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밀레니엄 3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을 끝으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종주를 마쳤다. 평소 습관대로 전편을 연속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2편과 3편은 이어지는 내용이니만큼 짧은 간격만 두고 연달아 읽어내렸다.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의 미스터리는 의외로 국내에 제법 소개가 된 편이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등 핀란드를 제외한 고른 분포이기도 하다. 물론 스웨덴의 작품들이 가장 많다. 북유럽 국가중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기 때문이려나.

단 한편만 소개된 것이 안타까운 <웃는 경관>의 마틴 벡 시리즈,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발란데르라고 쓰는 것이 옳은 표기법이겠다.) 시리즈, 그리고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까지가 스웨덴 작가의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들이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헐리우드 판 영화 제작에 맞추어 국내에서도 출판사를 달리하여 새로 책이 나오고 있다. (번역자가 같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1편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같은 판본으로 보인다.)

범 북유럽의 미스터리는 동질성을 많이 갖고 있기도 하다. 북유럽 특유의 서늘하고 추운 날씨와 복지 국가의 그늘이라 할만한 윤택하지만 생기 발랄하지는 않은 다소 어두운 개개인의 일상들. 소통이 쉽지 않은 고독한 중년의 모습 등등이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진다.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 카린 포숨의 콘라드 세예르까지 어찌 그다지도 닮은 점이 많은지! (물론 이들의 모습이 미스터리 소설 속 중년 경감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메인>의 라프왕트도 비슷한 이미지다.)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북유럽의 미스터리들을 읽고 있다보면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 추위, 어두움 등등의 느낌이 밀려온다. 설혹 배경이 여름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전적으로 지치고 우울한 쿠르트 발란더 형사의 책임일 수도 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적어도 스웨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전체적인 느낌은 가장 밝다. 어둑한 저녁의 황량한 시골이 연상되는 다른 책들에 비해 밀레니엄은 밝은 대낮의 활기찬 도시가 연상된다. 남자 주인공 블롬크비스트의 일에 대한 열정과 활발한 연애활동 때문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 좌파 작가는 스웨덴의 일반적인 모습에 자신이 이상으로 추구했던 스웨덴 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파헤쳐져야 할 어두운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을 고발한다. 그것이 바로 밀레니엄이 미스터리이면서도 사회소설로 불리울 만한 이유이다.

<3편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은 법정물로 분류해도 좋을만한 소설인데, 그 법정의 재판을 둘러싼 갖가지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우리에 비해 얼마나 높은 성취를 이루어 내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벌던 거대 언론사주이자 기업가가 사회적으로 어떤 입장에 처하는지, 국가의 안보를 위해라는 명분아래 개인의 인권을 유린했던 정보기관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우리입장에서는 경탄하며 부러워 할 만한 일들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이나 일국의 총리가 현재 진행되는 재판에 대해 보이는 공평무사한 태도는 우리나라의 검찰과 권력기관의 행태를 돌아볼 때 부러움을 넘어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총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반하는 상황이 검찰측의 주장임에도.)

복지와 함께 프리섹스의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 답게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대한 불가침적인 시각들은 '미풍양속'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저해하고 나아가 온갖 추악한 행패와 폭력을 일삼는 우리의 현실과 명징하게 대비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밀레니엄>에서 그려지는 스웨덴 사회를 통해 민주주의는 각각의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더 고양된 의식을 갖추어야 진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개인마다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내게는 3편이 최고의 재미를 주었다. 클라이막스이기도 한 법정 장면은 역대 어떤 법정 미스터리보다도 통쾌한 승리를 보여준다.

** 경찰 수사팀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쿠르트 볼린데르'는 '쿠르트 발란더(발란데르)'를 의식한 것일까?

*** 전국을 발칵 뒤엎은 연쇄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특별팀 형사들도 9시 출근, 5시 퇴근. 주말에는 휴무를 철저히 지키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는 완전히 일중독자임에 틀림없다. 물론 발란더도 한국에 오면 개념없는 형사 취급 받겠지만.
한국에서는 '퇴근? 퇴근? 형사가 퇴근하면 소는 누가 키워?' 잖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viana 2011-01-1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야클님의 강추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요.아쉽게도 3부는 도서관에 없어서 못보고 있어요. 매우매우 즐겁게 봤고 딱 보는순간 이 영화가 혹시 나왔는데 내가 못봤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화찍기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너무 빨리 가셔서 더 이상의 글이 없다는게 아쉽더라구요. 근데 그렇게 모든 면이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한 곳에서 결혼하지 않았다고 몇십년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던 부인에게 인세가 가지 않는다는 말은 굉장히 의외였어요.
ㅋㅋ 소는 누가 키워라니 아침에 빵 터졌잖아요.

oldhand 2011-01-19 10:55   좋아요 0 | URL
스웨덴 판 영화는 이미 나왔다고 합니다. 포스터만 슬쩍 봤었는데, 리스베트 역할을 맡은 여배우 포쓰가 좀 나와주던걸요. 블롬크비스트는 좀 어벙벙해보이는 중년 아저씨였지만요.
헐리우드 버전은 데이빗 핀처가 감독을 한다고 하는데 멋진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라르손 아저씨 소설이 이렇게 크게 성공할 줄 알았다면 혼인신고나 다른 법적 조치라도 취했을텐데, 재판 진행중이라니 그 결과도 흥미롭네요. 아무쪼록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길 바라 봅니다.
3부 아직 못 보셨다면, 나중에 꼭 보시기 바랍니다. 최고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