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라는 제목 때문에 읽었다. 듣보잡 작가였던 기타무라 가오루. 본격미스터리 대상과 나오키 상을 받았다는데 금시초문의 작가다. 미스터리를 주로 쓰는 작가인 듯한데, 이번 소설은 왜 이리 웃긴 건지.
출판사 여성 편집자인 미야코 코사카이가 주인공이다. 코사카이를 한국이름으로 바꾼다면 소주정(小酒井)이다. 코사카이라는 이름은 호수에 가득 찬 소주를 바가지로 퍼마시는 여인네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미야코와 출판사 직원, 그녀의 지인이 술을 퍼 마신다. 이게 소설의 주된 이야기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니, 신기한 노릇일세.
미야코같은 술 친구가 있다면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 횡단보도 무늬를 파도로 착각하고 다이빙 하는 미야코.
“완전히 다이빙 폼을 잡고 파란 불이 켜지자마자 ‘코사카이 갑니닷’ 하더니 그냥 뛰어들었어요. 두 팔을 앞뒤로 휘저어 헤엄치려 한 모양인데, 바닥이 아스팔트이니 나갈 수가 있나.....내가 수영은 이제 그만하라고 하니까 다음엔 싱크로나이즈를 선보이겠다지 뭡니까. ”
미야코가 마시는 술과 안주가 궁금하다. 출판사 선배인 오타 미키와 세토구치 마리에와의 술 자리에서 먹은 흑당 소주와 가라스미. 가라스미는 일본의 3대 진미 중 하나라고. 먹어보고파.
벨기에 맥주 시메이, 듀벨, 길로틴, 델리리움 트레멘스도 마셔본 적이 없다. ‘delirium tremens’는 ‘알코올 중독에 의한 금단 증상의 하나’라는 뜻이라고. 잔에 그려진 핑크 코끼리는 알코올 중독자가 보는 환각의 대명사란다.
샴페인계의 기네스라는 블랙 벨벳, 미야코는 후일 남편이 될 오코조에게 블랙벨벳을 시켜준다. 두 사람과 합류한 미야코 상사 스야키는 오코조에게 모스코뮬을 권한다.
소주, 곡주, 샴페인, 맥주를 거쳐 미야코는 결혼 이후 위스키에 입문한다. 특히나 몰트 위스키. 글렌리벳은 조용한 계곡이란 뜻이라나. 위스키 선생격인 쓰야키는 미야코에게 이런 가르침을 전수한다.
“이봐, 코사카이, 옛날 바람 부는 스코틀랜드 양조장에는 위스키 캣이라 불리는 고양이가 살았어....그 녀석이 수없이 몰려드는 적들로부터 보리를 지켰지. 목숨을 걸고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대는 까마귀와 긴 이빨로 갈아대는 쥐놈들하고 싸웠다고. 상처 입고 쓰러져도 결코 굴하지 않았어. 음 그래, 몰트위스키라는 건, 그 녀석이 자존심을 걸고 지켜낸, 생명수다 그거야.”
미야코는 고양이 그림을 주로 그리는 화가인 남편 오코조와 캐치 볼을 하던 중 오코조에게 고양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위스키 캣’이 아니라 책을 만드는 편집자답게 ‘북 캣’
위스키 캣의 일화를 듣고 있자니 불현 듯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오른다.
넓디넓은 호밀밭 같은 곳에서 작은 아이들이 한가득 모여 어떤 게임을 하는 모습을 언제나 떠올리곤 해. 몇 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밖에는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건전한 어른 따위는 한 사람도 없는 거야, 나 말고는.....난 근처의 험한 벼랑 끝에 서 있어. 내가 거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말이지, 누군가 그 벼랑에서 떨어질 것 같은 아이가 있으면 한쪽 끝끝에서 붙잡아 주는 거야. 한마디로 앞을 잘 안 보고 벼랑 쪽으로 달려가는 아이가 있으면, 어느 쪽에서든 짠하고 나타나 그 아이를 캐치하는 거야. 그런 일을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하는 거지. 호밀밭의 파수꾼, 나는 단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단다.
-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P 261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누군가 해야 하니까 누군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 내가 할게요’하며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인간적 질서는 그런 대로 유지됩니다. 그런 사람이 꼭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 세계의 질서는 유지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꼭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 세계의 질서는 변함없이 유지될 것입니다. ”
-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P262.
대가를 바라지 않은 ‘파수꾼’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거겠지.
고맙습니다. ^^
술은 달달하고
책은 술술 읽힌다.
술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거침없이 다이빙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