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살림지식총서 4
김형인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의 국교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는 국교는 없다. 다만 불교를 제1종교로 보는 통계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기독교를 제1종교로 보는 통계치들이 훨씬 더 많다. 통계치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그러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도덕,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무신경하다는 점이다.

  김형인의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본 노예제'는 특별한 책이다. 보기 드물게 기독교가 노예제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 내부에서 노예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독교내부에는 이 문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세계 여러나라에서는 종교가 사회적 문제나 윤리적 문제에 간여를 한다. 낙태의 문제 혹은 빈민의 문제 등. 과연 미국의 기독교는 노예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미국의 노예제에 있어서 정치·사회적 맥락과 더불어 기독교 또한 사상적 배경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성경을 두고 심각한 대립을 이루기까지 했다. 

  퀘이커교도들이나 메노파에서는 노예제를 강하게 부정하였다. 노예매매방지를 위해 힘썼으며 정치적인 입장 표현 또한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교파는 기독교계에서 바깥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력이 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개신교(침례교, 감리교, 장로교)의 입장은 분명하게 갈리었고, 장로교에 경우 남장로교의 경우 성경의 해석을 들어 노예제를 두둔하고 나섰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애초 성경은 노예제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흑인들은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로 셈과 야벳족의 노예가 되었음을 예를 들었고, 아브라함의 이주시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점 등  많은 구약의 구절들에서 노예제의 근거를 찾아내었다. 또한  신약에서도 종들의 복종의 의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사도 바울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께 복종할 것을 말하는 장면 등) 성경이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노예제를 반대하는 개신교에서는 성경의 구체적 사례보다는 성경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의견과 신약의 황금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 6:31)을 들어 노예제는 비성경적임을 주장하였다.

  이런 논쟁들 속에 노예들의 생활속에서 기독교는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 일요일이면 교회를 통해 예배의식에 동참할 수 있었고(물론 예배속에서도 분리되었지만) 나름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다. 때로 선한 목회자들에 의지를 할 수 있었던 측면과 몇 몇 흑인 운동가들은 교회를 통해 성장하거나 기독교적 배경을 노예해방운동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의 이중적인 태도를 볼 수 있는데 결혼식 주례때 목회자들이 항상 사용하는 '이에 두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 결합되었으니 결코 인간의 힘으로 분리할 수 없다'라는 말을 생략하였다. 

  요즘 들어서는 미국의 노예제를 정치·사회적인 측면보다는 경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수정주의 관점이 대두되고는 있지만, 당시 노예제의 거센 논쟁을 기독교 또한 빗겨나갈 수 없었고, 각자 노예제를 반대하는 혹은 찬성하는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두 얼굴을 가졌다. 같은 성경과 같은 하나님앞에서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 맞게 하나님의 뜻임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런 논쟁은 단순히 노예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라고 생각된다. 여성차별과 관련하여 한국의 기독교는 여전히 여성차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성 목회자에 대해 어떤 남성 목회자는 '어떻게 기저귀를 찾고 하나님의 제단에 오를수 있느냐?'며 심각한 여성 차별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성 차별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너리티 역사 : 혹은 자유의 여신상 살림지식총서 3
손영호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국가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혈연과 지연이 아니라 이념에 의해 창설된 최초의 국가가라는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담고 있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 추구의 권리가 바로 미국의 건국 이념인 것이다. 미국은 또한 '이민의 나라'로서 세계 각처에서 다른 피부색과 국적, 여러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책 5쪽)

 

 저자 손호영은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의 하나인 '자유의 여신상'을 소재로 미국 비주류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훑어보고 있다. 저자가 책 앞부분에서 잘 지적하 것 처럼 미국은 자유라는 이념이 기반이 된 나라이다. 그런 이념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자유의 여신상이다. 그런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기까지 순탄하지 않은 과정과 여러 다른 의미 (미국의 부정적인 반응, 프랑스 정치상황의 반영, 애초 흑인으로 스케치된 여성상이 백인으로 바뀌는 등)를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미국을 상징하게 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근간이 되는 이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목숨을 건 희망없는 이민자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볼 때 그것은 미국 땅에 도착했다는 것,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이민자들의 희망을 의미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지척에 둔 엘리아스 섬에서 이민수속을 밟고 그들에게는 미국 땅을 밟는 영광이 허락된 것이다.

