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서양음악사 청소년을 위한 역사 교양 4
이동활 지음 / 두리미디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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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서양음악사>는 이 시리즈로 나온 서양철학사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게 된 책이다. 서양철학사에 비해 음악사는 좀더 구성력있는 편집을 하고 있다. 바로크 이전의 서양음악은 고대음악, 중세음악 그리고 르네상스로 서두에서 짧게 소개하는 형식으로 맺고,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필두로 고전주의, 초기낭만주의, 후기낭만주의, 국민주의 그리고 20세기 현대음악까지 사조별로 묶고, 다시 각 사조의 대표 음악가와 각각의 대표음악으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목차에서부터 아주 일목요연하다.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목차에서 제목과 음악가 그리고 각각의 부제들만 훑어보아도 거대한 강의 전체줄기가 대략 잡힌다. 클래식음악이라고 하면 듣기에 요원하고 들어도 귀에 익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통해 시대적 배경과 음악가의 삶, 그리고 그들의 음악적 특성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음악을 듣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권하고 싶다. 시대별 음악의 배경과 특성을 숙지하고 음악을 접하면 상당히 잘 들리고 마음에 와닿는 선율이 떨림을 줄 것이다.

저자는 매력적인 문체를 쓰고 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역사시리즈 책에, 청소년과 그 이상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겸손하고 친근한 입말을 쓴다. 음악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감성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조화롭게 울려퍼지는 관현악단 속에 얌전히 앉아서 드러나는 섬세한 현의 울림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을 것 같아 글을 읽으며 음악가와 그의 음악을 간접적으로 만나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도 정곡을 찔러주며 정리정돈을 명쾌하게 하며 펼쳐보이고 있다.

자료로는 음악가와 배경인물의 실제 사진이나 초상화, 미술작품, 편지와 유서 같은 것들을 비롯해 동상과 악기, 자필악보 같은 것도 제시한다. 각 사조의 끝부분에서는 음악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꼭지를 마련해두었고, 뒤이어 그 사조에 해당하는 연대를 세로축으로 하여 양쪽으로 '음악사'와 '문화사'에 있어서의 주요사건들을 병치해두어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각 장을 구분하는 속지는 푸르스름한 색깔의 종이로 끼워져있다. 그 종이에는 음악을 애호했던 사람들의 한마디가 적혀있는데 후기낭만주의를 시작하는 속지에는 니체의 말이 있다. '음악이 없으면 인생은 나에게 단지 오류, 권태, 추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슈트라우스는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니체의 사상에 의한 자신의 감정의 움직임을 환상곡의 형태로 융해'시켰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서양음악을 이루는 악기들을 사진과 함께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청소년시리즈로 나와있지만 역사, 특히 각분야별 역사라면 어렴풋하고 윤곽이 잡히지 않는 성인들을 위해서도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어렵지 않은 문체로 역사의 도도한 강줄기를 따라 떠내려가볼 수 있게 한다. 각 분야별 역사들을 읽고 그것들이 하나의 퍼즐판에 조합되는 순간 희열이 느껴질 것이다. 체험으로 선입견이란게 생길 수도 있지만 이성과 감성의 폭을 넓혀 다양한 세계로의 여행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화와 관련한 교양서적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지금 이 시리즈는 '한국사'를 빼고는 주로 서양의 역사들이 기획되어 나와있다. 동양음악, 동양미술, 동양철학 같은 것도 훌륭한 저자의 손을 거쳐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소장해두면 괜찮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ps : 생각보다 브람스는 뚱뚱하고 인상이 별로인데 리스트는 썩 미남형이다. 물론 연령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쇼팽과 상드의 안타까운 연애담도 살짝 나오고 슈만의 아내 클라라가 미망인이 된 후 브람스가 청혼을 하여 결혼하여 살았다는 사사로운 이야기도 재미나다. 로맹 롤랑이 쓴 전기문들에서 발췌한 글들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베토벤에 대한 언급이 마음에 남는다. - 영웅이란 오랜 세월의 초인적 분투와 노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용기와 위안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으로,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야말로 영웅 대열의 맨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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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2009-05-2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사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만나게 하고 싶어 찾던
책이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해요~
리뷰 읽고 나니 처음에 언급하신 서양철학사도 관심이 갑니다.
살펴봐야겠습니다. 배송되면 아이와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
나눠야겠습니다. ^^*

