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만에 서재에 글을 쓰는 지 모르겠다. 

우연히 이벤트 메일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벤트 상품이 탐이 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책이라서 반가움에 페이퍼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을 구입한 것에 대한 소소한 정황은 예전에 쓴 리뷰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겠다.

http://blog.aladin.co.kr/oldhand/556270


확인해 보니 무려 12년 전에 쓴 리뷰다. '오래된 독자' 이전에 '오래된 리뷰, 오래된 서재'로다.


어린 시절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든 책이 출간된지 얼마되지 않은 싱싱한 초판본이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오래된 독자가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책도 사람도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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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마녀 2016-12-1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초판 1쇄 발행본이네요! 꼭 이벤트 당첨되시길! 이 책을 초판본을 가지고 계신 게 놀랍습니다!
 
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경찰 소설'은 이제 다양하게 분화한 미스터리 소설의 하위 장르 중에 없어서는 안될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경찰 소설은 단지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찰 소설은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실제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경찰의 조직 수사는 과거 명탐정들의 들러리 역할만 떠 맡아야 했던 바보스러운 경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경찰은 어떠한 명탐정보다도 많은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경찰 소설은 경찰의 수사활동을 사실에 가깝게 묘사한 작품들이다.

 

에드 맥베인은 87분서 시리즈를 통해 '경찰 소설'을 정립한 작가다. 제 1작인 <경찰 혐오자> 이래 2005년 타계할 때 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50편이 넘는 87분서 시리즈를 발표하였다. 87분서 시리즈는 특출난 주인공이 없다. 가상의 도시 아이솔라 시의 경찰청 산하 87분서 소속 형사들이 집단으로 등장한다. 각 작품마다 이야기를 주도해 가는 형사들이 바뀌기도 하며, 범죄 해결 과정에서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새로이 형사실에 신참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87분서 형사들의 시간은 지극히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시리즈를 50년 가까이 이어가지만 작품 내의 형사들은 10년의 나이도 채 먹지 않는 것 같다.

 

시리즈 한편 한편은 요새 나오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들에 비해 상당히 짧은 분량이다. 그만큼 군더더기도 없다. 그렇지만 맥베인 특유의 빠른 호흡과 간결한 문장이 주는 매력에 빠지기에는 충분하다. 50~70년 대의 영미 미스터리는 그동안 국내 미스터리 시장에 공백기나 마찬가지였다. 작년에서야 처음 국내에 소개된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도 이시기의 대표작이다. 87분서 시리즈도 예외가 아닌데, 50편이 넘는 작품 중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작품은 모두 10편이 채 안될 것이다. 그나마 해적판에 가깝게 나왔던 작품들은 모두 절판되어 구하기도 어렵고, 여러군데서 나온 시리즈 1작인 <경찰 혐오자>와 해문에서 나온 <10 플러스 1>만이 현재 새책으로 구해 볼 수 있는 '유이한' 작품이었다.

 

 

왜 <경찰 혐오자>만 줄기차게 중복 출판되는가!라고 울부짖었던(?) 기억도 이제 10년 가까운 예전 일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새해 벽두에 반가운 신간 소식이 들려왔다. 구 동서 추리문고로 출판되었다가 절판되었던 <살의의 쐐기>가 새로 번역, 출판된 것이다. 이 땅의 맥베인 팬들이여 경배할 지어다. 내가 읽어본 많지 않은 87분서 시리즈 중 <살의의 쐐기>는 최상급의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시리즈를 미처 접하지 못한 독자라도 독립적인 각각의 이야기들을 즐기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 책은 뒷 날개에 87분서의 주요 형사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살의의 쐐기>는 읽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수 없는 엄청난 속도감과 긴박감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에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정신 없이 책장을 넘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장을 덮는 순간 제목이 의미하는 절묘한 중의성을 깨달으며 다시 한 번 만족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소설가들은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소설가가 되었다"라고 말할만한 작품이 하나 씩은 있다고 한다. 출판사도 "이 책을 내고 싶어서 출판사를 만들었다"라고 할 만한 책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띄엄띄엄 읽던 추리소설을 본격적으로 탐독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2001년의 일이다. 지금은 없어진 추리소설 독자들의 커뮤니티인 모사이트를 알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많은 고수들이 남긴 리뷰와 작품 소개, 토론 등을 접하며 미스터리 애호가로의 첫 발을 디디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 시절 그 사이트에서 가장 돋보이는 분 중 한 분이 "carella "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분이었다. 87분서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인 '스티브 카렐라'형사에서 유래된 닉네임이다.