 

 그런 영광을 얻는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개척할 땅이 많았던 미국은 계속된 이민자들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는 임금노동자로 살아가는 초기 이민자들에게는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 초기 이민자들이 이후 이민자들을 박해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런 현상이 이민사 전체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었는데 단순히 임금노동자들의 생존권문제로만 대두된 것이 아니라 여러 인종, 정치적인 상황들이 복잡하게 엮이면서 사회적, 법률적 박해로까지 이루어졌다.

 

 현재 미국의 중심세력을 일컫는 WASP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 처럼 기근을 피해 이민온 아일랜드인에 대해서는 카톨릭이기에 심한 박해를 하였다. 많은 상점들이 '개와 아일랜드인 출입금지' 등의 간판을 내밀었다. 이후 이민사를 장식한 남부유럽인들(이탈리아, 그리스 등)에 대해서는 앵글로 색슨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였고 영어시험을 통해 이민을 허가하면서 서부 유럽인들외의 유럽인들에 대한 제제를 시작하였다. 유태인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시아인들 역시 얼굴색이 다른 이유로 박해의 희생자가 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분명 비주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19세기 노예해방으로 흑인의 문제가 해결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내재하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철폐된 것은 1964년 민권법안이 통과되면서 부터이다.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기치를 내걸로 생활속에서의 차별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지속되었다. 여성의 권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부끄럽게도 미국의 여성의 권리는 1963년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임금과 보장받는 '동등 지불법'이 통과되면서 부터 본격화되었고 금녀의 상징이던 대학은 1969년 프린스턴, 예일 대학을 선두로 대부분의 대학이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였다. 20세기 중반이 넘도록 미국의 대학은 여성에게는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계급사회였던 서구 유럽과는 달리 일찌감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던 나라로 평가받는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등돌린 자유의 여신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의 좌파와 우파 살림지식총서 1
이주영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0년대에 들어서 출판계에서 주목할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총서의 발행이다. 예전의 삼중당 문고와 같은 소설 위주의 문고본이 아닌 약간은 디스커버리 총서와 유사한 총서에 대한 출판이다. 물론 1990년대 후반 문지사에서 '문지스펙트럼'이라는 이름으로 발간을 한 적이 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근간의 '살림지식총서'와 '책세상문고'는 다양한 주제와 가볍지 않은 내용과 성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살림지식총서는 첫 회분으로 미국을 선정하였고, 그 첫편이 이주영이 쓴 '미국의 좌파와 우파'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 책은 총서의 대표로는 부족한 것이 많아 아쉽다. 미국은 좌파와 우파로 나누기가 힘든 나라이다. 서구 유럽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실재하는 좌파의 세력을 가져보지 못한 나라이다. 그러기에 미국에서 특정 세력을 좌파로 규정하는 일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유럽에서는 사회당이 꽤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회당이 있고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도 진보당이 존재했던 역사에 비추어 진보적인 정치집단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미국에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한국미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미국 역사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듯 하지만 그의 지식적 성찰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할 만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제목과는 달리 신좌파와 신우파에 그 내용이 한정되어 있으며 실제로 좌파와 우파를 다룬 5개의 꼭지(총 7개의 꽂지)중에 좌파에는 1개의 꼭지만이 할당되었을 뿐이다. 미국의 진보와 보수를 아울리지 못하고 일부세력과 극단세력에 대해 고찰하고 있어 제목과는 달리 미국의 아주 작은 구석을 조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책 초반에서 짚고 넘어가고 있듯이 기본적으로 미국은 개인의 자유와 프로테스탄트 윤리 그리고 자본에 대한 보장으로 생겨난 나라이다. 물론 저자는 평등의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국 건국 초기 부자들만 정치를 해야한다는 등의 의견과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것을 보면 실재하는 평등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곧 미국은 애초부터 보수적인 배경속에서 출발하였고, 좌파가 발 디딜 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좌파의 대두를 소개하면서 대공황 시절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즉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절대 침해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에 정부가 손을 대기 시작한 시점부터 형성된 세력이 좌파이고, 1960년대 기존 사회에 대해 대항하며 특히 베트남 반전운동에 기수된 세대를 신좌파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경제 대공황 시절 심각한 가난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기업들의 경제활동은 보장받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역시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경제활동의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고 본다면 당시 세력은 좌파세력이라기 보다는 보수우파내에서의 방법론의 충돌일 뿐이다. (수정주의 경제학의 대가인 케인즈 역시 보수적인 경제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이에 반해 대립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우파는 신우파와 극우파로 한정되어 있다. 저자가 잘 짚어내듯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은 신우파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들이 실제 백인 중산층에 대한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는 점 등에 불만을 느낀 그들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적 생활방식으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특징들을 짚어내고 있다.