프레이야 2009-05-21 15:38   좋아요 0 | URL
마음행로님이죠.^^
이 책 시리즈 모두 권할만해요.
상철군이 독서력이 높아서 모두 권하고 싶어요
 
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아르날 바예스테르 그림,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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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묘사도 없고 군더더기 문장 하나 없는 이 책은 손에 쥐기도 좋은 크기를 하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종내 이야기의 내용을 짐작해보기 어려운 점에서 우선 호기심이 인다.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그 가볍고 명쾌함에 주인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주인공은 누구랄 것도 없는 우리네 현대인이다. 진정한 소통의 단절로 오는 소외감을 천형처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도시의 현대인들이다. 감성 또한 너무 연약하여 별다른 배려없이 내뱉는 상대의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입는다. 그것은 자신의 안에서 강박증을 일으키고 그 강박의 대상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다. 현대인의 강박 대상으로 여기서는 구두와 시계가 등장한다. 바쁘게 돌아가며 하루의 쳇바퀴를 굴리고 사는 우리는 정작 남의 시간에 대한 정중한 배려를 잊고 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면 시계는 자신 안의 악어가 먹어치우는 대상이다. 주인공이 강박증을 일으키는 물건은 구두이다. 구두는 그날의 의상을 마무리 짓는 부분이자 자존심이다. 그것이 사랑을 느끼는 여인 앞에서 까발려져서 구겨졌을 때 예민한 주인공은 상처를 입고 자신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이 책은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소외감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경쾌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는 간결한 구도로 그려진다. 인물들은 하나하나 개성있고 위트있게 그려진다.  너절해보이는 감상적인 문장도 없고 괜한 복잡함으로 꼬아놓은 사건 또한 없다. 주인공이 어느 날 침대 밑의 악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쫓아내기 위해 약을 복용하지만 결국 본질적인 치유책은 자신 안에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먼저 느긋하게 내면의 악어와 마주보기를 하고 기다려줄 때 외부로부터의 관심과 사랑 또한 '악어 극복하기'에 약효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의 늑대가 내내 생각났다. 그 늑대와 이 책의 악어는 맞닿아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자아를 옥죄고 '나'를 집어삼키려드는 내 안의 적과 지금 우리는 어떤 눈싸움을 벌여야할까.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보이고 고민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 안의 악어와 상대의 악어는 눈웃음을 보일 것이다. 주인공의 마음을 사로잡은 엘레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내가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잘 사귀어두어야 한다고. 내 안의 늑대 혹은 악어랑 나는 오늘도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는 나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뽀얀 먼지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결말에서 공기처럼 이상한 가벼움에 흡족해한다. 생은 그렇게 먼지처럼 가볍고 설탕가루처럼 달콤한 것이거늘... 예전에 고통스러웠던 것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볍게 날려보낼 수 있었던 것들이 아니었나. 침대 밑 악어를 생각해낸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글쓰기 그리고 묵직하되 가볍게 처리한 주제가 한데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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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11-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정갈한 글이군요. 중학생 이상이니 함 읽어야겠습니다.

프레이야 2005-11-10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반갑습니다. 기분이 밝아지네요.
 
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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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1학년 아이들과 만만치않은 만화책을 보았다.

원래 의미의 밥 飯자가 아닌 되돌릴 反을 써서 의미심장한 제목을 쓴 점이 눈길을 끈다.

한 숟가락씩 덜어주며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한 숟가락씩의 차별적 시선이 우리시대 상대적 약자들에게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폭력으로 작용하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는 만화들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기사화된 내용들이고 물의를 빚었던 내용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신문기사처럼 건조체가 아닌, 만화라는 형식으로 인해 장점과 단점이 모두 보이니,

감안해야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아이들은 실제로 이런 일들이 있었나요?, 라고 반문을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보도하는 기사문과는 달리 사건의 핵심만을 뽑아내 정곡을 찌르는

그림과 대사로 표현하는 만화이다 보니, 다소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띤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사실을 왜곡 또는 과장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위험이 보였다.

