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에 빠지지 않는 동창회 장면, 뭐 그 비슷한 인간이 모이는 자리가 나는 참 재밌다.  중병에 걸린 영화감독을 돕기 위해 모인 자리, 몇 년 전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 영실도 부탁을 받고 봉투를 들고 참석하는데......

<극장전>은 홍상수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되었으니 그도 어느새 10년차 중견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제목에 대해 코웃음을 치던 한 소설가가 생각난다. "상상력의 부재야, 상상력의 부재! 세상에 제목이 그게 뭐야?"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그녀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제목 따위 상관없다, 는 쿨한 영화감독 탄생인데요?" 

간암으로 오늘내일 하는 선배의 영화 회고전을 보러 간 동수(김상경), 극장 앞에서 조금 전 보고나온 영화 속의 여배우 영실(엄지원)을 만난다. 영화 속 19세 소년과 소녀는 몇 년 만에 우년히 만나 술을 마시고 여관에 가는데 느닷없이 죽어버리기로 결심한다. 

함께 죽기로 뜻을 모으고 편의점에 가서 유서를 쓸 공책을 사오는 영화 속의 소년. 그 사이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드라이하는 소녀. 

"이제 우리 약 먹을까?"

"응,  머리 좀 말리고!"(이 대목에서 나는 뒤집어졌다. 아무리 영화 속 장면이라지만 그녀의 쿨함이라니!)

 


수면제를 몽땅 털어먹고 잤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살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람...깊은 잠에 빠진 남자친구를 그냥 두고 혼자 쓸쓸히 여관을 빠져나오는 극중의 영실.

그런데 동수는 여배우 영실에게 그 이야기가 자기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이상형이라고, 연락처 좀 가르쳐 달라고......지갑을 잃어버렸으니 돈을 좀 꿔달라 했다가 어떻게 어떻게 함께 술을 마시고 영화 속 소년과 소녀가 묵었던 그 여관 그 이부자리 위에서 동침하고......사랑한다고 말하고, 영실에게서 "아이구 참, 당신이 사랑하긴 뭘 사랑합니까?"하는 타박을 듣고......

김상경이란 배우의 느물느물한 매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엄지원의 맹하고 쿨한 매력은 김상경을 능가한다.

 


자기 뒤를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지갑을 잃었으니 밥사달라,  술에 취해 동침하고 나서는 자기 옆에 계속 있어달라., 또 그뿐인가 이상형을 만났다며  계속 치근대는 동수에게 영실은 한마디한다.

"자긴 이제 재미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그리고 나서 택시를 잡아타고 휑하니 가버리는 그녀.  이런  그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urblue 2005-05-2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경 살을 좀 뺐군요. <생활의 발견>에서는 샤프한 이미지를 몽땅 버리고 살만 퉁퉁 찌웠더니만.
내일 봅니다. ^^

로드무비 2005-05-2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살이 많이 빠졌더군요.
극중에서도 나와요.
동창들이 얼굴 깨끗해졌다고 하자,
"몸 생각해서 술을 좀 줄였다."
아마 이 영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거예요.^^

인터라겐 2005-05-2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것 같아요... 저두 일요일 조조로 봐야겠어요..이번주 말고 다음주쯤이요...

로드무비 2005-05-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는 여행 가신다고요?ㅎㅎ
재밌게 잘 놀고 오세요.
이 영화 꼭 보시고요.^^

nemuko 2005-05-2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어요.... 안그래도 조조영화 보셨다길래 무지 부러웠거든요. 홍상수에 김상경까지 종합선물인데... 과연 언제나 보게될까요... ㅠ.ㅜ

마냐 2005-05-27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난다, 갑자기 볼게 늘었네요. 전 광분한 옆지기 덕분에 스타워즈부터 보게 될거 같슴다.흐흐.

