러나 진실에의 몽매함,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에 대한 무지함과 지적욕구 그러나 막연함. 이런 것들이 늘 대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푹 젖어들지 못하고 겉돌게 했던 것만 같다.

데이비드가 느끼는 이와 비슷한 감정들이 나른하게 서술되다가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헨리와의 확고한 관계가 세상의 모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이비드에게 어느 날 테드와 여자친구가 들어온다. 데이비드가 느끼고 있지만 꼭 집어 토로할 수도 없는 새로운 것들에의 충격은 급진진보주의자라 불릴만한 룸메이트의 죽음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는다. 세상도 사람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었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토록 친했고 거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헨리에게서마저 소원함을 느끼고 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야기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되는 데이비드. 그는 진짜 삶은 언제부터냐고 묻기를 중단해야할지 모른다. 진짜 삶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내리는 지하철 역에 나도 따라 내릴 수 없는, 나는 다음 역 혹은 몇 구역을 더 가서 내려야하는, 그런 상황이 우리 삶의 실체가 아닐까.

데이비드가 쓴 시, '안녕'은 '깨어짐, 부서짐, 무너짐, 파열, 파괴'로 끝난다. 이는 부활, 재탄생의 의미로 이어짐을 독자는 기대하지만, 작가는 종결부분에서 그런 기대를 깬다. 그저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영혼의 방황을 하는 데이비드를 홀로 남겨둔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삶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이 이런 거야?>는 '삶이 이런 거야?'로 대체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혼잡한 도시의 지하철 역 천정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별자리를 보는 사람이다.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천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라고 느끼기도 한다. 역시 내가 발 딛고 있는 지상이 천국이지싶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들뜨지 않는 어조로 희망을 주고 있다.

ps: 이 책의 역자는 <프루스트 클럽>의 저자이기도 하다. 툭툭 끊기는 듯한 문체를 의도적으로 써서 데이비드의 혼란과 단절감을 나타내려한 것인지 원래 그런 문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프루스트 클럽>에서도 비슷한 문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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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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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 중 '노인과 젊은이'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무척 인상적이었다.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의 표지에는 '노인과 젊은이' 중 젊은이의 옆모습이 그려져있다. 조각같이 깎인 콧날과 턱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아래로 큰 눈망울엔 무언가 야릇한 열망이 담겨있다. 이 젊은이는 살라이라는 실제인물로 추측된다고 한다.

작가 코닉스버그는 살라이에게 생명을 부여했다. 레오나르도는 거울글씨체로 하인 살라이에 대하여 '거짓말쟁이, 도둑, 고집불통, 먹보'라고 썼다고 한다. 여기서 작가는, 레오나르도가 당시 이탈리아의 귀부인들을 두고 상인 조콘다의 수수한 아내, 모나리자의 초상화를 그린 이유와 과정을 상상하고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구성했다.  

서두부터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며 극적이다. 1490년, 살라이가 레오나르도의 집으로 오게 될 때 열살이었다고 한다. 살라이는 레오나르도와 대립적인 성품을 지닌 것으로 그려진다. 살라이의 무책임과 무례함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세계에 보태져야한다고 작가는 베아트리체의 입을 빌어 말한다. 당시 레오나르도가 후원을 받고 있었던 스포르차 공작의 부인 베아트리체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미모를 지녔지만 예술을 보는 눈과 자신을 제대로 알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통찰력이 범상치 않은 인물로 나온다. 좌중의 분위기를 이끌줄 알고 대화의 묘미를 살릴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여, 살라이는 뒷날 모나리자에게서 이 여인의 풍모를 느끼게 된다. 살라이의 이런 강렬한 직관이 레오나르도로 하여금 모나리자를 그리도록 유도한 계기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바탕으로 하여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시공을 넘다들며 설레게 한다. 그 상상의 범위가 그렇고 생생하게 되살아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이 또한 그렇다. 게다가 해당 시대의 배경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인물들의 숨은 생각이나 가치관을 유추해볼 수도 있어 흥미롭다.