 그리고 백인우월주의와 기독교적인 배경을 두고 있는 극우파에 대한 설명 또한 읽을 만 한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저자는 심각하게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실제 미국의 보수 우파들은 이런 극우파에 대한 분명한 선긋기를 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무력진압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 한나라당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건강한 보수를 위해 극우파와의 분명한 선긋기를 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대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은 극우파와 보수사이의 구분이 불분명할 정도로 뒤섞여 있으니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말하고 있다시피 미국인의 72%가 자신의 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72%의 보수우파와 28%의 중도보수를 대변하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좌파 지식인들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미국의 신우파와 극우파에 대해서 간단하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좌파와 우파를 동일한 선상에 놓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ook 2007-10-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당히 냉철한 분석이십니다. 미국내 좌파가 유럽이나 다른 나라의 좌파와는 괴를 달리하는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나 마지막 부분 72%의 보수우파와 28%의 중도보수라는 평에는 동의하기 힙들군요. 미국의 대부분이 중산층에 의해 구분되는데, 이중 상당수가 보수에 속한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중산층이 사안에 따라 좌파적인 사안에 지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소수의 좌파세력의 무던한 노력이 깔려있다고 믿습니다.

雨香 2007-10-03 23:51   좋아요 0 | URL
책에서 보면 72%의 미국인이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72%를 보수우파로 본 것이지요. 중산층이 개혁적인 사안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맞습니다만, 좌파적인 사안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미국내에 소수의 좌파가 있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0%라고 보면 됩니다. 세력이 아니라는 이야기이지요. 최소한의 소수 좌파세력은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포에 사라져버렸죠. 물론 중산층이 개혁적인 사안에 찬성합니다만 그 사안들을 보면 좌파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최소한의 것들이죠.
 
최초의 세계 제국, 미국 20세기 박물관 시리즈 4
피에르 제르베 지음, 소민영 옮김 / 부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20세기 박물관 시리즈>의 네번째 책인 이 책은 미국의 20세기를 다루고 있다. 일단 제목에서 정하는 바와 같이 '최초의 세계 제국'이라는 단정이 인상적이다. 물론 최초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미국은 가히 20세기의 제국이라는 부분에는 동의한다.
 
 이 책의 특징은 시리즈 제목에서도 주목하고 있듯이 첫째, 20세기의 미국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 흔히 볼 수 있는 연대기식이나 이야기식으로 전개하지 않고 주요사건과 인물별로 다루고 있다. 또한 참고서적과 같은 깔끔하게 구성된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20세기의 미국이지만(대공황,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 실상 미국의 20세기를 우리는 모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고서적으로 삼을만 한 책이다.  물론 미국 20세기 전반을 다루고 있는 개괄서는 아니다. (미국사를 다룬 책과 함께 읽는 다면 굉장히 유익할 것이다.)
 
 잠깐 책 내용을 살펴보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20세기의 주요사건들. 2부, 20세기의 주요인물과 신화. 그리고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3부, 20세기의 정리와 21세기의 전망.
 