로드무비 2005-05-2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마냐님, 네무코님 꼭 보세요.^^

하루(春) 2005-05-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좀 말리고 죽겠다고 하다가 결국 못 죽는 게 보통 아닌가요? 자꾸 빼먹은 일이 생각나서 나중엔 죽으려던 걸 까먹는... ㅎㅎ~

2005-05-27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2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생각하시는 것하곤.ㅎㅎ

하루(春) 2005-05-2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귀여워'라는 영화 좋다고 하셨잖아요.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감독상 탔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빌려다 보려구요.

클리오 2005-05-2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평이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

2005-05-27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2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영화평은 아이고, 간단한 스케치라 할까.
막 개봉한 영화라 스포일러를 피하려니 쓰기가 조심스럽네요.^,.~;
하루님, '귀여워' 재밌게 봤어요.
님껜 어떨지...^^

비로그인 2005-05-29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스포일러 아니죠? 헤..잼나겠어요. 맞아요, 술잔이 오고가는 모임 건, 진짜 리얼하쟎아요. 그 리얼함 속에 숨은 일상의 소외가 제대루 느껴져서..그러니까 나는 너와 다르다, 라는 아는 척 하는 것들의 나약한 시건방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꼭 봐야지.

로드무비 2005-06-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아무튼지간에 보세요.
무지 웃겨요.
서울 뒷골목 허름한 풍경도 재밌고요.^^
 


**스포일러 만땅 페이펍니다. 이 영화를 보실 분은 읽지 않으시는 게......

민병국 감독의 첫 영화 <가능한 변화들>을 비디오로 보았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이 영화는 우선 제목으로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변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만 할 뿐 나날이 인간성이며 뭐며 나빠지기만 아는 나로서는 이끌릴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다.

더구나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연출부 일을 했단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한편 경멸하면서도 한편 무지 좋아한다. 인간성  나쁜 거는 아는데 나도 모르게 끌리는 남자 내치지 못하는 심리랄까? 몇 년 전  홍상수 감독의 제자였다는 말만 듣고 무조건 보러 갔던 박경희 감독, 추상미 주연의 <미소>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된 것처럼 어젯밤 나는 기대를 잔뜩 하고 이 영화를 보았다.

책을  읽거나 책상 앞에 앉은 꼴을 한번도 볼 수 없는 전업작가 문호(정찬)는 몇 년 전 갑자기 쓰러져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된 종규(김유석)와 아주 오래 된 둘도 없는 친구이다.  문호는 얌전한 아내와 일고여덟 살의 딸아이가 있지만 총각 행세를 예사로 하고 다니고,  종규도 무슨 연구소 말석 자리라도 제 몫의 책상이 있고 미스 김이라는 말 잘 듣는 애인도 확보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모양을 갖춰 사는 두 사내,  그런데 뭐가 문제지?

제주도의 넓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벼랑 위에 둘이 앉아 담배 피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기세좋게 시작한 이 영화는 누가 더 희망이 없고 누가 더 야비한 것인지 내기라도 하듯 두 남자의 엽색행각을 보여준다. 심지어 둘은 라면집에서 한 테이블에 동석한 여자랑 여관에 들어가 2 대 1의 섹스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해치운다. 친구의 요구를 거절하고 여자가 옷을 입고 나가려 하자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갈기는 문호.

문호가 집에서 아내나 딸을 얼마나 짜증스럽고 재미없는 표정으로 대하는지, 싼 이탈리아 식당에 모처럼 외식을 하러 나가기 전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이빨 좀 닦아달라는 어린 딸아이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은 가관이다.  아이는 아빠의 거절에도 일곱 번인가 여덟 번쯤 같은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식당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잠시 궁둥이를 붙인 대기석에서는 아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계속 심하게 떤다.  그는 그런 딸이 걱정도 안되는가, 모처럼 가족과 외식하러 나왔으면서도 잠시를 못 참고 밖으로 나와 채팅으로 알게 돼 작업중인 아가씨와 약속을 잡는다.

 


이제보니 식당 문을 빼곰히 열고 아빠가 뭐하나 내다보는 딸래미가  마이 도러를 좀 닮은 것 같기도.

