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완역본으로 출간한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이 쓴 불후의 걸작 『로마제국 쇠망사』를 동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마침내 끝냈다. 겁도 없이 이런 대작을 소개하겠다고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아주 식겁을 했다. 기번의 작품이 워낙에 대작인 데다가, 1,000년이 넘는 장대한 시간을 다루는 역사책을 영상으로 소개하려니 여간 품이 많이 드는 게 아니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전6권> 4,150쪽이나 되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이 힘에 겨웠다. 대본이야 진작에 써 놓은 리뷰를 바탕으로 적당히 편집하면 그만이지만, 방대한 역사책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알맞은 이미지'를 찾는 작업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번의 역사책을 읽는 동안에도 숱한 인물이나 사건들을 찾아 일부러 여러 번 인터넷을 뒤졌지만, 막상 이 책을 좀 더 '디테일하게'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걸작품을 소개하는데 걸맞는 '좋은 그림들'을 찾는 작업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영상을 만드는 도중에 들려온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이 엉뚱하게도 영상 제작의 어려움을 한층 가중시켰다. 영상이라는 매체에 있어서 '디테일'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는 주지하다시피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인 5현제의 시기로부터 시작한다. 이걸 설명하는 대목에서만 당장 다섯 황제의 면면을 드러내야 한다. 책으로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막연히 이름만 알았던 황제들의 실제 이미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미지를 찾아 내고 나니, 이번에는 기번이 다루는 역사의 범위를 간단한 도식으로 그려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단박에 이해할 테니까. 그렇게 해서 어설프게나마 그림을 하나 그려야 했다.

 

 

아무튼 영상으로 책을 소개하자면 이런 번거로운 작업은 피할 도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이미지를 하나씩 만들어 내고 찾아 내다 보니 어느새 25분짜리 동영상에 채워넣을 이미지들이 곳간에 가마니 쌓이듯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이렇게 모은 이미지를 지금에서야 헤아려 보니 무려 232개나 되었다. 이미지 한 개에 평균 3분 정도씩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더라도 무려 10시간이 넘는 막대한 시간을 쏟아부은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사진들이고, 내가 직접 사진을 찍거나 그려낸 이미지는 1할이 될까 말까 싶다. 이렇게 잔뜩 끌어모은 이미지를 내가 설명하는 '내레이션'에 맞춰 알맞게 딱딱 배치시키면 영상의 초벌 작업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고민이 생긴다. 특정 장면을 해설하는데 가장 적합한 이미지가 이것 말고 더 나은 게 어디 없을까 하는 욕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혹은 광고를 찍을 때 똑같은 장면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찍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글쓰기 작업으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퇴고'를 거치는 셈인데, 이럴 때 뭔가 물흐르듯 매끄럽게 연결되는 알맞은 이미지를 찾지 못할 때만큼 안타까운 경우도 없다.

 

가령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의 '몰락하는 로마'를 그려낸 이미지가 그렇다. 고트족의 왕인 알라리크의 세 차례의 침입으로 마침내 제국의 수도인 로마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장면만큼 역사적인 장면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그 드라마틱한 장면을 도대체 어떤 경로로 찾아낼 것인가가 진짜 문제다. 내가 찾고자 애썼던 아래의 그림을 찾아내는 데는 결국 3분이 아니라 30분쯤은 걸렸던 듯하다. 그 덕분에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그린 그림들은 이것저것 실컷 구경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야만족에 의한 로마의 함락, 410년>

 

<로마제국쇠망사>는 또한 여느 문학작품 못지 않게 숱한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언급된다. 역사적인 사건과 장소를 신화와 전설 속의 이야기와 함께 맛깔스럽게 버무려내는 솜씨야말로 기번의 특출난 재능이자 이 작품을 역사서를 뛰어 넘어 문학작품으로까지 격상시키는 핵심 요소이다. 이런 설명에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 게 또한 그런 장면에 딱 알맞은 이미지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그림들이 그렇다.

 

<오뒷세우스 일행을 공격하는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

 

하르퓌아와 싸우는 아이네이아스와 동료들, 17세기경, 프랑수아 페리에

 

얼굴은 처녀이고 몸통은 독수리인 이 괴조(怪鳥)는 <아르고 호의 모험>에도 등장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도 등장하는데, 기번은 바로 이 괴조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시킨 것이다.

