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님 페이퍼로, 영화 “마틴 에덴”을 먼저 보고 홀딱 반해 녹색광선 책을 영접했다. 녹색광선이라면 몇 권 있는데 이번에 두 권이 색 조합이 좋다. 1권 암녹색도 좋지만 가을이라 그런지 2권 버건디색 양장이 더 마음에 든다. 영화 속 한 장면을 각각 표지에 넣었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원작소설과 달리 지구 반대편 항구도시로 이동했다. 나폴리와 제노바를 배경으로 하는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이 영화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인물들에 바짝 다가가 얼굴을 담아낸 장면이다. 그렇게 인물의 내면에 다가간 카메라 시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특히 노동자들의 얼굴, 노인들의 얼굴에 새겨진 고단함과 세월의 훈장, 연륜의 미소가 그렇다. 어느 할머니의 밝고 넉넉한 웃음을 아주 가까이서 찍은 얼굴이 살아낸 흔적을 고이 담은 여느 초상사진처럼 기억에 오래 남는다.

노동자 출신으로 세상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생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일찌기 알게 된 잭 런던의 자전적 소설, 영화와 달리 어떻게 또 읽힐지 설렌다. 자신이 숭배하여 걸어들어가고자 한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모순된 자신과의 괴리감과 사랑의 상실감에 스스로 그 세계를 버리고 바다로 걸어들어간 마틴. 눈시울처럼 붉게 타는 지평선 아래로 해는 지고 파도는 무심하고 세상엔 전쟁이 일어났다는 고함만 공허하게 들릴 뿐.

강렬한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보면, 노동자로서의 마틴이 훨씬 생기있고 순수하고 강인했다. 무릎 나온 바지에 낡은 점퍼를 입고 열망 가득한 눈빛으로 책을 들고 허름한 골목을 내려오는 장면이라든가 작가가 되고자 쉼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의 지적 세계를 구축하며 구호를 부르짖는 노동자들과 함께 항구 장면에서 흘러나온, 발랄한 생의 틈새를 비추는 경쾌한 샹송이라든가 그 모든 인물과 풍경을 담는 화면의 물빠진 색감, 오래된 클래식 렌즈를 통해 멀가까이서 바라보는 듯한 색이 좋다.

“이 방에서 나만이 개인주의자입니다.” - 마틴


_ 책머리에

나는 먼지보다는 재가 되리라

내 삶의 불꽃이 마르고 부패되어
숨막혀 죽기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불길 속에서 타오르리라

졸린 듯 영원한 행성보다는
차라리 떨어지는 최고의 별똥별이 되어
내 모든 원자 하나하나가 장엄한 빛을 발하리라

존재가 아니라 사는 것이 곧 인간의 본분일지니
나는 생의 연장을 위해 주어진 날들을 허비하지 않으리
내게 허락된 시간들을 모두 쓰리라

잭 런던, <먼지가 되기보다는 재가 되리라>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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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06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속 프레이야님😍
이책 두권으로 쪼개도
잘 만들어서 ㅎ 용서
마틴 에덴 영화 정말 좋죠🤗

프레이야 2022-09-06 17:48   좋아요 2 | URL
글자가 작아서 눈이 ㅎㅎ 그러고도 두 권 나누었는데 쪽수가 저 정도면 합했으면 너무 두꺼웠으려나요. 암튼 우리의 지존 지름신 스캇님 페이퍼 고마웠어욤. 좋은 영화 즐감했어요. 마틴 배우 오른쪽 입 옆 사마귀가 거슬렸어용. 하체도 살짝 짧은듯ㅋ 루스는 뭐 그러고 찾아와선 에구. 관객이 별별트집을 ㅎㅎ

바람돌이 2022-09-06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색광선 책들 너무 예뻐요. 그립감도 좋고요. 여기 이 시리즈들 진짜 다 사모으로 싶은 소장욕을 불러일으킵니다.
잭런던은 저는 강철군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데 솔직히 강철군화는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별로였거든요. 워낙 옛날에 읽은 감상이긴 하지만......그래서 이 책도 읽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프레이야님 글로 읽어야 되는 책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

프레이야 2022-09-06 17:42   좋아요 1 | URL
녹색광선 진짜 고급스러운 양장^^
강철군화 전 못 읽어봤어요. 읽어봐야겠어요 “더 로드”도 마음가고요. 뭐 이리 읽고 볼 게 많은지 즐거운 비명을! ㅎㅎ
올해는 이상하게 추석 실감이 안 나네요
다가오는데 분명.

