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SE [dts] - [할인행사]
데이비드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두 명의 주요 남자 연기자가 결국 한 인물, '타일러 더든'을 연기 했다는 것을 영화의 맨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에드워드 노턴'이 '브래드 피트'였고 '브레드 피트'란 인물이 바로 '에드워드 노턴'이란 사람이었다. '진정한 한 인물, 인간, 존재 '타일러 더든'은 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현실에서 모든 인간들은 순간 순간의 행위나 판단에 있어서 갈등을 겪게 될 때가 있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동과 처신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님, 사회적 바람직성에서 벗어나서 내 몸 뚱아리가 편한 대로만 행동을 할 것인가?' 자아의 한 측면은 '극기복례'를 하라고 하고, 자아의 또 다른 측면은 개망나니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을 하라고 한다. 그 하나는 '에드워드 노턴'으로 대변되는 '현실에 적응한 자아'이며 또 다른 하나는 '브레드 피트'로 대변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마치 어린애 같은', 프로이드 식으로는 '이드'의 한 측면과도 같은 자아의 모습이다. 마치 브레드 피트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품행 장애',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처럼 진단 내려진 사람인냥 마구잡이로 행동을 한다. 얻어 맏고 때리며, 음식에 소변을 보고, 쓰레기와 병을 함부로 던지며, 각종 테러들을 자행한다.    

  영화에서는 한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과 악의 대립적인 내적 갈등을 바로 외부적인 두 존재의 갈등으로 표현해 낸다. 고전적인 상징이 되어버린 '치킬 박사'와 하이드 씨'식의... 긍극적으로 내적인 한 인물을 외부적인 두 존재로 표현되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영화의 맨 처음의 사회에 적응한 하나의 인격체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삶의 과정, 문명 생활에 대한 권태와 지겨움, 그리고 겉만 화려하게 치장된 사탕 발림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피곤을 느낀다. 그동안 자신이 추구 했던 가치의 상실과 허무함, 직업적 세계에 불만과 회의를 느낀다. '유행'과 '유명 메이커들'의 물건들은 그 무슨 허상의 무가치란 말인가? 그리고 혼자만의 반란이 시작된다. 사제 폭탄으로 집을 날려버리고 문명 생활에서 원시 생활로 돌아간다. 따로 떨어져서 분리된 채 돌아다니던 두 자아는 영화가 진행될 수록 다시 통합된, 정상적인 하나의 인격체로 되는 과정을 모색해 나가려고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그리나 서로가 하나 임을, 하나 됨을 영화 속 현실에서의 자아인 '에드워드 노턴'은 인지하지 못한다. 통합된 인격 구조의 한 사람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는 이야기 한다. 절대로 '말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세번씩이나 다짐을 받는다. 자신과 함께 사랑의 행위를 나눈 여자에게 자신의 또 다른 본 모습을 숨기려는 이 남성의 심리는 무엇일까? 

  '정신 의학'과 '심리학'에서 이런 이상 행동의 유형을 '해리성 장애', '이인증'이라는 명칭으로 분류를 하는데, 사실 세상에 이런 인간은 없다고 한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임상의, 임상 심리학자들도 이런 인간들을 만나는 사례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실에 적응한 인간으로서 '에드워드 노턴'은 '브레드 피트가'가 '바로 또 다른 인간의 속성을 외부로 표출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브래드 피트'는 남남이고 타인인 존재이다. 그러나 '말라'에게 자신에 대해서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세번이나 약속을 다짐 받는 장면에서 악마적인 일탈적 존재인 '브래드 피트'는 '에드워드 노턴'이 바로 자신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암시를 준다. 그러나 정상적 인간으로서 '에드워드 노턴'은 자신 내부의 또 다른 일탈적, 범죄적, 부적응적, 악마적 자아의 측면을 부정한다. 자신이 억압한 무의식 속에서 나온 '악마적 자신', '브래트 피트'가 단지 떨어져 있고 분리되어 있는 남남으로서 서로를 이질적으로 대한다. 또 정상에 가까이 적응하려는 '에드워드 노턴'은 환시 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악막적 자아상인 '브래드 피트'를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정신분열증의 증상의 스펙트럼들이 나열 된다. '타일러 더든'은 지하 테러 집단의 수괴로서 자신의 과대 망상을 사회적 패배자들을 통해서 실현해 낸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이 환각 속의 혼자만이 '브래드 피트'를 '타일러 더든'이라고 볼 수 있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없어진(?) '타이러 더든'을 찾아서 이리 저리 도시들을 헤메고 다닌다. 바로 자신이 찾아서 헤메고 있는 '타일러 더든'이란 자가 자기 자신임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말라'와 '자신의 지하 테러 조직, 군대 부하들'과 '직장 상사'와 '경찰서의 경감들'은 바로 '에드워드 노턴' 자신을 '타일러 더든'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고 있는데도...  

