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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놀자!
이경재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5년 12월
평점 :
판소리라고 하니 아이들은 별로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왜 관심이 없을까. 우리 전통의 것에 대한 낯섦 때문인 것 같다. 잘 알지 못하면 낯설고, 낯설면 어렵고 그래서 다가가기에도 부담스러운 것 같다. 판소리는 우리의 소리인데 아이들은 역시 다른 소리에 더 익숙해져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 소리를 좀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한다는 뻔한 소리를 또 하게 되는 책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건, 이 책이 판소리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간접경험을 할 시간을 선물한다는 점이다. 남원의 한 산자락에 있는 연수원에서 여름 한 달 간 판소리를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이 모였다. 이곳의 선생님은 동편 판소리 '흥보가'의 전수자인 전인삼 선생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연실이라는 초등학생의 일기가 뼈대를 이루며 전개된다. 연실이는 가명의 인물이지만 그외 이곳에서의 소리 연수 과정이나 명창들의 이름을 비롯한 판소리에 대한 모든 내용은 모두 실재의 이야기다. 글을 쓴 이경재선생도 이 배움에 참여하며 흐뭇하고 벅찬 시간을 글로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화 형식을 빌어, 판소리라는 조금은 거리가 먼 것 같은 이야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대화체로 그대로 옮겨놓아 읽기에 참 맛깔나다. 권삼득, 송흥록, 김성옥 같은 명창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걸쭉한 입담으로 술술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보면 판소리에 대한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판소리의 종류(서편제, 동편제, 중고제)와 소리의 종류를 비롯해 전해내려오는 판소리 다섯마당의 내용과 가치와 판소리를 지켜야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소리꾼들이 어떻게 핍박을 받았는지, 서민들의 고통과 기쁨과 슬픔을 대변하는 판소리에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담겨있는지 쉽게 설명해준다. 이야기형식을 빌다보니 판소리에 대한 내용이나 명창의 계보 같은 게 복잡하게 보이고 왔다갔다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딱 소리꾼', 송만갑 명창의 꿈 이야기는 진정한 소리꾼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말해준다. 이 외에도 명창들의 '소리사랑' 방법과 굳은 의지를 보며 외길을 가는 명창들의 삶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한다. 득음의 경지란 듣는 상대에게 맞는 다양한 소리뿐만 아니라 진정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명창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소리는 우리 미래란 말이여." 라는 한마디에 우리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전해진다.
중학 1학년 아이들과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도 아이들이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 잘 안 읽고 와서 속상했다. 역시나 우리 것은 따분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고전 수업을 할 때와 비슷한 반응을 느꼈다. 여기서 fusion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것은 우리 것 그대로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의 가치와 양식을 접목하여 좀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친해지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선생님이 들려주는 판소리 풀이>를 실어놓았다. 이야기 안에서 언급된 판소리 구절들을 원래의 가사와 풀이말로 함께 보여준다. 판소리나 단가에는 옛말이 많이 나오니까 얼른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요즘의 말로 풀이해 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자주 만나고 말을 걸고 친해지도록 노력하는 게 필요하겠다.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하지만 시험공부 해야한다면서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갑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