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만에 서재에 글을 쓰는 지 모르겠다. 

우연히 이벤트 메일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벤트 상품이 탐이 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책이라서 반가움에 페이퍼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을 구입한 것에 대한 소소한 정황은 예전에 쓴 리뷰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겠다.

http://blog.aladin.co.kr/oldhand/556270


확인해 보니 무려 12년 전에 쓴 리뷰다. '오래된 독자' 이전에 '오래된 리뷰, 오래된 서재'로다.


어린 시절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든 책이 출간된지 얼마되지 않은 싱싱한 초판본이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오래된 독자가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책도 사람도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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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마녀 2016-12-1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초판 1쇄 발행본이네요! 꼭 이벤트 당첨되시길! 이 책을 초판본을 가지고 계신 게 놀랍습니다!
 

1. NL과 PD
 
1980년 대 우리나라의 진보 운동에는 두 개의 커다란 갈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NL과 PD다.
NL은 민족해방의 약자, PD는 민중민주주의의 약자다. NL은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분단'에 있다고 생각했고, PD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여타 다른 국제사회와 동일하게 '계급'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사전적인 의미로만 보면 PD야 말로 정통 맑시스트이고, NL은 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란 것이 서구에서는 우파의 전유물이고, 지나친 민족주의의 고양은 파시즘을 유발시킨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운동권의 주류는 NL이었다. 80년 5월 광주의 경험을 겪으며, 미국의 실체를 인지하게 되었고, 결국 분단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전대협, 한총련 등은 80년대 반독재 투쟁을 주도했지만, 이후 친북세력으로 매도되었고 민주화가 진행되고 사회가 보다 세련되어지면서, 철지난 구닥다리 수구 진보 취급을 받는다. (나아가서는 극우 매체들이 만들어낸 '종북세력'이라는 레테르까지 추가되었다.) 사회주의 몰락 이래 새롭게 등장하는 진보 청년들은 NL의 주장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 NL은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노동 운동 세력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NL이 운동권의 주류일 때도 PD 입장에서는 NL이 엄청 촌스러웠을 것이다. PD는 NL에 대해 지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고, NL은 PD에 대해 '살롱 진보'라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현실 정치권 인사들 중 DJ라는 논쟁적인 정치인에 대해서 두 진영은 다소 상반된 입장을 취하게 된다.
 
6월 항쟁이라는 전국민적 투쟁을 통해 얻어낸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 김씨의 분열은 NL과 PD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결국 NL은 '비판적 지지'라는 내용으로 DJ를 지지하게 되고, PD는 YS에게 현실적으로 유리한 '후보 단일화론'을 외치다가 결국 이루어지지 않자 백기완을 앞세운 독자 후보를 내세우게 된다. 그 후로도 PD는 민중의 당, 민중당 등 독자 정당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진영에 속해 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3당 합당을 통해 군사독재 세력과 손잡은 YS에게 투신하고 만다. 오늘날 한나라당의 중진이 된 김문수, 이재오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반면 NL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DJ와 가까운 인연을 토대로 DJ와 정치적 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김근태가 그렇고 386 정치인들이 그렇다. (노무현의 직계들은 좀 다른 경우인데, 노무현은 원래 YS를 통해 정계에 입문, 3당 합당 이후 소수 독자세력으로 남아 있다가 후일 DJ 진영에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후일 NL과 PD가 다시 손잡고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 의견 충돌 끝에 PD 계열은 진보신당으로 갈라졌다가 최근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한 솥밥을 먹게 되었다.
 
짧게 훑어본 우리나라 양대 진보세력의 약사다.

 

 

2. 이념, 주의, 정서
 
이론적으로는 이제 나도 구닥다리 NL보다는 PD 계열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한것은 아니지만 대학시절 난 NL 이었다. 지금도 NL의 정서가 난 더 익숙하고 친근하다. '김정일 개객끼'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D의 냉철함보다는 NL의 정서가 내 심정에 맞기 때문일까.
 
21세기의 새로운 젊은 진보들에게 NL은 구태세력으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백기완 선생보다 문익환 목사를 훨씬 더 존경하는 나는 NL을 구닥다리라고 욕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훨씬 세련되고 논리적인 PD의 변절을 더 많이 목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유행어를 빌자면 이게 다 김대중 때문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김대중이라는 논쟁적인 정치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진보 세력들도 결국 'DJ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첨예한 문제 때문에 수많은 이합집산을 되풀이 해야 했고, 많은 변절도 결국 그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결국 DJ를 싫어하고 비판했던 많은 진보인사들이 군사독재의 원류정당에 몸을 의탁했던 것이다.
 