  결과적으로 한 인간 안에 두 존재가 함께 들어 있는 것임을 영화의 끝에서 밝혀준다. 미쳐가는 인간이 자살을 하려고 총을 자신의 입에 놓고 쏜 후에 다시 원래의 올바른 정신으로 회복이 된다. 보다 선을 지향하는 인간성과 보다 악을 지향하는 인간성의 싸움은 심각한 자해를 끝으로 종말을 고한다.

  선과 악에 대한 '내적 갈등이 외적 표현', '방구같은 영화'가 바로 '파이트 클럽'이다. 이 외부적인 두 주인공의 갈등은 본질적으로 한 인간 내, 안에서의 펼쳐지는 '의식'과 '무의식' 간의 심각한 갈등, '이드'와 '수퍼 에고' 간의 갈등, '망나니 아들과 질서, 올바름으로 대변되는 아버지와' 간의 갈등,  '충동적 인간 본성'과 '억압적 현실 문화 생활과'의 갈등, '원시'와 '문명' 간의 갈등, '윤리'와 '무윤리' 간의 갈등, '질서'와 '무질서' 간의 갈등, '자아 통합'과 '자아 분열' 간의 갈등에 대한 '한 인간의 내부적 고뇌의 구도'가 영화적으로 표현된 거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관객을 속인다. "영화를 무방비 상태로 보던 관객들은 과연 문제의 두 인물이 한 인격체의 부분들 이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짐작이나 했을까?" 물론 본인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하나로 몰고 가는데, 영화가 설정한 가정들에서 '논리적 모순'이나 '빈 틈'들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만들어 졌다.

  영화의 제목이 '파이트 클럽'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장클로드 반담 류'의 ' B급 이종 격투기 영화' 에서 등장하는 호쾌하게 잘 연출된 액션 장면들이 나올 줄알고 기다렸는데, 그런 기대는 무참히 깨져버리고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명 비판적인 내용'의 '블랙 코메디 영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가슴에 남는 대사는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대사는 '브레트 피트'가  '바'와 지하실 등의 어두운 장소에서 클럽 회원들과 또 다른 자아인 '에드워드 노턴'을 향해서 소리치는 대사들이다. 사회의 패배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소리지르며 설득한다.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인간들은 물질 물명을 소비하는 소비 문화의 부산물들일 뿐이다.", "자기 개발은 자위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독설과 독단에 가까운 아집으로 외치고 있지만, 말 속에 뼈가 있어서 새겨 듣고서 생각해 볼 대목들이다.

  영화가 흥행을 했는가? 흥행을 하지 않았는가? 와는 상관없이 원작이 되는 소설이 매우 훌륭함을 영화를 통해서 알 수 있고 영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대단한 프로들 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등장 인물들이 나래이터로 등장을 해서 영화가 진행하는 동안에 에피소드와 영화 전반에 대해서 해설을 해주는 '서브 타이틀'도 색다른 묘미를 즐기며 영화를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정말 볼만한 영화를 오랜만에 본 느낌이다.' 영화를 본 후에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자신'과 '세계'에 대해서 퍼 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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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할인행사]
알폰소 쿠아론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깔끔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맛깔스러운 영화다. 우선 이 영화의 원작이 검증이 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친숙할 인물인 찰스 디킨스가 바로 원작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줄거리가 완벽하게 원작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판박이라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어서 보다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수 있게끔 새로이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오히려 원작 그대로를 구현 했다면 복잡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원작보다도 행복하게 끝나고 아름다운 교훈도 남겨준다.

