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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 ㅣ 높새바람 15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4월
평점 :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오는 책은 일단 생경한 시선이 눈길을 끈다. 신인작가를 발굴해내는 눈에도 신뢰가 가며 어린이/청소년책의 소재에 있어서도 다양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최근에 나온 이 책은 높새바람 시리즈로 초등고학년 정도의 어린이에게 권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도 5,6학년 정도의 아이를 설정하여 그들이 공감할 수 있음직한 일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세밀화처럼 그들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그럼에도 이 책은 책장의 두께도 얇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아 초등중학년 정도의 아이가 읽어도 무난하지 싶다.
<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는 두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하나는 건우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소영이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진술이 필요한 건, 그들이 사건의 중심에 나란히 있기 때문이며 그들의 타고난 배경과 생활 환경 등이 대조적이기도 한 까닭이다. 같은 상황을 볼 때 어떤 상황?, 어떤 입장?, 그리고 다른 생활 환경 같은 것들이 영향을 준다고 믿는 대개의 독자는 이들의 엇갈린 마음의 진술을 읽으며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우리의 선입견을 깨어야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을 둘러싼 조건이나 환경 따위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주변적인 조건일 따름이라는 놀라운 충고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분쇄해야할 얄팍한 편견의 종잇조각이었다.
이야기는 7월 13일자 건우의 비밀일기에서 시작하여 7월 16일자 소영이의 비밀일기로 맺는다. 3일 동안 6학년 어느 반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한참 예민하고 상처받기도 쉬운 또래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파문이 일고 어떤 여운이 남았을까? 작가는 있음직한 사소한 일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선생님과 반아이들 모두의 마음에 현미경을 갖다댄다. 건우와 소영이의 심리를 가장 솔직히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일기를 삽입하고 ‘마음의 날씨’를 표기하여 심정을 대변한다. 예를 들어 건우의 첫 일기는 ‘마음의 날씨: 느닷없이 번개, 천둥, 우르르 쾅쾅!’ 으로 건우가 느닷없이 당한 일에 대한 전조에 해당된다. 소영이의 마지막 일기는 ‘마음의 날씨: 반짝반짝’으로 문제가 좋은 쪽으로 해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모 없이 고모와 살고 있는 소영이가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로 쓴 마지막 일기를 보면, 아이는 참 스스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어른들이 해 줄 것은 다정하게 ‘이름불러주기’ 정도인 것이다. 그이상의 것들은 어른들의 오만한 편견이거나 지나친 조바심이 불러오는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 불러주기! 작가는 이 책에서 김춘수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을 하며 관계 맺기에 있어서 이름 불러주기의 소중한 경험을 전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관심, 보살핌, 애정을 담는 일이고 세상 모든 대상과 살가운 관계를 맺기 위한 일이다. 그걸 알게 해 주고 싶었던 김진숙 선생님은 어린 시절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안타까워하며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름부르기 게임은 또 다른 차별을 낳았고 선생님의 게임에 스스로 정했던 규칙은 또 다른 피해자 혹은 소외자를 낳고 말았다. 문제는 ‘마음의 규칙’이란 게 언제나 옳을 수만 없다는 점이다. 그 규칙이라는 선 밖에 있는 대상과 선 안에 있는 대상이 갈림으로써 또 하나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발생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명쾌한 지적이다. 이런 점에 예리한 눈을 맞춘 작가는 마치 어느 집의 근사한 대문만 보는 게 아니라 뒷문이나 쪽문을, 그리고 그곳에 얼키설키 맺혀있는 거미줄과 거미줄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날파리 한 마리까지도 세밀히 살펴보는 눈을 가졌다.
이 책에는 두 가지 게임이 나온다. 처음에 나오는, 미진이와 소영이가 벌인 '쪽팔려 게임'과 나중에 선생님이 반 전체 아이들과 함께 한 '얼음땡 플러스 말걸기 놀이'가 그것이다.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미진/소영의 게임에는 벌칙으로 저희들 마음대로 뺨때리기를 하여 건우가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입는다. 반면 선생님이 제시한 게임은 결미에서 좀 자세히 연출되는데 그 규칙이 까다롭다. 한 사람씩 그 규칙대로 게임을 하다보면 한 학기가 지나도록 이름도 제대로 모르거나 이름을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을 어기면 게임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규칙이란 게 누가 만든 것인지, 그리고 그 규칙이 언제나 옳기만 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위에도 유난히 규칙을 따르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고 규칙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작가는 게임 두 가지를 보여주면서 우리들 마음에도 이처럼 규칙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림자 짙게 깔린 그 이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잊어선 안 될 결론은 아이들은 누구든, 아니 사람은 누구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가진 게 많든 적든, 능력이 크든 작든, 성격이 좋든 그렇지 못하든 똑같이, 잘 났든 못 났든 누구나! '나'와 '너'는 다른 어떤 수식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이해불가능한 개별적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섣부른 동정이나 이해하려는 몸짓보다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규칙없음'이 마음의 규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