밤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큰 우산을 들고나온 문호. 결국 채팅녀와 만나 동침하는 데 성공하는데 임신을 걱정하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임신해버려, 임신해버리라구!"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다니는 인간의 저 쓸쓸한 얼굴을 좀 보라지.

그 볼품없는 우산(도대체 무얼 상징하는 것일까?)을 들고 다음날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개기던 그, 비가 무진장 쏟아지는 동네 골목길에서 우산을 펼치지 않고 땅바닥에 패대기쳐 작살을 낸다.  나름대로는 절망의 표현이리라!  엉망으로 젖어 돌아오는 남편을 집 앞에서 기다리고 섰는 아내. 누군가 "이 영화 속의 남자들은 홍상수의 인물이라기엔 조금 더 거칠고 조금 덜 귀엽다"고 말했다는데 절묘한 표현이다. 그러고보니 <강원도의 힘>에서의 장면과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집에서 그렇게 따분한 얼굴을 하고 있던 사내,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밖으로 나와 딴 여자랑 논다. 거기다 우산까지 손에 들었으니......(대단한 발견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의 존재감은 이상하게 희미하다. 버젓한 직장에 다니는 채팅녀 윤정(윤지혜)도, 종규의 첫사랑인 대학교수 수현(신소미)도, 종규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를 떼고 나와 삼계탕을 먹으며 식당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 웃는 미스 김(옥지영-'고양이를 부탁해'의 지영이었던)도, 유령 같다. 

첫사랑과의 동침을 위해서는 무리해서 최고급호텔 스위트룸을 빌리고, 자신의 아이를 떼고 나온 여자가 한강이 보이는 방에서 아침을 맞고 싶다고 말하자 허름한 여관으로 데리고 가는 종규의 파렴치함.  거기다 그 새벽 곤히 잠든 애인을 기어코 깨우고 자신의 절망한 낯짝을 들이대는 무신경함이라니!

이 영화는 스토리라 할 게 별로 없다. 뭔가 변해야 하지만 변할 가능성이 1프로도 안 보이는 두 친구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들의 후줄근하고 더티한 일상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두 남자의 열연 탓인가 내게는 꽤 괜찮은 영화로 다가온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春) 2005-05-1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 김유석 때문에 보고 싶었는데, 흥행 못하고 내리더군요. 제가 김유석의 오래된 팬이거든요. ^^

로드무비 2005-05-1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김유석 연기 정말 좋았어요.
저도 극장 가서 보려고 했는데......

날개 2005-05-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니 무지무지 마음에 안 드는 남자들이잖아요...ㅜ.ㅠ
근데, 저 애 진짜 이쁘게 생겼네요.. 저런 이쁜 딸이 눈에 안들어올까?

클리오 2005-05-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홍상수 영화 자체가 너무 힘들고 후줄근하고 더티해요... T.T 아아~ 오늘이 우울한 날이어서 더욱 우울해지네요.... 이 영화 안봐야겠어요...

히나 2005-05-1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표 영화를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도 은근히 끌리는 나머지 흥흥 그렇단 말이지, 혀를 차면서 결국에는 보고 만다는.. (마치 연애심리같군요..) 저는 정찬 때문에 보고 싶은데.. ^^

로드무비 2005-05-1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바로 그거 아입니꺼.^^;;
저 정찬, 김유식 둘 다 좋아해요.
정찬은 언제 갑자기 사내 냄새를 물씬 풍기게 되었죠?
<로드무비> 전만 해도 소년이었는데......
클리오님, 전 그 점이 마음에 듭니다.
후줄근하고 더티한......
그런데 오늘 왜 우울하실까요?;;
날개님, 저도 극중 인물들은 마음에 안 듭니다.
하지만 두 배우는 괜찮다고요.^^;;

플레져 2005-05-1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순이의 시아주버님이 나오는군요, 김유석.
이 영화 보고 싶었어요. 비디오로 나왔다굽쇼? 흠... 님의 리뷰가 영화보다 더 맛난 건 아녀요? 헤헤~ 추천해요 ^^

poptrash 2005-05-1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식으로 뭔가 적나라하다는 느낌이 드는,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눈앞에 들이대는 영화나 책들은... 무서워요 너무. 흑흑.

