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 * *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까? 기껏해봐야 그 작품은 추리소설일 뿐인데도? 추리소설을 미리 자세히 설명해 버리면 그 책을 안 읽은 독자들은 어떡하라고? 에코의 걸작 소설인 『장미의 이름』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기에 앞서 이런 생각부터 미리 떠올렸더랬다.

 

이 작품은 예전부터 익히 그 명성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책 읽기를 차일피일 계속 미루다가 우연히 '클래식 음악 방송'에서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나서 덥석 집어들고 읽은 터였다. 그 방송에서 이 작품에 대해 소개하는 요지는 이랬다. 『장미의 이름』은 웬만큼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유명하지만, 막상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충분히 소화하는 데에는 적잖은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았다. 에코 특유의 해박하고 방대한 온갖 종교학적 지식과 철학들이 그 작품의 곳곳에 녹아 있었고, 에코가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심장한 텍스트들을 일반 독자들이 제대로 음미하기에는 결코 녹녹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기초 조사'부터 들어갔다. 우선 관련 동영상부터 슥~ 한번 훑어봤다. 그런데 정말 뜻밖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애독자들이 그렇게나 많다고 알려져 있고, 이 작품이 전세계에서 무려 5천만 부나 팔렸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제대로 소개하는 동영상은 참으로 보기 드물었다. 정말로 깊이 있는 해설은 '교수님들'이 출현하는 영상 두셋 뿐이었다. 그런데, 그 영상들은 대체로 '길이'가 너무 길었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읽기, 1시간 41분 27초, https://youtu.be/Ttd_YBmYJmY

강신철 교수의 책 한권 하실래요?, 1시간 04분 54초, https://youtu.be/cqnxQ28a6Xw

이주향 인문학 산책(안정오 교수 해설), 50분 10초, https://youtu.be/4v0Um5Pla2M

 

나름대로 몇 만의 구독자를 거느린 북튜버들의 채널을 뒤져봐도 이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은 매우 드물었고, 간혹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 채널이 있더라도 그 내용들이 딱히 눈여겨 볼 만한 영상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욱 욕심이 났다. 이 작품을 제대로 한번 소개해 보자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관이 많았다.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이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려 말엽 정도인 1327년인 데다가, 그 당시 유럽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교황파와 황제파 사이의 교권과 속권 다툼에 대한 설명을 뒷받침하는 알맞은 이미지들을 찾아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소설 속에는 그 당시에 실존했던 인물들도 대거 등장하는데, 그 숱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라 할 만한 당시의 교황과 황제의 이미지마처 찾는 데 적잖은 애를 먹었다. 그러니 <아비뇽의 유수>니 '프란체스코회 청빈 논쟁'이니 '이단 논쟁'이니 '웃음'이나 하는 종교적이고도 철학적인 이슈들을 도대체 어떤 이미지로 설명해야 할 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인 건 이 작품이 진작에 장 자크 아노 감독에 의해 훌륭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숀 코네리라는 너무나 유명한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그 영화 덕분에 '연쇄 살인 사건' 같은 참으로 표현하기 난감한 이미지들도 한꺼번에 뭉터기로 얻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미지들을 모으고 또 모으니 어느새 20분 내외의 영상을 만들 정도까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대충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다. 예쁜 장미꽃 이미지도 실컷 끌어 모았고, 심지어는 '웃음'을 설명하기 위해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인 <이태원 클라쓰>에 등장하는 조이서(김다미)의 모습까지도 찾아봤다.(비록 동영상에 싣지는 못했지만...)

 

 - 『장미의 이름』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곁들여 설명해야 했다. 그런 작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파네스, 세르반테스, 니체, 보르헤스,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이었다. 이런 작가들과 작품의 이미지를 모으는 데도 적잖은 품이 들었다. 눈 먼 보르헤스의 이미지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쓰기 위해서도 무려 12장의 사진들을 끌어모았다.

 

  - 작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레 별의별 이미지를 다 찾아내기 마련인데, 14세기의 실존 인물이었던 아켐피스의 이미지가 있을 줄은 차마 몰랐다. 아무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이나 실제적인 장소(가령 '멜크 수도원')에 대해서는 일단 무턱대고 이미지부터 검색해 보게 된다.

