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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읽기 힘들었다. 한숨 쉬다가 울다가 담배 피다가, 한숨 쉬다 울다가 담배 피다가......
여기서 도망치면 부끄러울 것 같아 끝까지 읽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또 한참을 울었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 신형철.
이 글을 미리 읽고 각오하고 덤볐어야 했다.
한참 울다보니 훈련병 시절이 얼핏 떠올랐다. 한달 만이었던가
오랜만에 목욕을 시켜준다고 해서 기대하고 갔다. 목욕탕 안으로 수백 명을 집어넣고 3분 만에 나오라고 했던가. 찬물이었다. 설마 4분은 주겠지? 머리를 감고 있는데 밖에서 나오라고 소리친다. 다들 황급히 나간다. 나는 아직 머리를 감지도 못했는데. 비누칠을 해 미끌거리는 몸을 수건으로 닦으며 울었던가. 스무 살도 넘은 사내놈이 밖에 나와서도 끊임없이 울었다.
‘나는 인간인데’라는 생각만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사치에 가깝다.
앞서 산 사람들이 군사정권 때 고문당한 일들을 들어보면
혹은 1980년 5월 광주, 국가에서 보낸 군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고 고문당한 국민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유족들은 짧은 추도식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다. 나라가 그들을 죽였는데.
은숙 누나는 답한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
80년 5월에서 살아남은 여자는 말한다.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80년 5월에 살아남은 남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거야.
80년 5월로부터 내년이면 35년이 된다. 학살의 장본인들은 여전히 호위호식하며, 자신들이 싫어한다고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게 한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 태어나 살해되었다.”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 신형철.
2014년 4월. 아이들이 수백 명 죽어도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며 여전히 학살세력을 지지해 주는 국민들은 제정신인가? 믿을 수가 없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이곳은 나라가 아니다.
학살세력, 그들의 자식들이 정권을 잡고 여전히 아이들마저 살육하는데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참 울다가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거기서 복권을 샀다. 꽝이었다.
전두환 살인마가 기획한 ‘국풍 81’ 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전두환이 만든 놀이터에서
난 복권을 긁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죽고 싶도록 부끄럽다.
이 글을 쓰며 또 운다.
오늘은 비록 울지만
쓸개를 맛보며 각오하리라.
너희들의 뼈를 빻아 가루로 만들 그날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2014.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