 

세월이 흘러 좁디 좁은 미스터리 장르 소설 바닥이다 보니 온라인 상에서 동경하는 고수였던 carella 님과 알고 지내게 되었다. 몇 년전 carella 님은 '미스터리 소설 애독자가 출판사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책을 직접 출판한다'라는 오랜 꿈을 실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출판사를 차리게 되면 꼭 내고 싶었다는 87 분서 시리즈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에드 맥베인과 87분서 시리즈에 대해 정통한 독자가 출판인이 되어 직접 만들어 낸 책인 것이다. 본문 뒤에 수록된 풍성한 해설이 이를 증명한다.

 

출판 시장이 유래없는 불황의 시기를 겪으며 어려운 와중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carella 님의 건투를 빈다. 이 책은 꼭 많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적어도 그만한 재미는 충분히 갖고 있다. 깔끔한 장정의 책등을 보며 이 책이 시리즈로 줄줄이 나와서 내 책장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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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세트 - 전5권 7년전쟁
김성한 지음 / 산천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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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떠오른 아주 오랜 두 가지 기억이 있다.

그 중 더 오랜 기억 하나는, 유현종의 소설 <임진왜란>이다. 이 책을 읽은게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라서 책의 내용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계몽사 소년문고라는 전집에 들어 있었던 책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었지만 제법 진지하게 전쟁을 서술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기억은 고등학생 시절의 일로, 현대문학 교과서에 일부가 실려 있었던 김성한의 <바비도>다. 1980년대 그 시절의 교과서 작가 중에 김성한은 비교적 젊은(?) 작가였다. 소설의 내용도 외국을 배경으로 한 종교 재판을 다루고 있어서 참 특이하고 인상 깊었다. 의연하게 삶의 길을 포기하는 바비도의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제법 숭고하게 다가왔다. 돌이켜 보면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그의 모습이 80년대의 엄혹한 시대상황과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세월은 25년 가까이 흐르고, 상대적이라지만 젊다고 여겨지던 김성한이 고인이 된 연후에야 그의 역사소설 <7년전쟁>을 읽게 되었다. 그제서야 중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구독하던 동아일보에 컬러 삽화와 함께 실렸던 소설 <임진왜란>의 기억이 떠 오른다. 송영방 화백의 그 익숙한 붓터치와 함께. 신문 한 면을 차지하는 연재 소설을 읽을 만한 깜냥이 못 되었던 나는 이렇게 나마 뒤늦게 <7년전쟁>을 접하게 되었다.


작가의 약력이 이채롭다. 순수문학을 업으로 하다가 언론계에 투신하여 <사상계>와 <동아일보>에 재직했다. 그리고 정년퇴임으로 보이긴 하지만 80년 신군부의 집권과 언론 통폐합 시절에 맞물려 언론인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그 후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써내려 간다.

 

<7년전쟁>은 이런 작가의 약력에 어울리는 긴장감을 갖고 있다. 신문 기사처럼 간결하고, 감정에 치우친 불필요한 가감이 없다. 권력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과 국제 정세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각을 유지한다. 이렇게 저널리즘에 입각한 역사 소설이 우리 문학사에 있었던가? 과문한 탓인지 내게는 새로운 발견이다.

 

이 소설은 종군 기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르포르타주라 할만큼 생생하다. 엄청난 사료 조사와 입체적인 분석이 돋보인다. 작가의 상상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독자를 선동하고 앞서나가 흥분할 법한 장면에서 조차 담담한 눈으로 사실을 조목조목 묘사한다. 소설 후반부의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 칠천량 해전과 조선 수군의 전멸, 이순신의 재신임, 기적과 같은 명량에서의 승리. 소설가라면 욕심을 부릴만한 처절한 소재이고, 극적인 장면이다. 실화가 아니었다면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라고 치부할 만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냉정을 잃지않은 서술은 오히려 더 생생하고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소설은 이순신의 전사와 함께 서둘러 결말에 이른다. 연재 상황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인지 권말에 수록된 작가 노트는 풍성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본작의 후일담이나 에필로그에 해당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소설을 다 읽은 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중요 부분이라 하겠다.

