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것이 2001년 부터 였다.
빌려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대개 책값은 기름값에 이어 내 카드 사용 내역 랭킹 2위를 차지한다. 여름같은 미스터리 성수기에는 1위를 탈환하기도 한다. 서점에서 책을 사던 시절에는 가끔 서점에 가서 한 두권 사는게 고작이었으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 부터는 처음엔 배송료때문에 4만원, 이제는 적립금, 할인 쿠폰 때문에 4만원 등 구매를 부추기는 요소들이 많아 대량 구매를 하게 된다. 거기다 서재니, 클럽이니, 카페니,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는 얼마나 다변화 되었는가.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은 '지름신'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강림하게 된다.
도서의 구입이 활발해지다보면 생기는 현상. 적체다.
이것도 재밌다는데, 저 작가는 놓치면 안되지, 어? 이건 쿠폰 기한이 오늘까지네?, 1+1이잖아? 등등의 이유로 책을 사들이다 보니 읽는 속도가 도통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뭐 언젠간 읽겠지. 내가 안 읽은 책 중에 옆지기가 읽는 책도 있으니 뭐. 회사 짤리면 집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을테야. 등등의 호기로운 이유를 들이대며 책 사들이는 손길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읽을 책이 많아서 기쁘고 뿌듯하긴 하다. 가난한(지금도 가난하지만) 학생 시절엔 책 한권 사는것도 부담스러웠는데, 적어도 꼭 사고 싶은 책들(꼭! 사고 싶은 책들만 사는것은 결코 아니지만)은 큰 무리없이 살 수 있어 행복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뭔가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재독의 기쁨'이다.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으니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빼보는 것은 언감생심이 돼버렸다. 게다가 독서 장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더니, 책 읽는 것이 왠지 실적주의로 흐르는 것 같다. 어? 이번달엔 아직 이것 밖에 못 읽었네? 음.. 권 수를 채우려면 좀 짧고 헐렁한 책을 읽어볼까? 이런 식이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다시 곱씹으며 차근 차근 다시 읽는 맛은 초독의 생생함과는 또 다르다. 여름 방학마다 한 번씩 다시 읽었던 <삼국지>, 고등학교 시절 세 번이나 읽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읽을 때 마다 흥미진진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어린 시절 닳도록 읽었던 <포우 단편집>, <사자왕 형제의 모험>, <날으는 교실>, <얄개전> 등등의 책들은 스토리 하나 하나, 등장인물 하나 하나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지금도 읽고 나서 아, 나중에 또 읽어야지라는 마음이 드는 책들이 적지 않지만 아직도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혀있는 많은 책들에 밀려 무망한 바람이 될 뿐이다. 적당히 사고, 여유있게 읽고, 생각나면 다시 꺼내서 읽는, 그런 우아한 독서 생활이 그립기도 하다. 인터넷을 끊어야 할까? 그러기엔 여기 저기서 얻어 들은 정보로 새롭게 만나는 작가나 작품들이 주는 즐거움이 너무 크다.
그렇다면 역시 해결책은 시간이 펑펑 남아돌아 온종일 책만 읽는 것. 하하하.(그렇게 되면 놀러 다니느라 책은 뒷전이 될 것이 확실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