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기로 머리통을 한 대 맞은 듯 얼얼해서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영화가 있는데  6, 7년 전 본 지아장케의 <소무>가 그랬다.
떡진 머리에 담배는 얼마나 뻑뻑 피워대는지 옆에 가면 퀘퀘한 냄새가 풍길 것 같은 소매치기 소무.
세상 어느 골목과 마찬가지로 구멍가게와 작은 식당이 있는 소읍의 신통할 것 없는 거리를 어정대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슬쩍슬쩍 훔쳐보던 쥐새끼 같은 그의 몰골.
화면 속으로 펼쳐지던 그 누추한 배경과 꼬지리한 일상은 이상하게도 내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주었다.

-- 그래, 삶은 본래 그런 거야. 부끄러워 하지 말고 힘내서 살아보자!

뭐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휙 스치고 지나갔던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째 보는 지아장커의 영화 <세계>.
백만장자처럼 극장을 혼자 세내어 영화를 보긴 처음이다.
그날 그런 상황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종종걸음으로 인사동 편의점 앞을 지나는데 배가 몹시 고파서 샌드위치와 카페라떼를 한잔 샀다.
전철 안에서 읽은 체스터 브라운의 만화 속에 나오는 '바다코끼리 비계 샌드위치'가 마침
눈에 띄었다.

실물의 3분의 1크기인 에펠탑, 개선문 등 세계의 명승지 모형들로 가득 찬 베이징의 '세계'공원.
손님을 실은 모노레일이 도는 동안, 그리고  불을 켜면 무척 화려하지만 관람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을씨년스럽고 초라한 것이 화장빨로 간신히 미모를 유지하는
늙은 여인의 맨입술 같다.

따오와 따이셩은 이 이상한 테마파크에서 무희와 경비로 근무하는데 애인 사이이다.
이 세상의 질서에 편입되어 간신히 밥벌이를 하고 있다곤 하나 자신들의 근무지처럼 
껍데기만  화려한 속빈 인생이요, 청춘이다.
고향에서 친구나 친지들이 찾아오면 공원 안내를 도맡는데, 그의 제복을 부러워하기는커녕
"북경까지 와서 제국주의의 수호자가 됐구나!"하고 이기죽거리는 놈이 없나!










 

 

 

 


그래도 장편 데뷔작 <소무>의 소매치기와 비하면  제법 반듯하고 유능한 주인공들.
예쁘고 야무진 애인을 두고도 바람을 피우지 않나 자본주의 질서 속에도 순응하는데.
이상한 건 하릴없고 속절없어 보이는 건 똑같다는 것이다.
따이셩의 친척 동생은 형의 '빽'으로 역시 경비로 취직한 주제에
분장실 무희들의 핸드백에 상습적으로 손을 대다가 쫓겨난다.

공사판에서 인부로 일하던 따이셩의 고향 후배는 사고로 죽는다.
그가 유서랍시고 남긴 종이쪽지엔 누구누구에게 2원 빌림,  집 앞 국수집 외상값 1원 60전
등의 메모만.......
전율이 흐른다.

'소무'는 이 영화에서 늙어 더욱 초췌해진 몰골로 병원 현관 앞에 쪼그린 일가친지 역할을 맡고 있다.
왕홍웨이라는 배우, 반가워라.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소품은 보온병이다.
중국인들이 차를 즐겨 마셔서 그런지 집은 물론이요,  공원 무대 뒤편의 분장실에도,
병실에도 투박한 모양의 큰 보온물병들이 빠지지 않는다.
보온물병에서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장면들이 참 좋았다.
그 물은 따뜻한 차로 변해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고 세숫물로 변해 화장을 지워주고
찬물 빨래로 시린 손을 잠시 녹여주는 것이었다.
공원 꼭대기 전망대의 파라솔 밑에서 따이셩이 배달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을 때
나도 참지 못하고 바다코끼리 비계 샌드위치와 커피를 꺼내었다.

영사실을 흘낏 봤더니 필름만 돌아갈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몰래 반입한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다.