 

귀에 박힐 정도로 많이 들어온 역사적 사건이지만, 사실 그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경우가 많다. '임진왜란'도 그 중의 하나다. 1592년에 발발하여 7년 간 전개 되었던 전쟁, 통신사들의 엇갈린 증언, 선조의 야반도주, 이순신의 활약과 거북선, 행주대첩과 진주대첩. 각각의 단편적인 사실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7년 동안 전쟁이 거시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종료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특히 명나라와 일본 내부의 사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으며 오롯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나라와 위정자들은 온전히 되풀이 되는 역사속에 과거를 답습하고 만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임진왜란과 6.25는 놀랄만큼 유사한 사건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위정자와 지배층들이 보여주는 부패하고 무능한 행태, 수도를 사수한다고 민중을 속여 놓고 뒤도 안돌아본 채 도망치는 겁쟁이 조정과 정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오판과 잘못된 정책, 외국의 원조 없이는 나라가 결단나고 말 수 밖에 없는 허약한 국방력, 도망칠 때는 언제고 안전한 곳에서 결사 전쟁을 외치는 왕과 대통령, 적군과 원조군 모두에게 학살당하고 약탈 당하는 민중, 그리고 휴전 협상에서 제3자로 소외되는 전쟁 당사국.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공통점들은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 하다. 1500년 대에 일어난 사건에서 한 치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20세기 국가. 참으로 부끄럽고 불쌍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할 것인가.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 작가는 서언에서 준엄하게 일갈한다.


의도적인지 모르겟지만 우리는 그동안 민족사를 다룰 때 '전쟁'이라는 용어를 회피해 왔다.
'임진왜란'이 그렇고, '병자호란'이 그렇다. '6.25 사변'이 그렇고, '몽고의 침략'이 그렇다.
국가간의 전쟁을 단순히 나쁜 오랑캐들이 일으킨 '난리', '변괴', '사달'정도로 치부해 오지 않았나. '7년 전쟁', '조청전쟁', '한국전쟁', '항몽전쟁' 등이 더 적합한 용어가 아닐까?
어설픈 명칭을 부여하여 전쟁의 선량한 피해자인척, 역사적 사실을 축소하고 외면해오지 않았는가 돌이켜 봐야 한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왜놈들이 일으킨 난리인데 많은 의병들과 관군들이 일치 단결하고, 이순신 장군이 용감하게 적군을 무찔러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라고 피상적으로 배워 왔다. 하지만 소설에서 보듯 임진왜란은 그렇게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명, 일본, 조선왕조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대한 사건이다. 그 사건의 자세한 사정이 비록 우리에게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제대로 알리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진보적 재야 역사학자인 이이화는 10여년 전 저서 <한국사 이야기>를 통해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그보다 15년 이상 앞서 작가는 <7년전쟁>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자 하였다. 제목만으로도 작가의 역사적 관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소설은 훌륭하게 그러한 관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탓인지 신문 연재 당시 고수하지 못했던 제목을 제대로 살려 <7년전쟁>으로 새롭게 출간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접하고, 역사에 새로운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의 감동과 재미는 물론 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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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9-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게 누구시죠? 반갑네요. ^^

하이드 2012-09-1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하이드 2012-09-11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손님의 별다섯이라니, 임진왜란이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사읽고 싶네요. 반갑습니다!

oldhand 2012-09-1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 님, 하이드 님, 잊지 않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
역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한 두권 짜리 책이 아니니 대하 역사소설을 좋아하시거나, 임진왜란이 궁금하신 분들만 읽으시라고 조심스럽게 추천합니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기원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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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겨울, 연합고사를 치르고 빈둥거리며 지내던 나는 수업이 일찌감치 끝나자 영화를 보러 시내에 나갔었다. 영화 관람이 끝나고 즐겨 가던 서점에 들렀다. 


