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를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귀향시키려다
마음속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못된 짓으로 말미암아
파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이 일들에 관해 아무 대목이든,
여신이여, 제우스의 따님이여, 우리에게도 들려주소서!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제1권 제1∼10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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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드느라 정말 악전고투했다. 24분 남짓한 영상 하나를 만드는데 무려 50시간 이상은 쏟아부은 듯하다. 이 유명한 서사시를 소개하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님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동영상으로 만들려다 보니 내 능력에 벅찬 과제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내레이션으로 쓸 대본은 4년 전에 쓴 '리뷰'를 바탕으로 했는데, 그 대본을 그대로 쓰자니 영상으로 변환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영상에 맞는 대본으로 여러 번 개작을 하고 나서 녹음을 했지만, 그때마다 녹음한 내용을 영상화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또다시 대본을 고치고, 또 녹음하기를 반복했다. 텍스트 위주로 만든 컨텐츠를 영상 위주의 컨텐츠로 바꾸는 게 이처럼 어렵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대본을 자주 바꾸고, 녹음을 다 마쳤다가도 다시 영상화 작업에서 도로 '처음으로' 되돌아가 대본 고쳐쓰기를 반복했던 건 무엇보다도 영상의 난이도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800년 전에 음유시인이 운율에 맞춰 노래가락으로 낭송하던 '고대 서사시'를 유튜브로 소개하자니, 그 간극이 얼마나 크겠는가.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 때마다 고민스러운 게 바로 '난이도 조정'이다. 알라딘 서재처럼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땐 전혀 고민하지 않던 문제가 유튜브에서는 '핵심 관건'이 되는 셈인데, 불특정 다수의 전세계인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책 소개 동영상'이니만큼, 책에 담긴 내용들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도 없고, 책에서 벗어난 얘기만 변죽을 울리듯이 다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녹음까지 다 마친 대본을 세 번, 네 번 거듭 내다버리자니 미칠 지경이었다. 24분짜리 영상이라도 막상 녹음 작업을 하다 보면 1시간은 족히 걸리고, 그걸 하자 없이 편집하자면 또다시 한시간쯤 걸린다, 그렇게 만든 파일을 버릴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무슨 개고생인가 싶었다. 글이라면 '퇴고'를 거듭할수록 글이 매끄러워지고 윤이 날 테지만, 녹음을 거듭한다고 내 목소리가 갑자기 꿀 바른 것처럼 귀에 착착 감기는 소리로 바뀔 턱도 없으니 말이다.
결국 몇 번이나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와서 찬찬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자, 남들이 내 영상을 보다가 어렵다 싶으면 도중에 영상을 끄고 나가면 그만이고, 그래도 내 영상이 볼 만하다 싶으면 5분 혹은 10분쯤은 볼 사람도 있을 테지, 싶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난이도'에 신경을 쓰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정말로 역설적이게도, 내가 지금껏 올린 영상 가운데 '누적 시청시간'이 가장 많은 영상은 <몽테뉴 수상록>이고,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영상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읽기>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 두 작품을 소개할 때는 난이도고 뭐고 전혀 고려치 않고, 볼 사람이 있으면 볼 테지, 라는 식으로 무대뽀로 만든 영상이었으니 말이다.)
어쩄든 영상 제작의 최우선 고려 사항은 영상을 시청할 사람들의 눈높이인데, 정작 『오뒷세이아』를 읽은 독자들조차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영상에 포함시키자니 그것만으로도 영상이 너무 딱딱하고 따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렵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은 과감하게 쳐내고 다시 녹음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영상화하는 작업을 진척시켜 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상화하는 데 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텍스트 중심의 컨텐츠'를 '영상 중심의 컨텐츠'로 바꾸는 데 있어서 예상치 못한 장벽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또다시 대본을 일부라도 뜯어 고쳤다. 가능하면 좀 더 영상으로 변환하기 쉬운 쪽으로 내용을 계속 바꿔나갔다는 얘기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에 '녹음 작업'도 매번 다시 했다. 최종 결과물인 24분짜리 영상을 만드는데 '녹음 시간'만 대략 5시간 이상 허비한 듯하다.
『오뒷세이아』를 영상으로 해설하는데 뒤따르는 또다른 어려움은 '알맞은 이미지'를 찾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었다. 『오뒷세이아』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나 다채롭고도 방대한 데 비하여, 정작 그 이야기들을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대로 맞춤하게 보여줄 자료들은 의외로 매우 빈약했다. 아무리 찾으려고 이리저리 뒤져봐도 내가 상상했던 멋진 그림들은 좀체로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일말의 위로를 얻었던 건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에 얽힌 이야기, '세이렌의 유혹'을 견디는 이야기, '나우시카 공주'와 만난 이야기를 다룬 그림들은 꽤나 풍성했다는 점이다.