만약 극장 로비에 성금통이란 게 있어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감사의 표시로
얼마간을 넣는 그런 제도가 있다면 차비를 제외하고 지갑 속의 돈을 몽땅 털어넣었을 것이다.
영화도 좋았고,  그 큰 극장에 혼자 앉아 몰래 샌드위치를 먹는 재미도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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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1-1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름포럼에서 보신 모양이네요. 요즘 이상하게 가볍고, 흥미로운 영화만 보게 돼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타짜' 같은 거요. 보고 싶긴 한데 선뜻 마음이 움직이질 않네요.
바다코끼리 비계 샌드위치는 뭐죠? 사진 없어요?

로드무비 2006-11-1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님, 어라, 이미지가 뭐죠?
구경 가야겠다!
그 감독의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에 포함되는 감독이어서요.
바다코끼리 비계 샌드위치는 세븐 일레븐에 팔아요.
1700원.
(카메라를 아직 안 고쳐 사진은 못 찍었는데요.=3=3=3)

2006-11-12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2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11-1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코끼리 비계라고요??

2006-11-12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라 2006-11-1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도 개봉 하나요? 몇 주전 딱 한주만 걸린다 그래서 봤는데 그땐 사람들이
한 열 명은 됐던 것 같은데... 조조로 영화 시간 삼십분 전에 도착하니까 매표소
직원이 안 와서;; 저도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랑 커피를 사 먹었었던 기억이... 다 먹을 때 쯤 되니까 직원이 오더군요.. 소무도 한번 보고 싶네요

로쟈 2006-11-13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는 지난주엔가 EBS에서 나왔었는데, 녹화해놓고 아직 못 보고 있습니다. 그의 신작 <스틸라이프>를 얼마전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올해 최고의 영화로 미리 못박아놓았더군요...

에로이카 2006-11-13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영화 얘기들에서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이거예요. 주로 낮에 혼자 보신다는 것.. 저는 그, 영화와 님과 둘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참 멋져보인답니다. ^^

로드무비 2006-11-1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조조로 영화 보는 게 참 좋아요.
퇴근 후 애인이랑 만나 영화 보는 것(상상하고는...)과 혼자 조조로 보는 것
둘 중 택하라면 조조로 혼자 보는 것.
남들 눈에는 궁상맞아 보일 텐데 저는 그 순간이 너무 흡족합니다.
특히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만났을 때.^^

로쟈 님, 언젠가 정성일 씨가 지아장케 영화를 국내에서 개봉하게끔
압력을 넣자는 무슨 운동을 펼쳤던 것 같은데.
<임소요>였던가? 아무튼요.
<스틸라이프>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라 님, 영화를 보고 나오니 잘 차려입은 노인분들이
매표소 맞은편의 콜라텍으로 몰려들 가시더군요.
전 나중에도 영화관을 선택할 겁니다.
님은 무슨 샌드위치 드셨어요? 헤헤~~
<소무>는 비디오로도 안 나와서......기회 되면 꼭 보시길.

브리니 님, 체스터 브라운의 <똑똑 리틀맨>에 나오는
만화 제목입니다.
제가 사먹은 건 참치샐러드 샌드위친데 바다코끼리 비계 샌드위치라고
생각하며 먹었어요.

아이슬란드 영화 님, '노'로 시작하는 제목이죠?
저도 그것 보고 싶었는데 겨울, 눈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또 좋아하거든요.
뼛속까지 얼어붙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텅빈 극장에서 스쳐지나며 만나게 되길 저도 기대합니다.^^

예매하신 님, 뭐라도 한 마디 꼭 쓰고 넘어가고 싶은 영화가 있어요.
님은 어떻게 보실지.
신기루 같은 세상 속의, 명멸하는 불빛 속의 초라한 삶.
꼭 부둥켜안고 싶더군요.
힘내서 글 쓰세요.
자신감을 가지고.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nada 2006-11-1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볼 때 서민적인 소품을 좋아해요. 모든 게 짜증스럽고 무의미할 때 그런 보온병이나 잘생긴 책, 나무 숟가락 같은 데서 조금은 더 참아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로드무비 2006-11-1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품, 하다못해 300원짜리 라이터 하나에도 눈길을 빼앗기고
위안을 얻을 때가 있어요.
ET 모양의 귀후비개가 대표적인데 몇 년 전 미국 출장 다녀온 사람이
선물했거든요.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분실.
이번에 짐정리할 때 어디선가 튀어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보온병들이 하나같이 뭉툭하니 볼품이 없는데
물은 얼마나 뜨거운지, 왜 김을 보면 알잖아요.
그 온기가 흐뭇하더군요.^^