당시 해문 출판사에서 발행 중이던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에 열광하고 있던 나는 크리스티 문고가 꽂혀 있는 서가 부터 찾았다. 몇 달 간격으로 해문의 빨간 책, 애거서 크리스티 문고가 목록을 늘려 가던 시기였다. 근간으로 예정돼 있는 <화요일 클럽의 살인>, <메소포타미아의 죽음> 같은 책들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하지만 이미 바로 그 전날 크리스티의 신간을 두 권이나 샀기 때문에 뭔가 다른 살만한 책을 찾아 보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래, 이제 크리스티 말고 다른 작가의 책들도 좀 읽어봐야 겠다.'란 마음으로 서가를 훑어 보다 보니, 해문의 추리 걸작선이 이전의 세로 쓰기 판을 개정해서 새로 발행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집어 들었던 책은 다름 아닌 전설의 걸작 <환상의 여인>. 크리스티 문고는 1500원인데, 이 책은 비싸다. 2800원.

표지가 참으로 옛스럽도다.


그러고 나서 또 근처에 있던 다른 서점에 들렀더니 내 눈에 확 들어오는 파란 색을 띤 문고본이 있었다.


'오오라, 새로운 미스터리 문고가 나왔나 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은 제법 희귀한 아이템이 된 '자유 추리 문고'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자유 추리 문고는 해문의 크리스티 문고처럼 2-3권 씩 순차적으로 발행된 것이 아니라 제법 일시에 많은 책이 한꺼번에 나왔던 것 같다. 물론 초판 발행일자와 당시 내가 자유 추리 문고를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와는 6개월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지만, 그때에는 이미 50권의 목록이 서가를 꽉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터리에 대한 지식은 <세계의 명탐정 50인>으로 쌓아 올린 것이 전부였던 당시에도 자유 추리 문고의 목록은 꽤나 익숙한 작가들과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고심하던 내가 '유명 작가의 데뷰작'이라는 이유로 골라 잡은 책이 다름 아닌 <로마 모자의 비밀>이었다.

1986년과 2011년의 간극. 껍데기는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


책을 산 날짜와 서점을 꼼꼼하게 책에 적어둔 관계로 책을 샀던 그날의 상황은 비교적 생생하게 옮길 수 있지만 정작 <로마 모자의 비밀>에 대한 독후 감상은 그다지 변변히 기억에 남아 있지 못하다. <환상의 여인>은 미친듯한 속도로 읽어 버렸지만, <로마 모자의 비밀>은 두 권이기도 하고, 내용도 그다지 속도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던 기억 정도만이 남아 있다. 팬더 추리 문고로 초등학교 때 읽었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보다 재미없게 읽었던 것은 분명하다.


엘러리 퀸에 대한 본격적인 애정과 탐독은 그로부터 10여 년의 시간이 더 지난 후 시그마 북스로 쌓아 올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최초의 만남은 아동판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고 최초로 접한 완역본은 자유 추리 문고였던 것이다.


시그마 북스 이후 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엘러리 퀸이 돌아왔다. 국내에 발간된 엘러리 퀸의 모든 작품들을 이미 소장하고 있지만, 순조로운 시리즈 출간을 응원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너무 오래전에 읽었던 지라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은 <로마 모자 미스터리>를 새로 사서 읽게 되었다. 유일하게 시그마 북스로 갖고 있지 않은 국명 시리즈이기도 하다.


25 년여만에 읽은 <로마 모자 미스터리>는 기대보다 재미있었다. 국명 시리즈를 관통하는 엘러리 퀸의 논리는 '소거법'이고, 그 첫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도 충분히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독자에의 도전을 통해 진정한 논리 미스터리를 표방한 엘러리 퀸은 이 후 일본의 신본격 세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가장 충실하게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작품을 읽지 못한 작가라서 섣불리 언급하기는 좀 두렵지만 노리즈키 린타로나 구라치 준도 근사한 계승자로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천상 직업이 논리를 추구해야 하는 개발자인 나는 이러한 소거법에 의한 범인 색출이 언제 봐도 짜릿하다. 오히려 엘러리 퀸의 중후기 작품들보다 초기 작을 더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반 다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이런 완벽한 논리적 추리 기법은 엘러리 퀸에 의해 완성되고 제창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많은 후배 작가들이 그를 따르고, 모방하고, 넘어서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처녀작이기에 접할 수 있는 몇 가지 재미있는 설정들도 이 작품의 가치에 빛을 더한다. J.J. 맥의 서문은 퀸 독자들에게 좋은 호사거리임에 틀림없다. 일찌감치 은퇴해서 결혼하고 이탈리아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엘러리는 누구이며, 중년이 되도록 독신인 채 왕성한 추리 작가와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라이츠 빌의 엘러리는 누구란 말인가. 당시에는 버나비 로스의 필명을 보고 J.J. 맥의 서문을 떠올리며 의심하는 독자들이 없었을까. 등등.