 

☞ 셰익스피어의 『태풍』속에 나오는 마녀새 이야기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대목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대한 분석>인데, 이런 설명에 뒤따르는 이미지 또한 내 입맛에 맞게 딱딱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가 마침내 공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니케아 공의회를 둘러싸고 벌어진 극심한 이단 논쟁,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박해, 교황과 황제 사이의 권력다툼 등을 묘사한 그림들이야 (잘만 찾아보면) 숱하게 널려 있겠지만, 그런 이미지들 가운데 내게 딱 알맞은 이미지를 금세 찾아내는 게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설명을 위해 무한정 시간을 쏟아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이런 과정에서 애써 찾아낸 많은 이미지들이 결국 영상에 쓰이지 못하고 버려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등장하는 <멜크 수도원>

 

이 작품은 또한 숱한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격찬을 받은 작품이어서, 그런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도 빼놓기 어려웠다. 에드워드 기번과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볼테르,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를 비롯, 나폴레옹, 토머스 칼라일, 윈스턴 처칠, 버지니아 울프, 아놀드 토인비 등등이 그런 인물들인데, 이런 인물들의 이미지 또한 일일이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작업의 초창기에 녹음을 마친 내레이션에 그런 인물들에 대한 언급이 버젓이 담겨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인물들의 실제 이미지를 영상에서 쏙 빼놓을 수 있겠는가.

 

<로마제국 쇠망사>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사마천의 <사기>와 비교될 만큼 방대한 작품이다.

 

이렇게 내 나름대로는 각고의 노력(?)을 들여 동영상을 하나 만들어 올렸지만, 내가 아무리 고생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건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쇠망사>를 완성하기 위해 24년 동안 바친 엄청난 노고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는 작가가 기울인 엄청난 노고와 작품의 명성에 걸맞는 만큼 많은 독자들로부터 읽히지는 않는 듯하다. '없는 게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그 유명한 유튜브에서조차 아직까지는 이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내가 힘들여 만든 동영상만이라도 하나의 자극제가 되어 이 걸작을 읽는 독자들이 좀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아, 참... <로마제국 쇠망사>를 소개하는 동영상에는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영광의 작품상을 수상하는 감격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소개하는 영상에 뜬금없이 웬 기생충이냐고? 그 이유를 여기서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 싶다.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그 이유를 십분 공감하리라 믿는다.

 

(제가 만든 유튜브 동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https://youtu.be/UMuGTYPub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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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2-20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수고 많이 하셨네요. 이미지 뽑고 선별하고 편집하고 보통일이 아닙니다. 귀한 작업 나중에 찬찬히 보고 듣고 즐기겠습니다. 지금은 페이퍼만 읽고 제가 다 신나서ㅎㅎ

oren 2020-02-20 20:0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구요. 저 두툼한 책도 읽었는데 고작 20 분짜리 영상 하나 못 만들 소냐, 하고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아주 혼쭐이 났습니다. 무모한 시도였지만 다 만들어 올리고 나니 쫌 뿌듯한 보람도 느낍니다. 영상을 보시는 분들께서 얼마만큼 공감해 주실지는 몰라도요.^^

막시무스 2020-02-20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정말로!

oren 2020-02-20 20:06   좋아요 2 | URL
저는 오히려 동영상을 만들면서 다시 한번 에드워드 기번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단순히 책을 읽고 리뷰나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직접 만드는 일이 얼마만큼 더 ‘작품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지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어설프면 결국 동영상 속에 그 밑천이 훤히 다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걸 절감했으니까요.^^

Falstaff 2020-02-20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이고... 저는 몇년째 쇠망사를 읽을까 말까 고심을 하다하다하다하다 아직 결정을 못짓고 있는 상태인데요, 오렌님께선 동영상까지. 후덜덜합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하필이면 그 출판사에서 그 시기에 찍었다는 건데요, 저는 쇠망사는 읽지 않아 모르겠는데, 책을 찍은 시기가 책의 장정은 가장 화려했지만 교정 교열이 가장 안 좋았던 때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완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특히 비슷한 시기에 나온 사기, 별로 좋지 않아서 쇠망사를 포기했는데, 아... 고민됩니다.

oren 2020-02-20 21:34   좋아요 2 | URL
<쇠망사>를 앞에 두고 읽을까 말까를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그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그 어떤 책이든 안 읽은 책 빼고는 두루 섭렵하시는 팔스타프 님께서 이 책을 앞에 두고 고민하신다니, 과연 이 책의 무게감을 알 만합니다.^^ 저는 민음사에서 나온 <사기(본기, 세가, 열전)>을 읽을 때에도 교정과 교열에 별 불편한 걸 못 느꼈고, <로마제국 쇠망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다가 오탈자를 발견한 기억이 있지만, 눈살을 찌푸릴 만한 구석은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영상 한번 보시고, 이참에 용기 내셔서 단번에 쫙 한번 끝까지 내달려 보시지 그러세요? 기번의 문장이 워낙 좋아서, 문장의 힘에 이끌려서라도 손쉽게 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