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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ㅣ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평점 :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무서웠다. 여기 그려진 악어 들 중 적어도 한 마리는 나였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면서 ‘나는 안 그런데’라고 생각했었다. 그야말로 병신같은 독해였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를 읽으면서 ‘나는 안 그런데’의 독해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랬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만일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안 그런데’, 혹은 ‘모든 남성이 다 악어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남성 독자가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병신같은 독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분명 작가가 말하지 않았나?
왜 모든 남성을 악어로 그렸는가
물론 모든 남성이 성범죄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악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주의, 성적 고정관념, 남성의 성적 욕망,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거리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느끼는 두려움과 같은 것들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남성을 악어로 그렸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문제를 보여주는 것이지, 남성 개인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제안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여성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따라가 보세요. 악어의 처지가 아니고요.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안 그런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여성의 입장에서 읽지 않았다는 증거다. 페미니즘은 가해자 남성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별당하는 피해자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나는 여혐의 대안이 남혐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메갈리안을 일베와 똑같이 취급하는 견해들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폭력의 가해자와 폭력의 피해자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단 말인지? 메갈리아는 여혐에 저항한 최초의 조직적인 연대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여성들은 책에 소개된 성폭력에 대응하는 전략들이 도움이 될 것이고, 남성들은 자신이 혹시 악어가 아니었는지 반추해 보는 계기로 삼기에 좋겠다.
언제부터일까? 밤길에 여자 뒤에 걷게 되면 반대편 길로 이동해 걷는다. 남성에게 여성은 엄마, 여동생, 누나와 같은 가족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이다. ‘나는 안 그런데’라고 변명하는 대신 나도 그랬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이라도 실천한다면 여성들이 ‘남협’에 기댈 필요가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남성들이여, 악어가 되지 말고, 우리, 인간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