어떤 그림은 잔인해보일 정도로 그린 것도 있어 섬뜩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을 아이들이 볼 때는 관련기사들을 찾아 함께 읽어나가면 균형잡힌 시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그래서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차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일상에서 쓰는 언어 한 마디에서도 몸에 배어있는 차별의식을 깨닫고

흠칫 놀라게 되는 대목들도 있다.

요즘은 초등학생 일기검사나 두발규제 같은 일이 인권을 짓밟는 행위라 하여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권은 원래 있는 것이었으나 그것에 대한 인식은 새삼스러워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것과 연관하여 피판의식을 낳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십시일반에 담은 우리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애정은

차별없는 세상으로 가는 기본이 되어야할 일이다.

성적소수자(동성애 같은) 들에 대한 이야기, '커밍아웃 블루스' 는 아이들에게 아직은

거부감을 주는 듯했지만, 점차 다각적인 눈을 가지며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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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들꽃 한빛문고 14
윤흥길 지음, 허구 그림 / 다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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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윤흥길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들을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삽화들이 하나같이 기막히다. 이 책은 기억속의 들꽃, 땔감 그리고 집, 이라는 단편을 담고 있다. 땔감은 다시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나뉜다. 작가가 이 작품들을 쓴 연대는 1970년대이다. 작품내용의 배경이 되는 일들은 6.25전쟁과 전쟁 후의 참담한 생활이다.

아픈 기억을 더듬으며 참혹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작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문체로 그린다. 문장에서 가는 눈물이 소리없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내면의 감춰진 말들, 비록 내뱉지는 못하지만 은근한 눈빛과 목소리로 변조하여 표현할 수 있는 마음들이 전해져온다. 은가락지가 탐이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아저씨를 보며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을 아이, 명선. 그 아이가 강에 떨어져 죽던 날,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들꽃의 이름처럼 스러져간 한 생명에 대한 애잔한 연민을 느끼는 '나'.

미친듯 부딪히다가도 그놈의 목숨 앞에서는 약해지고야마는 인간.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자신의 자부심과 미래의 원대한 꿈을 묻어두고 그것을 지키려했는데 좌절하고야마는 '나'의 형. 교회 종탑에 올라 종을 울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매달려있는 그 형의 부서진 꿈은 현실의 굴레에서 꿈마저 접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젊음의 꿈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성이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을까, 나아가서 어디까지 비루해질 수 있을까. 생존이 달린 문제 앞에서 도덕과 양심이라는 가치만을 고수하기란 연약한 사람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화자를 '나'라는 순수하고 진지한 눈을 가진 아이로 내세우면서, 작가는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특히 '나'의 아버지는 도덕과 생존 사이에서 자기합리화를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이를 어찌 나쁘다고만 말 할 수 있을까. 살아갈수록 무어라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문장과 잘 어울려 빚어져있다. 작가가 군데군데 배치해둔 상징들의 의미를 깊은 눈으로 짚어보면 읽는 재미가 더할 것이다.

사람은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를 떠나서는 한 사람의 인간성이라는 것 자체를 규정할 수 있는 기준조차 애매해질지도 모른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인간성을 규정하는 기준은 사회의 시선 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개인의 생명과 가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성질을 띤다면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아버지'란 존재의 어깨는 너무 무거워 구부정하다. 그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가족들, 사회적 요구들 그리고  도덕적 잣대 같은 것들이 그의 무력함이나 비겁함을 손가락질 할 때 우리는 슬퍼진다. 소리 없이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바라보고 그 울음소리에 귀기울여 보면 좋겠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드나보다. 학생시절 아버지의 비사교성, 무력함 따위를 속으로 원망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고희도 훨씬 넘긴 아버지의 어깨를 보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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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0-1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 1학년이 읽을 책이 참 드문데..괜찮던가요? 저도 함 볼래요

프레이야 2005-10-16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할 중요한 상징 같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그래도 도와주니까 괜찮아했어요.. ^^