2006-11-13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ooiiilll 2006-11-1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추위가 몰려왔던 지지난 주말, 혼자 노이 알비노이를 보며 화면을 넘어 전해지는 눈보라와 외로움 덕에 어찌나 바들바들 떨었던지, 극장을 나서자마자 국일관 옆 식당에서 곰탕에 소주로 몸을 녹였습니다. 영화 속 노이에게도 소주 한 잔 권해주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이번 주에는 세계를 꼭 봐야겠는데 아이코! 수요일에 막을 내리는군요;;

로드무비 2006-11-1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트 님, '노이 알비노이' 예고편만 세 번 봤어요.
보고 싶은 영화.
곰탕에 소주라니, 멋져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가수 싸이 누나가 동대문에 천 뜨러 갔다가
근처 생선구이 골목에서 대낮에 혼자 소주 마시며 고등어 갈비 뜯는 것 보고
반했었는데.ㅎㅎ
<소무>만큼은 아니지만 <세계>도 좋았어요.
큰 화면으로 보셨으면 좋겠네요.

20년도 더 된 코끼리보온병 님, 이번주도 괜찮고 이사한 후도 좋습니다.
편한 대로 하셔요.^^


2006-11-15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취했답니다 님, 따로 메모 안 남기셔도 돼요.
아침에 해장은 하셨어요?
풀무원 생라면도 좋던데.....^^

2006-11-15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5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6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1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포트인지 보온병인지 탐나더군요.
심플하고 뭉툭한 선에 끌립니다.
너무 날카롭지 않은.
조금 찌그러진 듯한 것은 더욱 좋고요.
새로 올린 사진들 보고 왔습니다.^^

눈 살짝 찌그러진 커플 님, 사진은 이미 서랍에 모셔뒀답니다.=3=3=3

쎈연필 2006-11-1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왓! 로드무비님 정말 감사합니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공원 속 세계, 저도 낙원 같은 극장에서 보았어요...

로드무비 2006-11-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마 님, 반갑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몇 군데를 얘기해 보라면
바닷가와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유리창이 큰 횟집이라고
우선 떠오르는 대로 지껄여도 큰 무리는 없으렷다.
바다를 눈앞에 보며 마시는 술과 회와 매운탕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마음 속에서 이제 막 애인으로 승격하려고 하는 남자와 1박 2일의 바닷가 여행을 떠난다.
바닷가에 도착, 민박이든 모텔이든 숙소를 정해놓고 나와서 어슬렁 해변을 걷는다.
그리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먹고 마실 횟집을 고르는 것이다.
횟집을 정하고 수족관이나 고무다라이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횟감을 고를 때,
그리고 창가의 자리에 마주하고 앉을 때의 설렘.

'쾌락을 미리 준비하지 말라'는 뜻의 성경 말씀도 있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그게 무슨 소용이람!
열애중인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시간 그곳에 단 둘이 도착, 누군가와 구체적으로 마주앉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횟집 유리창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정답게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날만은 
남의 어떤 로맨스도  부럽지 않다.

홍상수 감독의 일곱 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을 보았다.
서해안 해변은 다소 황량했고 바닷물은 잿빛이었다.
이름만 펜션인 수상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대낮의 횟집에 들어가니 테이블을 밀어놓고 자고 있는 종업원이 둘.
남의 단잠만 깨워놓고는 불친절하다며 욕을 하고 나오는 김승우와 또
종업원에게 사과하는 게 인간의 도리라고 바락바락 대드는 후배 김태우의 꼬락서니.

시나리오 구상차 들렀다고 하나 주인공 김승우의 관심은 오직
후배가 데리고 온 여자친구.
후배를 따돌리고 그녀와 잘 수 있을까?
(고현정과 김선미의 리얼 연기와, 무엇인가를 과감히 벗어던진 모습에 감탄감탄.)

모든 것이 꼬질꼬질하다.
현실은 이렇게 누추하고, 알고보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똥만 든 게 아니냐고,
이기죽거리는 듯한 홍상수의 영화.