전성기의 걸작들에 비하면 소설적 재미나 짜릿한 반전, 그리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명쾌함은 다소 부족하고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로마 모자 미스터리>는 거장이 이후로 쌓아올린 커다란 탑의 주춧돌로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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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L과 PD
 
1980년 대 우리나라의 진보 운동에는 두 개의 커다란 갈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NL과 PD다.
NL은 민족해방의 약자, PD는 민중민주주의의 약자다. NL은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분단'에 있다고 생각했고, PD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여타 다른 국제사회와 동일하게 '계급'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사전적인 의미로만 보면 PD야 말로 정통 맑시스트이고, NL은 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란 것이 서구에서는 우파의 전유물이고, 지나친 민족주의의 고양은 파시즘을 유발시킨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운동권의 주류는 NL이었다. 80년 5월 광주의 경험을 겪으며, 미국의 실체를 인지하게 되었고, 결국 분단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전대협, 한총련 등은 80년대 반독재 투쟁을 주도했지만, 이후 친북세력으로 매도되었고 민주화가 진행되고 사회가 보다 세련되어지면서, 철지난 구닥다리 수구 진보 취급을 받는다. (나아가서는 극우 매체들이 만들어낸 '종북세력'이라는 레테르까지 추가되었다.) 사회주의 몰락 이래 새롭게 등장하는 진보 청년들은 NL의 주장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 NL은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노동 운동 세력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NL이 운동권의 주류일 때도 PD 입장에서는 NL이 엄청 촌스러웠을 것이다. PD는 NL에 대해 지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고, NL은 PD에 대해 '살롱 진보'라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현실 정치권 인사들 중 DJ라는 논쟁적인 정치인에 대해서 두 진영은 다소 상반된 입장을 취하게 된다.
 
6월 항쟁이라는 전국민적 투쟁을 통해 얻어낸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 김씨의 분열은 NL과 PD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결국 NL은 '비판적 지지'라는 내용으로 DJ를 지지하게 되고, PD는 YS에게 현실적으로 유리한 '후보 단일화론'을 외치다가 결국 이루어지지 않자 백기완을 앞세운 독자 후보를 내세우게 된다. 그 후로도 PD는 민중의 당, 민중당 등 독자 정당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진영에 속해 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3당 합당을 통해 군사독재 세력과 손잡은 YS에게 투신하고 만다. 오늘날 한나라당의 중진이 된 김문수, 이재오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반면 NL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DJ와 가까운 인연을 토대로 DJ와 정치적 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김근태가 그렇고 386 정치인들이 그렇다. (노무현의 직계들은 좀 다른 경우인데, 노무현은 원래 YS를 통해 정계에 입문, 3당 합당 이후 소수 독자세력으로 남아 있다가 후일 DJ 진영에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후일 NL과 PD가 다시 손잡고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 의견 충돌 끝에 PD 계열은 진보신당으로 갈라졌다가 최근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한 솥밥을 먹게 되었다.
 
짧게 훑어본 우리나라 양대 진보세력의 약사다.

 

 

2. 이념, 주의, 정서
 
이론적으로는 이제 나도 구닥다리 NL보다는 PD 계열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한것은 아니지만 대학시절 난 NL 이었다. 지금도 NL의 정서가 난 더 익숙하고 친근하다. '김정일 개객끼'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D의 냉철함보다는 NL의 정서가 내 심정에 맞기 때문일까.
 