  영화에 대한 인상은 아주 단순 명쾌하며 깔끔하다는 것이다. 그 것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에단 호크가 극중에서 그리는 미술 작품들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사실 극중에 에단 호크가 그리는 모든 작품들은 현존하는 미국의 유명한 회화 작가인 클레멘트의 작품들이다. 매 화면, 화면마다 장면이 바뀌어도 항상 등장하는 색상이 있는데 바로 그린 계열의 색감들이다. 미술을 담당한 클레멘트가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으로 자연의 푸르름을 표현하려 했는지 연두색, 초록색, 녹색 등이 끊임없이 등장을 한다. 주인공 '핀'이 입고 있던 신발, 셔츠도 그린 계열의 색상이며 여자 주인공인 '에스텔라'가 입고 있던 드레스의 색깔도 그린 계열이고 소품으로 등장해서 스쳐지나가고 마는 수건의 색상, 물병들 모두가 그린 계열의 색상들로 구성이 되어있다. 필통에 그려진 물고기와 불가사리, 별, 소녀와 소년이 만나는 장면들, 에스텔라의 모습들, 그리고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들을 특징만 살려서 간단히 그려내는 클레멘트의 회화 작품들을 무료로 감상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누군가에게 베푼 친절에 대한 대가로 핀은 뉴욕에서 화가로 성공을 거둔다. 멕시코만의 고기잡이 촌뜨기가 자신이 동경하던 부와 사랑, 성공을 이루는 기상 천외한 스토리 라인을 작품은 보여준다. 자기를 후원해준 사람이 실연의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멕시코만 최고의 갑부 여인이 아니라 어린 시절 자신이 약속을 지키고 도와준 한 범죄자, 로버트 드니로 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베푼 우연한 친절이 먼 훗날 수십억배의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이야기는 들려준다. 그리고 첫 사랑 에스텔라의 남자 꼬시기 학습 도구, 춤 상대 였던 자신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 왔을 때 그는 뉴욕에서 마지막으로 본 에스텔라와 어린 시절의 그녀를 닮은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된다.

  영화에 깔린 복선과 암시들 등장 인물들 서로 간에 주고 받는 대사와 대사들이 상황과 맞물려 빛을 발한다. '가슴에 손을 대고서 나의 멍든, 아픈 마음을 알겠냐고 되 받아 치는 핀과 멕시코만 최고의 갑부 여인', 자신을 후원해 준 사람이 범죄자인 로버트 드니로 였음을 알게 해주는 거미라는 뜻의 '위그노'란  이탈리아 말 등... 영화 음악으로 등장하는 베사메 무초를 감상하면서 광고에서도 패러디한 분수대에서의 어린 소녀와 어린 소년의 도둑 키스 장면도 감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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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 할인행사
스콧 힉스 감독, 노아 테일러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와 감독이 영화제들에서 상을 수상하고 또 그에 대해서 모두가 좋게 평가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는 좋게 형성되어 있다.