타인의 위선과 가식만 까발긴다면 몹시 불쾌할 텐데, 홍상수는 먼저 자기 옷부터 벗는다.
그리고 냄새 나는 속옷을 보여준다.
독한 술 한잔이 절로 생각나는 그 냄새가 싫지 않다.

**40자로 평을 쓴다면......

여배우에게서 섹시함을 싹 없앤,
'민박 집의 아침,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낯짝 같은' 홍상수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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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세 등급이 아마 홍상수 감독 영화사상 처음이라고 하죠...^^

로드무비 2006-09-1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격적인 베드신이 없어서요?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

로드무비 2006-09-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신의 정욕을 도모하지, 아니, 미리 계획하지 말라,는 구절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쾌락과 같은 의미 아닌가요? 올리브님?
너절한 페이퍼에 성경말씀 그대로 옮기면 생뚱해서
제가 받아들인 의미로 바꿔 썼어요.^^

겨울 2006-09-1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우의 저 엉거주츰 포즈라니, 영화마다 등장하는 남자 배우들의 모습이 묘하게 닮았어요. 아님, 닮은 꼴로 만드는 건가요? 홍상수표 고현정의 연기도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6-09-1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더 넓은 뜻? 그렇군요.

우울과몽상님, 그 역할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한편으로 약간 수상한 기분까지 들더군요.
김상경도 그렇고 김승우도 그렇고 멀쩡한 배우 이상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데, 본인도 모르던 모습이 나온 게 아닐까요?

건우와 연우 2006-09-1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지난 바닷가 초라한 횟집에서 먹던 소주를 떠올리게하는 페이퍼네요.
그때 내앞에 있던 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로드무비님의 글은 잊고있던 기억을 종종 심하게 흔들어 깨우시는군요...^^

치니 2006-09-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과의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 중간에 나왔던 이미지 그림, 역시나 꽤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더군요. 틀을 깨고 조금 더 벗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이것이 일곱개 영화 모두 공통이라는 거 같아요.
베드신이 덜해서 서운했을 관객들을 위해 위로를. ㅋㅋㅋ

비자림 2006-09-1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니 영화를 보고 싶은 충동이 모락모락 이네요^^

로드무비 2006-09-1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저도 그 인터뷰 재밌게 읽었어요.
여배우에게서 섹시함을 싹 없앤, 아침의 민박 집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얼굴 같은 홍상수의 리얼리즘이
저는 너무 좋아요.^^
(40자 평으로 페이퍼 말미에 덧붙일랍니다.)

건우와 연우님, 언제 철지난 바닷가 초라한 횟집에서
님과 한잔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댓글입니다요.=3=3=3


비자림님, 전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하루(春) 2006-09-1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재미있죠? 저도 재미있었어요. 웃겨서 중간중간 꽤 많이 웃기도 했구요.
특히 음악이 참 발랄해졌더라구요. 홍상수 영화 중 처음으로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아요.

2006-09-13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14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6-09-14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박 집의 아침,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낯짝 같은'
-------> 홍상수의 리얼리즘을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해 주시다니... 지는 항상 놀라기만 하는군요.

로드무비 2006-09-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댓글로 달다가 제법 그럴싸해서 페이퍼 꽁무니에
갖다붙였습니다. 저 잘했죠? 헤헤~~

9월말이나 10월초 님, 그럼 부탁드립니다.^^

화사한 가을님 파이팅!!^^

하루님, 정용진이라던가요?
저도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이름 확인했습니다.
음악이 좋다는 얘기 듣기도 했고요.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가 제일 재미없었어요.^^

kimji 2006-09-1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님에게 인사를 드렸던 적이 있었던가요? 워낙에 소심, 소극적인 척을 하며 댓글을 잘 남기지 않는 게으름뱅이인데, 오늘은 이렇게 인사를 아니 드릴 수 없는.
ㅡ '민박 집의 아침,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낯짝 같은' 홍상수의 리얼리즘
이라는 표현 때문에. 아, 아! 감탄만 하다가, 감탄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인사를. 저야, 워낙에 님의 서재를 잘 드나들던 사람이었다는 고백을, 또한 이 기회에;;