- 외눈박이 거인의 눈을 멀게 한 뒤 양떼들의 배에 매달려 동굴을 빠져나오는 오뒷세우스 일행들
(눈 먼 거인은 양떼들의 등어리를 더듬거리며 혹시라도 도망자가 없는지를 체크한다.)
-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와 도망치면서 거인을 조롱하는 오뒷세우스
'아무도 아니'라고 자신의 이름마저 속였던 오뒷세우스는 이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알려 준다.
- 세이렌의 유혹을 견디는 오뒷세우스
오뒷세우스의 이야기 가운데 영상으로 설명하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은 제11권에 나오는 <저승> 이야기와 오뒷세우스가 고향 '이타케'에 도착한 이후의 이야기였다.(사실 『오뒷세이아』는 전체 24권 가운데 딱 절반이 이타케에 도착한 이후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들이 이상하리만치 매우 드물었다. 『오뒷세이아』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귀향'인데, 천신만고 끝에 오매불망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에 도착한 오뒷세우스가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오뒷세우스가 연로한 아버지와 다시 만나고,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하고, 난생 처음 보는 아들 텔레마코스와 만나는 장면 등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산가족이 재회하는 눈물겨운 상봉 장면'이나 온 가족이 오붓하게 모여 있는 <가족 사진> 같은 그림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오뒷세이아』를 조금이나마 더 그럴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내 입맛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원하는 그림들을 좀처럼 찾아내지 못할 땐 답답한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왜 숱한 화가들이 내가 상상했던 그런 그림들을 남겨놓지 않았는지 의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뒷세우스가 저승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나는 장면은 다른 책에서도 숱하게 이야기되는 '명장면' 가운데 하나인데, 그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또 왜 아예 없는지, 내가 바보여서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언급된 <제11권_저승>의 한 대목
아무튼 악전고투 끝에 열흘 이상을 매달려 간신히 동영상을 완성하고 나니 어느새 열흘 가까이 훌쩍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영상을 다 만들고 나서 뒤늦게 확인해 보니, 내가 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 직접 만들거나 인터넷에서 찾아낸 이미지들을 살펴보니 거의 234개나 되었다. 물론 이 가운데 실제 영상 제작 과정에는 포함되지 않은 이미지들도 있고, 여기엔 없는 이미지가 영상에 쓰인 경우도 있다.(다른 폴더에 있어서 캡쳐 이미지에는 빠져 있다.)
- 호메로스를 언급하자니 자연스레 다른 작가들도 여럿 언급해야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는 애니메이션 때문에 잠깐 등장한다.
- 『오뒷세이아』를 언급하면서 까마득한 옛날에 읽었던 '아동 문학 작품' 이미지까지도 찾아야 했다.
내가 어릴 때 즐겨 읽었던 작품들인 <보물섬>, <15 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 일주>,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알라딘의 요술 램프>, <신밧드의 모험>,
<정글북>, <톰 소여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 등등을 들먹였으니, 그 이미지들을 보여줄 수밖에...
- 영화 <트로이>가 없었더라면 『오뒷세이아』를 설명하는 일은 더더욱 벅찼을 게 틀림없다.
- 『오뒷세이아』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부분들에 관한 설명들을 자세히 담아내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이 작품을 소개하는데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이곳저곳에 집어넣었다. <오뒷세이아>를 맨 처음으로 읽었던 1980년 겨울의 이야기, 고등학교때 월탄 박종화 선생님 번역의 <삼국지>를 읽었던 추억도 소환했고, 텔레마코스 이야기를 할 때는 어느덧 훌쩍 어른이 다 된 아들녀석까지도 다시 불러냈다. 어쨌든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가 연로한 아버지와 나이 든 아내와 다 큰 아들을 20년 만에 다시 만나는 '가족 상봉 이야기'로도 볼 수 있는데, 내가 스무살 때 읽은 <오뒷세이아>만 하더라도 텔레마코스의 입장이었던 듯한데,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은 <오뒷세이아>는 어느덧 다 큰 아들을 둔 나이 많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고, 그 점은 다른 어떤 책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미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 신병교육 훈련을 끝마친 날, 감격적으로(!) 다시 만난 아들(2015년 8월)
아무튼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는 2,8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왔고, 책으로도 읽혀 왔고, 이제는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내가 온갖 시행착오끝에 어렵사리 만든 동영상이 마침내 내가 원하는 최종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오로지 내 영상을 클릭하는 시청자들의 몫이다. 내가 원하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냐고? 그 질문의 답은 물론(!) 영상 속에 담겨 있다.
- 오뒷세우스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들은 의외로 적다.
이 조각상이야말로 내가 찾아낸 가장 뚜렷한 오뒷세우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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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yNewF1DZ6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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