21세기의 새로운 젊은 진보들에게 NL은 구태세력으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백기완 선생보다 문익환 목사를 훨씬 더 존경하는 나는 NL을 구닥다리라고 욕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훨씬 세련되고 논리적인 PD의 변절을 더 많이 목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유행어를 빌자면 이게 다 김대중 때문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김대중이라는 논쟁적인 정치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진보 세력들도 결국 'DJ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첨예한 문제 때문에 수많은 이합집산을 되풀이 해야 했고, 많은 변절도 결국 그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결국 DJ를 싫어하고 비판했던 많은 진보인사들이 군사독재의 원류정당에 몸을 의탁했던 것이다.
 
정서는 결국 이념과 사상을 압도한다.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오던 사람들이 정서에 굴복하는 현장을 무수히 목도하였다. 어언 40대에 접어드니 내가 갖고 있는 이념과 주의가 그렇게 확고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변절내지는 훼절이라고 공격받을 만한 회심을 한 것은 아니고 나이를 먹고 보수화 된것 같지도 않지만, 이념이나 주의의 지속성과 영향력이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감한 탓이겠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절대 다수의 대중을 이끌어 내는 힘도 이념이나 주의가 아닌 정서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사회에서 강력한 추동력을 갖고 있는 정서는 '反'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정서보다 누군가를 열렬히 싫어하고 미워하는 정서가 더 강한 힘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2012년 대한민국 다수의 정서는 '반MB, 반한나라당'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에 '반호남, 반DJ'정서가 만만치 않다. 적어도 천만표는 요지부동이다. '반MB, 반한나라당'정서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요지부동의 천만표를 내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천만표보다 많은 수의 아군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3. 한나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자는 '민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미세하다. 민주당이 진보세력을 결코 살려주지 않는다. 사표 방지 심리든, 반한나라당 정서든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결국 진보의 싹을 밟는 행위이다.' 라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에 비해 민주당에 훨씬 호의적이긴 하다. 민주당은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후예다. 정치적으로 엄혹한 칼바람이 불던 시절에도 변절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오히려 진보를 부르짖다가 한나라당의 품에 안기는 사람들보다는 가치있는 집단이다. 호남 수구 세력이나 정치적 철새들의 둥지로 폄훼하기도 하지만 중심이 그들에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떠나서 현재 우리나라의 진보세력들에게 훨씬 우선되어야 할 문제가 민주당을 평가하기가 아니라 한나라당을 평가하는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 국민전선(FN)이라는 극우정당이 있다. 장 마리 르펜이라는 극우 정치인이 오랜세월 이 정당을 이끌고 있다. 르펜은 이슬람, 범죄, 이민자 문제 등에서 강경론을 주도하고 불법 이민자 추방, 주 35시간 노동제 폐지등을 주장하는 극우 인종 차별주의자이다. 90년 대에는 15% 내외의 지지율을 얻으며 제 3, 4 정당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이변이 발생한다. 좌파 통합 후보였던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를 물리치고 장 마리 르펜이 2위를 차지한 것이다.(프랑스는 대통령 선거에 결선 투표 제도를 시행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1, 2위 후보가 결선 투표를 실시하게 되어 있다.)

 

장 마리 르펜이 우파 후보인 자크 시라크와 함께 결선 투표에 진출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파부터 극좌파까지 극우 정당인 국민 전선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국민 전선 지지자를 제외한 모든 프랑스 국민들이 '반 르펜' 연대를 결성한다. 극우 파시즘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85%의 국민들이 일치 단결을 한 것이다. 이 연대에 좌우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파 후보인 시라크는 압도적인 지지로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다. 시라크는 중도 우파보다도 더 오른쪽에 치우친 우파 정치인이지만 어떤 진보 세력도 '우파 후보인 시라크가 대통령이 된다고 소외받는 민중의 삶과 진보 정치에 도움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반민주 세력, 파시즘 세력은 어떤 악惡보다도 우선적으로 해치워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되물을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 해답에 따라 2012년 진보를 자처하는 유권자의 행동이 갈리게 될 것이다. 

 
(p.s) 
정권 교체기 10년 동안 일부 진보 주의자들이 '차라리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이 진보정당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한 후 현실을 보면 완전히 틀린 예측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진보 정당은 그 기초부터, 뿌리부터 흔들렸다. 아직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토양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이 가장 크게 약진했던 17대 총선은 탄핵 정국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선거보다도 극우세력이 위축된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극우 세력의 척결 없이 진보정치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란 대단히 어렵다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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