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내 인생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외모가 권력인 요즘 '뚱보'를 내세운 동화류는 이제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뚱보, 내 인생>은 그런 선입견에서 조금 벗아난다.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학생이 보기에 좋을 청소년소설로서 성장소설적인 내용이다. 책은 벵자멩이라는 뚱보가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제목과 표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프랑스의 작가 미카엘 올리비에는 열여섯의 뚱보 남학생에게 꽃 한 다발을 손에 들려놓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꽃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있다. 책은 이 학생이 자신의 몸과 관련하여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주도하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아주 맛있는 요리의 전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듯 벵자멩의 학교생활과 하루일과, 생각, 꿈과 소망,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조미료를 많이 넣지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93킬로그램의 벵자멩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사가 되는 꿈을 갖고 있고 클래식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다. 중간에 있는 것이 편하다는 것도 터득한, 어찌보면 평범함 이상의 보석을 자기도 모르게 갖고 있다. 먹는 것을 통해 즐거움과 위안을 받던 벵자멩은 클레르라는 여자친구에게 연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뚱뚱한 몸을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먹는 일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것으로 전락한다.

드디어 난생 처음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거듭하는 실패는 자기파괴욕구와 상실감만 더한다. 게다가 클레르에게 고백한 사랑의 감정이 이해받지 못하자 벵자멩은 거의 실성할 지경에 이르러 성격장애 증세까지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과 좌절이 벵자멩의 미래에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되는지는 벵자멩의 태도에 달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척 귀중한 것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과거, 단란했던 가족의 사랑, 특히 엄마의 포근한 애정을 되살려 깨닫고 그것에서 안정감과 충분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점이다. 섬광처럼, 자신안에 이러한 감정이 빛날 때 벵자멩은 상실감에서 회복된다.

다른 여자를 찾아 엄마와 헤어진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까지도 멋지게 소화해서 승화시킬 수 있게 된 벵자멩은 "가볍고 재미있게 구는 법"과 "사랑에 빠져 넋이 나간 얼굴을 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역설적으로 살아야 더 잘 살아지는게 인생일까. 벵자멩이 '우정'으로 양보한 감정이 의외로 '사랑'으로 돌아올 때 그는 비로소 스스로 접시를 밀어내게 된다. 감정도 이성도, 몸도 마음도 이제 벵자멩의 그것들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된 듯하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듯 삶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현재의 절망도 모두 추억으로 자리할 것이고 그 모든 경험과 감각들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형성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현재의 고통에 울고 있을 필요도 없고 과거에 매달려 있을 필요도 없다는 말이 된다.

<뚱보, 내 인생>은 먹어대는 행위에 현미경과 청진기를 동시에 대고 있다. 벵자멩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에서 어릴 적 몸무게를 불려갔다. 숫자가 커지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꼈을 테다. 벵자멩이 먹는 음식이 열거되고 남은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간식을 비롯해 그가 먹는 갖가지 음식이 열거된다. 또한 그 음식을 먹을 때의 감정과 심리가 잘 묘사된다. 좋아하는 것을 먹지 않을 수 있으려면 마음이 편안해야하고 걱정이 없어야한다는 글귀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벵자멩은 헤어진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인정 받지 못한 어설픈 사랑고백으로 인한 자기혐오감과 실패를 거듭하는 다이어트 도전에 대한 두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단순히 먹는 행위 이면의 심리를 자세히 포착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있다. 특히 소피아줌마와의 대화에서 인생을 멋지게 사는 역설적인 방법을 얻고 심리학자에게서는 미궁 속에서 빛을 볼 실마리를 잡는다.

벵자멩이 한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요소들이 복잡한 구조로 얽혀서 작용을 한다. 순간의 감각들, 스치는 경험들, 그것에서 얻는 인식들이 여러부류의 사람들(어른들을 포함하여)과 나누는 소통과 화학작용이라도 하는 것 같다. 요리도 이렇게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듯이 뚱보, 벵자멩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요리할 것이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사가 되는 꿈을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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