로드무비 2006-09-1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mji 님, 반갑습니다.
플레져님 방에서 더러 뵈었어요.
'숙취의 낯짝'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냥 저렇게 썼어요.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얼굴'이라는 표현보다
'낯짝'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
앞으로도 그의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극장에 달려가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말 걸어주셔서 기뻐요.^^

니르바나 2006-09-1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는 특히 이런 구도를 좋아하나봅니다.
'이인삼각경기'
영화를 너무 모르니 로드무비님의 글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 익숙한 이름^^

로드무비 2006-09-1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삼각경기',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있어 깜짝 놀랐잖아요.ㅎㅎ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을 몸이 안 따라가 줍니다.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데.
그리고 솔직히 말해 공부할 만한 글은 아니죠.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것에 불과한데요.^^

세실 2006-09-1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얼한 리뷰보니 영화가 꼭 보고 싶어집니다.
다음 주말에 친구랑 봐야 겠습니다.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네요~~

로드무비 2006-09-1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영화 많이 보시나봐요.
영화 보기엔 또 가을이라는 계절이 쥑이지요. 헤헤, 뭔들!
이 영화 좋았어요.^^
 


이스라엘 소년 나다브와 팔레스타인 소녀 마이가 만났다.

 

오늘 새벽 여섯 시,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2005년 회고전'의 하나로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이  팔레스타인 어린이들과 만나서 평화 모임을 결성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기록한,  <내 마음속의 작은 평화>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예루살렘에 사는 한 종군기자의 아들 12세 소년 나다브는 어느 날 등교길에
바로 눈앞에서 테러로 폭발하는 버스를 목격한다.
그 버스에는 자기처럼 학교에 가는 중인 아이들이 주로 타고 있었다.

나다브는 지금 당장 자신이 무엇인가를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친구들과 테러와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어린이들의 모임을 결성한다.
그런데 모금활동에만 너무 치중하는 나다브를 보며 모임의 멤버인 샤이와 노아는
"돈이 다가 아닌데!"하며 뒤에서 소근소근.

이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는 의원 등 몇 어른을 졸라 어느 날 시내의 허름한 호텔에서
팔레스타인 아이 둘을 소개받는데 억지로 끌려나온 아이들인 듯, 어리버리하다.
기대에 부풀었던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그 모양이라니, 하고 실망하는 나다브와는 달리
똘똘한 소녀 노아는 "그애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마음 깊이 이해를 하는데.

다음 모임에는 다행히 '마이'라는 똑부러지는 소녀와 평화와 연대에 관심 있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나온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애초의 목적인 평화 모임이고 나발이고  간에
놀이를 통해 급속도로 친해지고 모임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마이는 책읽기가 취미이고 평화를 위해 일하다 20년간 옥살이를 한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는 소녀.
어색한 첫 만남에 주눅들지 않고 바로 아이들만의 놀이로 어울려
경계를 급속도로 허물어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각 나라의 수도 알아맞히기 같은 조금은 학구적인 놀이를 제안하는 성숙한 소녀 마이.
마이는 몇 번인가의 모임 후 나다브에게 앞으로도 이렇게 만나서 계속 놀기만 할  건가 묻는다.

나다브와 마이는 옆 방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해 목청을 높여 의견을 나누는데.....
샤이와 노아 등 남겨진 멤버들은 정치적인 이야기로 핏대를 세우느라 의견의 접점을 보이지 못하는
두 소년소녀에게 반발하고 나선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다브는 말하지만
친구들의 눈에 그는 꿈과 현실의 차이를 모르는 철부지로 비친다.
모임이 결성된 후 몇 달이 지나 아이들의 든든한 지원자였던 의원이 선거에서 패하여
의장직에서 물러난다.
노아는 부모님의 뜻대로 '영재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해서 앞으로 모임 참가가 어렵다고 하고,
텔레비전 뉴스 속에는 양국간의 테러와 보복으로 전시와 다름없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소개되는데.

모임이 거의 와해 되기 직전 마이의 초청으로 팔레스타인에 있는 소녀의 집을 방문하는 나다브.
마이는 조국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나다브를 데리고 검문소로 데리고 가는데.
"빌어먹을 카메라는 치워!"라는 군인들의 호통과 사나운 기세에 둘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그곳을 급히 빠져나온다.