  소유욕과 수집벽이 심하게 있는 내게 이 영화는 항상  따라 다니며 괴롭히는 존재였다. 출시를 한지 몇년이 지나도록 이 영화의 DVD 타이틀을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야 되는데!', '사야 되는데!' 생각만 하다가!? 큰 맘 먹고서 제 값을 다 주고서 구입을 했다. 소위 시쳇말로 '질러 버렸다!' 밥 한두 끼니를 못 먹고 절약한 돈으로 이 영화를 구입해도 그 행복감은 배고픔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 몇 일은 행복한 기운이 절로 난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에 견줄만한 영화들을, 내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나열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레인맨', '나의 왼발', '여인의 향기', '제리 맥과이어' 정도 쯤이 될 것이다. '삶의 깊이'와 '참다운 인생'의 진한 여운을 남기게 해주는 영화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당장에 비디오 가게나 DVD 대여점에 가서 진열장에 꽂인 수많은 영화들을 처다보면 사실 명화들의 계보를 뒤적 거리는 일과 명화를 찾는 일 등은 쉽지가 않다. 유치한 세미 포르노가 하루에도 수십개씩 생명을 다해서 싸구려로 버려지고 불태워 진다. 그런 영화들은 이미 작품으로서의 목숨을 끝마쳤기 때문에 딱딱한 하드 웨어, 플라스틱 껍질 그 이상은 될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는 앞으로 최소 10년 아니, 15년 정도는 살아남을 작품이다. 혹은 그 이상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 영화가 목숨을 다하는 그 날은 이 영화 정도의 감동과 여운을 줄 수 있는 다른 명화가 나왔다는 즐거운 이야기 쯤으로 추즉,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일은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다음은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 갓'은 실존 인물이다. 동구권 국가 태생인데, 정확히 어느 나라인지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유는 영화에서도 구체적을 배경이 되는 나라를 가르쳐 주는 힌트가 없기 때문이다. 극중에 어린 '데이비드'를 후원하는 러시아의 여 작가가 등장을 하는 것이 기억이 나는데, 그가 러시아 출신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러시아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는 아닌 것 같다. 

  영화는 유난스럽다거나 영화가 줄 수 있는 환타지적 요소나 볼거리 등은 제공해 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조용히 물흐르듯 잔잔하게 한 남자의 일생,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읽어 나간다. 한적하고도 스산한 조용한 가을 분위기를 영화 전체가 한결같이 맥을 이루고 있다.

  어린 시절에 이런 비슷한 경험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 비를 피하려 우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산도 귀찮아서 비를 맞으면서 신나게 달려가는 일을 해 보는 것. 이 것이 어린 시절의 한 때에 지나지 않는,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라면 충분히 용인이 되는 일이지만, 이미 성인의 나이, 중년이 된 '데이비드 헬프 갓'은 바바리 코트를 입은 채 폭우가 내리치며, 천둥과 번개만이 집 밖에서 놀고 있는 오밤중에 온전한 피아노를 찾아서 거리를 헤멘다. 그리고 영업이 끝난 식당 홀에 놓인 피아노를 발견하고 그 식당의 직원들을 처다보면서 문을 두드린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그리고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한 천재 예술가의 일생을 평범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히 잔잔하게만 흘러가는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클라이맥스적인 효과도 없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을 만큼 밋밋하게 지나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지켜보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흐트려 트리지 못하게 한다. 아무런 과장과 허구가 없는 영화, 한 남자의 일대기를 조용히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이렇게 강한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것은 이 영화의 내용이 거짓이 없는 실화라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자식에게 주는 올바른 사랑법은 과연 어떤 것인가? 란 지극히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관심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 갓'이란 사람이 '이 영화의 제목' 그대로 '빛나는(Shine)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밝은 빛 속에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다시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을 찾아내서 더욱더 밝게 빛나는 사람... 그는 지금 빛나는 삶을 살고 있다.

  세상에 태어 날 때부터 천재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천재의 가능태를 갖고서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아무런 노력없이는 세상에서 천재 행세를 할수 없다. 그 위치의 언저리에 미칠 수조차 없다. '데이비드 헬프 갓'이란 인물이 천재의 가능태를 갖고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한명 일 수도 있고 혹은, 그저 그런 평범한 범인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가장 어려운 곡인 '라흐마니노프'를 '정복', '이해', '소화', '이겨' 내고서...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런 위대한 위치에 오를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아버지의 못다이룬 꿈이 바로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비드 헬프 갓'이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치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자신만의 의지에 의해서 였는가? 아님, 그렇게 피아노를 치도록 만든 아버지의 환경적, 의지적 노력 때문인 것인가?

