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신궁에서 2008. 1. 28>
복분자주를 와인잔에 부어 두잔 째입니다.
아이에게 잔뜩 화풀이를 해버렸어요. 이번 토요일에 한자3급 급수시험을 앞두고 있는 큰딸이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차마 옆에서 보기가 힘들 지경이었어요. 어차피 수험표까지 나온 상태니까 부담 없이 쳐보라고 해도 아이가 워낙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다 못 외우겠다고 그렇게 짜증을 내는 겁니다. 저는 엄마자질도 정말 부족한가 봅니다.
그래왔듯이 좀 더 다독이고 화를 참았어야하는데 그만 폭발해버리고 말았어요. 수험표를 아이가 보는 데서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질러버렸어요.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도 해버렸네요. 내가 그 나이 때엔 공부에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았는데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해야할까요. 아빠 엄마가 그만큼 알아듣게 이야기했다 싶은데도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요즘 아이에게 웃음이 사라져가고 있어 내심 불안초조 합니다. 며칠 전 서랍을 뒤지다 4학년 때 큰딸의 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어찌나 밝게 웃고 있던지요. 요샌 그런 웃음을 본지가 오래 된 것 같아요. 무한도전 볼 때 빼구요. 늘 지쳐있고 피곤하다고 하고 매사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전 그런 게 너무 겁이 나요. 1월말에 일본여행 가서도 내내 그런 표정이더니 저 위의 사진에선 거의 유일하게 웃고 있네요. 아빠가 같이 못가서 출발부터 서운해 하더니..
저 사진은 작은딸이 디카로 찍은 겁니다. 사진을 안 찍으려고 하는 걸 제가 억지로 당겨서 애교까지 부려가며 함께 찍은 거에요. 저보다 키도 크고 생각도 반듯한 아이가 웃음을 잃어가는 게 정말 겁이 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자,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아가면서까지, 뭘/왜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할 필요 없다고 소리 질렀지만, 그건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내일부터 학원도 가기 싫다는 표정이면 그냥 가지 말라고, 아니, 가든 안 가든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그런 말이 더 무서울까요. 아무튼 아이의 웃음을 찾을 방도를 좀 찾아봐야겠어요.
숭례문도 무너지고 허탈한데 저는 복분자주나 한 잔 더 할랍니다. 이궁 엄마 맘도 모르는 철없는 것아.. 얘가요, 네살 땐가 다섯살 땐가, 저더러 '예쁘다면 사랑해주세요.'라고 글로 써서 준 애입니다. 얘야, 미안하다. 지금 얼굴 무지하게 붉어졌는데 부끄러워서 아니라고 우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