소녀의 집으로 돌아와 팔레스타인의 전통놀이를 마주앉아 하고 노는 나다브와 마이.
이 장면을 보는데 이상하게 감정이 복받친다.
20년 옥살이를 마치고 노인이 다 되어 출옥한 마이의 아버지가 문 앞에 앉아
둘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Peace for the Future'  모임은 그 뒤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이답지 않게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소년 샤이는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노아는 부모님의 소원대로 영재 프로그램 과정을 밟는다는 자막과 함께.
샤이의 13세 성인 신고식 '바르 마츠바'  파티가 열리는 날,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잊고
신나게 뛰어논다.

12세의 어린이들의, 테러와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고의 노력과 
연대를 위한 구체적인 모임 결성 과정은 어른들을 뺨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과 반목도......

제일 신기했던 건 아이들은 그 부모의 의식을 거의 그대로 닮는다는 것.
그리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소녀 마이는 역시 남다른 데가 있었다.

(2004년, 이스라엘,  에얄 아브네리 감독.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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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7-1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함께 올려주시니 마치 제가 본 것 같은 느낌이네요...^^
세상 곳곳에 참 얼마나 아픔이 많은지... 정말 어렵습니다.
그 부모의 의식을 거의 그대로 닮는 것은, 올곧은 부분만이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로드무비 2006-07-1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 나어릴때 님,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조금 전에도 피클스, 라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솔직히 아이가 부모를 닮는다고 하면 전 가슴이 철렁합니다.
껍데기든 속이든 다 자신이 없어서요.;;

waits 2006-07-11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주하 껍데기가 괜히 그렇게 생겼을라고요.
요즘 주하 사진 보면서... 님께서 설명하신 외양에 의구심이 물밀듯이...^^;;;
아, 밤에도 들어오시네요. 반가워서요. 히히.

로드무비 2006-07-1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전에 생각하니 제가 올린 이 페이퍼가 줄거리 요약 정도지
시청소감이라 할 건 없겠더라고요.
제목 슬쩍 고치러 들어왔습니다.
댓글 달렸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제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세요.
거짓말은 잘 안하니까요. 히히~
 


고다츠 밑에 발을 넣고 책을 읽는 남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1999년 작 <이웃집 야마다 군>.
4컷 만화 스무 편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데
유아블루님 페이퍼 아니었으면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나는 얼굴을 넙데데하게 그린 명랑만화 풍의 만화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아따맘마나 이 만화 속의 뚱뚱한 안주인 마츠코 여사를 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너무 예쁘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야무지고 남자들에게 인기있는 여주인공은 밥맛.)

"엄마가 몸살이 났으니 오늘 저녁은 도시락으로 해결하자."
아빠의 말에, "나는 깨주먹밥", "나는 참치덮밥", 그렇게 가족들이 자신이 먹을 도시락을 주문하는데,
안방 문이 열리며  이불 속 폭탄 맞은 얼굴의  엄마가 절규하듯 말한다.

"내 껀 튀김덮밥!"





엄마아빠의 젊은 시절, 이른바 신혼여행중이다.


--기나긴 인생항로에서 가장 두려운 건 무엇일까요?
실은 아주 아주 잔잔해져 평온한 수면 위입니다.
긴장이 풀어져 두 사람이 서로 쥐었던 손을 놓을 때......


내레이션으로 가족관계나 인생에 대해 다분히 설명을 늘어놓고 싶은 눈친데
그 전하고자 하는 교훈이 별것 아니어서 도리어 거슬리지 않는다.
가령 젊은 부부들에게, 너무 큰 책임감에 미리 겁먹지 말고 아이를 낳으라는 것.
아기는 몇 번 품에 안아주면 다 자라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면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바쇼, 부손 등의 하이쿠를 적절하게 인용하며 장면이 전환된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으로서는  흥행에서 엄청난 실패를 기록했다는 이 애니메이션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페이뷰는 뺐다 꽂았다 하는 서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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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6-2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음에 들었어요...

urblue 2006-06-2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러 서울 나들이 하신 거여요?
저랑 애인은 큰 소리로 막 웃었는데, 어떠셨어요? ^^

해리포터7 2006-06-29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겠네요..꼭 저의 미래모습인것 처럼 느껴집니다..저 엄마요.ㅋㅋㅋ