햇살과함께 2022-09-06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생광선 책은 정말 작품집 같아요~~ 이쁘네요~~

프레이야 2022-09-06 17:47   좋아요 2 | URL
호호~ 이쁘네요 이뻐요^^

거리의화가 2022-09-06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표지 색감도 일부러 저렇게 보색 대비 같은(!) 느낌으로 한걸까요? 2권이 서로 아주 다른 색감인데 함께 있으니 잘 어울리는 효과를 주네요^^ 프레이야님의 설렘이 저에게도 전해집니다!*^^*

프레이야 2022-09-06 17:47   좋아요 1 | URL
색상이 둘다 이뻐요. 같이 두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화가님^^ 가을이라 그런지 버건디가 확 끌리네요.

페크pek0501 2022-09-06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맨위에 레이스가 있는 테이블 사진은 사진발 죽입니다. 탐스러운 과일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

프레이야 2022-09-06 17:57   좋아요 1 | URL
꽃에서 과일을 연상한 페크님의 심상이 더 탐스러워욤. 얼마전 작은딸이 보내준 꽃바구니에서 시든 송이들 버리고 살아남은 꽃들만 짧게 꽂았어요^^

blanca 2022-09-06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시 읽으니 정말 읽고 싶어지네요. 프레이야님 리뷰 읽고 읽겠습니다.

프레이야 2022-09-06 20:33   좋아요 1 | URL
블랑카 님 ~ 숙제를 주시네요:)
언제 쓸지… 일단 즐독해 보겠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2-09-06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프레이야님의 고급스런 레이스 탁자위에 놓여 있어서 더 고급스러운 거 아닌가요???
분위기가 다 잘 어울립니다.
갖고 싶네요ㅋㅋㅋ

프레이야 2022-09-06 23:33   좋아요 2 | URL
책탐심 요거이 어째 제어가 안 되지요^^ 가을가을한 색상이에요.

희선 2022-09-07 0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지가 되기보다는 재가 되리라, 하다니... 멋지게 보이기는 한데, 저는 그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속으로 ‘난 먼지가 되어야지’ 했습니다 먼지는 먼지대로 괜찮기도 할 텐데... 책이 놓인 탁자에 꽃뿐 아니라 사진도 있군요 흐릿하지만 맨 오른쪽에서 웃는 분이 프레이야 님이겠지요


희선

프레이야 2022-09-07 02:56   좋아요 2 | URL
넵 저예요. ^^ 이월에 모처럼 가족사진을 찍었더랬어요. 처음엔 저런 촬영 어색했지만 남겨두고 수시로 보니 좋으네요. 활활 태우고 재가 되느니 은은하게 남아 떠도는 먼지도 괜찮을 듯합니다. 김광석 노래가 생각나요. 먼지가 되어…

새파랑 2022-09-07 0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녹생광선 책인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막 구매했습니다 ㅋ 영화도 엄청 좋나보네요. 추석때는 이 책을 읽어야 할거 같습니다~!!

프레이야 2022-09-07 10:50   좋아요 3 | URL
새파랑 님
추석맞이 셀프선물로 딱 좋겠습니다
영화도 책도 모두요 ^^

테레사 2022-09-07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세상에..먼지가 되기 보다는 재가 되리라..ㅜㅜ 세상에 세상에....

프레이야 2022-09-07 17:53   좋아요 2 | URL
테라사님 반갑습니다.^^
잭 런던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문장이지요.

mini74 2022-09-07 2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님에 이어 프레이야님까지 ㅎㅎ 추석셀프선물! ㅎㅎ 넘 맘에 듭니다*^**

프레이야 2022-09-07 23:32   좋아요 1 | URL
저도 추석셀프선물로요 ㅎㅎ
보기 좋은 떡 아니 책 먹고 힘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