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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북플을 한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을까. 북플을 하면서 화들짝 놀란 사실 하나.
10년 전 즈음 술자리에서 어느 여성분이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하루키도 소설이냐고 빈정거리다 결국 그 여성분을 울려버린 적이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울 것까지야)
이번에 북플을 통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가를 알게 됐다.
하루키였다. 17권. 더 놀라운 건 아직도 내가 읽은 하루키 소설 중 절반 정도 밖에 체크가 안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의 30권. 고작해야 3,4권 읽었겠지 싶었는데. 어찌나 놀랐던지.
하루키가 무슨 만화가도 아니고.
(강신주는 하루키 소설을 ‘포르노’라고 하지 않았나. <1Q84>이후로 나는 더 이상 하루키 욕을 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그렇게 재밌는 소설은 첨 봤다.)
지난달 장강명의 <호모도미난스>를 읽고 미처 리뷰를 쓰지 못했는데 <댓글부대>를 읽어 버렸다. 나는 장강명 소설이 싫다,....고 고백했었다. 그런데 왜 장강명 소설을 네 권이나 읽었을까. 생각해보니 세 권 읽은 소설가들은 얼추 되지만 네 권이나 읽은 한국 소설가는 편혜영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장강명은 <호모도미난스>를 pc시절에 쓰다 중단했던 걸 다시 손봤다고 했다. 음......그때 완결했어야 했다.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도 있고, 결정적으로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도 나온 마당에 <호모도미난스>는 <제노사이드> 아류작에 불과하다.
‘호모도미란스’란 제목도 불편하다. 지배받은 인간들이 대부분인 현실에 ‘지배하는 인간’이 어떻게 미래의 진화한 인간 종을 지칭하는 단어가 될 수 있을까. 또한 제목 앞에 ‘호모’ 붙이는 거 너무 안일한 작명법 아닌가. 호모 사피엔스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유발 하라리 책 제목을 상기해보자. <사피엔스>다. 호모 빼는 추세거늘.
최준식, 지영해 교수의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에서 최준식 교수는 외계인들이 인간 의식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외계인들은 물질과 비 물질의 상태로 변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코흐는 인터넷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다음 인류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혼합된 상태에서 점차 무기물로 진화하다 아예 입자 상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즉, 파동으로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에너지의 형태로.
그러니까 염력이 불가능하다고만 말할 순 없지 않을까.
<댓글부대>리뷰 쓰려다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