플레져 2006-06-2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따 맘마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케이블에서 마주치면 일단 앉아서 보고 있어요 ^^
저도 넙데데한 얼굴의 만화 좋아해요. 아..닌가? ㅎㅎ

DJ뽀스 2006-06-2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엔피란 걸 시작했을 때 지브리에 미쳐서 천공의섬라퓨타부터 야마다군까지 다운받아 구워놨답니다. 정말 주옥같은 작품들이죠! 전 특히 귀를 기울이면을 좋아해요!(단 하나를 꼽기가 정말 힘듭니다만..) 이 작품도 설렁설렁 봤는데 이 참에 극장에서 보려구요 ^^:

미완성 2006-06-3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거 좋아하시는 거 보면...'추억은 방울방울'도 재밌게 보실 거 같은데. (아, 보셨나요?) 농촌을 좋아하는 처녀의 추억과 사랑 이야기인데요. 참 따스해서 좋았답니다.

blowup 2006-06-30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두요. 이 애니 너무 좋아해요. 소장해서 우울할 때마다 보면서 키득거리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의 하이쿠예요.(방명록에 인사 남기려 했는데, 갑자기 너무 반가운 기분이 들어서요.^^) 잘 지내셨죠?

로드무비 2006-07-0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우울할 때.
어쩜 그리 저와 같은 생각을!
아무튼 반가워요.^^

니노밍님,
언젠가도 말씀하셨죠?
그런데 전 '귀를 기울이면' 하고 두 편이 헷갈려요. 항상.^^

DJ뽀스님, 아무튼.ㅎㅎ
극장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네요.
부지런을 좀 떨어야 할 듯.^^

플레져님, 제가 하도 나발을 불어서.ㅎㅎ
넙데데한 얼굴 하면 로드무비가 연상되는
그런 경지 같은데요?^^

해리포터님, 전 바로 지금의 모습이랍니다.ㅋㅋ

블루님, 혼자 막 웃었죠.
여러 대목에서.^^
(용산 cgv에서 봤어요.)

건우와 연우님, 마음에 드셨다니 기분이 좋군요.^^
 

아마추어 비디오 아티스트인 크리스틴의 직업은 노인 도우미 택시 운전사.
어느 날 고객이자 친구인 마이클을 따라  신발가게에 갔다가 손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는
점원 리차드를 만난다.
그녀의 복사뼈 부근 구두에 쓸린 상처를 보면서 리차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작은 고통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마세요!"
크리스틴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리차드 이 남자 이상하다.
며칠 전 아내가 짐을 꾸려 집을 나가기로 한 날, 아내의 콧노래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건지
문밖으로 달려나가 자기 손에 기름인지 시너를 붓고 불을 붙이는데......
아내가 남겨두고 가는 두 아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려고 그랬다나?!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착란을 일으킬 것 같은 날들이 있다.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두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녀들.
너무 웃기는 건 이 아이들의 머릿속엔 섹스밖에 없는 걸로 나온다는 거다.
리차드의 동급생인 그녀들은 나름대로 멋을 부린 모습으로 동네를 배회하며
누가 더 남자에게 어필하는지, xxxx를 잘해 칭찬받는지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신기한 건 발랑 까진 것 같기도 하고 백치같기도 한 이 두 단짝친구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른들도 깜짝 놀랄만큼 섹스에 통달한 듯이 구는 그녀들, 막연한 욕망일 뿐,
구체적인 욕망이 아니다.

 



리차드네 이웃으로 피터를 마음에 두고 있는 소녀 실비의 혼수상자.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듯한 등장인물들 속에 유일하게
현실적이며 야무진 꿈을 품고 또 실천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한 대 패주고 싶었던 리차드.
용기를 내어 신발가게로 찾아온 크리스틴과 주차장까지 걸으며
그 한 블록의 거리를 인생에 빗대어 대화를 잘 풀어나가는가 싶더니.
얼굴빛을 싹 바꿔 크리스틴의 눈에 눈물이 핑 돌게 만든다.
인생에는 그렇게 무안한 순간들이 있는 법이지.
하지만 불쌍한 놈은 리차드! 크리스틴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러 간 화랑의 복도에서 운좋게 큐레이터와 마주치는데
비디오테이프를 직접 주자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분실위험이 있다며......
아마도 이 장면 때문에 '디지털화된 시대의 인간소외와 파편화된 어쩌고'하는
평들이 쏟아져 나왔나 보다.
밉쌀스러워 보이던 이 큐레이터, 은근히 귀엽다.
컴퓨터로 채팅을 나누다 '환상적인 섹스'를 꿈꾸며 약속장소로 나오는데
그 상대가 리차드의 일곱 살 아들이다.
내가 제일 동일시를 한 인물이 바로 이 여자!