로드무비 2005-10-1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흥길 선생의 책 중 이런 것이 있었군요.
한 번 읽어볼랍니다.^^
(그리고 부모의 무력함이 이제 나의 것이 되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
 
뤽스 극장의 연인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
자닌 테송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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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1학년 아이들과 읽었다. 아직 남녀간의 사랑에는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라 크게 와 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중 몇몇은 진한 감동을 느꼈는지 나의 코멘트에 고개를 끄덕이며 촉촉한 눈빛을 보였다. 한 남학생은 식스센스 못지않은 반전이 놀라웠다며 퍽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한 여학생은 읽어내려가기가 하도 답답하여 뒷장을 보고 비로소 대사가 이해 되더라고 말했다. 이들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읽어내려갔다고 했다.

<뤽스극장의 연인>은 열아홉, 스물셋의 풋풋한 남녀의 대사와 속마음이 느리지않게 전개된다. 교차되며 흘러나오는 이들의 심리는 빛과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사랑의 감정으로 온 마음이 뒤흔들리며 애틋한 감정을 맛보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진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뤽스는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에게 빛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일 뿐이다. 빛이 차단된 극장 안은 이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설정이다. 암담한 마음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는 순간은 예전에 보았던 영화들을 보는 시간 속에서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찬란한 사랑의 빛을 발견한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오페라하우스가 그러하듯, 이곳 극장이라는 장소는 이들에게 하나의 세계다. 환희와 고통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빛을 찾는 이들의 진정어린 마음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뤽스극장은 '한물간 영화관' 이다. 마치 지금의 가볍고 자극적인 입맛를 따라가는 세상을 상정하는 것 같다. 이 극장에서는 저급하다고들 하는 상업영화를 주로 상영하지만 오로지 수요일 하루 두 차례만은 '진정한 영화'를 상영한다.  두 남녀는 바로 이 진정한 영화를 보기 위해 이곳에 수요일마다 온다.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요즈음 '진정한 영화'는 이들의 '진정한 사랑' 을 빗대어 말하는 듯하다. 수요일, 일주일의 가운데 하나의 경계를 지나는 시점. 이 시점에서 이들은 조심스레 사랑을 느끼고 키워나가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서로의 진실을 알게되었을 때의 그 놀람과 안도감과 반가움이란..  이들의 사랑을 보면 사랑은 그저 받거나 주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며 교감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한다.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자에게만 사랑은 오는 것일 거다.   

이 책 속에는 고전영화들이 많이 나온다. <연인들>이라는 영화에서는 내래이션이 맘에 든다고 말하는 여자주인공이 안스럽다. 내래에션에 집중하여 빠져드는 이들은 명대사들에서 자기의 생각을 밝히며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상대를 서서히 알아가며 서로 빠져드는 과정에 독자도 흡입된다. 재즈피아니스트가 직업인 남자주인공 때문에 엘라 핏제랄드와 레이 찰스도 언급된다. 레이 찰스도 후천적 시각장애인이지 않나.

이 이야기는 책장을 덮은 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어내려가면 감동과 재미가 더 하다. 군데군데 깔려있었던 반전의 비밀이 모습을 확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의 장면으로 연출하면 참 멋질 것 같은 곳이 많다. 선물을 하겠다는 남자주인공의 말에 여자주인공은 속으로 생각한다. 여기 내 곁에 있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고.. 라벤더색 실크스카프를 두르고 행복해하는 여자의 얼굴을 남자는 볼 수 없다. 단지 그 하늘하늘한 스카프의 한 자락이 그의 얼굴을 간지럽힐 뿐이다.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도록 슬프다. 눈물이 뺨에 번지는 장면을 그릴 수 있다. 이들은 서로의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상처를 더듬는다.

어쩌면 보이지 않아서 더 절실하고 더 깊을 수 있지 않을까. 다 알지 못함이 오히려 이들을 서로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는 사랑은 그래서 강건해지나보다. 사랑은 단 한 번의 눈길로도 생겨날 수 있다, 는 영화의 대사에 대한 마티외의 생각이 신선하다. "사랑이 생겨나는 데는 눈길조차도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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