마냐 2005-05-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쭈글쭈글함이 눈에 보이는 거 같슴다. 많이는 아니고, 좀 보고싶었던 영화인데....^^

로드무비 2005-05-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내용이 좀 불쾌한데도 이상하게 보고나면 기분이 약간 개운해요.
(내가 변태일까요?^^;;)
poptrash님, 끔찍하지만 그게 또 재밌잖아요.^^;;
플레져님, 이 페이뷰가 재밌다굽쇼?
역시 전 님의 댓글이 없으면 안돼요.^^
 

 

13,4년 전  콜린 히긴스 원작의  <19 그리고 80>을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 끊임없이 자살소동을 벌이는 19세 소년  해럴드가  80세의 할머니 모드를 만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배운다는 이야기였다. 박정자가 여든 살의 모드 할머니로 분했던 동명의 연극도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장기공연에 들어가고 원작이나 연극의 인기는 한마디로 난리도 아니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말이지 해럴드, 두려워하지 말고 인간적이 되는 거란다.(모드가 해럴드에게)

어제 오후 우리 가족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러 광화문의 한 극장을 찾았다. 상영 시간이 거의 두 시간이고 한글 자막이라 일곱 살짜리가 진득하니 앉아 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그 염려는 쓸데없는 것이었음이 곧 밝혀졌다. 아이는 가끔 제 아빠가 조는지 안 조는지를 옆눈으로 감시했을 뿐 무서운 기세로 영화에 집중했던 것이다. 영화가 워낙 흥미진진해야 말이지.



몸통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는 네 다리로 걸어다니는 고철덩어리 하울의 성.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쉭쉭=3=3=3 하얀 연기를 내뿜는데 그 광경이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모자가게의 심드렁한 18세 소녀 소피


동료 재봉사들은 들떠서 퇴근을 하는데 아랑곳없이 완강한 등짝을 보이며 하던 일에만 열중한다. 바깥세상은 전운이 감돌고 하수상하거나 말거나.


그녀의 얼굴은 왜그리 메마르고 덤덤할까? 잠깐의 외출.

하울과 관련된 황야의 마녀의 오해로 하루아침에 90세 노파가 되어버린 소피


자신의 변한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소피.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머무를 수는 없다고 판단 조그만 보따리를 꾸려 집을 떠나는데 그 침착함과 단호함이 놀랍기 그지없다.


마법사들을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지팡이로나 쓸까 하여 주웠더니 무대가리 허수아비였다. 그는 여행의 끝까지 소피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다.


하울과 모종의 계약관계라는 불 마법사 캘시퍼도 어느 날 갑자기 하울의 성에 잠입한  소피 할머니 앞에선 깨겡.


에잇, 이 먼지구덩이...소매를 걷어붙이고 청소부터 시작하는 소피. 왜 부지런한 여성은 남의 집에 가서도 청소부터 해야 하는지? 난 우리 집도 잘 안 치우는데......


"아아, 아름답지 못하면 사는 의의가 없어!" 여성들을 매료시키고 자신의 마음은 주지 않는 천하의 바람둥이 하울. 머리 염색이 잘못됐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있는 중.

미야자키 하야오는 '움직이는 성'과 '하루아침에 90세 노파가 된 소녀' 라는 두 가지 점에 착안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나이 듦'에 대한 독백이 심심찮게 나온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은 세상에 놀랄만한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나이들어 좋은 건 더이상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래서야 앞에서 소개한 모드 할머니와는 여러 모로 대조적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하울을 사랑하게 되고 갖가지 모험을 통해 용기를 얻으면서 소피의 얼굴이 소녀가 되었다가 다시 불안에 잠기면 할머니 얼굴로 변하고 하는 장면은 무척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웠다.