 


어느 날 엄마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고 의붓아빠와 살게 된 형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세상은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실낱같은 관계로 보이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 컴퓨터 자판의 부호만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때로는 오려두기와 이어붙이기 기능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
일곱 살 소년이 채팅상대인 40대의 여인과 공원 벤치에서 만나는 장면처럼......
조금만 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허심탄회하다면, 이 세상에서 친구를 사귀고 연인을 얻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SOS 신호를 못 본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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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2-1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시러 대학로 다녀가셨군요 ^^
느낌이 좋은데요?

blowup 2006-02-1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XXXX , 이 네 자가 뭘까 궁금한데요.
영화 보고, 왜 로드무비 님이 큐레이터에게 동일시를 했는지 알아내야겠어요.

urblue 2006-02-1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XXXX 이 네자가, 혹시 XXXX가 아닐까 추측.
어흑. 언제 보러 가나...

숨은아이 2006-02-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내게 "아무리 작은 고통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마세요!"라고 말해준다면 저도 당장 사랑에 빠질지 몰라요.

로드무비 2006-02-1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네. 님이 추측하신 그 단어 맞아요.ㅎㅎ
영화 무지 좋던데......빨리 가서 보시라요.^^

나무님, 동일시 내용을 뭐라뭐라 썼다가 지웠습니다.
나무님이 한 번 알아내 보세요.
xxxx가 궁금하시면 전에 올린 미란다 줄라이 감독 인터뷰 보시고요.^^

mong님, 땡기는 영화는 다 이유가 있어요.
사람도 그런 것처럼.^^

로드무비 2006-02-15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저도요!
그리고, 상대의 이성적인 매력이 아니라 그의 상처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에 호감을 품는 주인공들이 좋았어요.^^

플레져 2006-02-1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리뷰는 내일 읽을게요! 저도 내일 보러가요~ ^^
그래도 몇 줄 스크롤 내리면서 봤어요. 한 대 패주고 싶었던 리차드...ㅎㅎㅎ

DJ뽀스 2006-02-1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더 볼까 말까..고민중입니다. ^^:
(시네마테크에서 3월초에 한다네요.)

로드무비 2006-02-1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도 개봉중인가요?^^

플레져님, 드디어!^^

비로그인 2006-02-1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젤 윗 사진에 담겨진 신발은 고, 고무신인가요? 저런 거 맨발에 신고 촉촉한 흙길을 혼자 산책하고 싶어지네요, 머릿속을 텅 비운 채. 불쑥. 바닥에 흙이 좀 많이 달라붙으려나..영화가 아니 페퍼가 쓸쓸한 느낌이 들어요.

로드무비 2006-02-16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단화예요.
키만 좀 크면 저런 구두가 딱 좋은데.ㅎㅎ
이 영화 속의 하늘, 햇살, 엷은 빛의 대기......마음에 들어요.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처럼.
저 오늘 꽤 시적이죠?
복돌이님의 예술적인 댓글 때문에...^^

산사춘 2006-02-1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타인의 SOS 신호를 못 본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그러게요...

동그라미 2006-02-1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라고 하다가 울 신랑의 반응 재미없당~~ 재미있는가봐요..봐야겠당 ㅠ.ㅠ

로드무비 2006-02-1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어주는 엄마님, 남자들은 대개 별로라고 할 걸요?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이 어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지니까!^^

산사춘님, 님은 혹시 급한 일 있으면 제게 타전하세요.
제깍 알아모시겠습니다.^^

2006-02-23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2-24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호와 공간님, 책은 오늘 도착하지 않을까 싶은데.
저도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있어서 그냥 돌려드리는 것뿐.^^

2006-02-26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2-26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살림총서님, 책 정말 귀엽죠?
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