  부모의 못다이룬 소망과 꿈을 자식을 통해서 대리적으로 이루게 하려는 아버지의 과잉 압력이 결국 유약한 '데이비드'를 정신 분열로 이끌고 갔는지도 모른다. 흔한 프로이드 식의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자. 정신 분석의 '이중 구속 가설'로 '데이비드 헬프 갓'의 내면 심리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바로 아들을 이중으로 구속하는 존재이다. 아버지가 '데이비드'의 성장 과정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내 곁에 있어라!', '내 통제를 따라라!', '또한, 너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어야 하고, 모든 대회에서 1등을 해야하며, 최고의 명곡인 '라흐마니노프'를 소화해 내야한다.',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이 아버지이다.', '누구도 나만큼 너를 사랑 할 수는 없다.' 

  주인공 '데이비드'가  콩쿨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완벽하게 쳐 내고 난 후에 미쳐 쓰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데이비드'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는 두가지 였는데, 아버지가 제시한 이 두가지 요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상충하는 면을 갖고 있다. 한 가지 요구는 '아버지와 가족을 사랑하라. 그리하여 너는 집과 가족을 떠나서는 않된다.' 는 것이였고 두번째는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수 있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것.' 의 명제였다. 이 두가지의 아버지가 심어준 과제는 서로 이율 배반적이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이런 내용들을 표면적으로 들어내서 표현하고 있지 않을 지라도 데이비드가 성장 과정 속에서 이런 자신의 아버지가  전달해 주는 소망의 내용을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전달받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가 더 좋은 피아노 교육을 받기 위해서 피아노의 대가들이 있는 외국 학교로 유학을 가야만 한다. 바로 아버지가 계신 고향 집과 가족을 떠나서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통제 밖으로 벗어 나서 훌륭히 커가는 것을 한편으로는 반대를 하고 있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장난감으로서 천재 '데이비드'를 잃어버리기가 싫기 때문에... 그리고 자꾸만, 왜곡된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의 고향 집 안에서 데이비드가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강변을 한다. 바로 아버지 자신의 '통제'와 '관리 속'에서만 데이비드는 착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되길... 아버지는 소망 했다.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데이비드에게 전달한 메시지이 내용은 이러했었을 수도 있다. "네가 고향 집을 떠난다는 것은 그간 길러준 아버지의 사랑과 은공을 배신하는 패륜적인 행동이다!" 라고. 

  고향 집과 아버지를 등지고 영국 유학 길을 떠난 '데이비드'를 아버지는 인정치 않는다. '데이비드'의 모든 기록이 담겨진 스크랩은 태워지고서 더 이상 아버지는 그를 자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이상 아버지의 사랑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일그러진 사랑법 속에서 유약하고 삶에 있어서 피아노 밖에 모르는 여린 '데이비드'가 결국 미치게 되는 과정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결과이다. 이렇게 선택해서 행동해도 아버지는 '데이비드'를 꾸중하고 불만족스럽게 대했을 것이며, 저렇게 행동을 선택해서 삶을 살았어도 아버지의 '데이비드'에 대한 불만족스런 태도는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만일에 '데이비드'가 고향 집과 가족들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서 머물고만 있었다면 과연 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거듭 날 수 있었을까? 고향 집에 있는 자신의 아들이 천재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아버지는 또 그를 더욱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너는 왜 천재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하고 콩쿨에서 1등을 하지 못하는 것이냐?!", "너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나쁜 패륜아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냐?!" 라고. 아버지는 '데이비드'를 더욱더 세차게 추궁했었을 수도 있다. 

  콩쿨의 연주회 장에서 라흐마니 노프 전부를 소화해 낸 다음, 쓰러진  '데이비드'는 그의 전성기가 될 수도 있었을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후반에서 부터 장년기 모두를 정신 병원에서 자신의 병마와 싸우며 지내게 된다.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정신병자의 몰골을 하고서 피아노와는 멀어진 채 정신병원을 전전한다. 그 누구도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화려했던, 천재 데이비드 헬프 갓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을 '데이비드 헬프 갓', 본인의 연주로 직접 들을 수 있고 서브타이틀의 감독과의 인터뷰, 골든 글러브 시상식 장에서의 배우가 말하는 소감 등도 매우 만족할 만한 볼거리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극중 배역들은 연기력이 탄탄한 여러 나라의 세기의 배우들이 영화에 캐스팅 되었기 때문에, 대가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감상, 평가해 볼 수도 있다.