정서는 결국 이념과 사상을 압도한다.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오던 사람들이 정서에 굴복하는 현장을 무수히 목도하였다. 어언 40대에 접어드니 내가 갖고 있는 이념과 주의가 그렇게 확고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변절내지는 훼절이라고 공격받을 만한 회심을 한 것은 아니고 나이를 먹고 보수화 된것 같지도 않지만, 이념이나 주의의 지속성과 영향력이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감한 탓이겠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절대 다수의 대중을 이끌어 내는 힘도 이념이나 주의가 아닌 정서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사회에서 강력한 추동력을 갖고 있는 정서는 '反'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정서보다 누군가를 열렬히 싫어하고 미워하는 정서가 더 강한 힘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2012년 대한민국 다수의 정서는 '반MB, 반한나라당'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에 '반호남, 반DJ'정서가 만만치 않다. 적어도 천만표는 요지부동이다. '반MB, 반한나라당'정서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요지부동의 천만표를 내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천만표보다 많은 수의 아군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3. 한나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자는 '민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미세하다. 민주당이 진보세력을 결코 살려주지 않는다. 사표 방지 심리든, 반한나라당 정서든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결국 진보의 싹을 밟는 행위이다.' 라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에 비해 민주당에 훨씬 호의적이긴 하다. 민주당은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후예다. 정치적으로 엄혹한 칼바람이 불던 시절에도 변절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오히려 진보를 부르짖다가 한나라당의 품에 안기는 사람들보다는 가치있는 집단이다. 호남 수구 세력이나 정치적 철새들의 둥지로 폄훼하기도 하지만 중심이 그들에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떠나서 현재 우리나라의 진보세력들에게 훨씬 우선되어야 할 문제가 민주당을 평가하기가 아니라 한나라당을 평가하는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 국민전선(FN)이라는 극우정당이 있다. 장 마리 르펜이라는 극우 정치인이 오랜세월 이 정당을 이끌고 있다. 르펜은 이슬람, 범죄, 이민자 문제 등에서 강경론을 주도하고 불법 이민자 추방, 주 35시간 노동제 폐지등을 주장하는 극우 인종 차별주의자이다. 90년 대에는 15% 내외의 지지율을 얻으며 제 3, 4 정당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이변이 발생한다. 좌파 통합 후보였던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를 물리치고 장 마리 르펜이 2위를 차지한 것이다.(프랑스는 대통령 선거에 결선 투표 제도를 시행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1, 2위 후보가 결선 투표를 실시하게 되어 있다.)

 

장 마리 르펜이 우파 후보인 자크 시라크와 함께 결선 투표에 진출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파부터 극좌파까지 극우 정당인 국민 전선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국민 전선 지지자를 제외한 모든 프랑스 국민들이 '반 르펜' 연대를 결성한다. 극우 파시즘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85%의 국민들이 일치 단결을 한 것이다. 이 연대에 좌우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파 후보인 시라크는 압도적인 지지로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다. 시라크는 중도 우파보다도 더 오른쪽에 치우친 우파 정치인이지만 어떤 진보 세력도 '우파 후보인 시라크가 대통령이 된다고 소외받는 민중의 삶과 진보 정치에 도움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반민주 세력, 파시즘 세력은 어떤 악惡보다도 우선적으로 해치워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되물을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 해답에 따라 2012년 진보를 자처하는 유권자의 행동이 갈리게 될 것이다. 