 

  - 『장미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 꼭 필요한 이미지들인 '책'과 '도서관' 이미지는 뜻밖에도 아주 풍성해서 좋았다. 특히 그런 이미지들은 JPG 파일이 아닌 PNG 파일들도 꽤나 많아서 아주 유용했다.

 

아무튼 이런 이미지들을 곳간에 잔뜩 쌓아놓고 작품 설명을 해나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들이 있었다. 가령 '웃음'을 두고 눈 먼 수도사인 호르헤와 윌리엄 수도사가 치열하게 '철학적 논쟁'을 벌이는 모습들을 설명하기가 참으로 까다로웠다. 이 소설의 핵심 주제가 바로 '웃음'이 종교에 해악이 된다는 굳건한 신념을 가진 수도사와 그 편견을 깨트리기 위해 '합리적인 이성'으로 무장한 윌리엄 수도사와의 '세기적인 대결'을 다루고 있고, 그 상징물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인 데도, 그 두 인물들간의 치열한 논리 싸움의 핵심 주제인 '웃음'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이 작품을 소개하는 데 겪어야 할 또다른 어려움은 '추리소설의 결말 부분'을 과연 얼마만큼 드러내야 옳은가 하는 점이었다. 그 부분을 미주알고주알 다 밝히게 되면, 이 책을 미처 읽지 않은 독자들한테는 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크게 반감시키는 요인을 제공하는 셈이고, 그 부분을 너무 두루뭉술하게 지나쳐 버리면 소설의 재미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셈인데, 그 상충되는 측면을 알맞게 절충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튼 나로서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이 작품을 해설해 보려 애를 써밨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지금 문득 다시 펼쳐 보니, 내가 읽은 책은 2013년 1월 20일에 발행한 '4판 26쇄본'이다. 이 책을 산 지 무려 7년 만에 이 작품을 해설하는 동영상까지 만들게 된 셈인데, 벼르고 벼르던 책을 한참이나 묵혀 뒀다가(?) 뒤늦게 읽어도 나름의 장점은 있다. 다른 책들보다 이 소설을 더 늦게 읽음으로써, 알음알음 미리 읽었던 책들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니체의 『선악의 저편』,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었다. 내가 이런 작품들을 미리 읽어보지도 못한 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부터 먼저 읽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 책을 뒤늦게 읽게 된 게 도리어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어떤 책이든 그 작품을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거듭 반복해서 읽어야만 그 작품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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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에 남았던 이미지들)

 

 - 나는 아직까지도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수맣은 스틸컷 가운데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 <장미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곁들였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수도원에서의 해괴한 살인 사건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기껏 이 작품을 곁들여 설명하면서도 들을 때마다 흥분되는 그 좋은 조르바의 '영화 주제가'를 쏙 빼먹었다.

 

 

 - 장미꽃 이미지(PNG 화일)

 

 - 장미꽃 이미지(PNG 화일)

 

 

 - 영화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베네딕트 수도원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이미지

 

 

 - 수도원의 장서관 이미지

 

 

 - 1989년 개봉 당시의 영화 포스터. 이 영화가 개봉된 지 어느새 31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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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hmJXKIqrq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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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20-03-01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영상에서 북튜버의 기운이 뿜뿜!!! 고퀄리티의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책장에서 숙성되어가는 장미의 이름을 다시 꺼낼때가 된듯하군요. 감사합니다 :)

oren 2020-03-01 20:34   좋아요 0 | URL
여러모로 부족한 제 영상을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cloudo 님의 책장에서 숙성된 <장미의 이름>은 얼마만큼이나 오래 책장 속에 머물러 있었을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0-03-05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를 읽었는데 어찌나 유머가 넘치던지 학자에게 이런 면모가 있음이 신기할 따름이었죠. 저는 학술서로 처음 대한 저자였거든요. 기호학에 관한 책이었던 것 같아요.
그의 <제0호>를 호기심에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네요.