  자신의 병마인 정신질환을 이겨내고서 정상인들 보다도 더 위대한 재능과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 우리들이 'Shine' 이라는 애칭을 붙어 주어도 전혀 껄끄럽다거나 이상하지는 않다. 그 것은 너무도 당연히 그가 가져 가야할 잃어버린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몫이고 보상이다. 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새로운 영예, 영광스러운 이름인 것이다. '데이비드 헬프 갓', '데이비드 샤인(Shine)!'

  언젠가 '인생의 묘미'란 한국 작가의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수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바둑판' 중에서 가장 좋은, '최상의 바둑판'은 재료가 될 나무를 건조하는 동안에 갈라 졌다가 끝끝내는 다시 붙어서 말짱하게 네모진, 똑바로된 바둑판 원 재료 모양을 다시 갖추게 되어 바둑판의 재료가 다시 쓰이게 되는, 바로 그 목재로 만들어진 바둑판이 가장 좋은, 최상품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 나무로 만든 바둑판이 최상의 바둑판이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말리는 도중에 갈라져 버린 나무가 다시 원래 모습 그대로 붙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아주 보기 드문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나무는 그 아픔의 흔적을 고스란히 그 자신의 모습에게 남기게 되는데, 갈라졌다가 그대로 아물어 버린 실금을 바둑판 표면에 갖게 된다고 한다. 수많은 바둑판들 중에서 이런 바둑판은 너무나 드물고, 귀해서 거의 찾아 볼수가 없다고 한다.

  최상품의 바둑판처럼, 영화 샤인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 갓'을 만나는 일은 넘어져서 쓰러진 인생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 것인가? 에 대한 휼륭한 통찰을 우리들에게 시사해 준다. 삶에서 넘어져 송두리채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던, 천재라 불리던 한 소년이 수십년 동안 행방을 묘현히 감춘 채 잠들어 있다가 중년의 나이에 다시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모습은... 아름답고 찬란한 연주로 화답한다.

  인생의 황금기 동안에 어둠만을 보면서 삶을 산 그가 자신이 아닌 타인들게는 밝은 곳에서 빛이 되는 음악만을 선사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정신병과 싸우며 그 병을 극복해 내고서 완성한 '라흐마니노프'는 진정한 예술가의 명곡, 연주가 된다. 빛과 어둠, 인생과 예술이 모두 합쳐져 잔잔히 그려지는 영화!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의 결정체로 다시 태어나는 영화!

  어둠 속에서 실 빛살처럼 귀하게 빛나는 영화... 샤인! 