 
(p.s) 
정권 교체기 10년 동안 일부 진보 주의자들이 '차라리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이 진보정당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한 후 현실을 보면 완전히 틀린 예측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진보 정당은 그 기초부터, 뿌리부터 흔들렸다. 아직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토양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이 가장 크게 약진했던 17대 총선은 탄핵 정국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선거보다도 극우세력이 위축된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극우 세력의 척결 없이 진보정치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란 대단히 어렵다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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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날 흔히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는 장르는 저 유명한 천재 에드가 앨런 포우의 '발명품'이다. 1841년 포우는 <모르그 가의 살인>이라는 단편을 발표하였다. 이 짤막한 단편 소설에는 추리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할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 후에 나온 추리 소설들은 모두 <모르그 가의 살인>을 변주한 작품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견이 없을 수 없는 지나치게 거친 주장이긴 하지만 예전부터 여러번 밝혀왔던 개인적인 견해다. 오거스트 뒤팽이 있었기에 셜록 홈즈와 그 후예들이 있는 것 아니겠나. 포우의 전범典範 없이 코넌 도일이 홈즈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탄생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뒤팽이 탄생하고, 홈즈가 뒤를 이어 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1929년, 또 하나의 위대한 발명품이 등장한다. 바로 사무엘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이다. 포우가 없는 도일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해밋 없는 챈들러나 맥도널드를 상상하기도 어렵다. '하드보일드'라는 도저한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은 미스터리 문학사에 있어서 <모르그 가의 살인>에 필적할 만큼 큰 족적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수없이 양산된 느와르 소설, 펄프 픽션들과 바다 건너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까지 해밋의 숨결은 곳곳에 숨어 있다.

 

이제 홈즈나 포와로는 뒤팽보다 더 유명하고, 필립 말로나 해리 보슈를 스페이드나 컨티넨털 옵보다 더 자주 접하게 되었지만 '원류의 정통함'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원류를 탄생시킨 작가들은 그만한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족발집도, 떡볶이 집도 너나 없이 원조를 따지는 세상이 아닌가. 해밋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하드보일드'의 원조다.

 

과작이기도 했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도 적어 늘 아쉬웠던 대실 해밋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리더니 결국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진정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팔 벌려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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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2-01-17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드보일드의 원조와 함께 올드핸드님도 짜잔! ㅎㅎ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넣었습니다. :)

재는재로 2012-01-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타의 매라는 작품은 물만두님의 리뷰에서도 봤는데 해밋작품이었군요

oldhand 2012-01-1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 님 :: 뜸하긴 해도 제가 서재마을을 떠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이 중요하죠. ㅎㅎ
재는재로 님 :: <몰타의 매>와 <붉은 수확>은 몇 차례 국내에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워낙 뛰어난 작품들이기도 하구요. <데인가의 저주>는 1950년 대에 출간된 적이 있다는 풍문을 들은적이 있고 나머지 두 작품은 완전히 국내 초역인 셈입니다.

포우와 해밋은 원조이기도 하지만 후대의 빛나는 작품들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수준의 작품을 써냈다는 것도 주목받을 만 합니다. 많은 후배 작가들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장르적 세련도와 완성도가 올라가기 마련인데, 이 두 사람은 거의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놀라운 걸작들을 써냈죠. 천재들입니다.
 

최근 4~5년 일본 미스터리의 붐에 힘입어 미스터리 도서 시장 자체의 파이가 조금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추리 소설, 미스터리 소설은 매니아 장르, 비주류 장르에 지나지 않는다. 애호가들의 입장에선 아직도 미번역된 전설적인 고전이나, 국내에 미처 소개되지 못한 동시대 많은 유수한 작가들의 작품을 리스트로만 접하며 군침을 삼킬수 밖에 없다.

미스터리 장르 애호가들끼리 사적인 만남을 갖다 보면 늘쌍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나중에 로또 맞으면 출판사 하나 차려서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을 출판하는'것이다. 물론 꿈은 꿈일 뿐, 우리에겐 로또를 맞을 일도 없고 그리하여 당연히 출판사를 차릴 일도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물론 로또에 당첨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평소 친분을 쌓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여기던 국내 최고의 고수이자 애호가인 분께서 출판사를 설립하고 미스터리 소설을 출판하게 된 것이다.

1인 출판사 같은 소규모 출판형태가 드물지 않은 시대이고, 미스터리 장르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나 임프린트도 적지 않지만 이처럼 본격적인 애호가이자 독자이던 분이 직접 해당 장르의 출판을 감행하는 것은 적어도 미스터리 장르에선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출판사의 이름마저도 의미심장한 '피니스 아프리카에'(장미의 이름 중 나오는 장서관의 밀실 이름이다. 아프리카의 끝을 의미).

야심찬 첫 출간작은 현대 영미권 전통 클래식 후더닛 미스터리 작가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루이즈 페니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스틸 라이프>이다.

