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오월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5월!, 하면 떠오르는 걸 말해보라고 하면 가정의 달, 스승의 날, 붉은 장미 같은 기쁘고 화사한 연상을 하기가 쉽다. 우리가 연상하는 것은 체험과 연관이 있거나 개인의 인상적인 느낌이 실리는 계기와 관련되기 마련이다. 5.18 민주화운동이 다른 나라의 일도 아니고 크지 않은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인데 우리는 오월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그것을 재바르게 떠올리지 못한다. 작가가 '누나의 오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두를 보면, 작가는 이 점을 안타깝게 여겨 이같은 청소년 소설을 썼다고 생각된다.

청소년 소설은 어떤 스토리라인과 사건을 다루더라도 저변에 '성장'이라는 주제를 안고 있다. 청소년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중도이자 경계에 있는 길이다. 어쩌면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길인지도 모른다. 그 길에는 아픔과 슬픔이 있고 깨달음이 있으며 그와 동시에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누나의 오월>에 나오는 기열이와 누나의 이야기는 그런 비밀스런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역사의 노도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바꾸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나의 오월>은 실재인물 박효선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 작가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역사의 진실을 꾸밈없이 잔잔하면서도 강단있는 문체로 드러냈다. 단문장으로 수월하게 읽히는 장점도 있다. 작가는 교실 폭력, 5.18 민주묘역, 슬픔, 어른... 이런 것들을 키워드로 하여 점점 광주에서 있었던 그날의 진실로 접근한다.

부반장이 5월은 슬픔의 달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중3인 '나'는 '어른'이란 단어에서 문득 '슬픔'을 느낀다. 내심 부끄러웠던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보게되고부터다. 일곱살 터울이었던 누나의 죽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민주묘역으로 체험학습을 간 날, 무덤 앞에 놓인 어느 누나의 사진을 보며 자신의 누나를 떠올리게 된다. 진실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었던, 진실에 대하여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성장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누나의 꿈이 '나'의 '책가방'에 모조리 실렸던 그날부터 누나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세상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넓은 눈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눈을 뜲과 맞닿아 있다. 누나의 희생은 비단 가족적인 범주에 그치지 않고 이웃으로 나아가, 넓고 크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피를 나누어주는 값진 희생이다.

진실을 외면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는 누나의 슬프고도 어처구니 없어보이는 죽음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기억의 수면위로 떠올린다. '나'는 이제 진실을 캐내려하는 사람이 된다. 누나가 바라는 것은 망월동으로 묘가 옮겨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의 희생자가 진정 바라는 것이다. 억울하게 오도되고 죽음의 의미조차 무색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과 그 죽음의 가치와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땅에 함께 있음이 그 이유다. '나'가 한때는짧은 소견에 매도하기도 했던 누나가 그저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밝혀 그 넋을 보살피고 값진 목숨의 의미가 갱생될 때 우리땅에 화해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독자도 그것을 믿는다.

<누나의 오월>은 슬프고, 아름답고, 숭고하고, 강렬하다. 그리고 나 또한 어른이라는 이름을 갖고있기에 부끄러워지는 성장소설이다. 이 책의 다른 한 가지 장점은 재생지를 사용하여 가벼운 무게감, 손에 착 붙는 느낌의 크기와 따뜻함, 게다가 겉표지의 은은함이다.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이 연상되는, 작은 큐빅을 점점이 박아둔 겉표지가 눈을 밝게 한다. 숭고한 희생자인 '누나'에게 바치는 보석같은 헌사일까, 성장의 과정에 있는  '나'에게 바치는 격려의 박수일까. 아니면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간직해야할, 진실을 보는 빛나는 눈망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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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3-1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윤정모님인가요??
갑자기 긴가민가해요..

프레이야 2006-03-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의 꿈, 고삐,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등의 장편소설이 있어요...

반딧불,, 2006-03-1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삐가 생각이 안났어요.
그 분이라면 잘쓰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