르네상스시대라고 하면 화려하고 풍부한 문화예술의 부흥시대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혼란기였다. 십자군전쟁의 패배로, 오래도록 유럽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중세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가난과 질병(흑사병)으로 허덕이며 사람들은 새로운 정신적 지주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영혼을 기댈 수 있는 하나의 가치관을 이들은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찾았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를 가장 르네상스적인 인물로 뽑는다면 그 이면에는 살라이적인 성향(솔직함, 순수한 장난기, 격렬함, 무책임, 제멋대로 주무름, 중요하지 않음, 진지하지 않음, 평범함) 이 있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서두에서도 나오듯 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대조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살라이는 르네상스가 꽃 피던 이탈리아의 어두운 골목을 대표한다면, 어쩌면 가장 르네상스적인 예술적 기제가 되었던 건 아닐까싶다.  

이 책은 사계절문고 1318시리즈로 초등6학년에게도 괜찮을 것 같다. 특히 레오나르도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더욱 흥미로워할 것 같다. 당시 역사적배경과 레오나르도에 대한 읽을 거리를 먼저 본 후라면 더욱 재미있겠다. 레오나르도는 과연 여기서처럼 진지하기만 한 인물이었을까? 그가 관심을 가졌던 방대한 분야의 천재성과 거울글씨, 미켈란젤로와의 관계 같은 것에서도 상상력을 불러일으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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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경제학자들의 바로 경제학 또 하나의 교과서 1
요술피리 지음, 노현정 그림, 홍기현 감수 / 올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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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머리, 따뜻한 가슴.

이 말은 근대경제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알프레드 마샬이 한 말로 경제학자에게 필요한 미덕이라 볼 수 있다.이 책의 저자는 세명이 모여 요술피리라는 이름으로 어린이책을 쓰는 사람들로 각각 경제, 정치,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이들의 인문사회부분의 어린이책이 앞으로도 기대된다. 이 책은 '거꾸로' 시리즈로 보이는데 철학도 출판되어있다.

호감이 가는 하드커버로 되어있고 책표지의 그림에서부터 삽화들까지 고급스럽다. 머리 아플 것 같은 경제학을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가는 방식으로 먼저 친밀한 입말을 쓰고있다. 그리고 인물이야기에 촛점을 두며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이론을 낳게되기까지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위인전형식으로 세계경제학의 맥을 이은 인물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면서 핵심경제이론과 그 원인과 영향을 풀어준다. 쉽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용례를 들거나 밝은톤으로 그려진 삽화를 그려 구체적인 사례를 단순화시켜 보여준다. 무거운 내용을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어 함께 읽은 중학 1학년 아이들도 마음에 들어했다.

애덤 스미스로 시작하여 통화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으로 끝을 맺는데, 이야기의 시작은 허생전으로 한다. 서양의 경제학자들이 중심이 되는 책에서 우리의 경제에 대한 생각을 펼쳤던 실학자 박지원을 허생을 통해 선보인 점도 돋보인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허생이 보여준 경제활동에서 경제학자가 갖추어야할 덕목과 경제학의 정의를 생각해보게 함이다. 경제학자란 세상을 넓게 보고 앞을 내다보고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고 요약된다.

11명의 경제학자들을 보면 모두 세상을 거꾸로 들여다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존의 제도와 가치관을 뒤집어보려는 노력이 더 나은 것을 향한 발걸음을 낳은 예는 비단 경제학에서만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무너질 것으로 예견되기도 했지만 오늘날 케인즈의 이론처럼 고치고 기름칠을 해가며 그 경제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 거론된 경제학자들 중 마르크스도 포함되어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의 범주에도 들어가 있으니 역시 모든 '學' 이란 연결고리로 맺어져있다. 결론적으로 이들 모두는 인간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논리적인 사고와 거시적인 눈을 동시에 가지며 대다수 인간의 삶을 따습게 품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초등 6학년이상(독서력이 높은경우)은 되어야 읽기에 좋을 것 같다. 초등3,4학년 용으로 분류되어있는 것을 보았는데 무리이지싶다.  요즘 경제동화를 비롯해 경제나 돈과 관련한 어린이/어른 책이 많이 나와있지만 역시 탄탄한 이론이 없는 지식이나 전략은 고기잡는 방법은 모르고 고기를 잡게되는 행운만을 기대하는 것이 될 수 있겠다. 경제용어들에 대한 풀이도 따로 칸을 만들어 핵심적으로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역사의 흐름과 함께 경제이론을 부각하면서 부분적인 것들도 세밀하게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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