풍성한 페이퍼, 잘 봤습니다.
오렌 님의 차분한 목소리를 응원합니다!!!

oren 2020-03-05 16:42   좋아요 1 | URL
저는 아직까지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은 <장미의 이름>이 두 번째일 뿐이고, 거기서 조금도 진척이 없는 상태랍니다.^^ 에코의 첫 작품은 <궁극의 리스트>였습지요.^^

저에 비하면 페크 님께서는 에코의 책을 꽤 다양하게 사 보신 듯합니다. <제0호>까지 사두신 걸 보면요.^^

유튜브로 책을 소개하는 작업은 몹시 고된 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답니다.

제가 영상에 담은 내용 가운데 ‘틀림없이 저만 알고 있는 내용들‘도 분명 조금은 있을 테고, 그런 내용들을 시청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줌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아무튼 페크 님께서 늘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납니다. 늘 감사해요.^^

프레이야 2020-03-10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책 모두 오래전 보았던 작품이라
오렌 님의 영상이 더욱 기대됩니다. 나중에
찬찬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하실지 궁금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는지요? 줄세워 놓고 고르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oren 2020-03-10 16:56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 님께서는 이 작품을 영화와 책으로 모두 오래 전에 보셨군요! 저는 아직도 영화는 보지 못했고, 영화 스틸컷만 실컷 봤습니다.^^ 동영상을 제작할 때 양질의 스틸컷이 풍성할 때만큼 기분 좋을 때도 없더라구요.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기초재료가 그만큼 풍성한 셈이니까요.

제가 동영상을 만드는 ‘순서‘는 딱히 정해 놓은 건 없답니다. 대체로, 하나의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마무리될 즈음부터 다음에 어떤 작품을 소개할까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 영상이 완성된 직후부터 하루쯤 또 고민하다가 ‘다음 작품‘을 소개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는 것 같은데, 어떤 작품은 기초 자료를 모으는 단계에서 중도에 그만두고 다른 작품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미지 자료‘가 터무니 없이 부족할 때도 있고, 해당 작품을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저는 이 작업을 (지금의 포부로는) 앞으로도 10년 이상은 계속 해 볼 작정인데, 그 때문에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작품 선정 등은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어차피 제가 즐겨 읽었던 작품들 위주로 꾸준히 소개할 작정인데, 굳이 시대 상황에 알맞는 작품을 고른다는게 조금 우습기도 한 듯해서요.

어쨌든, 채널이 하루 빨리(!) &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제 채널을 찾는 분들이 어떤 영상이나 어떤 작품을 좋아할까 하는 게 ‘작품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희소성‘입니다. 제가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영상을 만들더라도 ‘희소성‘이 없으면, 유튜브에서는 금방 사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 누구보다도, 제가 만든 영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한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영상이라면, 그 영상을 만드는 일이 조금 힘들거나 제 능력에 부치더라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그런 마인드로 만든 영상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였습니다.)

아무튼,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오래 전부터 감명 깊게 읽었음에 틀림없는 작품들 가운데, 제가 영상으로 만들어 소개해도 크게 누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드는 작품들이 있어서, 제가 그런 영상을 꾸준히 만들 수 있다면, 이미 그 책을 읽은 분들한테나 여태껏 읽지 못하고 망설였던 분들한테나 분명 유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동영상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인데, 그 책을 두 번 읽었고, 기억해둘 만한 대목들을 발췌해서 필사할 때에도 ‘이미지‘들을 참 많이 검색했더랬는데, 막상 동영상으로 만들자니 시간이 꽤나 걸리는군요. 벌써 열흘쯤은 된 듯한데, 이제 하루 이틀 더 작업하면 마무리될 듯합니다.^^

2020-03-15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16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0-04-20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상 잘 봤습니다! ^^

두 번 시도했으나, 두 번 모두 끝까지(아니 심지어 절반도) 못 읽은 사람 여기 있어요. ㅠㅠ
오렌님의 영상을 보았으니 조만간 다시 시도해봐야겠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끝까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oren 2020-04-22 20:48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 참 오랜만입니다.
두 번 시도하셨다가 끝내 중도포기 하셨군요.
고비 고비만 넘으면, 시원한 바람 불고 탁 트인 전망 나오는 곳 있어요.
삼세 번이라고 하잖아요, 이번에 다시 한번 시도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