소피가 자신에게 마법을 걸어 노파로 만든 황야의 마녀(그것도 자신보다 더한 할머니가 돼버린)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보살피는 대목도 인상적. 다음 두 컷의 사진은 황야의 마녀의 변신 전과 후.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오르라고 하면 나도 당장 오르겠다. 아흔의 소피가 신나게 한 일을 아무렴 나라고 못하겠는가? 하울과의 사랑, 그런 건 솔직히 관심없다. 노란색, 빨간색, 연두색, 파란색 색깔의 자물쇠가 있어 그 색깔의  대문을 열면 다를 세상이 펼쳐지던 그 신기한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소피처럼 나의 나이를 새로 쓰고 싶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icaru 2004-12-2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아침에 할머니가 되어버린 자신을 참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소피.....!

'나이 듦'에 대한 독백도... 인상적인...!

깍두기 2004-12-2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클수마스날 식구들과 이 영화를 보았어요. 그러나 이미 늙어버린 깍두기는 이 영화가 무작정 재밌지만은 않아서 슬펐다우. 이제 나는 상상력을 맘껏 즐길 수 없는 것인가....아, 나도 페이퍼를 써야겠다.

바람구두 2004-12-2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당신은 못해요... 청소라니.. 푸핫.

sooninara 2004-12-2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봐야겠다고 찜해두었다는..

로드무비 2004-12-2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빨리도 보셨군요.^^

깍두기님, 누구 앞에서 늙어버렸다는 둥 그래서 슬펐다는 둥.

떽이야요.

바람구두님, 전 청소는 할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움직이는 성을 타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이었어라.^^;;

수니나라님, 애들 데리고 가서 꼭 보세요. 무지 좋아할 겁니다.^^

마태우스 2004-12-2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 오래된 편견이 깨질까요... 라이언킹, 미녀와야수를 보고 재확인한 그 편견들이 말이죠.

Laika 2004-12-2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 울 언니네 집에 놀러가서 매일 청소만 해주고 오는데..

이거 보고 싶다고 노래 부르며, 아직까지 못보고 있어요...

urblue 2004-12-2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청소 같은 거 안 하는 로드무비님이 좋아요!!

저도 이번 주말에 광화문 모 극장에서 이거 봅니다. ㅎㅎ

로드무비 2004-12-2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소피가 하울의 성 청소해주는 것 빼고는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애니메이션에 대한 마태우스님의 그 오래 된 편견

깨트릴 수 있을 거예요.

라이카님, 요리에 앞치마에 청소에...라이카님 언니가 정말 부러워요.

우리집에도 하루 놀러오실래요?^^

블루님, 요리 잘하면 됐지 어떻게 청소까지 잘할 수 있겠어요.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ㅎㅎ

이번 주말 데이트 기대됩니다.^^

날개 2004-12-2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보고싶어 죽겠네... 로드무비님이 더 불을 당기시누만요..

2004-12-27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4-12-2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행...아직 놀랄 일이 많은 걸 보니 내가 아직 젊었단 증거..고맙습니다. 로드무비님 한 살 더 먹는 판에 나의 젊음을 증명해 주시다니요!

플레져 2004-12-2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아요. 스틸컷만 봐도 이렇게 좋으니...

마지막에 좀 우스웠죠? 개구리 왕자가 생각나서...흐흐...


브리즈 2004-12-28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한때, 정확히는 10여 년 전 제 수집 1호 품목이었죠. <나우시카> <라퓨타> <홍돈> <추억은 방울방물> 등등.. 그때만 해도 하야오의 영화를 영화관에 앉아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말이죠.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오랜만에 하야오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갖게 한 애니입니다. 이번엔 극장에서 보고 싶네요. :)

니르바나 2004-12-2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에 무서운 인사를 건넨 친구가 캘시퍼군요.

그야말로 환타스틱한 영화네요.

로드무비님의 페이퍼가 아니었다면 감상하지 못하고 넘어 갈 뻔 했습니다.


2004-12-28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면 딱 로드무비님 만큼의 감상이 나올 것 같군요..저도 애니를 즐겨 보지 않았는데,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고양이의 보은 등을 보면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지요..한 장면 장면에 깔린 복선과 아이들에겐 의미심장할-실은 우리들에게도-대사 같은 것들이 인생을 생각하게 해서 좋아요..그 익숙함과 적당히 단순한 선들도..