 1부는 20세기 초 부터 현재 부시 대통령까지의 기간을 중요한 사건들 중심으로 관찰하고 있다. 미국의 20세기는 정치적으로는 기업가들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대통령 다운 대통령으로 20세기의 문을 연 프랭클린 루즈벨트로 시작하고 있고, 경제면에서는 미국의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포드식 경제시스템이 기반이 되었다. 20세기의 시작이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포드라는 점은 바로 20세기 미국의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미국 정치사에서 예외적으로 기업가들의 손에 휘둘리지 않았던 두 루즈벨트이기는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세계 제왕으로써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특히나 대서양과 태평양을 뚫어 동부해안과 서부해안을 연결해버린 파나마 운하(1904년)를 건설하고 그 권리를 갖는 과정은 약 90년 후 중동 석유에 대한 권리를 노린 전쟁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청교도적인 삶의 지향을 내세우며 바르고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낸 금주법시대는 자유주의의 겉모습속에 감춰진 집단주의와 밀주와 이를 더불어 성장한 뒷골목(알카포네가 성장한 시대) 사회는 20세기 미국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책의 2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 자본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록펠러가는 미국식 자본이 어떻게 사회에 화해하고 공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물론 미국 자본가들이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와 어울리는 것은 19세기 말 노동자와의 전쟁을 통해 자본가들이 얻은 경험이다. 사회를 인정하지 않는 자본은 생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경험을 무시한채 자본가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비난하는 언론과 교수들은 얼마나 무식한가? 인물편에서는 상당히 유익한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노동조합이나 지식인의 참 모습을 보여줬던 새뮤얼 곰파스와 윌리엄 듀보이스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디즈니의 이중적인 순수함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도심을 떠나 교외에 작은 앞마당 있는 미국식 중산층 주거문화를 만들어낸 레빗, 흑인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흑인임을 거부하고 싶어했던 성공한 마이클 잭슨을 통해 흑인의 이중성 등을 볼 수 있다.
 
 책의 3부에서 비로소 저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1, 2부에서 깔아놓은 미국의 여러 모습을 담은 역사와 인물이라는 사진들 속에서 미국을 정리하고 전망한다.
 [미국, 모델인가 재앙인가? / 자본주의 국가인가, 국가 자본주의인가? / 아메리칸 드림은 존재하는가? / 미국인들은 미국 모델을 믿는가? / 인종 차별주의인가, 다문화주의인가? / 세계에서 미국의 임무란 존재하는가?]
 특히 '자본주의 국가인가, 국가 자본주의인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 특히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야 말로 정부의 개입없이 기업들이 완전경쟁속에서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식 자본주의야 말로 국가와 기업간의 결탁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국가가 기업을 돕는 것 보다는 기업이 국가를 통제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미국 국방부의 연구산물임은 인터넷의 역사나 빌 게이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미국 기업들의 많은 강점들이 사실 국가의 막대한 지원속에 이루어진 성과물이고 이 성과물을 미국내 기업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완전경쟁과 시장경제체제이지만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간섭없이는 운영되지 않는 경제체제 자본주의라기 보다는 국가 자본주의라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따라야 할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나라이다. 뜯어보면 뜯어볼 수록 '이 따위 나라가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조화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로 보이지만 실상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나라이고, 인종차별이 심각한 나라이면서도(바로 며칠전 뉴올리올스 제나라는 곳에서 또 다시 인종차별사태가 발생했다.)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의 매력이 있는 나라이다. 물론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
이원복 책임제작 / 김영사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를 영어를 위한 책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상술에 눈이 먼 출판사가 제목으로 장난을 친 듯 하다. 영어에 대한 책이 아니라 미국의 주들에 대해 그리고 유명한 도시에 대해 설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주가 생겨난 배경, 주의 이름이 갖는 의미, 각 주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 혹은 문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미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갖을 만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원복 감수이기는 하나 이원복의 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첫째,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려는 점이다. 만화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주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지식에 대한 검증작업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에 대해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나에게 후반에 소개된 도시를 읽으면서 의아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상당량의 미국에 대한 원서를 읽었기에 몇 몇 도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정보가 과연 그 도시 혹은 주를 대표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시카고의 별명이 'windy city'인 것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다. 

둘째, 그림이 너무 조잡하다. 책으로 펼쳐내어 사람들이 사가기에 그림의 수준은 너무 형편없다. 이는 독자에 대한 기만이다. 

미국에 대해 쉽게 개괄되어 있는 책을 찾기 힘들기에 반가운 마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 순간 부터는 책의 내용에 대해 의문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