  "빛나라!", "데이비드 헬프 갓!", "빛나라! 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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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인터넷 제국의 지배자
다키다 세이치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황금가지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믿음과 짐념을 갖은 자가 자신의 신념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운 이야기 이다. 책을 읽어 내려 가다보면 손정의라는 사람이 정말로 똑똑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손정의의 삶의 괘적을 추적한 이 책은 다방면에서 도움을 준다. 먼저 컴퓨터라는 기계, 도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한 정점을 볼 수 있으며 개인용 컴퓨터를 기반으로 해서 변화되고 있는 현재, 미래 사회와 그 현재, 미래 사회에서 탄생하게 될 새로운 기업의 형태를 알게 된다. 인터넷과 첨단 기업의 발전에 대한 흐름과 맥락을 알게 된다. 봉의 김선달과도 같은 한 사람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역경의 과정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소프트뱅크라는 소프트웨어 판매망을 일본에 구축하고 기업에 대한 인수, 합병을 통해서 전 세계에 있는 인터넷 관련 회사들의 대 주주가 되며 심지어는 공중파 까지 장악하게 되는 그의 남다른 인생 전개를 볼 수 있다. 그는 마사요시 손이 아니라 손정의라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재일 교포로서 차별적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 한 남자의 힘에 겨운 싸움을 감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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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GPX 사이버 포뮬러 Saga 박스 세트
후쿠다 미츠오 감독 / DVD 애니 (DVD Ani)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 중에서 가장 화려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것에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맨 마지막 시리즈인 신은 작품의 구도가 주인공들 간의 결전에 맞추어서 있다. 동등한 머신(메카닉, 미케니즘)의 스펙(카자미 하야토의 아스라다와 브리드 카가의 오우거)을 가지고서 누가 진정한 실력, 승부의 투지를 가지고 있는 가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어서 어떻게 보면 결연함과 비장미까지도 느껴진다. 물론 메카닉만의 화려함을 비교하자면 신 편이 더 우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하이넬이 만들어 내는 스톰젠더 머신을 단적으로 예로 들면 알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차지하고서라도 사가 편을 사포 시리즈에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가장 화려한 꽃으로 손 꼽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등장 인물들을 이제는 어린 아이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성숙한 성인으로 표현한다. 모두들 나이가 18살 이상의 성인이다. 또한 새로운 인물들의 출연이 넘쳐나는데 이들 캐릭터들 모두가 특별한 정체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개별적인 주인공으로 봐도 무리가 없고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하고서 애니를 감상해도 재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 새로운 등장 인물 군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입 레이서(신참 내기)들이 노땅들을 물리치려 각 팀으로 유입되고 패배하는 팀들은 승리(챔피언)를 탈환하기 위해서 새로운 스탭진들과 드라이버들을 새로이 구성해 팀을 정비한다. 앙리 크레이토르, 필 프리츠, 나그모 등의 새로운 등장이 그 주축을 이룬다. 성숙한 기존이 인물들은 모두 전작과는 다른 외양과 모습을 보여 준다. 키도 컸고 얼굴선과 턱선도 변하여 어른스러워지며 헤어 스타일의 변화가 가장 크게 눈에 띈다. 그러나 캐릭터의 성격이나 정체정의 일관성에 있어서는 전작과 후작들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새로운 소재의 도입이 신선한데 바로 각각의 머신과 관계가 있다. 등장하는 모든 사이버 레이싱 머신들이 기존의 개념과는 다른 한 단계 상위의 도약을 보여준다. 생명 과학과 뇌 과학이 발전을 한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매이션이기에 자율 신경계와 컴퓨터 통제, 레이싱 머신의 결합이 알파 뉴로란 약물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과학적 설정을 보여 주며 중추신경계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과학이 진정한 인간성의 실현을 통한 우승, 챔피언은 어떠한 상태에서 구현되어야 진정한 것인가? 자신의 의지에 의한 인간인가? 아님, 과학 기술에 의지에 의한 실현도 정당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빠르면 챔피언이 되고 머신에 탄 인간의 상태는 어찌 되었든지 상관없는 것인가? 인간성과 윤리, 도덕 등은 목적을 위해서는 버려도 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등의 건설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감상자들에게 되 묻는다.

 화려한 머신들의 새로운 슈퍼 테크도 등장을 하는데 레어 머탈로 인한 손실이 없는 변형 시스템과 이단 부스트, 공중에서 머신이 방향을 바꾸는 리프팅 턴 등이다. 

 소소한 에피소드는 정말로 개연성이 있는 현실적인 드라마틱한 필연적 구성을 보여 준다. 아오이 짚의 새로운 사장의 등장과 드라이버의 해고 정신적 성숙을 위한 수양, 미국이 스톡카 경주에서 챔프에 등극을 하는 신죠 나오키의 경우나 팀을 옮긴 미키가 호감을 갖고 있는 신죠 나오키를 따라 간다는 설정이나 챔프를 꿈꾸는 앙리 크레이토르의 암울한 부자 관계의 성장사, 패배한 자의 심정이 어떠한 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필 프리츠의 사연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나그모로 인해서 아스라다라는 머신의 정체성과 족보가 밝혀진다. 이 부분은 후작인 신 시리즈의 주 테마와 매끄럽게 연결을 이루게 된다. 결국 아스라다와 알자드, 신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아스라다의 모습인 오우거는 족보의 이력이 친족에 가까운 변종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략 사가라는 편이 화려한 이유를 나열 했다. 후에 시간이 나면 새로이 수정을 해서 리뷰를 보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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