구구절절한 작품 소개와 작가 소개는 서지정보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 책 소개에 갈음하여 영미 미스터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전영찬 님의 글을 참고로 링크한다.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c1&page=6&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59 

 

아울러 미스터리 독자들의 오랜 꿈을 이룬 도서출판 피니스 아프리카에의 힘찬 출발을 열심히 응원하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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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1년도 2월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설은 지나지 않았으니 나름대로 정리해서 올리는 2010년 결산이다. 물론 미스터리 부분으로 한정한 것이다.

나는 그다지 다독가도, 속독가도 아니다.
연간 읽어내는 책은 미스터리 소설이 대부분이지만, 그마저도 50여권 수준이고 최근 몇년은 신간에 눈독을 들여 읽지도 않았다. 2010년은 그동안 사놓고 묵혀두었던 책들을 제법 소진했고, 로마서브로사, 밀레니엄, 샤들레이크 시리즈 같은 대단히 뛰어난 시리즈 장편들을 새롭게 만났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작년에는 부문별 후보작까지 꼽아가며 열심히 결산을 했지만, 올해는 간략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세 권의 책이 워낙에 압도적이었으며, 별다른 경합이나 고민없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올해의 베스트 : 존 딕슨 카 <유다의 창>
 

내가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쯤이었으니, 햇수로도 어언 30년 가까이 되었다. <연속 살인 사건>을 계림 출판사에서 나온 아동판으로 읽었었는데 셜록 홈즈를 제외한 다른 작가의 장편 미스터리를 읽은 것이 거의 처음이었을 것이다. 재기발랄한 코믹함과 음산한 배경, 깔끔한 마무리 등 딕슨 카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추리소설의 인기가 풍성하고,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여 유수의 고전 작품들이 번역되어 있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30년 전에 읽었을 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딕슨 카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유다의 창>이 작품 발표 후 무려 72년만에 국내에 소개 되었고, 초등학생 꼬마는 이제 불혹이 되어 그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었다.
기대치가 크면 실망의 확률도 높은 법인데 <유다의 창>은 기대를 뛰어넘는 재미와 흥분을 안겨준다. 닳고 닳은 독자이지만, <유다의 창>을 읽으면서 나는 짜릿한 쾌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기립박수를 보낼만한 작품이다.

 

베스트에 못지 않았던 두 편의 소설.

스티븐 세일러 <로마 서브 로사 3 - 카틸리나의 수수께끼>
 

격동의 공화정 말기 로마를 배경으로 한 로마서브로사 시리즈는 각 권 하나하나가 깨알같이 훌륭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중 최고를 꼽자면 시리즈 3편 <카틸리나의 수수께끼>를 꼽는다.
역사적 사건의 장대한 스케일, 사회적 메시지, 실감나는 당대의 풍습과 집정관 선거에 대한 묘사, 묵직한 감동까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과격한 급진파로서 보수파인 키케로와 대립했던 카틸리나는 역사적으로는 패자로 남았지만, 스티븐 세일러가 소설로 재구성한 카틸리나 역모사건의 전말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고르디아누스는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지만 카틸리나의 인간적 매력과 면모에 이끌린다. 고르디아누스와 메토가 결국 최후의 산 증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책을 덮은 후까지도 긴 여운을 남긴다.

빼어난 번역 및 교열도 이 시리즈의 미덕 중 하나다.


C.J. 샌섬 <어둠의 불>
 

전작 <수도원의 죽음>이 진중하기는 하지만 빼어난 재미를 주지 못한 까닭에 어쩌면 읽지 않았거나 한참 뒤로 밀려버릴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정신없는 가독성, 잔혹한 묘사와 현란한 반전 등에 치중하지 않아도 진지함과 치밀함으로 얼마든지 독자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살인죄로 압살형에 처해질 위기에 빠진 소녀와 비잔틴 제국의 비밀 병기였던 정체 불명의 검은 액체를 둘러 싼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전작에 비해 훨씬 박진감도 넘치고, 두번째 작품이니 만큼 캐릭터들도 생생하다.
<수도원의 죽음>에서 등장했던 조수 마크 포어에 비해 100배는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잭 바라크의 등장은 향 후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무르익게 한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 작품이 마지막 출간이 될 것 같은 우울한 예감도 피할 수 없다.

작품의 소재로 쓰인 신비의 액체 '그리스의 불'은 해리 터틀도브의 <비잔티움의 첩자>에서 언급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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