로드무비 2004-12-28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더군요.

모자가게 작업실, 움직이는 성 내부, 특히 하울의 방......

풀과 꽃으로 둘러싸인 전경 등.^^

니르바나님, 캘시퍼가 무지 귀엽게 나와요.

소피가 요리를 하도록 기꺼이 허락도 해주고요.

브리즈님, 전 그의 영화들을 많이 챙겨보진 못했는데

'추억은 방울방울'이 특히 보고 싶군요.

플레져님, 그 대목 정말 웃겼어요. 어이가 좀 없기도 하고.^^

박찬미님, 님도 저처럼 젊음의 증거가 필요하시군요.

아유 반가워라!^^

....님, 기대됩니다. 받는 대로 제깍 님의 방에 달려갈게요.^^

날개님, 애들 방학 했죠?

빨랑 가서 보세요. 만화책만 들입다 사지 마시고...헤헤.^^

2004-12-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저 소피의 뒷모습이 있는 컷이 마음에 들어옵니다..구석구석이 재밌네요..매생이 먹고 소감 올려 주셔여..맛있으면 위치도 가르쳐 주시구요..^^

poptrash 2004-12-28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크리스마스에 극장에서 봤더랬지요. 18시에 연극 라이어를 보고 22시에 역도산을 보고 00시 30분에 다른 극장으로 옮겨서 하울을 보는 좀 강행군이어서 -_-; 그럼에도 재밌었답니다.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은 주의하실 것! 명백한 스포일러성 글이므로...)

병석이는 영화감독이 꿈인데 결혼식장에서 비디오를 찍는 아르바이트를 종종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신부나 신부의 부모가 우는 모습만 집중적으로 담아와 일을 준 선배로부터 구박을 받는다. 그래서 또 하는 일이 고깃집 숯불 피우는 일,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운전자에게 포르노테이프나 성인용품 을 파는 삐끼 일.

재경이는 한 사설대출업자의 코딱지만한 사무실에 취직했다가 하루만에 짤린다. 우울하게 생겨서 부담스럽다고. 어른들이란 인간은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예사로 한다. 자긴 뭐 그리 발랄하게 생겼다고......그리하여 다시 찾은 일자리는 피라미드형 한 인터넷 쇼핑몰의 세일즈. 실적을 위해 카드를 그었다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데......

돈이 없어 그런지 둘의 데이트 하는 모습도 삭막하기 그지없다. 어찌 된 인간들이 카페나  분식집, 싸구려 백반집 테이블에 한번 앉아보지도 못한다. 어느 날 재경이 집에 아무도 없다며 병석을  데려가 개다리소반에 차려내온 밥상이 최고로 호화스러운 식사였다.

배우들은 기존의 연기자가 아니고 노동석 감독이 아는 사람 중에서 골랐다고 한다. 이 둘을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속이 터진다.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이 한대 때리라고 뺨을 들이대도 때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끝내 끌어안고 우는 병석,  마침내 카드깡을 하기로 결심하고 낯선 사내의 뒤를 따라 뒷골목의 미로를 따라다니는 핏기 없는 얼굴의 재경.

카드빚을 갚기 위해 내일이면 타인의 손에 넘기기로 한 카메라. 병석은 아쉬워서 재경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오늘 뭐 했어? 뭐했냐구?"

카메라를 이리저리 피하던 재경의 눈에서 눈물이 솟는다. "카메라 치우면 이야기 해줄게."

놀랍게도 카메라가 꺼지면서 그대로 페이드 아웃이다. 재경은 카드깡 업자를 따라다닌 하루를 고백했을까?

 '청춘영화라고 해놓고 이거 뭐 이래? 뽀뽀 장면 한 번 없고......' 나는 짐짓 투덜거리며 극장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그 둘은 함께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urblue 2004-12-2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병석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더라구요. 영화보고 나와서도 내내 '웃어봐' 라는 병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로드무비 2004-12-2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전 그 사채업자의 느끼한 목소리와 태도가 무척 인상적입디다.

