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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휴,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결코 짧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놀라운 소설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보다 Hot 하고 Cool한 소설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도미니카 판 21세기식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고 할까요? 샐린져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그라스의 <양철북>,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같은 성장 소설을 재밌게 읽으신 분이라면 필독하시길 추천합니다.
푸쿠 아메리카누스, 흔히 푸쿠라고 부르는 그것은 대개 모종의 파멸이나, 저주를, 특히 신세계의 파멸과 저주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이 이스파니올라(아이티와 도미니카가 있는 섬)에 오면서 이 푸쿠를 풀어놓았고 그 이후 도미니카는 ‘염병할 저주’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이 푸쿠는 트루히요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작가는 묘사합니다. 트루히요가 누구냐구요? 1930년부터 무려 약 30년 동안 도미니카를 통치해온 독재자로서 우리 식으로 치자면 박정희와 전두환, 이명박을 다 섞어놓은 듯한 무시무시한 놈이죠.
JFK를 누가 죽였냐구요? 작가말로는 ‘‘염병할 마릴린 먼로의 유령도, 외계인도, KGB도 아니고’‘ 트루히요요 푸쿠였답니다. 그런 작가에게 있어서 ’푸쿠 넘버원‘이라 할만한 이야기가 오스카 와 오와 그의 가족이야기인거죠. 그러나, 푸쿠만 있는 건 아니라죠. 푸쿠에 대항할만한 역 주문이 있으니 그것은 사파. 작가의 삼촌은 불운이 들러붙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24시간 사파를 중얼거린다고. 작가는 이 책이 일종의 사파가 되길 바란 듯 싶습니다.
오스카는 그의 엄마가 “케 옴브레(저 마초 녀석좀 보게)”할 정도로 올가와 마릿사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던 ‘정상적인 도미니카 남자’였으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마릿사의 협박에 눈물을 흘리며 올가를 버렸더니, ‘달을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닦아내지 않은 얼룩이라고 생각하는’ 멍청한 넬슨 파드로(하느님이 곧 닦을거야)에게 마릿사를 빼앗기고 나서부터 그의 인생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여 급기야 고등학교 2학년 때는 117kg 되는 ‘꼴통 돼지’가 되었음에도 눈에 띄는 모든 여자를 사랑하는 ‘열렬한 포스’를 그 몸무게 전체로 내뿜지만, 그 어떤 여자도 팔짱을 풀지 않았고, ‘메테셀로 전문가’였던 삼촌 루돌포는 “코헤 댓 페아 이 메테셀로!! (못생긴 계집애를 자빠뜨려서 그냥 거시기를 집어넣어!)”란 애정어린 충고에도 그저 누나 롤라의 “열라 탐스런”친구들을 꿈속에서 외계인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었죠.
졸업반이 되어서도 오스카의 몸무게는 더욱 늘어날 뿐이었고, 자신보다 괴짜라고 생각하는 그의 친구들(앨과 믹스)마저 여자친구가 생겼음에도 그는 여전히 혼자였을뿐더러, “걔들 다른 친구는 없냐”란 절박한 질문에도 친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없어”라는 짤막한 대답을 듣고서야 오스카는 친구들마저 자신을 쪽팔려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거울을 쳐다보다 오스카는 엄마에게 “나 못생겼어요?”라고 물어보지만, 엄마는 한숨을 쉬며 “글쎄다, 날 안 닮은 건 확실하지”란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줄뿐이죠.
“도미니카 부모들이란! 사랑할 수 밖에 없다니까!!”
그런 오스카에게도 엄연히 ‘대화’가능한 여인이 찾아왔으니 이름하여 아나 오브레곤, ‘생리중’이라는 표현대신 “돼지처럼 피가 철철 나”라고 말하는 깜찍한 여자였으나, 그가 친구이상으로 발전해 볼려고 궁리할 때 즈음, 그녀의 마약중독자 애인이자 “해부학적인 거대함”을 지닌 매니가 돌아오자 아나는 ‘큰 거시기’에 굴복하여서 인지 그녀를 갈보라 부르며 두들겨 패는 것도 모잘라 중학생 여자애들과 바람 피우는 매니를 사랑한다니 오스카의 꿈은 또다시 그렇게 산산 조각이 나버리고 맙니다.
1장 1부의 내용을 대충 말씀드렸는데요, 주노 디아스의 필력을 느끼실 수 있으셨는지요? 다른 장에선 오스카의 누이인 롤라가, 그의 엄마인 배티가, 그의 할아버지인 아벨라르가, 롤라의 남자 친구인 유니오르가 화자가 되어 오스카를 중심으로 한 3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노 디아스는 주목받은 단편집 이후 11년 만에 자신의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놨는데요, 퓰리쳐상등 많은 상을 통해 그 노력에 보답 받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퓰리쳐 상을 탄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엄청난 푸쿠인 트루히요가 등장함에도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듯 싶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다가가 “게임이라면 전 당신에게 카리스마 18을 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꼴통에게도 과연 사랑이 찾아올까요? 유니오르에게 “도미니카 남자 중에 숫총각으로 죽은 사람은 없대....그게 사실일까 ?”라고 진지하게 묻는 오스카는 과연 숫총각 딱지를 떼고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까요?
우리나라엔 이 푸쿠가 언제 들어온걸까요? 6,25때 미군을 통해? 아님 ‘미친 소’들을 통해?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사파가 있으니까. 푸쿠로 점철된 오스카의 삶에도 사파는 찾아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한 그의 골통 짓에 경악하기도 하지만, 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이 솟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2010년 즈음에
주노 디아스의 신작이 나왔다니 반가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