그런데 그 사람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병석과 재경 커플 답답한 구석은 있지만 예쁘죠?^^

잉크냄새 2004-12-2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지리멸렬한 " 이라는 단어가 " 청춘 " 이라는 단어와 어울릴수도 있군요.

도저히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배열에 영화의 묘미가 있는건가요?^^

urblue 2004-12-2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 사채업자, 어디선가 봤다 싶었어요. 어디서 봤을까...

로드무비 2004-12-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님도 청춘이시죠?

<지리멸렬>이라는 제목의 우리나라 단편영화 참 재밌게 봤는데...

이 영화도 그 못지않았어요.

그리고 멀리 갈 것 없이 제 청춘도 지리멸렬했다고 기억합니다만.^^

로드무비 2004-12-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호옥시 그 사람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 아니에요?

urblue 2004-12-2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정성일씨는 좀 더 우울하게 생겼어요. 목소리는 더 느릿느릿하구.

니르바나 2004-12-2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없이 여배우들 얼굴만 들여다 보는 저와는 비교되게,
로드무비님은 영화의 귀재이십니다.

님의 글을 진작 만났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로드무비 2004-12-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히히 그건 그렇죠?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니르바나님,님은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셔서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페이소스가 느껴져요. 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엔......^^

파란여우 2004-12-2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명 : 김성호-회상


플레져 2004-12-2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횡재다! 회상 들으면서 댓글 쓰네요 ^^

사채업자, 정말 인상적이죠? 겔포스 먹는 거며, 영어 공부하라는 핀잔...

함께 영화 본 친구들과도 그 사채업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지요...ㅎㅎ

님, 대단하셔요. 어제 혹한을 뚫고 대학로에 입성하셨군요.

영화평도, 님의 발걸음에도 추천이어요! ^^

로드무비 2004-12-2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파,파란여우님, 저,저,정말 고마워유.^^

플레져님, 아유 뭐 어제 날씨가 혹한이라구.

목도리 두르고 시내에 나가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드는 게.^^;;

추,추,추천 고맙습니다. 플레져니임.^^

2004-12-2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2-23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요일 정오경 늦은 아침을 먹다가 한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 내 시선이 꽂혔다. 꼬질꼬질한 서민아파트 거실에서 고무다라이를 펼쳐놓고 김치를 버무리고 있는 화상들. 바로 장선우 감독과 깔끔미남 배우 김석훈이 아닌가!  '화상'이라는 단어를 보면 절로 떠오르는 시인 함성호의 저 유명한 시구(詩句)가 있으니......

'서로 폐끼치며 사는 거다 이 화상아!'

신예 김수현 감독의 첫 영화 <귀여워>는 함성호의 저 인상적인 시구처럼 질펀하면서도 상큼발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영화였던 것이다.







김치를 직접 버무리고 있는 까치둥우리 머리의 두 남자. 다행히 막걸리 한 주전자가 옆에 있다.

장선우 감독은 올해 초 광화문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집회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오방떡 수레 앞이었는데 그는 팔짱을 끼고 군중을 지켜보고 있었다. 혼자였다. 나는 남편과 동생 부부와 아이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도 엉겁결에 팔짱을 풀고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는 사람이야?" 남편이 물었다. "장선우 감독이잖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나쁜 영화>보다 임상수 감독의 <눈물>을 훨씬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연속적인 실망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에게 대한 관심이 조금은 남아 있다.

극중 그의 이름은 장수로로 박수무당이자 전직 사이비 교주이다. 황학동 뒷골목의 철거대상 아파트에 신방을 꾸며놓고 점을 쳐주며  배다른 두 아들형제랑 살고 있다. 장남은 퀵서비스맨으로 별명이 '후까시'(김석훈 역), 둘째아들은 견인차를 모는 기사로 '개코'(선우--가수 미스터 투의 멤버)이다. 아버지와 형이 쪼그리고 앉아 김치를 버무리는 모습을 불쌍히 본 개코는 막힌 도로 위에서 뻥과자를 파는 순이(예지원 역)를 집에 데리고 오는데......

그것도 모자라 또 한 명의 배다른 아들이 어느 날 이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꽃바구니를 들고 나타나니 철거깡패로 폭행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하고 막 출소한 세째 뭐시기(정재영 역)인 것이다. 정재영이라는 배우는 이 역을 실감나게 소화하기 위해 진짜 건달들이랑 일주일을 먹고자고 합숙을 했다는데 그래 그런지 그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행동하는 건달'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어째 이 건달 행동하는 것이 빠릿빠릿 영악하지 못하고 한심하고 덜 떨어졌다.

신이 내려주지 않아(?) 어제도 오늘도 손만 잡고 자는 아버지 장수로와 순이. 처음 보자마자 반말을 찍찍하고 조신한 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순이를 이 네 부자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는데 그 사랑의 모습도 다 제각각이다.

추리닝에 산발, 보기만 해도 신산스러운  아버지 역 장선우 감독은 허물어지기 직전의 이 아파트와 그지없이 어울리는 모습으로 어색하지만 묘하게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예지원은 이제까지 어느 영화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자유롭고 개성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뻥튀기를 파는 동료 아줌마랑 시비가 붙어 머리채를 잡고 뒹굴고,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맥주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 그뿐인가  가슴을 한번 만지게 해달라는 세째의 부탁에 웃통을 훌훌 벗는데도 더럽다거나 도무지 막 가는 인생으로 보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 말고 누가 그렇게 순이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오토바이로 도시의 불빛을 가르며 달리는 의기소침한 청년 후까시 역의 김석훈도 괜찮았고 언뜻 불량스러워 보이나 인간적으로 보이는 개코 역 선우라는 배우도 적역이었다.

사람들이 거의 떠난 철거 직전의 아파트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 오합지졸의 가족과, 하나도 멋질 것 없는 건달들이 괜시리 바쁘게 왔다리갔다리하는 이 영화가 내게는 유쾌한 판타지로 읽혔다. 순이가 "귀엽다!"고 하니까 정말 모두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여겨졌으니 한마디로 마술이 아니고 무엇인가!







배다른 아들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순이와 장수로 커플. 오늘밤은 부디 신이 좀 내려줘야 할 텐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urblue 2004-12-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좀 요상스러운 듯 하여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님 리뷰보니 봐야되겠습니다. ^^

날개 2004-12-0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자 하시는건 꼭 보시는군요..^^* 질펀하면서도 상큼이라.. 그럼 저도 볼까요?

날개 2004-12-0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새로운 카테고리군요~~~ 기대..*.*

로드무비 2004-12-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반가워요.

전 이 영화가 무지 마음에 들던데 무지하게 욕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날개님, 예. <마이 제너레이션>도 어떻게 볼까 짱구를 굴리고 있습니다.

본인의 취향을 잘 판단하셔서 보시기 바라옵니다.ㅠ.ㅜ

나중에 저 욕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페이퍼 카테고리 새로 마련했어요.

새 영화 페이퍼 + 리뷰 = 페이뷰.

멋지죠? 헤헤.^^

깍두기 2004-12-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페이뷰를 만드셨네요. 며칠 뜸하셔서 심심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하실 모양?^^

로드무비 2004-12-0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오랜만이오.

내가 없어 심심했다는 말 그거 진짜요?^^

stella.K 2004-12-0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뷰가 뭐죠? 영화 관람기만 모아 놓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로드무비 2004-12-0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니임, 페이퍼 + 리뷰예요.

개봉영화는 리뷰를 아예 쓸 수가 없잖아요.(상품을 올릴 수 없어서...)

그래서 제가 만들어봤어요.^^

stella.K 2004-12-0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군요. 잘 하셨어요.^^

플레져 2004-12-0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보면 로드무비님을 조금 더 알게 될 것 같은 예감...^^

영화 촬영중인 줄 알았는데 개봉작이었군요.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